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9. 2. 12. 19:45

압존법(壓尊法)혼란 시대

 

 

 

                                                                                                 조규익

 

 

 

우리 과의 어느 학생.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예쁜 여학생이다.

그가 내게 전화를 걸었다. 학교 전체 졸업식이 끝난 뒤 있게 될 학과 졸업식 관련 연락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참 듣다가 나도 모르게 꾸지람을 내뱉고 말았다. 압존법이 심히 부정확했다. 사실 이 학생만 압존법을 모르는 건 아니고, 또 대학생들만 그런 게 아니다. 일선 관청을 방문할 때도, 집안의 조카나 며느리들과 대화를 할 때도 늘 그놈의 압존법때문에 당황하기 일쑤다. 심지어는 TV 토론을 진행하는 앵커의 말에서도 흐트러진 압존법을 발견하게 된다! 대학에서 평생을 지내온 나는 대학생들과 대화하면서 가장 참기 어려운 문제가 바로 압존법의 혼란이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압존법을 모르거나 무시한다. 아무나 무조건 높이는 게 장땡인 줄 안다.

 

발언자 말 속의 주체가 발언자보다는 높지만, 듣는 사람보다는 낮을 때, 말 속의 주체를 높이지 않는 어법이 압존법이다. 전화 속의 그와 나는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학생: 학과 졸업식에 참석하실 수 있으세요?

: 학과 졸업식에 누구누구 참석하나?

학생: 졸업생, 학생회 집행부 임원들 합쳐 40여분이 참석하세요.

: 그 밖엔?

학생: 2학년 학생분들 가운데 시간 나시는 분들도 참석하실 거예요. 그런데 아직 방학 중이시라서 몇 분이나 나오실 수 있으실지 알 수 없어요.

: 혹시 1학년생들은 참석 안하나?

학생: , 1학년 분들은 아직 등록을 안 하신 상태이셔서 참석 못하실 거에요.

: , 너 압존법을 배웠니? 못 배웠니? 네가 나한테 얘기하면서 꼬박꼬박 학생들을 높이면 나는 도대체 뭐니? 누구보다도 국문과 학생이라면 정확한 언어를 구사해야 하는데, 지금 네가 하는 말이 압존법에 맞는다고 생각하니?

학생

 

그 학생이 무슨 죄이랴? 잘 가르치지 못한 내가 잘못이지. 학창시절 나는 압존법이란 말 자체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니, 지금 대학생들을 포함하여 젊은 세대는 말하여 무엇 하겠는가? 웅변학원에 보내어 사자후를 토하는 방법만 가르쳤고, 데모의 현장에서 격한 어조로 선동하는 방법만 배웠을 뿐, 제대로 된 대화법을 가르치거나 배운 적이 없다. 선생님들도 모르는 압존법을 어찌 학생들이 알 수 있겠는가.

그래서 도대체 요즘 젊은이들이 어떻게 압존법을 사용하는가를 알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 보았다. ‘국립국어원홈페이지에 사례로 게재된 문답은 다음과 같았다. 

 

[질문]

직장 상사를 그보다 높은 윗사람에게 말할 때는 높여 말합니까, 높이지 않습니까?

[답변]

부장에게 과장에 대하여 말할 때 "과장님 외출하셨습니다." 하는 것이 옳은지, "과장님 외출했습니다." 하는 것이 옳은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잘못하면 부장을 화나게 할 수도 있고, 또 과장을 불쾌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평사원들이 이 문제 때문에 고민하다가 "외출하......" 하고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윗사람에 관해서 말할 때는 듣는 사람이 누구이든지 상관하지 말고 '--'를 넣어 말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즉 평사원이 과장을 사장에게 말할 때라도 "사장님, 김 과장님 거래처에 가셨습니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
이렇게 윗사람에 대하여 말할 때 '--'를 넣어 말하는 것은 회사 안에서만이 아닙니다. 다른 회사 사람에게 말할 때도 상대방의 직급에 관계없이 '--'를 넣어 말합니다. 즉 평사원이 자기 회사 과장을 다른 회사 부장에게 말할 때도 "김 과장님 은행에 가셔서 안 계십니다."처럼 말합니다. 그런데 윗사람에 대한 경어법에 '--'만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존칭조사 '께서'를 사용해야 하는지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래서 부장에게 과장을 말할 때 "과장님께서 외출하셨습니다."라고 해야 할지 "과장님이 외출하셨습니다."라고 해야 할지 망설여집니다. 그러나 구어체에서 존칭조사 '께서'는 필수적인 요소가 아닙니다. '과장님께서'보다는 '과장님이'이라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부장님, 과장님이 외출하셨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혼란의 근원은 국립국어원에 있었다! 평사원이 과장을 사장에게 말할 때 사장님, 김 과장은 거래처에 갔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옳다. ‘사장님, 김 과장님 거래처에 가셨습니다.’라는 말과 1학년 분들은 아직 등록을 안 하신 상태이셔서 참석 못하실 거에요.’라는 2학년 여학생의 말은 압존법이 엉망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압존법을 인정하면서 압존법을 솔선하여 깨고 있는 국립국어원의 판단은 매우 사려 깊지 못하다.

