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존법(壓尊法)’ 혼란 시대
조규익
우리 과의 어느 학생.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예쁜 여학생이다.
그가 내게 전화를 걸었다. 학교 전체 졸업식이 끝난 뒤 있게 될 학과 졸업식 관련 연락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참 듣다가 나도 모르게 꾸지람을 내뱉고 말았다. 압존법이 심히 부정확했다. 사실 이 학생만 압존법을 모르는 건 아니고, 또 대학생들만 그런 게 아니다. 일선 관청을 방문할 때도, 집안의 조카나 며느리들과 대화를 할 때도 늘 ‘그놈의 압존법’ 때문에 당황하기 일쑤다. 심지어는 TV 토론을 진행하는 앵커의 말에서도 흐트러진 압존법을 발견하게 된다! 대학에서 평생을 지내온 나는 대학생들과 대화하면서 가장 참기 어려운 문제가 바로 압존법의 혼란이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압존법을 모르거나 무시한다. 아무나 무조건 높이는 게 ‘장땡’인 줄 안다.
‘발언자 말 속의 주체가 발언자보다는 높지만, 듣는 사람보다는 낮을 때, 말 속의 주체를 높이지 않는 어법’이 압존법이다. 전화 속의 그와 나는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학생: 학과 졸업식에 참석하실 수 있으세요?
나: 학과 졸업식에 누구누구 참석하나?
학생: 졸업생, 학생회 집행부 임원들 합쳐 40여분이 참석하세요.
나: 그 밖엔?
학생: 2학년 학생분들 가운데 시간 나시는 분들도 참석하실 거예요. 그런데 아직 방학 중이시라서 몇 분이나 나오실 수 있으실지 알 수 없어요.
나: 혹시 1학년생들은 참석 안하나?
학생: 아, 1학년 분들은 아직 등록을 안 하신 상태이셔서 참석 못하실 거에요.
나: 야, 너 압존법을 배웠니? 못 배웠니? 네가 나한테 얘기하면서 꼬박꼬박 학생들을 높이면 나는 도대체 뭐니? 누구보다도 국문과 학생이라면 정확한 언어를 구사해야 하는데, 지금 네가 하는 말이 압존법에 맞는다고 생각하니?
학생: …
그 학생이 무슨 죄이랴? 잘 가르치지 못한 내가 잘못이지. 학창시절 나는 압존법이란 말 자체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니, 지금 대학생들을 포함하여 젊은 세대는 말하여 무엇 하겠는가? 웅변학원에 보내어 사자후를 토하는 방법만 가르쳤고, 데모의 현장에서 격한 어조로 선동하는 방법만 배웠을 뿐, 제대로 된 대화법을 가르치거나 배운 적이 없다. 선생님들도 모르는 압존법을 어찌 학생들이 알 수 있겠는가.
그래서 도대체 요즘 젊은이들이 어떻게 압존법을 사용하는가를 알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 보았다.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 사례로 게재된 문답은 다음과 같았다.
[질문]
직장 상사를 그보다 높은 윗사람에게 말할 때는 높여 말합니까, 높이지 않습니까?
[답변]
부장에게 과장에 대하여 말할 때 "과장님 외출하셨습니다." 하는 것이 옳은지, "과장님 외출했습니다." 하는 것이 옳은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잘못하면 부장을 화나게 할 수도 있고, 또 과장을 불쾌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평사원들이 이 문제 때문에 고민하다가 "외출하......" 하고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윗사람에 관해서 말할 때는 듣는 사람이 누구이든지 상관하지 말고 '-시-'를 넣어 말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즉 평사원이 과장을 사장에게 말할 때라도 "사장님, 김 과장님 거래처에 가셨습니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
이렇게 윗사람에 대하여 말할 때 '-시-'를 넣어 말하는 것은 회사 안에서만이 아닙니다. 다른 회사 사람에게 말할 때도 상대방의 직급에 관계없이 '-시-'를 넣어 말합니다. 즉 평사원이 자기 회사 과장을 다른 회사 부장에게 말할 때도 "김 과장님 은행에 가셔서 안 계십니다."처럼 말합니다. 그런데 윗사람에 대한 경어법에 '-시-'만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존칭조사 '께서'를 사용해야 하는지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래서 부장에게 과장을 말할 때 "과장님께서 외출하셨습니다."라고 해야 할지 "과장님이 외출하셨습니다."라고 해야 할지 망설여집니다. 그러나 구어체에서 존칭조사 '께서'는 필수적인 요소가 아닙니다. '과장님께서'보다는 '과장님이'이라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부장님, 과장님이 외출하셨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혼란의 근원은 국립국어원에 있었다! 평사원이 과장을 사장에게 말할 때 “사장님, 김 과장은 거래처에 갔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옳다. ‘사장님, 김 과장님 거래처에 가셨습니다.’라는 말과 ‘1학년 분들은 아직 등록을 안 하신 상태이셔서 참석 못하실 거에요.’라는 2학년 여학생의 말은 압존법이 엉망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압존법을 인정하면서 압존법을 솔선하여 깨고 있는 국립국어원의 판단은 매우 사려 깊지 못하다.
영어에는 압존법이 없다. 물론 어조(語調)에서 높이고 낮춤을 분간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말은 매우 단순하다. 그러나 우리는 말 속에 많은 장치들을 두고 있지만, 의미와 감정의 전달에서 매우 합리적이다. “사장님, 김 과장은 거래처에 갔습니다.”는 말을 생각해보자. 대화의 상대인 사장을 높이는 효과, 군더더기 존칭소를 생략함으로써 전달내용의 명료화를 기하는 효과 등이 어느 외국 말보다 우수하지 않은가. 어려서부터 압존법을 제대로만 가르치면 단순명료하면서도 품위 있는 국어생활을 할 수 있는데, 생활언어의 교육을 소홀히 함으로써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 많은 것들을 잃어왔다. '커피 나오셨습니다. 만원 되시겠습니다' 같은 엉뚱한 말, '다른’을 ‘틀린’으로 틀리게 말하기 일쑤인 무감각, 범죄자들에게까지 깍듯한 존칭을 일삼는 TV방송 앵커들의 몰상식이 횡행하는 사례들 모두 생활언어 교육의 부재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제라도 교육현장에서 제대로 된 생활언어를 가르쳐야 한다. 자격 없는 앵커들과 교사들을 재교육시켜야 한다.
이건 ‘틀딱’의 고집스럽고 시대착오적인 투정이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