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6. 2. 16. 17:28

    


원서 표지

 

 

 


번역서 표지

 

 

 

저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클로디아 드라이퍼스

 

 

         대학은 아직도 지성의 유토피아인가?

-앤드류 해커클로디아 드라이퍼스의 <<비싼 대학>>을 읽고-

 

 

대학은 제한 없는 학문 탐구와 자유로운 지성 발현의 전당이어야 함을 믿는 사람들이 많고, 한동안 그 표본을 수백 년 역사의 유럽 대학들에서 찾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유럽 명문 대학들의 고색창연함보다 시대정신을 창도(唱導)한다는 점에서 미국의 유수 대학들이 훨씬 매력적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고, 내 입장도 그렇다. 나는 꽤 오래 전부터 기회가 생길 때마다 미국의 대학들을 돌아보며 그들이 누리는 풍요와 자유, 고품격의 시스템을 선망해오게 되었다. 이 자리에서 공개하기는 좀 쑥스럽지만, 최근 큰 아이가 컴퓨터학 교수로 자리를 잡은 뉴욕대학의 면면을 훔쳐보면서 그런 인식은 더욱 확고해졌다. 이런 인식이야말로 바야흐로 붕괴되어가고 있는 우리나라 대학들의 현실을 망연자실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내 입장에서는 쉽사리 벗어날 수 없는 굴레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퇴출대상 1호로 지목되고 있는 후진국 대학의 인문학자. 우리나라의 대학을 되살리기 위해 선진국의 대학들을 열심히 벤치마킹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한 채의 집을 놓고 생각해보자. 근자 리모델링이란 기법이 유행하고 있는데, 리모델링을 잘만 해놓으면 그럴 듯하게 탈바꿈하는 경우들은 드물지 않다. 그러나 리모델링이란 것도 원본이 그럴 듯해야 가능한 공법이다. 여기를 손대면 저기가 무너지고 지붕을 고치면 구들이 내려앉는 등의 경우에야 그냥 무자비하게부숴버린 다음 새로 짓는 편이 오히려 낭비를 줄이는 일일 것이다. 뜻 있는 사람들이 한국의 대학들이 어서 빨리 망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도 그라운드 제로위에 새로운 대학들을 건설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 때문이리라.

 

최근 충격적인 책 하나를 읽었다. 그렇게도 선망해오던 미국 대학들의 속살을 사정없이 헤집으며 매섭게 질타한 저자들의 혜안과 용기가 놀라웠다. 원제는 Higher Education?: How Colleges Are Wasting Our Money and Falling Our Kids-And What We Can Do About It 이었으나, 번역자들(김은하박수련)“<<비싼 대학: 미국 명문대는 등록금을 어떻게 탕진하는가>>/강의는 뒷전인 교수, 돈만 삼키는 연구소, 대출에 허덕이는 학생교육을 우롱하는 대학!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로 제목을 더욱 구체화시켰다. 번역서 표지의 굵은 글자들에 이 책의 내용은 고스란히 요약되어 있었다. 아마도 번역자들은 한국의 대학들에게 경종을 울리려 했을 것이다. 간혹 귀 있는 자라면, 그들의 말을  들을 수는 있을 것이다. 어쩌면 번역자들은 이 책의 내용이 미국 대학들의 문제점일 뿐 우리나라 대학들과 무관하다는 식의 태평함에 젖어 있을 우리나라 대학인들에게 무지막지한 비판을 가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옛날식으로 그럭저럭살아가다가 함께 벼랑에 떨어져 죽은들 어떠냐는 식의 무사안일과 기득권 의식에 매몰된 이 시대 한국의 대학인들. 선뜻 나서서 자기 혁신의 짐을 지려는 사람은 없고, 그동안 맛보던 자잘한 열매의 달콤함에만 취해 있는 이 시대 한국의 대학인들. 명목 상 지식사회의 주류를 형성하는 대학인들에게 속된 말로 몽둥이찜이라도 안겨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의 통찰을 얻게 되었다. ‘과연 일생 밥을 먹여주고 바람막이가 되어 준 대학을 환자로 삼아 냉혹한 외과적 수술을 가하는 주체가 될 수 있는가라는 원론적 질문이 그 하나이고, 세계 대학들의 롤모델이자 무흠한 상아탑으로 생각되어온 미국 대학들이 안고 있는 구조적 결함이나 비도덕적 기득권 주의, 혹은 대책 없는 비현실성을 액면 그대로 믿어야 하는가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이 다른 하나이다.