 

영어에는 압존법이 없다. 물론 어조(語調)에서 높이고 낮춤을 분간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말은 매우 단순하다. 그러나 우리는 말 속에 많은 장치들을 두고 있지만, 의미와 감정의 전달에서 매우 합리적이다. “사장님, 김 과장은 거래처에 갔습니다.”는 말을 생각해보자. 대화의 상대인 사장을 높이는 효과, 군더더기 존칭소를 생략함으로써 전달내용의 명료화를 기하는 효과 등이 어느 외국 말보다 우수하지 않은가. 어려서부터 압존법을 제대로만 가르치면 단순명료하면서도 품위 있는 국어생활을 할 수 있는데, 생활언어의 교육을 소홀히 함으로써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 많은 것들을 잃어왔다. '커피 나오셨습니다. 만원 되시겠습니다' 같은 엉뚱한 말, '다른틀린으로 틀리게 말하기 일쑤인 무감각, 범죄자들에게까지 깍듯한 존칭을 일삼는 TV방송 앵커들의 몰상식이 횡행하는 사례들 모두 생활언어 교육의 부재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제라도 교육현장에서 제대로 된 생활언어를 가르쳐야 한다. 자격 없는 앵커들과 교사들을 재교육시켜야 한다.

 

이건 틀딱의 고집스럽고 시대착오적인 투정이 결코 아니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6. 7. 22. 01:41

불통의 시대를 살며

 

 

 

개인정보 보호의식이 웬만큼 정착되었을 법도 하지만, 가끔 나 스스로 생소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없지 않다. 두어 학기 전의 일. 자꾸만 나로부터 탈출하려는 영어를 붙잡아 앉힐 겸 매주 한 번씩 몇몇 교수들과 함께 만나는 외국인 교수가 있었다. 한 교수와 여러 학기를 지속적으로 만날 때도, 한 학기만으로 끝날 때도 있었으나, 매 학기가 끝날 무렵이면 그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식사 한 끼 대접해온 것이 내 원칙이었다. 그렇게라도 해서 그와의 관계를 유지하려는 의도가 없었던 건 아니나, 사실은 너무 무미건조한 그들에게 끈끈한 인간관계의 전통을 보여주고픈 욕망이 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때마침 학기 내내 부득이한 일들로 시간을 빼먹곤 하다가 그 교수와의 마지막 시간마저 놓쳐버렸다. 더구나 학기 중 그의 개인 연락처를 알아놓지도 못한 나는 하는 수 없이 외국인 교수들을 관리하는 사무실로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내가 국문과 조 아무개 교수인데, 아무개 교수와 통화 좀 할 수 있을까요?”

지금 안 계시는데요.”

당연히 그 분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진 않겠지요?”

.”

그럼 내 전화번호를 남길 테니, 전화 좀 해 달라고 알려드리시오.”

알겠습니다. 그런데, 용건이 뭐죠?”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그 조교가 용건을 묻는 순간 화가 터졌다. 교수가 자신의 신분과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같은 대학 교수에게 전화 좀 해달라고 부탁하는데, 무슨 용건으로 그와 통화하려는지 묻는 그 조교 녀석이 멍청하고 야속해보였기 때문이다.

 

, 학생! 용건은 왜 묻는 거야? 교수가 같은 대학 교수에게 연락처까지 남기고 전화를 부탁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할 이야기까지 자네에게 알려줘야 하는 거야? 외국인 교수에게 왜 그리도 저자세인 거야?”

 

그는 깜짝 놀라는 듯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동안 화가 갈아 앉지 않았다. ‘짜식들, 한국에 왔으면 한국의 방식을 따라야지!’ 라고 중얼거리며, 자신의 정보 관리에 철저한 서양 사람들과 그들에게 과공(過恭)하는 듯한 조교를 괜히 비난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

 

학진(한국학술진흥재단의 약칭. 현재는 한국연구재단)’ 사이트에 교수들의 연락처가 상세히 올라 있던 때가 있었다. 연구소 일, 학회 일, 논문 심사, 강사 섭외, 자료 문의 등등. 일면식도 없는 타 대학 교수들에게 연락할 일들이 수시로 생겼고, 그 때마다 학진 사이트가 내 수첩 역할을 톡톡히 해내곤 하던 시절이었다. 학진 사이트가 있어 참 편리했고, 행복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학진 사이트에서 개인 연락처가 싸악 사라졌다. 어둔 산길을 가던 중 등불이 꺼진 것처럼 답답했다. 일이 생길 때마다 접촉할 교수의 재직 대학 해당학과 사무실로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앳된 목소리의 대학원생 조교는 알려드릴 수 없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그럴 때마다 내 연락처를 남기지만, 원하는 시간 안에 연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참 답답한 시절이 도래한 것이었다. 은행, 보험사, 통신사, 신문사, 캐피탈, 장애인 협회, 기획부동산 회사 등등, 헤아릴 수 없는 불청객들이 전화를 해대고, 온갖 스팸메일들을 보내오는데, ‘놈들은 과연 어떻게 내 연락처를 알아냈단 말인가.

