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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4.04 국회의원 후보 김모씨의 '욕설난장'
  2. 2011.09.15 ‘욕’ 연구, ‘욕 댓글’ 1
글 - 칼럼/단상2012. 4. 4. 15:34

국회의원 후보 김모씨의 ‘욕설 난장’

                                                                                                                                                               백규


국어선생으로서 낯을 들지 못하는 나날이다. 그간 어린 영혼들에게 교과서만 읽혔을 뿐 ‘정확하게 말하는 법’ ‘아름답게 말하는 법’을 가르치지 못한 점을 통렬히 반성한다. 이 땅에서 우리말과 글을 팔아 밥을 먹고 있지만, ‘지저분하고 천한 말들의 향연장’으로 전락한 우리네 삶터를 목도하면서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 없는 나날이다.
  최근엔 더욱 기가 질리는 광경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선량(選良)[즉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나선 김모씨. ‘몸집만 어른’인 그로부터 우리 사회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고 들어서도 안 될’ 최악의 언어테러를 당하고 만 것이다.
그는 누구인가. 나이로 쳐도 불혹인 40이 멀지 않았고, 박사과정까지 수료했으며, 모 대학 교수까지 역임했으니, 그를 보고 ‘철이 없다’는 표현을 갖다 댈 수는 없으리라. 그 뿐인가. 아무나 명함을 내밀 수 없는 정당에서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까지 받은 몸이다. 선량이 되어 민의(民意)를 대변하겠노라고, 정치 일선에 뛰어들어 이 나라를 바로잡아 보겠노라고 대단한 포부를 밝힌 ‘대단한 인사’가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그는 입만 열면 하수구나 변기에서 풍기는 악취보다 더 구역질 나는 욕설들을 내뱉을 수 있을까. 그가 속한 그룹을 열렬히 지지하는 어떤 매체는 아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그 매체와 비슷한 성향이면서도 얼마간 양식이 살아 있는 다른 언론들까지 그의 ‘지저분한 언사’를 대서특필할 정도로 그의 욕설은 우리 사회에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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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길 가던 중 초등학생들 곁을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이 주고받는 말들의 대략 90%가 욕이었다. 그들은 욕설을 그야말로 숨 쉬듯 내뱉었다. 그 욕설의 대부분은 성(性)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어쩌면 그들 대부분은 그런 욕설들이 진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런 점에서 ‘그 초딩들’의 욕은 ‘나꼼수’나 유튜브를 통해 확인한 ‘그 어른들’의 욕에 비해 애교스럽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튜브를 통해 접한 김모씨의 욕설은 구역질이 나서 끝까지 들을 수 없을 만큼 끔찍했다. 초등학생들과 김모씨의 언사가 연결되면서 나는 김모씨 같은 어른들의 말, SNS 등을 통해 여과 없이 중계되는 그 욕설들이 바로 우리 시대 아이들의 ‘언어 교과서’임을 알게 되었다. 나 같이 고지식한 국어 선생들의 입장에선 그들 말대로 우리들과 ‘쨉이 되지 않는’ ‘살아있는 국어선생들’이 바로 ‘김모씨들’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한편으론 고마운 일이라 할 수 있을까.^^
사실 요즘은 초등학생에서 어른들까지 욕이 일상화 되어 가고 있다 한다. ‘상아탑에 숨어 살아 그 나이에 이르기까지 험한 욕 한 번 듣지 않고 살아온 그대는 세상물정 모르는 말 하지 말라'는 면박을 친구로부터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요즘의 세태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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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김모씨는 왜 그런 욕설을 내뱉는 것일까. 아니 그 이전에 ‘나꼼수’는 왜 욕을 일상어처럼 사용하는 것일까. 그들의 입장에서 그것을 ‘아주 잘 못 된’ 기득권 세력에 대한 저항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자신들의 내면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오물’을 뱉어냄으로써 후련해지는, 일종의 자기중심적 ‘카타르시스’의 효과를 노린 것일까. 아니면, 사람들 모두 자신들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으리라는 전제 아래, 그런 ‘오물 치우기’를 그들 스스로 감당하겠다는 ‘소영웅주의’의 발로일까.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길게 따질 필요도 없이 김모씨 역시 아내와 아이들을 거느리고 있는 가장일 텐데, 정말로 아무렇지 않게 그런 말들을 아내나 아이들에게 들려 줄 수 있을까. 자신의 아이들이 밥상머리에서 자신이 ‘나꼼수’에서 내뱉는 그런 말들을 내뱉는다면[왜? 아빠가 이미 대중을 상대로 내뱉었으니까!], 그는 아버지로서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으며, 또 어떻게 반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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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계절만 돌아오면 특히 ‘말’이 험해진다. 사실 김모씨가 뱉은 욕설은 ‘말’의 범주에 속하지도 못한다. 적어도 말이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 욕설들에 대체 무슨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제대로 된 정치의 역사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정치인들은 ‘말 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학교에서도 기껏 교과서만 읽었지, ‘제대로 된 화술’을 가르친 적이 없다. 그래서 정치인들만 모아 놓으면 육두문자와 폭력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지난 선거에도 나는 정치인들의 ‘담론 수준’을 비판하는 글들을 여러 편 쓴 바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저급해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확인한다. 예의를 갖춘 언사와 멋진 논리만이 상대를 굴복시키는 ‘최종병기’임을 알만한 인사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게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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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과 혀[즉 말]는 근심의 문이며, 몸을 죽게 하는[망치는] 도끼’라는 것이 <<명심보감>>의 금언이다. 철없는 아이들이 쳐주는 박수에 도취되어, 보기에도 딱한 ‘소영웅주의’에 도취되어, 아이들마저 사용하길 꺼려하는 욕설들을 마구 내뱉은 김모씨. 이제 그 말들이 가시가 되어 자신의 앞길을 막게 되었으니 ‘남을 이롭게 하는 말은 따습기가 솜과 같고, 남을 해치는 말은 날카롭기가 가시와 같으니 한 마디 말이라도 무겁기가 천금과 같고, 한 마디라도 남을 해치면 아프기가 칼로 베는 것과 같다’는 <<명심보감>>의 경구를 재삼 명심하면서, 깊은 산속에 들어가거나 가까운 교회당에라도 가서 꽤 긴 참회의 시간을 가져야 하리라. <2012. 4. 4.>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1. 9. 15. 15:24

