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6. 2. 3. 16:06

 

 

지금 한국의 대학들에 만연되고 있는 '반지성적 문화'가 어디 한 두 가지랴?

어느 학교라고 콕 집어 말하고 싶지 않고,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모두 거기서 거기. ‘도낀 개낀’ ‘난형난제’, ‘도토리 키 재기의 대학사회 아니더냐! 한 치 앞서 간들 무어 그리 나을 게 있고, 한 치 뒤쳐졌다고 무어 그리 못할 게 있을까?

 

한 달 전쯤인가서울의 어느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대학원생 하나가 찾아와 자못 흥분된 어조로 내게 말했다.

 

하루는 도서관에 들어가는데, 큰 덤프트럭 두 대가 도서관의 책을 그득하게 때려 싣고학교 밖으로 나가더군요. 궁금해서 직원에게 물어본즉 덤덤한 어조로 보존서고에 있는 도서들을 폐기처분하는 중이라고 하데요.”

 

그래. 제정신을 갖고서야 지금 이 시대 대한민국의 어느 대학에선들 학자로살아갈 수 있겠느냐? ‘집안이 좁으니 세간들 가운데 때가 묻은 것들을 골라 쓰레기장에 버리듯, 버리는 거겠지!’라고 대답하는 내 마음이 심히 불편했다.

 

#그 대학 교수로 있는 친구의 말. 며칠 전 논문을 쓰다가 급한 책이 있어 학교 도서관을 검색하니 보존서고에 소장되어 있더란다. 그러나 지금 정리 중이라 볼 수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중에 생각하니 그 '정리'라는 것이 '폐기물 처리'를 말했고, 미루어 짐작컨대 그 책들은 폐기도서 트럭에 실려 나간 게 분명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제자를 통해 이웃 학교의 도서관에서 다섯 권이나 되는 그 책(영인 자료 본)을 빌려다가 아예 복사제본까지 해버렸단다. 대학생들은 잘 보지 않아 자리만 차지하는 책이니, 도서관 직원들도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만약 그런 (귀한) 책을 폐지로 취급하여버렸다면, 속된 말로 '참 망할 ××들'이라고 그 친구는 크게 흥분했다.

 

#꽤 오래 전이다. 이름뿐이었지만, 도서관의 무슨 위원이라 하여 1년에 한 번 정도 있는 회의에 나간 적이 있었다. 누군가 이제 IT 시대이니, 페이퍼 북은 줄이거나 없애고 e-book 체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 않다고, 서양의 명문대학들은 미련해서 도서관에 페이퍼 북 채우는 노력을 기울이는 줄 아냐고 역설했으나, 역부족이었다. 하기야 엔지니어들이 대학의 수장이나 도서관의 책임자로 군림하는 시대이니, 그들에게 도서관의 의미를 묻는 것은 우물에 가서 숭늉 찾는 격일 것이다.

 

#내 연구실에는 출판사 사장들이나 영업사원들이 수시로 들른다아직은 제법 책을 사주기 때문일 것이다. 끙끙 무거운 책 짐을 들고 방문한 그들에게 주로 인문학 도서들을 폐기처분하는’ 우리나라 대학 도서관의 만행^^을 말해줄 수가 없다. ‘앞으로 경기가 풀리면 출판시장도 좋아지지 않겠느냐?’는 입에 발린 위로의 말이나 뱉어낼 뿐, 축 쳐진 그들의 어깨를 받쳐 줄 희망적 언질을 건넬 방도가 없다. 내가 아무리 강심장이라 한들 힘들게 만든 책들이 소설책들처럼 잘 읽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폐기처분된다는 말을 그들에게 어찌 해줄 수 있으랴.