몇 년 전 몇몇 일본의 교수들을 급히 접촉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러나 도통 연락처를 알 도리가 없었다. 대학 홈피의 어느 구석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해당 대학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그 대학 직원 가운데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간신히 찾아 내 뜻을 전했으나, ‘그 교수의 이메일 주소를 알려드릴 수 없다/본 대학으로 공문을 보내 이메일 주소 알려주기를 신청하면, 그 교수에게 연락하여 허락을 받은 다음 이메일 주소를 알려줄 수 있다/개인 전화번호도 마찬가지다는 것이 알아듣기 힘든 그의 영어 가운데 겨우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참 대단한 놈들이다!’라고 혀를 차면서도 끝내 어쩔 수 없었다.

 

***

 

이런 답답함을 참지 못하는 나는 보란 듯이 내 정보를 홈피와 블로그에 대문짝처럼 게시해놓고 있는 중이다. 누구의 연락도 사절해야 할 만큼 바쁜 내가 아니며, 빼앗길 것이 두려울 만큼 돈이 많은 내가 아니며, 남들에게 위해를 당할 만큼 나쁜 짓을 하고 사는 내가 아니며, 그나마 빼꼼히 뚫린 이메일 주소를 막아놓아야 할 만큼 주변에 친구들이 득실대는 나도 아니기 때문이다.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지내는 지금도 내게 연락을 주는 사람들은 가뭄에 콩 나듯 할 뿐인데, 그나마 막아놓을 경우의 적막함을 어떻게 견딜 수 있단 말인가. 심심치 않게 답지하는 스팸메일들이야 약간의 손가락 운동만으로도 쓰레기통에 던져넣을 수 있으니, 운동량이 모자라는 요즘 세상에 얼마나 좋은 일인가. 정신만 온전히 차리고 산다면, 이메일을 타고 숨어드는 좀도둑들 쯤이야 간단히 제압하고도 남을 터. 그러니 제발 열어놓으라고 만든문들을 꼭꼭 닫아 건 채 소통(疏通)’의 구두선(口頭禪)만 외쳐대는 위선자들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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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4. 4. 28. 10:37

 

 

 


제이슨 가족이 살고 있는 대학 아파트[Morrison]

 

 


제이슨 부부와 함께 저녁 식사 중에[Freddy Paul's에서]

 

 


식사 후 제이슨 가족과 함께

 

 


제이슨 집을 방문하여 그의 아들 그레이선[Grayson]과 함깨


 

 

 

탁월한 젊은 영어 교육자, 제이슨 컬프(Jason Culp)

 

 

 

2013827일 저녁. 이미 어둑발이 내리기 시작한 저녁 일곱 시쯤 숙소인 대학 아파트 윌리엄스[Williams]’에 도착했다. 평화로운 초원 위에 조용히 앉아 있는, 그림 같은 아파트였다. 아파트 관리소 FRC[Family Resources Center]의 사무실을 찾아가니 훤칠한 훈남한 사람이 친절하게 우리를 안내했다. 나중에 그가 우리 아파트의 위층에 사는 OSU 대학원생 제이슨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와 함께 그 아파트에 살며 FRC에서 파트 타임으로 일하고 있었다.

 

제이슨과의 인터뷰



 

우리는 종종 그를 만났다. 아파트에 문제가 생겨도, 우편물이나 택배 수령에 문제가 있어도, 우리는 그를 불렀다. 학교에서도 내 연구실에서도 나는 그와 자주 만나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실제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게 미국인들인데,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등한 입장에서 교제할 수 있는 상대가 미국인들이기도 했다. 그와 친구로 만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한국문화와 한국인들의 삶을 말해주었고, 그는 그간 우리가 모르고 있던 남부 미국인들의 삶과 의식(意識)을 설명해주었다.

 

그와 만나는 과정에서 그가 TESOL[Teaching English to Speakers of Other Language/외국어 사용자들을 위한 영어 교육]을 전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의 영어가 매우 명료하면서도 정확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한국 사람들이라고 모두 표준 한국말을 명료하고 정확하게구사하지는 못하듯, 미국 사람들이라고 모두 표준 영어를 구사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영어만으로 분류할 경우 미국에서 만난 미국인들은 대충 네 부류로 나뉘었다. 짤막하면서도 느릿느릿한 영어로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 주는 어른들, 진한 사투리 억양으로 상대방을 갸웃거리게 만드는 사람들, 입에 오토바이 엔진을 단 듯 숨넘어가게 지껄여대는 학생들과 젊은이들, 제이슨처럼 교과서적인 영어로 호감을 주는 소수의 지식인들. 가끔 방송에서 목격하는 오바마 대통령, 전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 현 백악관 대변인과 미 국무성 대변인 등의 대중 스피치를 통해 미국 지도자들이나 상류층의 덕목 가운데 언어의 명료성과 모범성이 큰 자리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제이슨에게서 그런 스피치의 전형을 확인하게 된 것이었다.

