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3. 9. 8. 07:40

 

 


OSU의 백규 연구실에서. 왼쪽이 수잔, 오른쪽이 다이아나

 

둘쨋날 부재중에  다이아나가 써놓고 간 메모

 

 

학과 비서들과의 만남

 

 

Fulbright Scholar로 선정되었음을 통보 받은 뒤 미국 내의 연구기관을 정하고 그 책임자로부터 초청장을 받는 일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었다. 간간이 들려오는 토네이도 소식이 좀 걸리긴 했으나, 학교의 자매대학들 가운데 하나였을 뿐 아니라 한적한 중남부에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 연구와 힐링을 겸할 수 있다고 본 오클라호마 주립대학은 망설일 필요가 없는 적지(適地)였다.

 

우리의 인문대학에 해당하는 OSU‘College of Arts and Sciences’의 대닐로위츠[Bret Danilowicz] 학장에게 이메일을 보내자 하루 만에 쾌락의 응답이 왔고, 그로부터 일주일 만에 역사학과 학과장 로간[Michael F. Logan] 교수로부터 초청장이 도착했다. 그런데 그 초청장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내용은 선생님께서 이곳에 머무시는 동안 우리는 선생님께 연구실, 비서의 지원, 컴퓨터와 인터넷 서비스 등을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During your stay here, we will be able to provide you with and office space, secretarial support and computer and internet access]라는 요지의 약속이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비서의 지원(secretarial support)’.

 

대학에서 비서는 으레 총장실에나 앉아 있는 묘령의 여직원으로 알고 있던 내 상식으로 비서의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로간 교수의 말은 묘한 감동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30년 가까이 한국에서 교수로 지내면서 제자 대학원생들이 대부분인 조교들로부터 강의와 연구에 도움을 받아오던 나로서는 학과 비서의 존재나 성격에 대하여 무지할 수밖에 없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하바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이란 제목의 책과 드라마로 번역소개된 ‘The Paper Chase’가 한동안 대중의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그 드라마의 주인공 킹스필드(Kingsfield) 교수에게 비서 노팅엄(Mrs. Nottingham)이 있었다. 외부인들 특히 학생들에게 타협을 모르던 고집스런 캐릭터였지만, 교수에겐 매우 충직한 비서였다. 이처럼 명비서 노팅엄[배우는 베티 하포드(Betty Harford)]의 존재 같은 간접자료를 통해 나는 겨우 미국 대학 학과들의 비서 상을 어렴풋이나마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 역사학과의 비서는 수잔[Susan Oliver]과 다이아나[Diana Fury]인데, 한국에 있을 때 나는 주로 수잔과 메일을 주고받았다. 이메일을 보내자마자 간결하면서도 자상하게 답신을 보내주던 그녀 덕분에 나는 준비과정에서 많은 수고를 줄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킹스필드 교수의 노팅엄을 잠시 잊은 채, 한결같이 이쁘고붙임성 좋은 한국의 비서들만 상상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곳으로 떠나오기 전 부친 짐의 배달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끙끙대다가 아무래도 학과 비서를 통해 알아보아야겠다는 계산으로 시차 적응도 안 된 사흘 만에 학과 사무실로 나가 수잔과 다이아나를 만났다. 중년 혹은 중년에 가까운 두 여성이 나를 맞았고, 그 가운데 약간 젊은 수잔이 매우 사무적으로 나를 배정된 연구실로 안내하면서 이런저런 설명을 하는 것 아닌가. 그 때서야 이곳이 미국이고, 미국 대학의 학과들에는 노팅엄만 있을 뿐, 한국의 비서들은 없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내가 미국 우체국으로부터 받은 전화번호와 연락처를 주며 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자 ‘Yes!’하며 나가더니 돌아올 기미가 없었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하는 수 없이 학과 사무실에 가서 다이아나에게 수잔의 행방을 물은 즉 짐을 찾으러 우체국에 나갔다는 것이다.