어두운 면이 정확히 오버랩된다는 점에서 미국대학들을 벤치마킹하다가 지쳐 널브러진 한국 대학들의 현재는 암울하고, 그 현재를 바탕으로 만들어가야 할 미래는 이미 잿빛으로 변해버린 채 신기루가 사라진 사막의 생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 책은 미국 대학들의 잿빛 속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그 중심에 교수 집단의 그악스런 이기주의가 자리 잡고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저자들은 대학의 많은 불편한 사실들을 이 책의 도처에서 고발하고 있는데, 그 내용의 핵심은 결국 학생학부모에 대한 착취와 대학교수집단의 부도덕한 기득권으로 요약된다. 이 책의 특이한 장점은 뒷부분에 추가한 우리의 제안에 있다. 본문 속에 늘어놓은 장황한 고발들을 결국 이러한 제안으로 요약하여 독자들의 뇌리에 각인시키고자 했으니, 저자들이야말로 책을 통해 이루어지는 전달의 메커니즘을 꿰고 있는 존재들이 아닌가.

 

그들의 제안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대학의 존립 이유는 교육이다.

2. 대학의 등록금을 내기 위해 대출에 의존하는 삶을 그만 두어야 한다.: 대학의 각종 활동, 직원, 교수 때문에 생기는 비용 문제로 치솟는 등록금, 은행 빚을 얻어 등록금을 충당하는 관행은 이제 청산해야 한다.

3. 학생들에게 진정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보편적 대학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교수들은 자신이 썼거나 쓰고 있거나 쓸 예정인 논문들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서는 안 된다.

4. 대학은 직업훈련소가 아니다.: 학부생 때는 흥미를 돋울만한 지적인 사람들을 많이 접해야 한다. 그래야 이전에는 해보지 못한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절반이 넘는 64%의 학생들이 직업훈련을 전공으로 삼고 있다. 비실용적인 분야를 공부하는 것이 대학에서 더 현명하게 시간을 보내는 길이며, 궁극적으로는 더 유용한 투자가 된다. 철학, 문학, 역사 또는 물리학 대신 대다수 학생들은 말() 관리학, 용접술, 패션 마케팅 같은 분야를 선택하는데. 모두 명문대에 개설된 전공들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학부 시절에 수익을 계산하지 않고 걱정 없이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지성을 마음껏 뻗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5. 종신교수제를 폐지해야 한다.: 아무런 명분도 없는 종신교수제를 폐지하고, 다년 계약제로 대체해야 한다.

6. 유급 안식년 제도를 없애야 한다.: 학자들은 7년마다 정신적으로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쓸모없는 연구를 제한해야 한다.

7. 시간강사들의 노동 착취는 그만 해야 한다.: 안정된 직장에 정착한 교수들과 똑같이 수업하는 사람에게 교수의 6분지 1의 연봉만 주는 것은 비윤리적이고 부적절한 짓이다.

8. 특급 명문대학들의 가치를 제대로 따져 보아야 한다.: 자녀들이 명문대에 진학하기를 바라는 부모는 자식을 걱정해서라기보다 부모 자신의 출세 지향주의를 자식에게 투영했기 때문이다. 대학의 간판 너머를 보아야 한다.

9. 총장은 공공의 종복(從僕)이다.: 이사회에서 연봉 100만 달러 혹은 그와 비슷한 수준을 주겠다고 하면 총장은 고맙지만 사양하겠다고 말해야 윤리적이다.