 

***

 

내게 미국 대학들의 가장 감명 깊은 공간은 도서관이었다. 교수도 학생도 실제적인 학구 활동은 그곳에서들 펼치고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대학자 노교수를 만난 것도 숲처럼 빽빽한 서가들 사이에서였다. 적어도 내가 찾는 사람들은 늘 연구실 아니면 도서관에 있었다. 그런 도서관들에서 멀쩡한 도서들을 폐기하는 꼴을 보지 못했다. 공간이 충분한 점도 그 이유의 하나는 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수백 년 그들을 지탱해온 지성적 문화 풍토를 누구도 거역하려 들지 않기 때문으로 보였다. 물론 그들에게도 공간의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그래서 상당수의 대학 도서관들에서는 기프트 센터(gift center)’를 마련하고 서고에서 퇴출되는 책들을 공짜에 가까운 가격으로학생들이나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대학 도서관 뿐 아니라 지역의 공공도서관들도 마찬가지였다. 정기적으로 폐기 도서들을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다시피하고 있었다. 책을 한 보따리씩 들고 나오며 함박웃음 짓는 그들이 부러웠다. 한없이 부러웠다. , 선진국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학문적 변화주기로 볼 때 인문학과 이공학이 다른 것은 분명하다. 실용적 도구학과 정신적 학문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대학의 본질에 대하여 다시 논하고 싶지 않은 것은 이미 이 땅에서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대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형이하적 도구학 전공자들이 패권을 휘두르고, 나라 전체로도 지도적인 학자들이 모조리 사라진 형국이니, 지금의 대학들은 대학이 아니다. 대통령이 대학을 알 리 없고, 교육부 장관은 정권의 입맛에 맞춰 우왕좌왕하다가 정치판으로 복귀하면 그만이며, 교육 관료들은 잠시잠시 그런 장관의 손짓에 맞춰 춤추는 것으로 소임을 다한다고 생각하는 나라, ‘해외 유학 동안 열등생으로 지내다가 복귀하여 지배자 행세하는’(김종영, <<지배받는 지배자-미국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 돌베개, 2015, 참조.) ‘지적 사기꾼들’(어떤 인사의 말 인용)이 학문 권력을 독점하는 나라, 정치권과 학계를 부지런히 오가며 곡학아세(曲學阿世)해도 대단한 학자로 대접받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하기야 스마트폰 하나만 가지면, 페이퍼 북 없이도 논문 한 편을 써내는 날이 조만간 올 것이라고 큰소리치는 인사가 내 주변에 있으니, 다시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으랴!ㅠㅠ

 

 


세인트루이스 소재 워싱턴대학교(Washington University, Saint Louis)의 John M. Olin Library

 

 


세인트루이스 소재 워싱턴대학교(Washington University, Saint Louis)의 John M. Olin Library 서가

 

 


세인트루이스 소재 워싱턴대학교(Washington University, Saint Louis)의 John M. Olin Library 서가

 

 


미국 스틸워터(Stillwater) 시립도서관

 

 


스틸워터 시립도서관에서 폐기도서들을 싼 값으로 주민들에게 나눠주는 모습

 

 


오클라호마주립대학(OSU)의 '에드몬 로우 라이브러리(Edmon Low Library)'

 

 


오클라호마주립대학(OSU) '에드몬 로우 라이브러리(Edmon Low Library)'의 서가

 

 


오클라호마주 거쓰리시티(Guthrie City)의 카네기 도서관
(오클라호마 주에서 가장 먼저 세워졌음)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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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3. 11. 16. 08:00

 

 

역사학과 학생들을 위한 특강을 마치고-한국의 이미지를 새것으로!

 

 

 

 

이곳에 도착하면서 아시아사를 가르치는 Du 교수가 한국사에 관한 내용들을 수시로 물어왔다. 이것저것 설명해주면서 한국사 부분은 내가 가르칠까?’라고 농을 건넸더니, 그 말을 진짜로 알아듣고 이곳 생활이 겨우 안정되어갈 즈음 신라사 부분을 강의해줄 수 있느냐고 제의해왔다. 그러나 신라를 비롯한 고대사 부분에 대한 지식이 지극히 엷은 탓에 강의안을 마련하려면 아주 많은 시간과 정력을 투자해야 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자신 있다고 생각해온 여말선초, 특히 신흥사대부의 출현이나 국초의 분위기와 결부시켜 건국 서사시 <용비어천가>를 강의하겠노라 역으로 제의하였다.