‘욕’ 연구, ‘욕 댓글’

 

 

                                                                                                                                                       조규익

어제 우연히 인터넷으로 신문들을 뒤져보다가 재미있는 기사와 씁쓸한 댓글들을 발견하곤 조용한 연구실에서 몰래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지방의 모 대학 교수 한 분과 박사 한 분이 공동으로 ‘4가지 욕의 유형’에 관한 연구논문을 발표한 모양이다. 국어국문학의 벌판에 고상한 연구주제들이야 널려 있지만, ‘결코 고상치 못한’^^이 땅의 언론매체들이 그런 연구들에 눈길을 줄 리 만무하다. 욕에 대한 연구가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러 매체들에서 대서특필하는 것을 보면 오늘날의 한국 교수들이 얼마나 ‘쓰잘 데기 없는’ 연구들에 매달려 사는지 알 만하다.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전체 내용을 알 수는 없으나, 기사에 따르면 연구자들은 욕을 네 범주로 나누었다고 한다.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인간본능이 그대로 표출되는 쌍욕’, ‘비아냥거림과 조소가 주를 이루는 방귀욕’, ‘애칭과 유희의 익살욕’, ‘꾸지람과 차별의 채찍욕’ 등이 그것들이다. 이 논문에서 어떤 내용이 전개되었는지 논문을 읽어보지 않아도 알 듯 했으며, 어려운 이론이나 사전의 도움 없이도 그 내용들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괜히 유쾌해진 게 사실이었다.

