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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5. 2. 20. 04:11

갑오년 그믐날 밤의 단상: 이완구 총리를 보며

 

 

 

복잡한 것 같지만 단순한 게 인생사다.

많은 관계들이 얽혀 여러 의미들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대개 한 두 가지 개념의 공약수로 수렴되는 것이 세상사다욕망과 허무는 내 경험으로 파악한 인간사의 두 공약수다. 위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부서지지 않는 성채(城砦)가 어디 있으랴! 잘 되었든 못 되었든 욕망으로부터 기획되거나 이루어지는 것이 인간만사이며, 성서의 말씀대로 창대해지지 못한 채그 끝은 허무로 귀결되고 마는 것이 세상사다.

 

미국의 소설가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작품 큰 바위 얼굴이 있다. 어머니로부터 앞 산의 '큰 바위 얼굴'과 똑같이 생긴 위인이 나타날 것이라는 전설을 전해 듣고 이 이야기를 철썩 같이 믿으며 그를 기다려 온 어니스트(Ernest). 부자장군정치가시인 등이 거쳐 갔지만, 그 중에 큰 바위 얼굴은 없었다. 그러는 동안 지독히 평범한 촌부 어니스트는 자애와 진실사랑을 설파하는 설교자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의 모습에서 큰 바위 얼굴을 발견하지만, 어니스트는 여전히 위대한 인물을 기다린다는 것이 작품의 요지다.

 

이 늦은 밤, 사람들의 이목을 한껏 끌어올렸다가 바닥에 내팽개친 이완구란 인물을 생각해 본다. 나를 포함한 상당수의 사람들이 그를 난국 구제의 해결사쯤으로 생각해 온 것이 사실이다. 대통령을 포함한 누구도 수완을 보여주지 못하는 작금의 문제적 상황을 그만은 어느 정도 해소해 내리라 보았다. 그러나 하루 이틀 지나며 흠결이 나타나다 못해 급기야 '조무래기 기자들' 몇을 앉혀놓고 힘자랑하다가 들키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누구의 표현대로, 인간 최후의 자존심마저 팽개치고 허겁지겁 재상의 자리에 기어오른그였다. 정작 그가 아니면서도 그의 부끄러움을 내 부끄러움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 같은 욕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바로 나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우리의 참모습을 일찌감치 깨닫게 해준 그가 고마운지도 모른다. 그 점 때문에 그를 함부로 미워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가 그렇게 헛발질을 하지 않았다면, 그는 프란시스 베이컨이 말한 극장의 우상(Idola Theatri)’으로 남아 한동안 우리를 더 농락했을지도 모른다. 국회에서 고만고만한 인물들과 어울리면서 기고만장하던 그의 모습에 잠시 우리는 판단력을 잃었던 것일까. 그러나 그 역시 욕망의 덩어리였고, 그 욕망은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그것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늦게나마 깨달았으니, 다행스런 일인가. 이렇게 잠시나마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 이완구는 우리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큰 바위 얼굴이 아니었다. 그래서 늘 그래왔듯이 우리는 다시 허무에 직면하는 것이다.

 

욕망과 허무! 정치인종교인학자사회운동가 등 우리 시대 리더의 직함을 달고 있는 인물들이 바야흐로 욕망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욕망의 운명적인 더러움에 빠져 있으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부끄러움을 모르니, 허무를 인식할 리 없다. 그러나 그들을 바라보는 대다수 민초들은 부끄러움과 허무감에 몸부림친다.

 

새해 을미년도 그런 허무와 부끄러움의 연속일 것이다. 욕망과 허무의 삐에로가 되어 무대에 오른 이완구 총리가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