 

 ***

 

강의실에 들어가니, 한국 유학생 1명과 중국 유학생 2~3명을 제외하면 약간이라도 한국을 아는 학생들은 거의 없는 듯 했다. 사실 이 점은 이곳의 기성세대도 마찬가지였다. 직접 한국전에 참가했거나 참전한 부친으로부터 얻어들은 정보가 전부인 퇴역군인들을 이곳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그들 대부분이 갖고 있는 한국 이미지 역시 ‘625 당시의 그것으로부터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은 수준의 것이었다. 그들은 우리를 ‘625 때 코 찔찔 흘리면서 쫓아다니며 껌을 구걸하던그 상태로 생각하고 있는데, 우리만 좁은 한국 안에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준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비록 한국이 면적으로는 오클라호마 주의 반밖에 안 되지만, GDP로 따져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고 수출액으로 세계 9위의 경제대국이며, 5천년의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지닌 단일민족임을 힘 주어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수긍하건 말건 이 사실만은 분명히 주지시킨 다음 특강을 진행해야 내 속이 풀릴 것만 같았다.

 


강의 중


강의 중


질의응답이 끝나고 남아 있는 학생들과

 

***

 

그게 효과가 있었던지, 강의가 끝나고 질문을 하라고 하자 너도나도 손을 들고 한국사의 궁금한 점을 물어왔다. 그들이 특히 관심을 갖는 내용은 왕명으로 한글을 만들었다는 점, 한글의 존재와 쓰임새, 당시의 사회구조, 왕조의 지배체계, <용비어천가>를 올려 부른 궁중예술(court performing art) 등 다양했다.

 

그들과 질의응답을 하며, 다른 나라 특히 미국 같은 영향력 있는 나라에서 우리의 역사를 교육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자동차 한 대, 스마트 폰 한 대 더 파는 것보다 대학들에 한국학을 개설하고 학생들에게 교육하는 것이 우리로서는 훨씬 중요하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이다. 한국사의 작은 부분을 문학과 결부시켜 설명하는 데 그치긴 했으나, 앞으로 한국학의 세계화를 위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뚜렷한 해답을 얻은 셈이었다.

 

강의가 끝나자 청강하러 왔던 박사과정 학생 둘이 다가와 자신들이 만든 외교사 토론클럽이 있는데, 나와서 한국 현대사에 대한 지도를 해줄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이 요청을 받고, 한국사에 대한 학생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데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스스로 하면서 그들의 요청을 쾌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이 연구 활동 과정에서 얻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다. 

 

아시아사, 특히 한국사가 미국학생들이 별로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 분야임을 알게 되면서 미국을 비롯한 서양 국가의 국민들이 우리를 잘 알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해 얼마간 충격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속된 표현으로 그저 '코딱지만한' 나라가 하나 있어, 동족끼리 맞붙어 크게 싸웠으며, 지금도 으르렁거린다는 점 외에 크게 아는 내용도 알고 싶어하는 내용도 없는 대상이 우리임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은 길게 보아 우리자신에게 좋은 약이 되긴 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분명 씁쓸한 일이었다. 

 

사실 중국 혹은 중국문화와 역사에 대하여 느끼는 서양인들의 두려움이나 존경심, 일본이나 일본문화에 대하여 갖고 있는 서양인들의 호감을 6개월에 걸친 유럽여행에서 확인했고, 지금 미국에 와서 재확인하는 중이다. 일모도원(日暮途遠)의 초조함에 우리의 조급함이 가세하게 되니, 참으로 마음이 편치 않은 나날이다. 그러나, 어쩌랴.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요, 옹달샘이 있어야 강도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 황소처럼 그냥 앞만 보고 나아갈 일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그들이 갖고 있는 '1950년대의 이미지'가 '펄펄 나는 21세기의 이미지'로 바뀌는 날도 있을 것 아닌가?     