10. 의대와 연구소를 대학에서 분리해야 한다.: 대학은 캠퍼스 내 연구소나 산하기관 뿐 아니라, 의과대학과의 고리도 끊어야 한다.

11. 테크노 티칭, 첨단 기기를 활용한 강의에 주목해야 한다.

12. 기부가 필요한 곳에 기부해야 한다.: 재정 여건이 훌륭한 대학들에만 기부가 편중되는 것은 옳지 않다. 기부금이 많은 대학의 동문들과 여타 기부자들은 진정으로 기부금이 필요한 다른 대학을 골라 기부하는 것이 좋다.

 

책을 마치면서 이 책의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두 저자 가운데) 한 사람은 글을 쓰는 교수였고, 한 사람은 기자이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런 우리에게 오늘날 이 나라의 대학을 지켜보는 일은 마치 공사판에서 그 어떤 목표나 목적도 없이 제멋대로 바닥을 깔아뭉개며 달리기만 하는 증기 롤러를 보는 듯 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침통한 마음을 가누며 이 책을 썼다.() 특히 고집 센 교수 집단이 모인 대학이란 곳에서, 교수들과 직원들은 자신에게 익숙한 관행을 지키려고 완강히 버텼다. 이 책의 출간을 열렬히 환영해 준 대학 밖 사람들과는 정반대의 반응이었다. 대학에 몸 담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현재 학생들이 학비를 낸 대가로 얻는 것이 별로 없고, 이 문제의 책임은 캠퍼스에서 개인의 실적을 쌓는 데만 여념이 없는 어른들(즉 교수들)에게 있다고 생각했다.”(316쪽)

 

그렇다. 대학을 바꾸기 위해 최대의 기득권 집단인 교수들이 바뀌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은 미국의 대학들이나 우리나라의 대학들이 다르지 않다. 대학의 개혁! 벌써 서산에 해는 지는데, 할 일은 많고 갈 길도 멀다.

 

 

 


 Holyoke Center에서 바라본 하바드 캠퍼스(Harvard Yard) 

 

 

 


예일대학교 올드 캠퍼스(Yale Old Campus)의 이른 봄 풍경

 

 

 


UCLA의 로이스 홀(Royce Hall)

 

 

 

뉴욕대학교 건물들 한 복판에 있는 Washington Square Park의 아치

 

 

 

교토대학 정문

 

 

 


연세대학교의 언더우드 홀(Underwood Hall)

 

 

 


숭실대학교 정문

 

 

 


서울대학교 정문의 학교 마크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교(Washington University Saint Louis)의 브루킹스 홀(Brookings Hall Quad)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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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6. 2. 3. 16:06

 

 

지금 한국의 대학들에 만연되고 있는 '반지성적 문화'가 어디 한 두 가지랴?

어느 학교라고 콕 집어 말하고 싶지 않고,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모두 거기서 거기. ‘도낀 개낀’ ‘난형난제’, ‘도토리 키 재기의 대학사회 아니더냐! 한 치 앞서 간들 무어 그리 나을 게 있고, 한 치 뒤쳐졌다고 무어 그리 못할 게 있을까?

 

한 달 전쯤인가서울의 어느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대학원생 하나가 찾아와 자못 흥분된 어조로 내게 말했다.

 

하루는 도서관에 들어가는데, 큰 덤프트럭 두 대가 도서관의 책을 그득하게 때려 싣고학교 밖으로 나가더군요. 궁금해서 직원에게 물어본즉 덤덤한 어조로 보존서고에 있는 도서들을 폐기처분하는 중이라고 하데요.”

 

그래. 제정신을 갖고서야 지금 이 시대 대한민국의 어느 대학에선들 학자로살아갈 수 있겠느냐? ‘집안이 좁으니 세간들 가운데 때가 묻은 것들을 골라 쓰레기장에 버리듯, 버리는 거겠지!’라고 대답하는 내 마음이 심히 불편했다.