 

‘욕’이란 말은 ‘욕설, 사람들의 잘못을 꾸짖음, 부끄럽고 무안한 사실’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 가운데 이 연구의 대상은 ‘욕설’일 것이다. 사실 욕은 사회언어학의 중요 연구 대상 가운데 하나다. 특정한 상황에서 쓰이는 언어, 그 상황의 중요한 요소들, 참여자들 간의 특별하고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나타내는 언어학적 특징 등은 사회 언어학 연구의 중요 내용들이다. 그런 점에서 분명 욕설은 피부에 와 닿는 연구주제다. 사실 인간이 사용하는 말 가운데 욕처럼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있을까. 과연 욕 한 마디 안 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개중에 결코 욕을 입에 담지 않고 살아가노라고 자부하는 고상한 분들도 있긴 할 것이다. 그러나 입 밖으로 내뱉지만 않을 뿐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욕을 다시 씹어 삼키는 경험들이야 어찌 안 하고 살아 갈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욕은 배설이다. 음식을 먹은 다음 노폐물을 몸 밖으로 내보내듯, 감정의 찌꺼기들을 욕으로 뭉쳐 몸 밖으로 내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감정이든 음식의 노폐물이든 배설을 못하면 병이 생기기 마련이다. ‘욕쟁이들이 오래 산다’는 것도 그 때문에 나온 속설이리라. 물론 아무데서나 똥을 싸면 안 되듯이 함부로 욕을 하면 안 되겠지만, 적절한 방법으로 감정의 노폐물을 배설하는 일은 신이 인간에게 부여하신 ‘권리이자 능력’의 하나가 아닐까.

***

필자는 여기서 기사나 논문의 내용을 논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이 기사에 대한 네티즌의 댓글이 참으로 ‘재미가 있어’, 이런 것들이 ‘요즈음 식 욕일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1) “아이구.. 대학도 대학 같지도 않는게....별걸...이런게 학문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2) “학력과잉이 이런 데서 발현되는구나 싶다. 논총집에 실릴 논문이라니... 긍정적 기능도

있으니 교육인간학적으로 욕을 하라는 소리?”

(3) “요즘 기자들 참 편하게 먹고 사는 것 같아. 댓글이 조금만 맘에 안 맞아도 금방 삭제 되는데 이런 기사는 삭제도 안 되고 얼마나 오래 갈려나...내 댓글도 금방 주제와 무관 이라고 삭제되겠지...”

(4) “욕봤습니다.. 욕먹어가며 욕연구에 몰두하셧으니 이제는 욕에는 이력이 났겠구려...이

런 궂은 일하는 사람에게 욕하는 사람은 정말 욕먹어도 싸다는 소리 들을 겁니다..남 이 못하는 분야를 연구하는 것이 진정 학자의 길이라 봅니다.”

(5) “정말 저걸 논문이라고.. ‘쌍욕’이 나오려고 하네...”

 

모두 ‘욕 연구’를 형편없이 비하하는 댓글들이다. 얼핏 (4)의 경우는 약간 호의적인 듯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역시 비릿한 ‘비아냥거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연구자가 속한 대학까지 비하하면서 ‘욕 연구’의 의미를 혹평하는 (1), ‘학력과잉’[‘욕 연구’나 하라고 ‘교수⋅박사의 직함을 준 줄 아느냐?’는 호통이겠지?]을 한탄하는 (2), 이런 기사를 써 올리는 기자를 탓하는 (3), 댓바람에 ‘쌍욕’을 휘갈기는 (5) 등, 참으로 분별없는 반응 일색이다.

 

두 연구자는 이 논문을 쓰기 위해 학생들이나 일반인들이 주고받는 말들을 살피느라 얼마나 고생했을 것이며, 문학작품들이나 동서고금의 욕설 책들은 얼마나 읽었을 것이며, 사회언어학 이론서들은 얼마나 섭렵했을 것인가. 연구자들은 욕설의 분석을 통해 사회의 병리현상들을 분석해보겠노라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을 터인데, 신문기사는 기상천외한 욕설들만 부각시키고 네티즌들은 대뜸 욕설이나 퍼붓고 있으니, 지금 그들은 얼마나 참담할까.

***

무엇을 연구해도 세상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당장 세상을 변화시켜 주리라 믿는 사람들에게 인문학도들의 연구가 주는 당혹감은 대단할 것이다. ‘인문학 추방론’에 사로잡혀 있는 상당수의 사람들을 설득할 방도가 마땅치 않은 게 현실이다. ‘욕 연구’라도 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연구자들의 선의가 어쩌면 그렇게도 매몰스럽게 거부되는지, 참으로 세상인심이 야속해지는 순간이다. <2011. 9. 15.>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