 

 아뿔싸, 엄청난 무게의 박스 두 개를 연약한 여성이 어찌 다룰 수 있단 말인가. 이곳 스틸워터(Stillwater)의 지리에 어두웠던 나는 다만 내 짐이 어느 우체국에 보관되어 있으며, 어떤 방법으로 그것을 찾아야 하는지만 알고자 했으나, 그녀는 내 말을 듣자마자 해당 우체국으로 달려간 것이었다. 조교에게 우체국 편지 심부름조차 시키길 꺼려하던 나인지라, 그 소식에 안절부절 할 수밖에 없었다. 40 만 원 이상의 탁송료가 들었던 박스 두 개의 중량이 미안함으로 내 마음을 짓눌렀다. 아무리 비서라지만, 첫 대면에 짐꾼 노릇을 명()한 셈이니,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남아 있던 다이아나에게 사실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노라고 구구하게 해명했지만, 그녀의 말은 간단했다. ‘It’s our duty!’란다. 결국 수잔을 만나지 못한 채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고, 하루 뒤 다시 들른 내 연구실에는 태평양을 건너 온 박스 두 개가 오롯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다시 만난 수잔, 박스에 대한 언급은 입도 뻥긋 아니 한 채 우리를 맞아 주는 게 아닌가.

 

그 해프닝을 통해 제 할 일에만 충실한미국인들의 업무 철학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연구실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교수들의 일을 충실하게 거들고 해결해주는 것이 학과 비서들의 업무이고, 그것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자신들의 본업임을 그들은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혹 생색이라도 내면 어쩌나?’하고 걱정하던 내게, 그녀는 사무실의 꽃이 아닌 충직한 전문가로서의 존재의미를 120% 보여주고 말았다. 미국 도착 이후 내 인식의 한계가 심각하게 도전을 받은 첫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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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0. 11. 8. 11:17

시간강사와 지식사회의 그늘


강의·연구로 학문분야 두축 이끌어… 이젠 국가·사회가 처우개선 나서야



자본주의가 극단으로 치닫고 신자유주의가 삶의 원리로 자리 잡을수록 사회의 소외지대가 넓어지고 있는 것은 '비인간화'로 치닫는 우리 사회의 암울한 현실이다. 모든 분야에서 '만능의 열쇠'라도 되는 듯 경쟁의 원칙을 내세우고 있지만, 경쟁에서 도태되는 다수 구성원들을 철저히 외면하는 비정함 또한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다. 더구나 경쟁의 필수 전제조건이라 할 '공정함'의 결여에 대하여 애써 눈 감고 있는 의식의 원시성은 언필칭 '선진국 진입'을 외치는 우리 사회의 '아킬레스 건'일 수밖에 없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에도 최근에야 공론화되기 시작한 대학 시간강사 문제는 소외와 관련된 우리 시대의 약점들이 골고루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적 위기의 뇌관이라 할 수 있다. 매주 정해진 시간만 강의하고 일정액수의 시간당 강의료를 받는, 전임 교수 아닌 지식인들이 바로 시간강사다. 말하자면 그들은 노동 현장의 일용직 근로자들처럼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존재들이다. 일용직 근로자들이 새벽의 노동시장에서 선택되지 않으면 그날 하루 일당을 벌 수 없듯이, 강사들은 학기 초에 대학 혹은 학과로부터 선택되지 않으면 그 학기의 수입은 없다. 하루와 한 학기의 차이가 있을 뿐 일용직 근로자와 강사는 본질적으로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셈이다.

 

일용직 근로자들의 삶을 국가가 책임질 수 없듯이 학기 단위로 살림을 꾸려나갈 강사들의 삶 또한 국가가 책임질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형식 논리로 친다면야 그런 말도 나올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상 자체가 정책의 오류로부터 비롯되었거나, 적절한 방안만 강구하면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라면 국가나 사회가 책임을 지는 것이 옳다. 대학이나 지식사회 혹은 학자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대략적인 방향은 국가의 학문정책에 포함되어야 한다. 만약 우리 정부가 그런 학문정책을 세우기 위해 선진국 대학들의 제도를 벤치마킹해 왔다면 그런 나라들이 강사들에 대하여 어떤 처우를 하고 있는지 정도는 파악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강사를 포함한 국가의 인재들을 세밀히 관리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매우 소망스러운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학문진작'이란 명분으로 쏟아부은 천문학적 재원은 제대로 효과를 발휘했는가, 그런 정책들은 과연 그렇게 다급했으며 합목적적이었는지 등을 돌이켜 본다면, 그런 일들이 '강사들의 현안해결'보다 우선적인 것이었는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학문정책의 중요도나 시급성에서 선후관계를 먼저 고려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상처가 곪아 터져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문제점을 지적하는 지금에서야 겨우 대책을 내놓는 관련부서의 무심함이 답답할 뿐이다. 현실로 닥친 생활고와 암담한 미래 때문에 목숨을 끊는 강사들이 속출하고, 3년이 넘도록 천막 속에서 농성하는 강사를 보고 나서야 이 땅의 교육 당국은 겨우 움직이는 시늉 정도를 보여 주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대책 또한 '격화소양(隔靴搔양)'의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으니, 더욱 답답하다.

