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산길을 달리며 생각난 기쁨이 아버지
조규익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고, 그 가운데 좀더 중요한 것은 ‘좋은 시작’이다. 물론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서양 속담을 맹신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시작이 안 좋은데 끝이 좋기란 쉽지 않다.
여행도 마찬가지. 여행의 시작이 좋으려면 치밀한 계획과 풍부한 정보, 그리고 실력 있는 안내자가 필요하다. 말하자면 ‘첫발부터 길을 제대로, 잘 잡아들어야한다’는 것이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란 우리 속담도 여행에서 그 모티프를 잡았음에 틀림없다.
출발점이나 길이 갈라지는 곳을 생각해보자. 출발점에서는 동·서·남·북이 공존한다. 갈림길도 마찬가지. 그래서 처음엔 ‘길을 좀 잘못 잡아들기로서니 무슨 큰 문제이랴?’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들의 차이란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벌어지기 시작한다.
유럽의 도로체계 가운데 ‘라운드어바웃round-about’이란 게 있다. 여러 갈래의 갈림길이 필요할 경우 환상(環狀)의 도로를 돌면서 표시된 출구를 찾아 나가도록 설계된 구조. 지름이 작은 것은 4-5m, 크다고 해야 10여m에 불과한 원형의 도로들이다. 출발점인 여기선 모든 방향이 손바닥 안에 있는 셈. 그러나 방향을 잡기에 따라선 ‘지척이 천리’가 된다. 방향을 모를 경우 라운드어바웃을 여러 바퀴 돌기도 한다. 돌면서 올바른 길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길을 잘못 들 경우 먼 길을 갔다가 되돌아오기도 하는 등 고생이 만만치 않다. 만일 좋은 정보와 길잡이만 있었다면 그런 고생을 할 필요가 없었으리라.
***
우리 여행의 시작은 파리. 파리에서도 유명한 ‘기쁨이네 집’(하단의 연락처 참조)이었다. 유럽, 특히 파리에 딱히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우리가 기댈 곳이라고는 아무데도 없었다. 광활한 유럽 땅을 공략(?)하겠다고 나섰으면서도 길잡이 하나 변변히 없는 셈이었다. 탁상의 정보가 아무리 그득해도 현장과 연결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일. 아내가 인터넷 등을 통해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파리의 기쁨이네를 알아냈다. 건축학을 공부하는 기쁨이 아버지가 자동차 여행에 전문가 수준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결정적 요건이었다.
파리는 우리 여행의 첫걸음인 셈. 빠리 공략이 실패할 경우 그 영향은 여행기간 내내 우리를 괴롭힐지도 몰랐다. 그래서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파리에 가서 기쁨이네를 찾았다.
기쁨이 아버지의 실력은 과연 듣던 대로였다. 시원시원하고 해박한 실력의 ‘나이스 굿 맨’이었다. 파리의 답사 대상을 일정별로 나눈 것도 그의 제안이었다. 그 뿐인가. 유럽 여행길에서의 주의사항, 독도법(讀圖法), 심지어 숙소 찾는 법에 이르기까지 세밀한 교육을 받았다. 빠리 시가지로부터 돌아와 저녁상을 물리면 그 때부터 시작되는 기쁨이 아버지의 교육. 건축학 전문가답게 각종 건물양식에 대한 설명도 자상했다.
첫판부터 이상한 곳, 예컨대 이번 폭동의 발원지인 생드니 같은 곳으로 들어가 헤맸다거나 심지어 ‘강도까지 당했다’는 일부 한국 여행자들의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기쁨이네를 선택한 우리가 얼마나 안전하고 경제적이며 유익한 여행의 첫 단추를 끼었는가를 절감하곤 한다.