 

#그 대학 교수로 있는 친구의 말. 며칠 전 논문을 쓰다가 급한 책이 있어 학교 도서관을 검색하니 보존서고에 소장되어 있더란다. 그러나 지금 정리 중이라 볼 수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중에 생각하니 그 '정리'라는 것이 '폐기물 처리'를 말했고, 미루어 짐작컨대 그 책들은 폐기도서 트럭에 실려 나간 게 분명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제자를 통해 이웃 학교의 도서관에서 다섯 권이나 되는 그 책(영인 자료 본)을 빌려다가 아예 복사제본까지 해버렸단다. 대학생들은 잘 보지 않아 자리만 차지하는 책이니, 도서관 직원들도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만약 그런 (귀한) 책을 폐지로 취급하여버렸다면, 속된 말로 '참 망할 ××들'이라고 그 친구는 크게 흥분했다.

 

#꽤 오래 전이다. 이름뿐이었지만, 도서관의 무슨 위원이라 하여 1년에 한 번 정도 있는 회의에 나간 적이 있었다. 누군가 이제 IT 시대이니, 페이퍼 북은 줄이거나 없애고 e-book 체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 않다고, 서양의 명문대학들은 미련해서 도서관에 페이퍼 북 채우는 노력을 기울이는 줄 아냐고 역설했으나, 역부족이었다. 하기야 엔지니어들이 대학의 수장이나 도서관의 책임자로 군림하는 시대이니, 그들에게 도서관의 의미를 묻는 것은 우물에 가서 숭늉 찾는 격일 것이다.

 

#내 연구실에는 출판사 사장들이나 영업사원들이 수시로 들른다아직은 제법 책을 사주기 때문일 것이다. 끙끙 무거운 책 짐을 들고 방문한 그들에게 주로 인문학 도서들을 폐기처분하는’ 우리나라 대학 도서관의 만행^^을 말해줄 수가 없다. ‘앞으로 경기가 풀리면 출판시장도 좋아지지 않겠느냐?’는 입에 발린 위로의 말이나 뱉어낼 뿐, 축 쳐진 그들의 어깨를 받쳐 줄 희망적 언질을 건넬 방도가 없다. 내가 아무리 강심장이라 한들 힘들게 만든 책들이 소설책들처럼 잘 읽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폐기처분된다는 말을 그들에게 어찌 해줄 수 있으랴.

 

***

 

내게 미국 대학들의 가장 감명 깊은 공간은 도서관이었다. 교수도 학생도 실제적인 학구 활동은 그곳에서들 펼치고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대학자 노교수를 만난 것도 숲처럼 빽빽한 서가들 사이에서였다. 적어도 내가 찾는 사람들은 늘 연구실 아니면 도서관에 있었다. 그런 도서관들에서 멀쩡한 도서들을 폐기하는 꼴을 보지 못했다. 공간이 충분한 점도 그 이유의 하나는 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수백 년 그들을 지탱해온 지성적 문화 풍토를 누구도 거역하려 들지 않기 때문으로 보였다. 물론 그들에게도 공간의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그래서 상당수의 대학 도서관들에서는 기프트 센터(gift center)’를 마련하고 서고에서 퇴출되는 책들을 공짜에 가까운 가격으로학생들이나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대학 도서관 뿐 아니라 지역의 공공도서관들도 마찬가지였다. 정기적으로 폐기 도서들을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다시피하고 있었다. 책을 한 보따리씩 들고 나오며 함박웃음 짓는 그들이 부러웠다. 한없이 부러웠다. , 선진국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학문적 변화주기로 볼 때 인문학과 이공학이 다른 것은 분명하다. 실용적 도구학과 정신적 학문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대학의 본질에 대하여 다시 논하고 싶지 않은 것은 이미 이 땅에서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대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형이하적 도구학 전공자들이 패권을 휘두르고, 나라 전체로도 지도적인 학자들이 모조리 사라진 형국이니, 지금의 대학들은 대학이 아니다. 대통령이 대학을 알 리 없고, 교육부 장관은 정권의 입맛에 맞춰 우왕좌왕하다가 정치판으로 복귀하면 그만이며, 교육 관료들은 잠시잠시 그런 장관의 손짓에 맞춰 춤추는 것으로 소임을 다한다고 생각하는 나라, ‘해외 유학 동안 열등생으로 지내다가 복귀하여 지배자 행세하는’(김종영, <<지배받는 지배자-미국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 돌베개, 2015, 참조.) ‘지적 사기꾼들’(어떤 인사의 말 인용)이 학문 권력을 독점하는 나라, 정치권과 학계를 부지런히 오가며 곡학아세(曲學阿世)해도 대단한 학자로 대접받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하기야 스마트폰 하나만 가지면, 페이퍼 북 없이도 논문 한 편을 써내는 날이 조만간 올 것이라고 큰소리치는 인사가 내 주변에 있으니, 다시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으랴!ㅠㅠ