참고로 강의내용을 들면 다음과 같다.

 

 

*summary/special lecture for students of History Department

 

 

History as Literature, Literature as History

--Understanding Yongbi’eocheon-ga[Songs of the Dragons Flying to Heaven], the epic poem praising the foundation of Joseon Dynasty--

 

 

                         Dr. Cho, Kyu-Ick

(Professor of Soongsil University, Seoul, Korea/Visiting Fulbright Scholar, History Department of Oklahoma State University)

 

                       

 

Foundation of Joseon Dynasty and Necessity of Creating

Yongbi’eocheon-ga[Songs of the Dragons Flying to Heaven]

 

 

Is there a point of contact between history and literature? If there is, what is it? And where is it? The key purpose of my speech is to disclose this point through Yongbi’eocheon-ga* [Songs of the Dragons Flying to Heaven]as an epic that sang the history of the early period of founding Joseon Dynasty. The point of contact is just using imagination whenever we interpret literary materials and historical facts. I’d like to explain this issue through the heroic achievements in Yongbi’eocheon-ga as historical facts or literary materials.

 

Joseon was the dynasty occupied in the last part of Korean history before the modern age. The first King, Taejo Lee, Seong-Gye founded the dynasty after destroying the Koryeo Dynasty in 1392 A.D. Joseon is the dynasty that 27 Kings had ruled for 518 years until the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in 1910.

 

The 4th King, Sejong the Great, created Han’geul, the independent letters to spell the Korean language. To test the usability of Han’geul, King Sejong the Great ordered his intellectual subjects to make Yongbi’eocheon-ga, which praised the achievements of the foundation of Joseon Dynasty by 6 ancestors from the 5th grandfather, Mokjo to his father King Taejong.

 

Lee, Seong-Gye, Taejo was a general of the late Koryeo Dynasty period. However, the late Koryeo Dynasty was facing a crisis of collapse because of the tyranny of a  small number of the aristocracy. Lee, Seong-Gye was a general with a strong military force, and the group in power that used his military force was the newly arisen aristocracy armed with Neo-Confucianism, also known as the Zhu Xi[Chu Hsi] school.

 

Eventually, Lee, Seong-Gye destroyed the Koryeo Dynasty and founded the Joseon Dynasty, using his own military force and the newly arisen aristocracy’s support. The Joseon Dynasty introduced Confucianism as its state religion, contrary to the Koryeo Dynasty that adored Buddhism, and enforced the bureaucracy led by the retainers group as a main axis at that time.

 

However, even if Lee, Seong-Gye grasped the Koryeo Dynasty’s military power, he was only a subject of his King. No matter how cruel the King was, the notion that a subject cannot get rid of his king was one of the kernels of Confucian ideology. In other words, the people at that time generally had a firm faith that all offspring had to practice filial piety toward their parents, wives had to respect their husbands, and subjects had to be loyal to their king.

 

In this respect, Lee, Seong-Gye’s taking the throne was a clear treason. Especially in respect to Confucianism, overthrowing their king was an indefensible treason. If the people think of their King as a leader of treason, who renders devoted service to him? How can a dynasty without people’s loyalty to their king be continued for a long time?

 

So, there were many resistance groups in the early stage of the dynasty, and the ruling foundation was not strong and steady. King Sejong the Great knew the problems well. He had pity on the people without their own letters, which are a means of expression about their thoughts and feelings. So, he made Hunmin Jeong’eum(it means ‘correct letters to instruct people’), developed the various science and technology, and strengthened the national defense.

 

King Sejong the Great thought his grandfather, King Taejo’s founding of the Joseon Dynasty after destroying the Koryeo Dynasty as a historical and political matter with quite a weak justification. He believed that he had to set a reasonable ground and logical basis for the historical facts surrounding the foundation of the Joseon Dynasty.

