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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6.29 도깨비와의 씨름
  2. 2008.02.26 눈 내린 산길을 걸어서 출근하며 2
글 - 칼럼/단상2017. 6. 29. 12:02

도깨비와의 씨름

 

 

첩첩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마을은 내 어린 시절 세계의 전부였다. 가끔 꽉 막힌 공간에서 활짝 열린 먼 곳을 꿈꾸기도 했지만, 열린 공간이란 게 무엇인지 도통 가늠할 수가 없었다. 보고 경험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 몸은 대처에 나와 있으나 마음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있음을 느낀다. 세상사 별 것 아니라는 깨달음일까. 아무리 날뛰어도 결국은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허무감일까. 다시 그 좁은 공간으로 숨고 싶은 것은 복잡한 세상의 원리가 바로 그곳에 있었다는 깨달음 때문이리라

 종종걸음으로 학교에 모여든 우리들의 관심사는 뻔했다. 누가 팔뚝만한 망둥어를 잡았고, 누구네 소가 송아지를 낳았으며, 누구네 누나가 이웃마을로 시집간다는 등등 사실보도를 빼고 나면 귀신 이야기, 도깨비 이야기가 남을 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귀신보다 도깨비가 훨씬 좋았다. 귀신 이야기를 들으며 몸서리를 쳤지만, 도깨비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고 유쾌했다. 

 우리는 툭하면 씨름을 즐겼다. 시골이라 힘이 최고라는 믿음 때문이기도 했지만, 도깨비 이야기와 무관치 않았다. 당시 우리들에게 널리 퍼져 있던 도깨비 이야기는 씨름과 관련된 것이 압도적이었다. 요지는 이렇다. 윗마을의 어떤 아저씨가 밤중에 재빽이(당시 우리들은 등성마루를 그렇게 일컬었다)를 넘다가 도깨비를 만났다. 그런데 그 도깨비가 다짜고짜 씨름을 걸어왔다. 만약 이 씨름에서 도깨비를 이기지 못하면 죽음이란 걸 그 아저씨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해 도깨비의 허리춤을 잡았다. 건곤일척의 씨름판이 나무 울창한 재빽이에서 벌어진 것이다. 그 아저씨도 힘이라면 누구 못지않았고, 씨름판에서 양은냄비 몇 세트는 이미 상으로 받은 경력의 소유자였다. 말하자면 마을의 씨름 챔피언과 원조 씨름 챔피언인 도깨비의 심판 없는일전이 심야에 벌어졌으니, 가관이었으리라. 

 몇 시간을 끙끙대며 씨름을 진행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랫마을에서 새벽 닭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도깨비는 스르르 손을 풀더니 냉큼 사라지는 것이었다. 아저씨가 비 오듯 흐르는 땀을 훔치고 정신을 차려보니 그 앞에 수십 년 된 몽당 빗자루 하나가 널브러져 있는 게 아닌가. “, 내가 밤새 씨름한 것이 바로 이 몽당 빗자루였단 말인가?” 아저씨는 허탈해졌고, 집에 돌아온 후 집안을 탈탈 뒤져 몽당 빗자루들을 모조리 불살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의 우리는 몽당 빗자루를 싫어했다. 언제 도깨비로 변해 씨름을 걸어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 

 그렇다. 지난 1년 가까이 온 국민이 달려들어 싸움을 벌이며 여기까지 왔다. 그 과정에서 하나를 내 쫓고, 하나를 들여놓았다. 그런데 참! 허탈한 것은 우리 모두 죽을힘을 다해 싸웠건만, 우리 앞에 서 있는 건 두 개의 몽당 빗자루뿐이라는 사실이다. 인간 세상에 유토피아는 없는 법. 결국 각자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슬프게도 누가 나를 위해 유토피아를 만들어 주는 게 아님을 깨닫기까지 5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간 넓은 세상에 나왔다고 우쭐대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다가 문득 깨달으니, 그 옛날 고향 재빼기의 한 뼘 공터였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8. 2. 26. 12:32
 