 

강사는 누구인가. 대학, 대학원을 거치면서 오랜 기간 학문을 연마해온 해당 분야의 누구 못지않은 전문가들이면서, 지금까지 그들은 전문성이나 실력보다는 '시간강사'라는 '품위 없는 용어'로 통칭되기 일쑤였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대부분의 전임교수들이 강사를 거친 사람들이며, 현재의 강사들은 전임교수로 대학에 입성할 가능성이 있는 지식인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현재 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쉽게 외면해 왔는지도 모른다. '선배들이 그래 왔듯이 조금만 고생하면 전임의 대열에 합류할 것 아닌가'라는 속 편한 계산으로 우리 사회는 그들의 요구를 철저히 뒷전으로 미루어 온 것인지도 모른다. 40%에 육박하는 대학 강의를 이들이 맡고 있으며, 모든 학회들에 집행부 혹은 회원으로 참여하여 학회를 굴러가게 하는 엔진 역할을 이들이 맡고 있다. 강의와 연구라는 한국 지식사회의 두 축을 감당하고 있는 이들에게 기약도 없는 '교수사회에 진입할 날'을 무작정 기다리며 참고 있으라는 말만 건넬 수는 없지 않은가. 모두가 힘을 합쳐 더 늦기 전에 이들부터 구해야 한다.

조규익(숭실대 인문대 학장/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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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8. 1. 3. 17:44
학기 말 성적 평가를 마치고


                                                                                                                    조규익
지난 여름의 일. 국가 기관이 발주하는 대형 프로젝트의 2차 심사(평가)를 받기 위해 풍광 좋은 어느 지방엘 다녀왔다. 목에 힘이 들어간 평가위원들이 평가 받기 위해 ‘잔뜩 숙이고 들어온’ 우리를 맞았다. 그들의 물음들 마디마디 짜증이 배어 있었지만, 우리는 그들이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점에 짜증이 났었다. 그러나 결코 내색할 수는 없었다. 칼자루를 쥔 그들이 무슨 해코지(?)를 할지 몰라서였다.

결과는 우려했던 대로 ‘꽝’이었지만, 그들이 나중에 보내온 1쪽짜리 심사평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몇 가지 지적들 가운데 단 한 가지만 그런대로 수긍할 수 있었을 뿐, 나머지는 연구 제안서의 기본 내용이나 프로젝트의 취지마저 오독(誤讀)한 결과로 나온 것들이었다.