 

To do so, he needed to cite his 6 ancestors’ achievements and make a long epic poem like Yongbi’eocheon-ga. Through Yongbi’eocheon-ga, with showing that their outstanding achievements were results not from their own personal capacity but from Heaven’s Command, the authors succeeded to present the ground beyond ethics or morals. That is to say, the historical fact that Lee, Seong-Gye as a subject drove out his King and became King himself was a result not by human desire or ability but by Heaven’s order.

 

This is just an imitation of the “thought of Heaven’s Will” from King Wu of the Zhou Dynasty. The authors wanted to remind people to be nothing but loyal to the dynasty, because of its foundation from Heaven’s order. King Sejong the Great intended to stabilize his dynasty by elevating Yongbi’eocheon-ga to the level of history by brainwashing and teaching people.


 

 

Yongbi’eocheon-ga as the last defense logic of the existing interested group 

 

Yongbi’eocheon-ga was a product of this intention. So, it can be a historical writing as well as a literary work.  The newly arisen aristocracy that participated in Lee, Seong-Gye’s revolution held important posts as the meritorious retainers, and the power could be inherited to their offspring unless they had special problems.

 

In the era of King Sejong the Great, they had already become an existing interest group. Yongbi’eocheon-ga was the real example of an attempt of the intellectuals in charge of ideology in the early Joseon Dynasty to dilute the perceived weakness of justice and the frailty of morality in King Taejo’s revolution.

 

Arguing the same points that Joseon is the dynasty founded with Heaven’s order, the heartwarming hospitality for the meritorious retainers has to be sustained, and the integrity of the dynasty has to be eternal are the core contents of Yongbi’eocheon-ga. In the point that the intellectuals at that time paraphrased their own wish variously, also Yongbi’eocheon-ga was no exception.

 

Rather it can be said to put content inclination or thematic consciousness of the existing Akjang** together fully. Heaven’s Command is a condition to prove a dynasty’s legitimacy, and the political power’s legitimacy is one of the matters cared about by the ruling group. The matter of ideology also has a functional relationship with whether a group in power has legitimacy or not. When ideology falls into disorder, categorical propositions like as dynasty’s perpetuity cannot help but be threatened.

 

In Yongbi’eocheon-ga the regime change from the Koryeo Dynasty to the Joseon dynasty but we can imagine that Lee, Seong-Gye used his military force to be persuasive. In addition, King Taejong[father of King Sejong the Great] was not the eldest son, King Sejong the Great also was not the eldest son who could not claim legitimacy. The illegitimacy of kingship which had repeated from King Taejo to King Sejong the Great was a critical matter possibly arousing the crisis consciousness of the ruling class.

 

If there were contradictions or irrationality like that, dynasty was difficult to continue. Dynasty’s perpetuity and prosperity are matters closely related to maintaining the vested rights of the ruling class. Akjang makers wanted to clarify that the foundation of the Joseon Dynasty was the result of what they should do morally. The Koryeo Dynasty was a symbol of immorality, while the Joseon Dynasty was a subject of what should be morally. In light of justice, to destroy the Koryeo Dynasty was a matter which made people realize principles and rules of rewarding the good and punishing the wicked, and it was a basis for realizing the ideal order of Confucianistic ideology.

 

However, for them, to monopolize the power was most important as the ruling class of the new dynasty. In this situation, the ideal king on top of the power structure governs well with a right attitude of mind was only a way to perpetuate the power they fought for from age to age. In all times and places, the power group with vested rights stood on the central status of conservatives. The newly arisen aristocracy that led to foundation of the Joseon Dynasty had been reforming power group in the first stage, however they eventually walked on the one way of conservatization after becoming the power group with vested rights as time went on.

 

They were able to emphasize justification of reformation when they were the subject of reformation. Their anxiety and consciousness of the reality was expressed in the works of Akjang including Yongbi’eocheon-ga as the end of the series of Akjang in Joseon Dynasty can be interpreted meaningfully, even in the history of politics and culture. If we attach the pre-existing conditions like features of the power structure and the authors in the political circles at that time, Yongbi’eocheon-ga is only a verbal representation of the Joseon Dynasty, wrapped up the leading group’s wishful thinking.