눈 내린 산길을 걸어서 출근하며



                                                          조규익



출근길의 어려움에 고통 받는 분들은 ‘미친 놈!’이라 욕하시겠지만, 밤에 눈이 내리면 못 말릴 정도로 들뜬다. 아침 일찍 아이젠에 배낭차림으로 산길을 걸어 학교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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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끝에 누가 있을까

 대도시의 한 구석에 둥지를 틀고 세상의 잇속으로부터 초연하려 애써온 20년 세월. 누항(陋巷)에 살면서도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한겨울에만 서너 번쯤 맛볼 수 있는 ‘눈길 출근’ 덕분이다. 노트북과 책을 잔뜩 우겨 넣은 배낭을 짊어지고, 등산화에 아이젠을 차고 나서면 좋게 보아 ‘산사나이’ 서운하게 보아 ‘군밤장수’다. ‘배낭 속의 물건을 많이 팔고 오라’는 아내의 농을 뒤로 하고 산길로 접어들면 별세계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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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무와 눈의 조화여!

 나보다 극성스런 사람들이 벌써 발자국들을 찍고 지나간 산길이지만, 봄맞이 집 단장에 열성인 까치들의 노래 소리 만큼은 내 독차지가 아닐 수 없다. 아, 4계절 지겹게도 사람들의 체취에 시달리던 나무들이 오늘은 참하게 순백의 화장을 한 채 ‘거울 앞에 선 순이’의 형상을 하고 있구나! 소담하고 정갈한 그 자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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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눈길

***

내 어릴 적엔 눈이 많았다. 논바닥에서 아지랑이 피어오를 때까지도 차가운 바람은 내 작은 몸 곳곳을 파고들어 안절부절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눈과 얼음이 우리의 눈길을 벗어나는 적이 없었던 한겨울은 어떠했겠는가. 30리 들길과 산길을 걸어야 하는 등굣길의 고통이야 말하여 무엇 하리오. 얄팍한 고무신발의 밑창은 닳아 반들거리고, 가끔은 찢어져 너덜거리기도 했다. 얼음으로 판장 박힌 길에 나서자마자 앞·뒤·옆으로 곡예를 하거나 넘어지고 구르기 일쑤. 유도의 낙법(落法)은 그 시절 자연적으로 체득한 생존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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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들의 환성

 그러니 검은 때가 거북이 등처럼 더껑이 진 손등은 추위로 갈라져 늘 피가 비쳐 있고, 구멍 뚫린 장갑 밖으로 삐져나온 손가락들은 늘 쓰리고 아렸다. 자상하신 아버지는 발에 새끼를 둘둘 말아 ‘천연 아이젠’을 해주시곤 하셨지만, 성황당 재빽이[‘산등성이’의 충청도 사투리] 초입에서 다 벗겨지기 일쑤였다. 그러니 아이들은 구르고 자빠지며 시퍼렇게 질린 채로 요즘 아이들 ‘용평 스키장에서 미끄럼을 타듯’ 학교엘 오고 갔다. 땀과 눈에 절었다가 다시 추위에 얼어 서걱거리는 솜바지 저고리는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웠다. 조개탄의 눈물 나는 열기 속에 두어 시간 수업이 지나서야 참새 같은 우리들의 몸은 녹기 시작했다. 마룻바닥은 얼음물로 흥건하고, 얼었다 녹은 손발은 간지럽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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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 그 시절 누군들 추위와 배고픔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으랴. 그래서 하얀 눈은 아련한 설렘과 궁핍의 이미지로 나를 들뜨게 만드는 건 아닐까. 밤에 눈이 내리면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스키장 갈 생각에 잠을 못 이루겠지만, 유년기의 상처로 남은 마음의 궁핍에서 자유롭지 않은 나는 연구실에 도달하기까지 그 30분 남짓의 호사 때문에 잠을 못 이룬다. 어쩌면 음력 그믐날 밤 설빔을 안고 잠 못 이루던 그 시절의 흥분이 이랬던가, 잠시 회상해본다.

                           2008. 2. 26. 눈 내린 산길을 걸으며 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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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