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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1. 11. 5. 01:30

2011년 숭실⋅인하⋅중앙 대학원 연합심포지움 토론요지



연구부정에 무감각한 지식사회, 방황하는 학문후속세대



                                                                                                              조규익(숭실대)


몇 달 전 외국 유학 중인 20대 중반의 제자[이른바 ‘학문후속세대’라 할 수 있는]가 메일을 보내왔다. 공학 분야 어느 전공의 세계적인 학회 홈페이지에 ‘대한민국 교수 및 학자들의 이름과 그들이 자행한 논문표절 사실들’이 대문짝만하게 실려 세계 지식인들의 웃음꺼리가 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더군다나 그의 메일에는 그들 가운데 한 교수가 얼마 전 그 표절논문들 가운데 하나로 한국의 국토해양부 장관으로부터 우수논문상까지 받았다는 사실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더욱 황당한 것은 그 논문들이 외국 학자들의 논문에 들어 있는 아이디어를 ‘살짝 도용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송두리째 베낀 경우들이라 했다. 깜짝 놀라서 그 사이트를 방문한 결과 과연 그곳엔 복수의 대학 교수들을 포함한 한국학자들이 ‘여러 건의 논문들을 표절한 파렴치범들’로 낙인 찍혀 표지를 장식하고 있었고, 우리나라의 신문기사를 검색하니 과연 그 교수는 장관상까지 받은 것으로 되어 있었으며, 해당 교수의 대학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그 교수는 ‘우수교수’로 대학 홈페이지의 첫 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같은 전공의 많은 학자들이 포진해 있는 해당 학계나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잠잠했다. 그 사실을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알고도 그러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언제까지 국제적인 수모를 견뎌내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그 시점으로부터 무려 석 달이 지나서야 그 사실은 우리나라 언론에 보도되었고[조선일보, 2011. 10. 5.], 으레 그래왔던 것처럼 언론에서 몇 마디 떠들다가 모두의 뇌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어제 그 대학의 사이트를 다시 방문해보니 그 교수는 아직도 해당학과의 ‘시니어 교수’로 당당하게 남아 있었다. ‘특정분야 극소수의 일’이라고 편한 마음을 먹을 수도 있겠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남의 지식을 훔쳐 재미 보는 일’을 아무런 죄의식이나 죄책감을 느낄 만한 사건으로 보지 않는 지식인이 존재한다면, 우리 지식사회엔 미래가 없다. 과연 우리나라 대학들은 이들을 교수로 인정해도 되는 것인가. 가능성과 실력을 갖춘 학문후속세대들이 존경과 감시의 눈초리를 번뜩이고 있는 이 시대에 과연 우리의 교수집단이나 지식사회는 연구윤리의 정립자 혹은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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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을 비롯한 고위 공직에 발탁되는 교수들이 많아지면서, 청문회 등 검증의 기회가 정립되면서, 비로소 ‘연구부정’은 우리 지식사회의 치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상당수 고위 공직 후보자들이 연구부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은 지식사회에 대하여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게 되었다. 언론이나 네티즌들은 고위 공직의 물망에 오르는 학계인사들의 논저들을 검증하기에 바쁘고, 야당은 그런 정보를 빌미로 후보자 본인은 물론 집권세력을 흠집 내기에만 전념한다. 문제의 후보자들은 으레 ‘당시에는 관행이었다/제자가 모르고 한 일이다/기억에 나지 않는다/확인해 보겠다’ 등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하지만, 매우 떳떳하지 못하다. 초창기에는 그런 문제로 공직의 입구에서 낙마한 사고들도 더러 있었으나, 지금은 연구부정 문제로 낙마하는 사례가 거의 없다. 그만큼 짧은 기간 연구윤리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문제의식이 무디어진 것이다. 처음 그런 문제들이 불거졌을 때 국회에서라도 연구부정의 문제를 논의해볼 법도 했건만, 그들이 연구나 연구윤리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 턱이 없고 관심조차 없었으니 애당초 기대할 필요도 없었던 일이긴 하다. 사안의 심각성이 부각되면서 정부와 학계가 부랴부랴 ‘연구윤리 규정’을 만들어 배포하는 등 연구부정에 적극 대처한다고 해왔지만, 지금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연구부정의 사례들은 그런 노력들이 대체로 문제의 본질에 훨씬 못 미치는 ‘격화소양(隔靴搔癢)’격의 시늉에 불과했음을 입증할 뿐이다. 