 

 

History and Literature as the interpreted facts or truth

 

 

Yongbi’eocheon-ga is a literary work as well as a historic writing as a narration about basic facts. The narrative represented symbolically in myth or tales is a genre of history in the classical era. Recently in Korea, some historical dramas  have become popular on TV. Accordingly, sometimes many people misunderstand it as a historical fact or confuse it with history. Dramatists use literary imagination, and historians use historical imagination.

 

People say that the literary imagination making fiction is different from the historical imagination dealing only with facts. However, is it really like that? In What is History, the author E.H.Carr explained two ways to write history, as objective and subjective. Literally, objective writing is the way only to list the facts as historical materials, subjective writing is the way to add an interpretation by a historian’s opinion on the subject.

 

Strictly speaking, there is no condition to guarantee the objectivity of supposedly objective writings. Although most historians are confident of their historical writing’s objectivity as something anyone can accept, usually it can’t be admitted, and we can’t say that the history written like that is a good one. Because it is an essential ability of the historian to select and interpret some historical facts. Here, the contact point between literary imagination and the historic one, that is to say, between history and drama, comes into being.

 

As a matter of fact, the intellectuals that created Yongbi’eocheon-ga utilized historical imagination and a literary one at the same time. They were prominent people, a combination of scholars of literature and historians. Undoubtedly, they did not work just to write a simple history book. They selected and interpreted historical facts, and mixed them in the bowl as literature.

 

Accordingly, Yongbi’eocheon-ga is in the form of an epic made with the happy combination of historical and literary imagination. Any reader with normal knowledge or insight can feel the authors’ literary sensitivity and historical strictness at the same time, I suppose. Because it shows the emotional horizon of the knowledge-based society at that time and historical consciousness about the foundation of the Joseon Dynasty. If so, how is the composition? Let’s see the first 3 cantos and final canto***.  

(The original text is omitted.)

 

 

Foot Notes

 

 

*It was created in 1445[the 27th year on the throne of King Sejong the Great], and published in 1447[the 29th year on the throne of King Sejong the Great]. The first edition might be movable metal print book, however, all of the existing books are xylographic texts. Because it was created before promulgating Hunmin jeong’eum[it means ‘correct letters to instruct people’/Independent writing system for the Korean spoken language] by King Sejong the Great, it was the first document written in Hunmin jeong’eum. Jeong In-ji, Ahn Ji, Gwon Je created it, Seong Sam-moon, Park Paeng-nyeon, Lee Gae annotated it, Jeong In-ji wrote the foreword, and Choi Hang wrote the post script. The common structure of individual canto of Yongbi’eocheon-ga is composed of original text, translation in Chinese old letters, and the related historical facts.[About the meaning of ‘canto’, refer to the footnote 3) in pp.6-7.] 

 

**Akjang, one of the literary generic names, is used only in the learned world of Korea. It was used for the lyrics in the Joseon Dynasty’s court performing arts, namely, a composite art, a combination of playing music, singing, and dancing. Cf. Cho, Kyu-Ick, Literary Aesthetics of Joseon Dynasty’s Akjang, Seoul: Minsokwon, 2005.

 

***The canto is a principal form of division in a long poem, especially the epic. It is similar to ‘stanza’ in form, function, or meaning. The word comes from Italian, meaning ‘song’ or ‘singing’. Yongbieocheon-ga is composed of 125 cantos.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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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J

    자랑스럽습니다

    2013.11.20 11:57 [ ADDR : EDIT/ DEL : REPLY ]
  2. Thank you. How honored and humbled I heard a praise like your comment!!! I wish many Koreans could understand our own images in the advanced countries like the U.S.

    2013.11.21 11:4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양훈식

    결국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내적 자신감만으로는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부분이 적을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겠군요. 우리 스스로가 우보천리하더라도 꼭 선진국에게 우리 자신의 이미지를 제대로 인식시켜 줘야 하겠습니다. 교수님의 노고가 크십니다. 멋진 강의 함께 들었다면 더욱 좋았으리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2013.12.01 18:24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