 

지금 한국에는 많은 원어민 영어교사들이 활약하고 있다. 모두 훌륭한 자질을 갖춘 사람들이지만, 각기 다른 그들의 특징과 개성을 뛰어 넘는 표준성과 모범성을 제이슨에게서 발견했다. 흡사 입술과 내면에 부드러운 모터(motor)를 달아놓은 듯, 그에게선 늘 명료하고 기분 좋은 영어가 솔솔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이런 사람이 우리나라의 대학이나 공공기관에서 한국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늘 갖게 하는 그였다. 그 역시 한국 같은 나라에 나가 영어를 가르칠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

 

제이슨 부부와 식사를 함께 한다거나 차를 마시면서, 풋볼 경기를 관람하면서, 새로 태어난 아기를 축하하기 위해 그의 집을 방문하면서, 우리는 서로의 사이에 개재하는 문화의 차이를 초월하여 상통하는 동질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름을 넘어 같음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힘은 바로 언어였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다름을 평평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소통의 힘이었다. 우리는 그와 그의 가족을 만나면서 미국 체류 기간 내내 행복했다. 타향에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가 이웃에 살고 있는 것처럼 든든한 일이 어디에 있을까. 비록 우리에 비해 나이는 어렸지만, 지구촌에 대하여 그가 갖고 있던 식견만은 어느 기성세대보다 월등했다. 그리고 글로벌화 된 세계에서 좀 더 멋진 삶을 살기 위해 우리가 갖추어야 할 조건들은 무엇인지 분명히 깨닫게 해준 그였다. 조만간 한국에서 그를 만날 수 있게 되길 기대하면서, 그들과의 행복했던 몇 개월을 회상해보는 요즈음이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3. 10. 28. 23:55

 

아메리카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미래의 꿈을 찾다!

 

 

2013년 풀브라이트 방문 학자 발전 세미나[2013 Fulbright Visiting Scholar Enrichment Seminar]에 다녀와서

 

 

         제1일차-치밀한 미국인들

 

 

 

 

풀브라이트의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어 미국 내 대학을 비롯한 연구기관들에 체류하고 있는 학자들은 기간 중 최소 1회 이상 34일의 발전 세미나에 참석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최근 나는 미리 3회까지의 시기와 주제만을 알려 준 다음, 신청을 받아 배정하는 풀브라이트 측[CIES(Council for International Exchange of Scholars, 국제 학자 교류 위원회’) Enrichment Seminar Team]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혀를 내두르게 되었다. 광대한 미국 땅에서 미리 장소를 알려 준다면 대개 한쪽으로 몰릴 수 있기 때문에 고안해낸 지혜였을 것이다. 그들이 제시한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1. 옛날의 서부에서 새로운 서부로: 미국 스토리의 형성에 기여하는 땅의 역할 [Old to New West: The Role of Land in shaping the American Story](10/23-26)

2. 법의 지배: 인권과 정의[Rule of Law: Human Rights and Justice](11/20-23)

3. 사회적 기업가 정신: 혁신하는 비영리 단체들과 발전하는 공동체들[Social Entrepreneurship: Innovating Nonprofits Developing Communities](2014 3/19-22)

 

모두 유익했으나, 그래도 나와 가까운 쪽은 1번이었다. 1번을 1순위, 2번을 2순위로 선택하여 신청했으나, 1번의 지원자가 많아 부득이 나를 대기표에 올렸다는 연락이 왔다. 어쩔 수 없이 2번으로 갈 각오를 하고 있던 차 928일에 털사 전 지구 연합[Tulsa Global Alliance, 약칭 TGA]’에서 이메일이 왔다. 국무성의 지원을 받아 1번을 주제로 자신들이 이번 세미나를 주관하게 되었으니, 신청할 사람은 하라는 연락이었다. 대기표에 올려놓았다던 나에게까지 연락한 것을 보면, 막상 뚜껑이 열려 멀리 떨어져 있는 오클라호마의 털사시티(Tulsa City)가 세미나 장소임을 알게 된 상당수의 사람들이 포기한 모양이었지만, 나로서는 사막 속의 단비인 셈이었다.

 

스틸워터에서 차를 몰고 달리면 1시간 남짓 걸리는 털사가 아닌가. 어차피 풀브라이트에서 비행기 표를 비롯한 모든 비용을 대 주는데 이왕이면 여행하는 셈 치고 먼 곳으로 가는 게 좋지 않으냐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도 있었지만, 썩 좋지도 않은 미국 비행기들을 갈아타면서까지 여행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고, 무엇보다 1번 주제가 내겐 환상이었다. 1012TGA가 보내 준 Overview[행사개요]를 보고는 더더욱 가슴이 설렜다. 이 지역 인디언들의 삶과 문화에 대한 탐구가 세미나 내용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

 

모든 것이 결정되면서 주최 측의 주도면밀함이 감지되었다.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참석자들[이번에는 40개국 70명의 학자들]의 교통편과 숙박 및 식사 주선, 세미나 장소 마련, 강사 및 패널리스트 섭외, 자원 봉사자 동원, 이동 차편 마련, 현장 견학 등 행사 전반의 일정을 짜고 조정하는 일들일 텐데, 사실 가까이에 사는 내가 오히려 쉽지 않은 존재였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비행기 표를 사서 보내주고 공항에 픽업을 나가면 그만이지만, 내 경우는 나 스스로 차를 몰고 가거나 주최측이 누구를 보내서 라이드를 해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내 스스로 차를 몰고 갈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규정상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모양이었다.