 

 


세인트루이스 소재 워싱턴대학교(Washington University, Saint Louis)의 John M. Olin Library

 

 


세인트루이스 소재 워싱턴대학교(Washington University, Saint Louis)의 John M. Olin Library 서가

 

 


세인트루이스 소재 워싱턴대학교(Washington University, Saint Louis)의 John M. Olin Library 서가

 

 


미국 스틸워터(Stillwater) 시립도서관

 

 


스틸워터 시립도서관에서 폐기도서들을 싼 값으로 주민들에게 나눠주는 모습

 

 


오클라호마주립대학(OSU)의 '에드몬 로우 라이브러리(Edmon Low Library)'

 

 


오클라호마주립대학(OSU) '에드몬 로우 라이브러리(Edmon Low Library)'의 서가

 

 


오클라호마주 거쓰리시티(Guthrie City)의 카네기 도서관
(오클라호마 주에서 가장 먼저 세워졌음)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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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5. 11. 5. 07:08

세인트루이스(St. Louis)에서의 56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세인트루이스 공항 인근

 

 

 


발표문 ppt 일부

 

 

 


발표문 ppt 일부

 

 

 


워싱턴대학교 댄포스 캠퍼스 남쪽 입구

 

 

 


브루킹스홀 쪽의 게이트

 

 

 


캠퍼스 일부

 

 

 

 

작년에 신청했어야 하는데, 게으름을 부린 탓에 그만 올해 아시아학회(AAS: Association for Asian Studies) 참여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올해 초반 부랴부랴 찾아낸 학술발표회가 바로 AAS의 중서부 지역 분회에서 열리는 MCAA(Midwest Conference on Asian Affairs). ‘미국 중부의 하버드라 불리는 워싱턴대학교에서 열린다 하여 더 매력적이었다. 발표 및 참가 신청, 발표문 송부 및 심사, 숙소 및 항공편 예약 등 자잘한 절차들이 자못 번거로웠으나, 서양의 학자들을 만나 의견을 나누면서 새로운 기운을 받고 싶다는 욕구가 나를 움직인 것이 사실이었다. 그 과정에서 큰 학술발표회를 조직하고 움직이는 그들의 메커니즘을 배울 수도 있었고, 연락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그들의 내면 또한 살짝 훔쳐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아직 가보지 못한 세인트루이스와 워싱턴대학교였다.

 

멀었다. 비행기가 태평양 상공에 도달할 즈음에야 모니터에 뜨는 항로를 보며 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약간의 후회가 생겨난 것도 사실이었다. 시카고의 오헤어(O’hare) 공항까지 꼬박 12시간, 오헤어에서 기다린 3시간, 오헤어에서 세인트루이스 공항까지 1시간 20, 공항에서 호텔까지 30분 등 무려 17시간이나 걸렸으니!