우리 팀의 어떤 친구는 “프로젝트 신청을 아예 못한 대학이나 냈다가 떨어진 대학의 교수들이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었을 것이니, 말하자면 이 분야의 열등생들이 우등생의 보고서를 평가한 셈 아니냐?” 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우리끼리만 분통을 터뜨릴 뿐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한 것은 우리에겐 앞으로도 ‘먹고 살아야 할 날들’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그 국가기관을 자극해서는 앞으로 ‘국물도 없을 것’ 아닌가.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남들이 가하는 ‘평가’의 세례 속에 살아왔고, 나 또한 그 평가의 주체가 되어 남들을 괴롭혀 온 게 사실이다. ‘삶 자체가 평가’라 할 만큼 모든 것이 평가와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내 모습은 그런 평가들을 거쳐 온 결과라고 할 수 있고, 지금도 끊임없는 평가 속에서 살고 있으니, 앞으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남아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학교나 사회에만 평가가 있는 게 아니다. 가정도 무서운 평가의 현장이다. 어제까지 모범 남편으로 칭송되다가 어느 한 순간 마나님의 눈으로부터 벗어나면 ‘몹쓸 인간’으로 추락된다. 어제까지 존경받는 아버지로 칭송되다가 무슨 문제로 자식들과 언쟁이라도 벌이게 되면 그 순간 여지없이 낙제생으로 급전직하하기 마련이다. 직장에서 지금까지 잘 나가다가 뜻 하지 않게 명퇴라도 당할라치면,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처치 곤란의 애물단지로 전락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이처럼 크게는 대통령 선거에서 작게는 학급의 일일 쪽지시험까지 시험과 평가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일희일비하며 인생을 불태워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평가자는 언제나 잔인하고 피평가자는 대부분 억울하다. 그러나 한 번 평가자라고 영원한 평가자일 수 없고 한 번 피평가자라고 영원한 피평가자는 아닐 것이니, 서로 간에 잔혹한(?) 새디스트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모두의 운명인 셈이다.

20년 넘게 교수생활을 해오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 내겐 연구도, 강의도 아니다. 바로 학생들에 대한 ‘평가’다. 대학에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있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성적을 매겨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학사시스템’에 올리게 된다. 교수에 따라 성적을 매기는 기준은 다양하지만, 내 경우 대개 ‘중간고사 40%+기말고사 40%+과제 10%+출석 10%’의 기준을 적용한다.
평가 척도를 좀 더 다양하게 하고 싶지만, 생각만큼 관리가 쉽지 않다. 학기 초에는 ‘잘 가르치고 엄정하게 평가하겠다’는 초심으로 날이 시퍼렇다. 그러나 날이 가면서 학생들의 면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출석 잘 하고 성실하나 학과공부에는 그다지 두각을 보여주지 못하는 그룹(1), 가끔 결석·지각은 하지만 반짝이는 모습을 보이는 그룹(2), 성실하면서 공부도 잘 하는 그룹(3), 극소수의 이도저도 아닌 그룹(4)으로 나뉜다. 요즈음에는 졸업반 학생들도 아래 학년들의 강의에 많이 들어 와 후배들과 경쟁을 하는데, 대개 교수에게 졸업반으로서의 절박감을 각인시킴으로써 후배들보다 우월한 위치를 점하려는 의도도 없지 않은 듯하다.^^
학점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대부분 성실하려고 노력하기 마련이어서 4에 속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편이다. 따라서 1, 2가 대부분이고, 3은 소수다. 그런데 문제는 1, 2에 속하는 친구들도 자신들이 틀림없는 3이라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스스로 열심히들 하기도 하지만 이제 마지막 벼랑에 서 있음을 시위하는 4학년들까지 고려에 넣다보면 채점의 곤혹스러움이 여간 아니다. 생각 같아선 모두에게 A를 주고 싶다. 그러나 눈치가 빤한 학교당국이 그걸 모를까. 아예 상대평가로 바꾸어 몇 %이상은 A나 B를 줄 수도 없다. 제한된 %를 초과하면 아예 성적 입력을 할 수 없도록 막아 놓은 것이다.
우리 대학시절만 해도 ‘교수시여, 제발 펑크만 내지 말아 주소서!’ 기도하고 다녔는데, 요즘 학생들은 B를 주면 무척 서운해 하고 C를 주면 아예 원수처럼 대한다.^^ 교수들에게 엄정한 상대평가를 강요하는 학교 당국도 C학점 받은 학생들이 졸업 전에 ‘재수강’을 하여 A나 B를 받을 수 있도록 탈출구를 열어 주고 있으니, 참으로 ‘모순된 현실’이다. ‘학점 인플레’에 대한 대응에서 학교 당국과 교수들 간의 엇박자가 이렇게 심할 수 없다.