 

TGA의 행사 책임자 Bob Lieser씨와 이곳 역사학과 학과장 사이에 몇 번의 이메일이 오고 가는 것 같더니 최종적으로 내게 이메일이 왔다. 스틸워터에 있는 OSU 메인 캠퍼스와 OSU 털사 캠퍼스를 왕래하는 셔틀버스[Orange Big Bus]에 자리를 예약해 놓았고, 털사에 도착하는 대로 Mr. Clark Frayser가 픽업을 나갈 것이며, 세미나가 끝나고 돌아오는 날엔 Dr. Ron Bussert가 스틸워터의 집까지 나를 태워다 준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통보해 주는 것 아닌가. 참으로 한 치의 빈 틈도 보여주지 않는 그들이었다. 내가 만약 이런 행사를 주관했을 경우, 참가자가 스스로 차를 몰고 오겠다고 한다면 얼마나 반가웠을까. 규정과 원칙을 철저히 지키려는 이들의 자세가 첫판부터 범상치 않았다.

 

***

 

23일 오후 310. OSU 털사 캠퍼스에 도착하니 클라크 씨가 차를 대놓고 내가 나타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 차로 호텔[Holiday Inn City Center]에 도착하여 등록 후 체크인을 한 것이 330. 방에서 쉬다가 5시 정각에 호텔 2층의 시마론 포이어(Cimarron Foyer)와 테라스 등에서 간단한 음식을 들며 참석자들끼리 환담을 나누다가, 버스를 타고 세미나 장소인 길크리스(Gilcrease) 뮤지엄[미국통신 12 참조]으로 이동했다.

 


TGA에서 만들어 참가자들에게 나누어 준 일정표


세미나 기간동안 패용한 명찰


참가자들의 숙소[Holiday Inn City Center, Tulsa]

 


호텔 방에서 내다 본 털사 다운타운의 모습[가운데 첨탑 건물은 성가족 성당]

 

뮤지엄 강당에서 열린 행사의 내용은 환영사와 기조연설이었는데, 털사 대학교 세계교육 담당 교무 부처장인 셰릴 박사(Dr. Cheryl Matherly), 미 국무성 교육문화국 성인 프로그램 매니저인 레빈(David Levin) , IIE[Institute of International Education, 국제 교육 연구소]의 캠벨(Kristin Campbell), 털사 대학교의 길크리스 박물관 담당 부총장인 듀안 킹 박사(Dr. Duane King) 등의 간단하면서도 인상적인 환영사에 이어 털사 대학교 역사학과 명예교수인 론다 박사(Dr. James Ronda)로부터 미국 서부의 발견[Finding the American West]’이란 주제의 기조연설을 들었다. 그는 미국 서부의 광범한 역사를 소개한 다음 서부를 이해하고 감상하기 위한 핵심 장소로 오세이지(Osage) 카운티를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넓은 의미의 서부, 특히 오클라호마가 갖고 있는 무궁한 현실적 의미와 한계를 설파했고, 우리가 내일 보게 될 Tall Grass Prairie[대초원, 이하 TGP로 약칭]가 갖고 있는 인간적물질적 경관의 의미를 이해해 줄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우연이겠지만, 그는 강연 서두에 오클라호마 주를 소개하면서 "Oklahoma State is taller than South Korea."라고 '콕 집어' 말했는데, 미국의 1개 주보다 작은 나라에서 온 나로서는 '우리의 현실'에 대하여 착잡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작은 나라를 바라보는 그들의 관점이 궁금하기도 했다.]


기조발표를 하는 Dr. James Ronda

 

***

 

730. 우리는 박물관의 비스타 룸(Vista Room)으로 이동,하여 Rick Morton, Nathan Eicher, Isaac Eicher 3인조 스윙밴드(swing band)의 서부 지역 컨트리 뮤직인 블루그라스를 감상하며 첫날의 만찬과 대화를 즐겼다. 그 자리에는 오클라호마 지역의 풀브라이트 동문들, 털사 커뮤니티의 지도자들, TGA 관리 이사들, 기업 회원 등 많은 지역 유지들이 초대되었는데, 그 가운데 이색적인 인사가 바로 인디언 출신의 이 지역 최고 기업가 메슈리 박사[Dr. Dayal T. Meshri]였다. ARC[Advance Research Chemicals, Inc.]CEO인 그는 나를 만나자마자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반복하여 강조했다. 특히 현대자동차를 방문한 일과 부산에서 술을 마시던 추억을 크게 말하며 호탕하게 웃는 그에게 호감을 느낀 것은 그와 나 사이에 어떤 소통의 끈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만찬장에서 연주하고 있는 3인조 밴드


만찬장에서 스리랑카의 학자 Dr. Asanthra, 인디언 출신 CEO Dr. Dayal T. Meshri와 함께


만찬장에서  Dr. Dayal T. Meshri, Mr. Clark Frayser와 함께


만찬장에서 TGA 대표 Ms. Becky 및 Mr. Charles와 함께


만찬장에서 Mr. Clark Frayser와 함께


만찬장에서 Dr. Cheryl Matherly, 털사대학교 한국인 학생 김세연과 함께

 

***

 