 

시차 부적응으로 피곤한 몸을 끌고 다음 날의 발표(*발표문은 백규서옥http://kicho.pe.kr 연구업적>논문>No.221’ 참조)를 포함, 꼬박 사흘간의 학술발표회 일정을 소화하게 되었다. 61개의 패널, 패널 당 4명의 발표였으니, 발표자만 해도 240명이 넘었다. 토론자, 진행자, 참관자까지 합치면 1,000명이 넘는 규모였다. 발표도, 발표에 대한 반응도 비교적 만족스러웠기 때문일까. 몸과 마음 상태는 크게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워싱턴 대학의 이지은 교수와 전임강사로 있는 고인성 박사, 울산과기원의 이재연 교수 등을 만난 것은 피로를 가시게 한 청량제였다. 이지은 교수, 이재연 교수 등과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한 대화는 무엇보다 유익했다. 발표장을 메운 외국의 학자들에게 조선의 건국서사시(foundational epic of Joseon Dynasty)를 소개하고, 그 밑바탕으로 작용한 유토피아 찾기로서의 풍수론을 전통 생태 담론적 차원에서 설명한 것은 아주 짜릿한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학회 종료 후 하루 반 동안의 여유가 있었다. 워싱턴대학교 댄포스(Danforth) 캠퍼스의 구석구석, 밀드레드레인켐퍼 미술박물관(Midred Lane Kemper Art Museum), 미주리 역사박물관(Jefferson Memorial Missouri History Museum), 게이트웨이 아치(Gateway Arch) 등을 포함, 다운타운 몇 곳들을 도는 데 그쳤지만, 그간 서구 여러 나라의 도시들을 돌아보며 익힌 노하우(?) 덕분일까. 세인트루이스와 워싱턴대학교의 장점들을 순식간에 체감할 수 있었다.

 

1853년 윌리엄 그린리프 엘리엇(Willam Greenleaf Eliot)이 주도하여 엘리엇 세미너리(Eliot Seminary)를 세웠는데, 이 학교가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학교로, 다시 워싱턴대학교로 확대발전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전역에 워싱턴의 이름을 딴 대학들이 늘어나자 다시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대학교(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로 교명을 환원했다 한다. 댄포스 캠퍼스는 빅벤 대로(Big Bend Boulevard), 퐈리스트 팍 파크웨이(Forest Park Parkway), 스킹커 대로(Skinker Boulevard), 와이다운 대로(Wydown Boulevard) 등으로 둘러싸인 변형된 직사각형 모양으로 되어 있었는데, 중앙에서 동서로 가로지르는 포시쓰 대로(Forsyth Boulevard)가 캠퍼스를 남북으로 가르는 형국이었다.

 

멋진 캠퍼스였다. 어떤 건축양식을 본떴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평탄한 대지에 늘어선 단정한 베이지색 톤의 건물들은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따스해보였으며, 안으로 들어가니 철저히 인체공학에 맞추어 지은 듯 이동하기에 편했다. 거의 반반인 대학원과 학부 합쳐 14천의 학생들과 3000여명이 넘는 교수진이 댄포스 캠퍼스(206,885), 메디컬 캠퍼스웨스트캠퍼스노스캠퍼스(165.263) 등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이들 캠퍼스에 산재해 있는 14개의 도서관들엔 총 420만권의 도서가 소장되어 있었으며, 이 대학의 자랑인 밀드레드레인켐퍼 미술박물관도 미시시피강 서부 연안 최고(最古)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교수진에 22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10명에 가까운 퓰리처 수상자들이 포진하고 있다는 사실. 미국 대학평가에서 늘 10위권(12~14)을 유지하고 있는 최고 명문이라는 점도 놀라웠다.

