도깨비와의 씨름
첩첩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마을은 내 어린 시절 세계의 전부였다. 가끔 꽉 막힌 공간에서 활짝 열린 먼 곳을 꿈꾸기도 했지만, 그 ‘열린 공간’이란 게 무엇인지 도통 가늠할 수가 없었다. 보고 경험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 몸은 대처에 나와 있으나 마음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있음을 느낀다. 세상사 별 것 아니라는 깨달음일까. 아무리 날뛰어도 결국은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허무감일까. 다시 그 좁은 공간으로 숨고 싶은 것은 복잡한 세상의 원리가 바로 그곳에 있었다는 깨달음 때문이리라.
종종걸음으로 학교에 모여든 우리들의 관심사는 뻔했다. 누가 팔뚝만한 망둥어를 잡았고, 누구네 소가 송아지를 낳았으며, 누구네 누나가 이웃마을로 시집간다는 등등 사실보도를 빼고 나면 귀신 이야기, 도깨비 이야기가 남을 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귀신보다 도깨비가 훨씬 좋았다. 귀신 이야기를 들으며 몸서리를 쳤지만, 도깨비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고 유쾌했다.
우리는 툭하면 씨름을 즐겼다. 시골이라 ‘힘이 최고’라는 믿음 때문이기도 했지만, 도깨비 이야기와 무관치 않았다. 당시 우리들에게 널리 퍼져 있던 도깨비 이야기는 씨름과 관련된 것이 압도적이었다. 요지는 이렇다. 윗마을의 어떤 아저씨가 밤중에 재빽이(당시 우리들은 등성마루를 그렇게 일컬었다)를 넘다가 도깨비를 만났다. 그런데 그 도깨비가 다짜고짜 씨름을 걸어왔다. 만약 이 씨름에서 도깨비를 이기지 못하면 죽음이란 걸 그 아저씨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해 도깨비의 허리춤을 잡았다. 건곤일척의 씨름판이 나무 울창한 재빽이에서 벌어진 것이다. 그 아저씨도 힘이라면 누구 못지않았고, 씨름판에서 양은냄비 몇 세트는 이미 상으로 받은 경력의 소유자였다. 말하자면 마을의 씨름 챔피언과 원조 씨름 챔피언인 도깨비의 ‘심판 없는’ 일전이 심야에 벌어졌으니, 가관이었으리라.
몇 시간을 끙끙대며 씨름을 진행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랫마을에서 새벽 닭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도깨비는 스르르 손을 풀더니 냉큼 사라지는 것이었다. 아저씨가 비 오듯 흐르는 땀을 훔치고 정신을 차려보니 그 앞에 수십 년 된 몽당 빗자루 하나가 널브러져 있는 게 아닌가. “아, 내가 밤새 씨름한 것이 바로 이 몽당 빗자루였단 말인가?” 아저씨는 허탈해졌고, 집에 돌아온 후 집안을 탈탈 뒤져 몽당 빗자루들을 모조리 불살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의 우리는 몽당 빗자루를 싫어했다. 언제 도깨비로 변해 씨름을 걸어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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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지난 1년 가까이 온 국민이 달려들어 싸움을 벌이며 여기까지 왔다. 그 과정에서 하나를 내 쫓고, 하나를 들여놓았다. 그런데 참! 허탈한 것은 우리 모두 죽을힘을 다해 싸웠건만, 우리 앞에 서 있는 건 두 개의 몽당 빗자루뿐이라는 사실이다. 인간 세상에 유토피아는 없는 법. 결국 각자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슬프게도 누가 나를 위해 유토피아를 만들어 주는 게 아님을 깨닫기까지 5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간 넓은 세상에 나왔다고 우쭐대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다가 문득 깨달으니, 그 옛날 고향 재빼기의 한 뼘 공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