입만 열면 대학생들의 리포트부터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고 떠들어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리포트를 작성한다고 하면서 인터넷 사이트에서 긁어다가 짜기워 내거나 돈 몇 푼으로 구매하여 제출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 현실이다. 전담 교수들까지 채용하여 대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지만, 어린 새싹들까지 연구부정의 고전적 수법에 능숙해져 가는 현실을 보면 우리가 가르치고 있는 글쓰기란 다만 ‘글의 겉을 꾸미는 기술’에 불과하지나 않은가 불안해지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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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윤리의 문제, 즉 서구에서 이미 개념 정립이 끝난 날조[fabrication]⋅변조[falsification]⋅표절[plagiarism] 등 연구부정의 행위들에 대한 국내외 학자들의 연구 또한 화려하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의 경우도 지식사회의 폭이 넓어지고 지식이 재화 창출의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지적 소유권 문제나 연구윤리의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에 따라 이 분야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결과들도 많이 보고되었고, 비록 형식에 그치는 감이 없지 않지만, 학회들의 논문집 말미에는 ‘연구윤리규정’이라는 것도 실리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부정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빈번해지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학문적 아이디어를 얻고, 그것을 골격으로 저작물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야말로 철저히 ‘양심’에 관련된 문제임에도, 우리가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는 일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부정의 사건이 일어날 경우 그냥 외면하거나, 기껏 ‘기술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실수’ 쯤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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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고 글 쓰는 일의 윤리성’은 유치원 단계부터 교육하여 ‘심성(心性)으로 고착’시켜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문제는 너무 크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서 논할 수는 없고, 당면한 우리의 관심사는 3개 대학원[중앙⋅인하⋅숭실]의 학생[학문후속세대]들을 어떻게 제대로 교육시킬 것인가에 있다. 토론자로서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우선 세 대학원만이라도 「정의롭게 사고하기와 연구윤리」(가칭)를 공통과목으로 개설했으면 한다. 인문계[예술계 포함], 경상계[사회계 포함], 이공계 등 대학원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전공에 해당하는 이 분야의 한 과목을 반드시 이수케 할 필요가 있다. 세 대학원이 ‘연구윤리 공동위원회’를 만들고, 그 위원회에서 매년 혹은 매 학기 세 대학의 교수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강의를 맡기고, 그 교수에게는 일정액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이 좋다. 연구 윤리가 교수 개인의 전공분야는 아닐 것이며, 강의내용을 새롭게 개발하고 조직하는 일이 수월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 학기 동안 전문적으로 동⋅서양의 연구풍토나 윤리 등을 공부하면서 학생들 스스로 연구부정의 폐해를 깨닫게 하는 것은 물론, 지식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된 이후에는 그들 스스로 연구윤리의 전도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그 길만이 그나마 우리의 학문후속세대가 연구부정의 탁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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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가 ‘연구부정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담하다. 학문후속세대로 하여금 지적 생산 작업에서 갖추어야 할 정직한 자세야말로 국가 간의 경쟁에서 궁극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최종 병기’ 그 자체다. 후속세대에게 아무리 현란한 이론과 학설을 가르친들 이런 병기를 갖추지 못한다면 ‘사상누각(沙上樓閣)’에 불과하다. 어설픈 미봉책이나 시늉만으로 문제의 본질을 덮을 수 있을 만큼 지금의 우리 처지가 한가롭지 못하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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