9시쯤 만찬이 끝났다. 첫날의 몇 시간을 보내며 나머지 일정도 빡빡하게 진행될 것임을 예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세미나 기간에 무엇을 배워야 할지 뚜렷한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40개국에서 몰려든 70명의 학자들이 영어라는 기호 하나로 훌륭하게 소통하는 모습을 보며 새삼 영어와 미국의 현실적인 힘을 느끼기 시작했고,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모든 일들을 꼼꼼하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미국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며 나와 우리의 쓸데없이 대범함에 일순 부끄러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매 순간 톱니바퀴처럼 철저한 정확성을 중시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대충 해!”라는 상투어야말로 나와 우리의 진로를 막는 커다란 돌덩어리임을 깨닫게 된 것은 세미나 첫날에 얻은, 무엇보다 큰 수확이었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3. 9. 10. 12:44

 


로간 교수 연구실 앞에서

 

 

 

 

미국통신 5[로간 교수와의 만남]

 

 

 

현재 OSU 역사학과 학과장으로 있는 로간[Dr. Michael F. Logan] 교수는 외견상 전형적인 카우보이 스타일의 노신사다. 그러나 직접 만나보고 나서야 황야를 주름잡던 카우보이의 활력보다는 아주 온화면서도 부드럽고 생각이 깊으며 카리스마 넘치는 서구 신사의 기풍을 느끼게 되었다. 무엇보다 맘에 든 것은 그가 구사하는 영어가 매우 느리면서도 정확하다는 것. 그래서 누구보다 대화하기 편하다.

 

미국으로 떠나오기 전 한국에서 만난 미국인 교수 크리스 선생이 말하기를 오클라호마는 미국 중남부의 시골이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릿한 그곳 방언을 쓸 것이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지 않았다. 내가 만난 이곳 사람들[주로 대학에 근무하는 직원들이나 학생들]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말들을 뱉어내는지 그들의 말을 따라가기가 벅찬 나날이다. 그런 사람들만 만나다가 로간 교수를 만나면서 비로소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고, 상대방을 피곤하게 하거나 편안하게 하는 데 말하는 방식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나는 크리스 선생에게 자주 제발 말 좀 천천히 하라고 다그치곤 했는데, 그는 그런 지적을 받을 때만 좀 천천히 하는 척 하다가 잠시 후에 보면 아스팔트길의 오토바이 달리듯 저 혼자 내빼곤 했다. 그런 성향은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에게서 자주 목격할 수 있다. 특히 여학생들이 모여 수다 떠는 현장을 보고 듣노라면 우리말도 영어 못지않게 요란스럽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말이든 영어든 자꾸만 빨라지게 된 것은 아마도 매사 빠름만을 숭상하는 시대의 산물일 것이다. 어쨌든 말하는 방식으로만 따져도 로간 교수는 매력적인 인물임에 틀림없다.

 

작년 겨울 초청장을 보내온 것을 기점으로 로간 교수와의 접촉은 시작되었다. 내가 보내는 이메일마다 따뜻한 답장을 보내주곤 하던 그의 도타운 자세와 마음이 내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특히 초청장에 담긴 호의는 특별한 면이 있었다. 자기소개서와 이력서, 연구계획서만으로 생면부지의 다른 나라 학자에게 그런 호의를 보여주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사 전공인 로간 교수는 특히 근대 미국의 서부, 도회(都會)지역, 환경 분야 등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 관심이 학문적으로 승화되어 <<사막 속의 도시들: 피닉스와 투싼의 환경사>>, <<줄어드는 물길: 산타크루즈강의 환경사>>, <<스프롤 현상 (도시 개발이 근접 미개발 지역으로 확산되는 현상)에 대한 투쟁과 시청: 남서부 지역 도시의 성장에 대한 저항>> 등의 주목할 만한 저서들과 <도시 비평으로서의 탐정소설: 변화하는 장르의 인지(認知)>을 비롯한 많은 논문들이 일관되게 도시개발, 환경파괴 등 현대의 문제적 현상들을 역사적 관점에서 다룬 노작들이다. 말하자면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도시화와 환경보존이란 이율배반적 어젠더를 역사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늘 좌우 이념적 대립를 유일한 화두로 안고 끙끙대는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이 귀감으로 삼아야 할 표본일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첫 만남에서 우리는 우리 사이에 큰 공감영역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나는 OSU 역사학과와 영문학과 교수들을 자주 만남으로써 그들로부터 다양한 비전을 얻고자 한다는 뜻을 강하게 피력했고, 그는 내가 그동안 추구해온 문학 연구 상의 역사적 관점을 알고자 했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이곳에 체류하는 동안 이곳 패컬티 멤버들과의 많은 대화를 통해 시대와 지역, 분야를 초월하는 보편지(普遍知)’의 탐구에 매진해 볼 것이다. 내가 굳이 영문과 아닌 역사학과를 선택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최근 로간 교수와의 만남을 통해 바로 그런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2. 1. 11. 01:51


“한국어가 아무 소리 없이 학문어의 자리에서 사라져가고 있다"-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백규

인터넷을 뒤지다가 우연히 서울 시장의 홈피[원순닷컴]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가슴을 찌르는 말 한 마디를 발견했습니다.

한국어가 아무 소리 없이 학문어의 자리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어문대학장인 유재원 교수가 박 시장에게 보낸 메일의 제목이었습니다. 유 학장의 호소 속에는 언어학자의 프로의식과 함께 말기에 접어든 우리의 병통을 호소하는 지식인의 절규가 들어 있었습니다. 우선 유 학장의 메일 내용을 읽어 본 다음 제 생각을 덧붙이겠습니다.

