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에 홀로 앉아
창밖의 나목(裸木)들에 모처럼 햇살 비치는 오늘, 섣달 그믐날이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홀로 창가에서 이 날을 지켰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넘어가는 시간의 질(質)에 변화가 없음을 느낀다. ‘그저께보다 나은 어제,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란 입에 발린 구호(口號)일 뿐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이제 발갛게 물들어오는 인생의 황혼을 향해 한 고비 넘고 있다는 뜻일까. 몸의 동력이 마음 같지 않은 나날이다. 당나라 때 천재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세모(歲暮)>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已任時命去 이미 시운에 맡겨 따라가는 몸
亦從歲月除 그저 세월 가는대로 따라갈 뿐
中心一調服 속마음을 하나로 고르게 가져
外累盡空虛 세상사 얽힘 모두 비워버리네
名宦意已矣 명예로운 벼슬자리에 뜻 이미 버렸으니
林泉計何如 자연으로 돌아갈 계책은 어떠한가
擬近東林寺 동림사 가까운 곳 어디쯤
溪邊結一廬 개울가에 한 채 오두막이나 지어볼까나
이제 50중반. 세상사 마음먹는 대로 흐르지 않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사람도 물결 속의 작은 입자(粒子)일 뿐 흐르는 물의 방향을 돌리는 키나 노가 아님을 이제 겸허한 마음으로 수긍한다. 흐르는 물결은 더 큰 물결에 합쳐지고, 합쳐진 물은 더 큰 물에 합쳐져 강을 이루거나 호수를 이룰 뿐, 입자가 마음먹는 대로 모습을 바꿀 수 없음을 아프게 깨닫는다. 애면글면 도모한다 하여 세상의 명리(名利)가 손 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며, 간절히 바란다 하여 애욕(愛慾) 또한 성취할 수 없음을 터득하곤, 이제 옛 어른들이 말씀한 ‘작비금시(昨非今是)’의 탄식을 금치 못한다.
중병에 신음하다 북망산으로 실려 가는 이웃들을 보며, 탐욕의 끄나풀을 한사코 놓지 않으려다 정년(停年)으로 쫓겨 가며 앙앙불락(怏怏不樂)하는 주변의 존재들을 보며, 이제 하산(下山)의 신들메를 고쳐 맬 때임을 깨닫는다. 그렇다. 만각(晩覺), 아니 지각(遲覺)이다. 왜 나는 늘 남들보다 한 발 늦게 깨닫는 것일까. ‘깨달은 그 순간이 가장 이르다’는 억설(臆說)을 늘어놓는 사람도 있지만, 그저 위안을 주려는 것일 뿐 사실은 아니지 않은가. 어차피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 세상일진대, 세상의 가치관이란 대부분 개개인들을 비교하여 도출해내는 ‘상대적인 개념’ 아니겠는가. 말도 안 되는 주변의 왕따에 죽음으로 항변하는 후배를 보며, 대학이나 교수집단이라는 지식사회도 시궁창 그 자체임을 진저리치도록 절감한다. 그러니 남은 시간에 무얼 더 도모하고 바라겠는가. 백거이의 말처럼 물 좋고 산 좋은 곳을 골라 오척단구(五尺短軀) 누일만한 누옥(陋屋) 하나 얽어놓으면, 그것으로 만족한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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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후기의 천재 시인 신위(申緯)는 “佳人莫問郞年幾(아가씨, 이 사람의 나이 묻지 마오)/五十年前二十三(오십년전엔 스물셋이었다오)”라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신위만한 그릇으로도 ‘칠십이 되어서야 마음먹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그러지지 않은’ 공자 나이에 이르러서야 겨우 나이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신위의 그릇을 훔쳐 볼 수조차 없는 국량이면서도 그보다 이십여 년 앞서 나이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나는 망발지한(妄發之漢)쯤 된다고 할 수 있으리라.
어쨌든 매미 껍질 벗듯 차분한 마음으로 욕망의 허울을 벗어 던지고, 내일 아침 새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리라.
경인년 묵은 해를 보내며
고요한 숭실동산에서 백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