 

학회 덕에 이 대학에서 종신 교수직을 받고 한국문학을 강의하고 있는 이지은 교수를 만날 수 있었다. 연세대학교에서 노문학을 전공하고 하바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 교수는 이 대학교 인문대학(Arts & Sciences) 동아시아 언어문화학부(East Asian Languages and Cultures) 한국학과의 학과장이었다. 이 교수는 저서 <<Women Pre-Scripted: Forging Modern Roles through Korean Print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15)>>를 비롯하여 많은 논문들을 발표했으며, ‘한국문명론(Korean Civilization)근현대 한국문학(Literature of Modern and Contemporary Korea)한국문학과 문화의 주제들: 젠더 구축하기(Topics in Korean Literature & Culture: Constructing Gender)현대 한국인의 자아: 한국문학과 문화의 주제들(Contemporary Korean I: Topics in Korean Literature and Culture)한국문학과 문화의 주제들(Topics in Korean Literature and Culture)’ 등의 강의를 통해 미국 학생들과 만나고 있었다. 이 교수와의 대화를 통해 미국 인문학계의 자세한 모습들을 들을 수 있었다. 함께 발표에 참여한 울산 과기원의 이재연 교수 또한 하바드와 시카고대학에서 공부한 한국문학 세계화의 주역이었다.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를 비롯한 한국문학 전공자들이 앞으로 무엇에 주력해야 할지를 깨닫게 되었다. 아젠다(agenda)의 쉼 없는 발굴과 논리 구축을 통해 세계 학자들과 소통하는 일만이 우리의 낙후성을 탈피하는 유일한 출구임을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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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날까지 짬을 내서 찾은 워싱턴대학교의 밀드레드레인켐퍼 미술박물관은 건물도 훌륭했지만, 마침 세계적 거장들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내 가슴을 뛰게 했다. 하루를 쉰 다음 찾은 미주리주 역사박물관과 게이트웨이아치는 미주리 주와 세인트루이스의 어제와 오늘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명소들이었다. 미주리 역사박물관은 제퍼슨(Thomas Jefferson) 대통령을 기념하는 의미도 갖고 있었다. 사실 제퍼슨 대통령이 프랑스로부터 미시시피강에서 로키산맥에 이르는 80만 평방 마일의 광대한 땅을 사들임으로써 미주리 주는 비로소 미국 땅이 되었고, 본격적인 번영이 시작된 것이다. 세인트루이스의 역사가 독립선언을 기점으로 시작된 미국의 역사보다 100년 이상이나 긴 것도 그 때문이다. 1673년 이 지역에 도착한 프랑스 탐험가들은 원주민이 살고 있던 이 땅을 접수하여 프랑스령으로 만들었고, 자신들의 왕 루이 14세의 이름을 따서 루이지애나(Louisiana)로 명명한 것. 3대 대통령 제퍼슨이 1803년 나폴레옹으로부터 이 땅을 매입하여 1804310일 미합중국의 한 부분으로 공식화한 다음 1808년에 시의원단을 선출했고, 1809년에 정식 시로 등록한 것이다. 1904년의 국제무역박람회, 커피산업, 도시 확장 및 정비 등이 박물관 소장품의 대표적 컨셉들이었다. 사실 1904년의 국제무역박람회와 하계올림픽은 1896년에 세인트루이스를 덮친 허리케인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 시도였는데, 역대 최악이었던 올림픽과 달리 박람회는 성공적이었다. 그 내용들이 박물관 중심의 전시물들을 통해 설명되고 있었다.

 

다양한 전시물들을 통해 커피 산업이 미주리의 중심에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 부분이나 도시의 형성, 발전, 팽창을 보여주는 대형 사진들과 각종 생활사 자료들은 박물관을 매우 인상적인 공간으로 바꾸어 놓고 있었다. 그것들은 여타 국가나 지역의 박물관들과 비교하여 특별한 의미와 함께 차별성 또한 보여주고 있었다. 그곳을 찾은 모든 이들에게 우리도 이런 역사박물관 하나쯤은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드는 공간이었다.