***

한국어가 아무 소리 없이 학문어의 자리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한국어가 학문어로서의 위치를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해부터 영국의 대학 평가 회사인 QS(Quacquarelli Symonds)와 공동으로 실시하는 “아시아 대학 평가”에는 한국어 논문에 대한 점수가 아예 고려의 대상에서 빠져 있다. QS라는 회사는 2003년부터 영국의 The Times와 세계대학평가를 실시하고 있으며, 올해부터는 The Sunday Times와 US News and World Report를 통해 세계 대학평가를 시행할 예정이라 한다.

조선일보의 대학평가 기준은 ▶연구능력(60%) ▶교육수준(20%) ▶졸업생 평판도(10%) ▶국제화(10%) 등 4개 분야를 점수화해 순위를 매기는 것으로 연구 능력과 국제화가 모두 영어로 논문을 쓰는 것을 전제로 평가되기 때문에 결국 영어 논문 비중이 70%나 반영되게 짜여 있다. 또 평가의 총괄 책임자도 벤 소터라는 영국 사람이 맡고 있다.

QS의 대학 교수 연구 능력 평가는 ‘스코퍼스(
http://www.scopus.com’)라는 네덜란드 회사가 만든 데이터 베이스와 검색 엔진을 이용하여 각 대학의 이름으로 발표된 논문과 논문 당 인용수를 검색하여 교원 수로 나누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한국에서의 스코퍼스 관리는 ‘엘즈비어 코리아’에서 하고 있음.) ‘스코퍼스’사는 세계 약 25,000여 개의 학술지를 국제 저명 학술지로 등록하고 있는데, 이 학술지들은 모두 영어로 쓰여 있다. 이 기준을 따르면 한국어로 쓴 논문은 ‘0’점으로 처리되게 마련이다.

이런 평가 기준에 대한 각 대학의 반응은 상당히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모든 대학은 국제 저명 학술지 게재율을 높이기 위하여 상당한 특혜를 베풀고 있다. 보기로 부산대학에서는 SCI나 SSCI, A&HCI 1 편당 현재 1 억을 지급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으며 경희대는 국제 저명 학술지 논문 1 편당 600 점을 부여한다.

이와 같이 한국어로 논문을 쓰면 ‘0’점을 받고 영어로 논문을 써서 국제 저명 학술지에 실리면 거금의 포상금을 받는 현실에서 한국 대학 교수들이 한국어로 논문을 쓰기를 바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국어로 논문을 쓰는 교수는 ‘패배자[looser]’임을 자인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10년만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우리말 한국어는 이 땅에서 학문어로서의 지위를 영원히 잃고 저급한 2류 언어로 전락할 것이 뻔하다. 이것은 예상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나라 대학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대학 개혁이 성공할 경우, 우리나라의 학문 수준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던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나 인도, 필리핀과 같은 나라의 위치로 전락할 것이다. 이들 나라의 지식인을 비롯한 지배 계층은 자신들의 모국어로는 학문도 철학도 할 수 없어 영어로 모든 고급 문화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비극적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한국의 최대 지성이자 사회의 지도 계층인 대학 교수들을 비롯한 한국 학자들이 더 이상 한국어로 논문을 쓰지 않을 때, 한국어의 미래는 절망적이다. 학문과 문학을 창조하지 못하는 언어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는 지극히 간단한 이치다. ‘청(淸)’을 세운 만주족과 ‘원(元)’을 세게 최대의 제국을 지배했던 몽골족도 한자와 중국어에 문화 주도권을 빼앗기는 바람에 이런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인류 최초의 학문과 사상, 문학을 꽃피웠던 수메르어와 산스크리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사라진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지금의 유럽 문명의 모태인 그리스어와 라틴어는 아직도 서양 여러 나라의 언어에 결정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다.

또 모든 고급문화 생활이 영어로 이루어지게 되면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문맹’에 빠지게 된다. 지금 영어를 문화어로 내세워 한국어를 말살하는 작업이 진행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는 일반 국민들이 최대의 피해자가 될 것이다. 언어 차별은 인종 차별이다. 우리는 오늘날 우리 땅에서 영어를 사랑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 의해 인종 차별을 받고 있다. 오늘날과 같은 한국어 천대 현상이 계속되는 한, ‘영어를 하는 한국인’과 ‘영어를 못하는 한국인’으로 나뉘어 차별을 받게 될 날도 멀지 않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지 않는다면 이런 일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아무도 나서서 저항하지 않으면 말이다.

***

유 학장의 글을 읽어보신 소감들이 어떠신지요? 참, 절박한데도 그동안 여러분이나 저는 전혀 그 절박함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요? ‘말 없는 삶’을 상상해 보셨나요? ‘말을 잃으면 정신을 잃는다’는 격언도 들어서 알고들 계시겠지요? 우리에겐 우리말을 빼앗긴 채 살아본 세월이 있었습니다. 또 우리말을 표기할만한 글자를 갖지 못하고 살아온 긴 세월이 있었지요. 최근 어떤 방송에서 한글을 만들기 위해 고심한 세종대왕의 삶을 스토리로 하는 드라마가 방영된 바 있습니다. 그 드라마의 내용이 사실인지 허구인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적어도 민족사[혹은 민족 정신사]의 방향을 바꾸게 된 세종대왕의 깨달음이나 결단이 어디서 나왔으며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작가 나름의 ‘상상력’이 얼마나 핍진(逼眞)하게 마음에 와 닿는지 우리 모두 공감하지 않았던가요?