간난신고(艱難辛苦) 끝에 성적처리가 끝나면 몇몇 학생들로부터 ‘눈물의 하소연’이 답지한다. 단 1점 때문에 장학금이 날아갔다느니, 다음 학기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용돈을 삭감 당하게 되었다느니, 기업체에 인턴으로 선발되었는데 정식 채용될 기회가 사라졌다느니, 대학원에 진학하려는데 교수님의 학점 때문에 어렵게 되었다느니, 한 번도 지각·결석 없이 그토록 열심히 했는데 설마 이런 학점을 받을지 몰랐다느니 등등  과거 몇년 간 내게 전달된 사연들을 요약하면, 단순하지만 절절하다. 이럴 땐 어딘가로 숨고 싶다.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게 이리도 가슴 아픈 일인지 매 학기 경험하면서도 어쩔 수가 없다. 차라리 내가 피평가자의 입장에 설지언정, 다시는 남을 평가하는 자리에 앉고 싶지 않은 심정이기도 하다.

***

오늘도 주인을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번호가 핸드폰에 찍혀있다. 학점 때문에 억울한 어느 학생의 전화였을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이여! 억울해하지 말라. 낮은 학점은 오히려 그대를 한 단계 성숙시킬 수 있는 ‘쓴 약’이 될 수도 있다. 먼 훗날 그 학점 덕분에 좀 더 성숙한 인간으로 남을 평가할 수 있게 될 것이니. 대학의 학점은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의미가 있는 법이다. 모두가 1등일 수는 없다. 그리고 대학의 학점 1등이 인생의 1등인 것도 아니다. ‘내가 1등이 안 될 수도 있다’는 깨달음과 분발이 우리의 미래를 좀 더 발전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진리 아닌 진리를 깨달아줄 지어다, 사랑하는 학생들이여!
   

                                                   2008. 1. 3.  


연구실에서
고민 많은 백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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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7. 5. 7. 13:08
 

교수들은 담론 생산의 주체로 거듭 나야 한다


                                                                                             조규익

제1회 숭실 인문학 포럼의 성공을 보면서 대학의 본질과 가능성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고자 한다. 진부한 말이지만, 대학은 교육과 연구의 중심이고 그 핵심에 교수들이 있다.


해당 분야의 체계적인 지식과 창조적인 능력을 지녀야 전문가가 될 수 있다면, 대부분의 교수들은 1차적으로 전공분야의 전문가들이다. 그러나 교수들이 전공의 협소한 분야에 갇혀 좀 더 넓은 세계나 현실을 보지 못할 때, 그 지식이나 창조력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상아탑 속의 존재만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시대는 더 이상 아니다. 전공분야에 대한 탐구와 함께 세상과의 소통이 필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교수들이 고도의 윤리의식과 해박한 전문가적 식견을 통해 공동체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데 일조하길 바란다. 그러나 현재의 교수집단은 다원화 된 현실 속에서 왜소한 지식인 군상으로 전락되어 가고 있다. 초라한 지식상(知識商)들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눈초리는 차갑다. 그들로부터 아무런 비전도, 철학도, 노력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번 교수집단에 들어가고 나면 기득권을 지키기에 급급한 모습이나 보여주기 일쑤인 점은 더욱 한심한 노릇이다.


그러나 교수집단도 기회와 동기만 주어진다면, 사회의 정론(正論)을 생산하고 주도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이번 포럼은 매우 유익한 기회였다. 최근 기독교에 대한 김용옥씨의 비판적 주장에 많은 문제들이 내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반론이나 비판이 없었던 것은 우리 지식사회에 대한 사망선고나 다름  없는 일이었다. 기라성 같은 기독교 대학들이 포진하고 있음에도 어느 대학 하나 나서서 그의 문제적 논리에 반박을 가하지 못하는 현실을 목도하며 우리는 미래에 대한 일종의 ‘공포’를 경험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숭실 인문학 포럼을 통해 김용옥 논리의 시시비비를 가려 줌으로써 학자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 올바른 판단의 자료를 제공해 준 것은 당사자 김회권 교수를 포함 숭실의 인문학자들이 향후 적극적인 담론 생산의 주체로 나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쾌거였다.


이제부터라도 대학교수들은 전공책의 행간에 현미경이나 들이대는 ‘골방의 샌님’ 신세를 청산하고 사회와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가치 있는 담론을 생산해야 한다. 그것만이 자신들의 전공을 살리고 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며 대학을 살리는 길이다.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