 

박물관을 나와 들른 곳은 이 도시의 어느 곳에서도 보이는 게이트웨이 아치(Gateway Arch). 국립 제퍼슨 국토 확장 기념관(Jefferson National Expansion Memorial)을 장식하는 조형물이자 '게이트웨이 시티(Gateway City)'라는 세인트루이스의 별칭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랜드마크였다. 서부개척 시대, 서부로 넘어가는 관문이 바로 세인트루이스였고, 그 개척의 상징물이 바로 이것이었다. 1947년 핀란드 계 미국 건축가 에로 사리넨(Eero Saarinen)과 건축기사 한스카를 반델(Hannskarl Bandel)의 설계를 채택, 1963212일 착공, 19651028일 완공, 1967724일 일반에 개방되었으니, 설계로부터 무려 20년이나 걸린 큰 공사였다. 전체 높이 192m의 무지개 형상 스테인리스강 구조물로서 남쪽과 북쪽 두 방향에서 엘리베이터 격인 트램(tram)을 타고 아치 꼭대기까지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꼭대기의 좁고 긴 방에서 창문을 통해 미시시피강과 일리노이 평원, 세인트루이스 시내를 조망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아치 밑으로는 웨스트워드 익스팬션 박물관(Museum of Westward Expansion)이 연결되었다.

 

 

세인트루이스는 도착부터 떠나는 날까지 평화와 안온함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조용한 가운데 안으로는 바글바글 끓어 넘치는 용광로처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미국의 여느 도시들처럼, 짧지만 화려한 역사와 전통을 기반으로 아이디어와 활력이 맥박치고 있었다. 그 한 복판에서 세계의 인재들을 불러 모으는 곳이 바로 워싱턴대학교였다. 그러나, 어쩌랴! 56일 간의 짧은 일정 속에 바늘구멍으로 들여다 본 풍경. 그게 세인트루이스의 허상일까, 아니면 실상일까.

 

 


Thinker on rock-Barry Flangan 작, 1997. 워싱턴대학교 교정

 

 

 


John M. Olin Library

 

 

 


 Carl Neureuther에 대한 감사 동판

 

 

 


도서관 서가

 

 

 


도서관 서가

 

 

 


동아시아 도서관

 

 

 


인문대학 동아시아 언어문화학과 이지은 교수 연구실

 

 

 


이 교수 연구실의 서가

 

 

 


MCAA 첫날 연회

 

 

 


학술발표회에서. 린덴우드 대학교 중국어학과 Brian Arendt 교수와 함께

 

 

 


동아시아학과의 Rebecca Copeland 교수(일본문학교수/동아시아학부 학부장), 

Holden Thorp 박사(교무처장/학사부총장/리타 레비-몬탈시니 석좌교수)와 함께

 

 

 


이지은 교수와

 

 

 


연회장에서 이지은 교수, 이재연 교수, 고인성 교수 등과 함께

 

 

 


저녁식사 자리에서 함께 한 한국학자들

 

 

 


밀드레드레인켐퍼 미술박물관

 

 

 


미술박물관에서 만난 시팅불(Sitting Bull)[Andy Warhol 작]

 

 

 


피카소의 <알제리의 여인들(Women of Algiers)>

 

 

 


Max Beckmann의 <Artists with vegetable>

 

 

 


미주리 역사박물관

 

 

 


미주리 역사박물관 소장 '세계무역박람회장 가는 길'

 

 

 


역사박물관 전시품

 

 

 


역사박물관 소장 포스터

 

 

 


역사박물관 소장 '수레'

 

 

 


커피산업에 대한 세인트 루이스의 자부심 "시애틀은 비켜 서세요!"

 

 

 


그 당시 커피 브랜드의 하나

 

 

 


세계 각국에서 수입되는 커피 원두들

 

 

 


어렵던 시절의 미주리주 주민들

 

 

 


당시 야구경기 모습.

 

 

 


게이트웨이 아치

 

 

 


게이트웨이 아치

 

 

 


Forest Park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멋진 개인주택

 

 

 


Forest Park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멋진 개인주택

 

 

 


세인트루이스 다운타운의 한가로운 모습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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