독일의 애국자이자 철학자인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를 잘 아실 겁니다. 그의 유명한 글 <독일국민에게 고함>은 언제 읽어도 감동적입니다. ‘독일’ 대신 다른 어느 국가나 민족의 이름을 넣어도 통할만한 보편적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 글 가운데 오늘날의 우리 현실과 관련하여 큰 깨달음을 주는 문제가 바로 ‘언어’의 존재와 의미입니다. 인간의 이성은 언어를 매개로 전개되기 때문에 인간은 국어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 언어는 한 민족의 특성을 형성하는 결정적 요인이라는 것, 즉 한국인[피히테가 말한 ‘독일인’을 제가 한국인으로 바꾸었습니다]은 한국어라는 살아 있는 특수한 언어를 통해서만 무한히 한국적인 발전을 할 수 있다는 것, 살아 있는 한국어를 말하는 한국인은 ‘신적 본질’을 지향하여 드높여질 수 있다는 것[고양(高揚)될 수 있다는 것] 등이 그가 주장한 민족어의 중요성이지요.

우리나라에도 고금을 통해 우리말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선각자들은 많았습니다만. 그 가운데 ‘한문지상주의(漢文至上主義)’ 시대라 할 수 있는 조선시대를 살다 간 최고의 지성 서포 김만중 선생이 그의 글「서포만필(西浦漫筆)」에서 펼친 다음과 같은 주장은 오늘날에도 금과옥조로 삼을만한 선언이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생각[마음]이 입에서 나온 것을 말이라 한다.… 우리나라의 어문(語文)은 우리말을 버리고 다른 나라 말을 배우니, 가령 십분 서로 비슷해 보여도 이는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흉내 내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길거리의 나무꾼이나 물 긷는 아낙네들이 서로 깔깔거리고 화답하는 말들이 비록 비루(鄙陋)하다 해도 그 진위(眞僞)를 논한다면 정말 학식이 많은 사대부들의 이른바 시부(詩賦)라는 것과 비할 수 없을 만큼 값지다.”

한문으로 쓴 글만이 글로 인정을 받던 시절에 한문의 대가 서포선생은 이런 말로 ‘자국어’와 ‘자국 글자’의 가치를 설파했습니다. 그가 한문의 대가였으면서도 ‘우리말이나 글이 한문에 비할 바 없이 귀하다’고 한 것은 그 분 스스로 말과 글이 인간의 정신적 산물임을 깨닫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사실 외국어문을 잘 한다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중요한 강점입니다. 남들과의 경쟁에서 앞설 수 있는 요인이라는 말이지요. 그러나 그것이 본질은 아닙니다. 그것은 도구나 수단에 불과한 것임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자국어로 사색하고 자국어로 논리를 전개해야 하는 인문학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한국 사람이 한국의 인문학 논문을 영어로 써야 한다면, 그것은 한국어로 사유하고 한국어로 쓴 논문[실제 종이 위에 적은 것이든,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이든]을 영어로 번역한 데 불과한 것입니다. 독일어문이 언제 그렇게 훌륭한 학문어가 되고 문학어가 되었나요? 오랜 세월에 걸친 독일 사람들의 끈질긴 노력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는 말로만 ‘민족자주’를 외칩니다. 일본에게 말과 글을 빼앗겼다가 간신히 찾은 때로부터 지금 몇 년이나 지났나요? 그 혹독한 시련에서 벗어난 지 겨우 60년 남짓 지났을 뿐입니다. 우리의 민족 지사들이 일본의 그런 무자비한 폭압에 맞서 얼마나 가열 찬 투쟁을 벌였습니까? 그런데 지금 우리는 우리말과 글을 빼앗은 일제시대의 민족적 비극과 저항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영어의 쓰나미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말과 글을 버리고 있습니다. 학자들이 밤을 밝혀가며 우리말로 사유하고 우리 글로 써 내는 논문들을 평가의 대상에도 넣지 않으려 하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아니, 아예 쓰레기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말로는 민족을 떠들고 세종대왕을 우러러 본다고 하면서 우리의 말과 글을 ‘우습게’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의 것을 버리고 우리가 어디에 가서 우리의 정체성을 주장할 수 있을까요? 국제 학문시장에 나가 우리 인문학의 연구결과를 영어로 발표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연구 활동의 한 부분일 뿐, 전체이거나 본질은 아닙니다. 요즘 들어 왜 우리 사회는 한사코 일의 본말(本末)을 뒤집으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철학 없는 정권이 몰고 온 말기적 증상이라 간단히 치부해 버리기엔 무언가 찜찜하고 불안한 구석도 없지 않습니다. 대학에 몸담고 있는 우리가 지금처럼 중심을 잡지 못할 경우 앞으로 민족사의 비극은 언제든 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근래 들어 엄습해 옴을 느끼는 것은 저 혼자만의 기우(杞憂)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2012. 1. 10.>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