***
지금 우리는 폴란드의 눈 내린 산길을 달려 슬로바키아로 넘어간다. 부다페스트를 향해. 설경이 환상적인 산길을 달리며 새삼 기쁨이 아버지를 생각한 이유가 있다. 운전자와 내비게이터navigator의 마음이 ‘절대로’ 맞아야 한다는 것, 운전자는 운전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어느 경우라도 내비게이터는 지도를 철저히 연구하여 노정을 꿰고 있어야 하며, 설사 틀렸다고 생각해도 운전자는 내비게이터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것, 어느 방향으로 달리다가 표지판 둘을 지나도록 가고자 하는 도시명이 나오지 않을 경우에는 방향이 잘못된 것이니 차를 다시 원점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 유럽에서는 눈이 아무리 많이 와도 도로만은 문제없으니 당황하지 말 것 등등.
***
그가 가르쳐 준 것이 어찌 이 뿐이랴. 그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려 했고, 우리 역시 그 가운데 많은 것들을 귀에 담아두었다. 지금 우리가 눈 내린 산간지방을 지나며 콧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도 출발점에서 좋은 길잡이를 만난 덕분이다. 새삼 폴란드 국경 주변의 아름다운 설경과 기쁨이 아버지의 어글어글한 표정이 오버랩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2005. 11. 19. 쟈코펜의 산악지대를 지나며
**기쁨이네 연락처
전화번호 33-01-49-56-11-72, 33-06-64-51-66-68(박세혁)
**이 글의 출처는 백규서옥(http://kicho.pe.kr) 참조
조규익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고, 그 가운데 좀더 중요한 것은 ‘좋은 시작’이다. 물론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서양 속담을 맹신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시작이 안 좋은데 끝이 좋기란 쉽지 않다.
여행도 마찬가지. 여행의 시작이 좋으려면 치밀한 계획과 풍부한 정보, 그리고 실력 있는 안내자가 필요하다. 말하자면 ‘첫발부터 길을 제대로, 잘 잡아들어야한다’는 것이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란 우리 속담도 여행에서 그 모티프를 잡았음에 틀림없다.
출발점이나 길이 갈라지는 곳을 생각해보자. 출발점에서는 동·서·남·북이 공존한다. 갈림길도 마찬가지. 그래서 처음엔 ‘길을 좀 잘못 잡아들기로서니 무슨 큰 문제이랴?’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들의 차이란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벌어지기 시작한다.
유럽의 도로체계 가운데 ‘라운드어바웃round-about’이란 게 있다. 여러 갈래의 갈림길이 필요할 경우 환상(環狀)의 도로를 돌면서 표시된 출구를 찾아 나가도록 설계된 구조. 지름이 작은 것은 4-5m, 크다고 해야 10여m에 불과한 원형의 도로들이다. 출발점인 여기선 모든 방향이 손바닥 안에 있는 셈. 그러나 방향을 잡기에 따라선 ‘지척이 천리’가 된다. 방향을 모를 경우 라운드어바웃을 여러 바퀴 돌기도 한다. 돌면서 올바른 길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길을 잘못 들 경우 먼 길을 갔다가 되돌아오기도 하는 등 고생이 만만치 않다. 만일 좋은 정보와 길잡이만 있었다면 그런 고생을 할 필요가 없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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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여행의 시작은 파리. 파리에서도 유명한 ‘기쁨이네 집’(하단의 연락처 참조)이었다. 유럽, 특히 파리에 딱히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우리가 기댈 곳이라고는 아무데도 없었다. 광활한 유럽 땅을 공략(?)하겠다고 나섰으면서도 길잡이 하나 변변히 없는 셈이었다. 탁상의 정보가 아무리 그득해도 현장과 연결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일. 아내가 인터넷 등을 통해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파리의 기쁨이네를 알아냈다. 건축학을 공부하는 기쁨이 아버지가 자동차 여행에 전문가 수준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결정적 요건이었다.
파리는 우리 여행의 첫걸음인 셈. 빠리 공략이 실패할 경우 그 영향은 여행기간 내내 우리를 괴롭힐지도 몰랐다. 그래서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파리에 가서 기쁨이네를 찾았다.
기쁨이 아버지의 실력은 과연 듣던 대로였다. 시원시원하고 해박한 실력의 ‘나이스 굿 맨’이었다. 파리의 답사 대상을 일정별로 나눈 것도 그의 제안이었다. 그 뿐인가. 유럽 여행길에서의 주의사항, 독도법(讀圖法), 심지어 숙소 찾는 법에 이르기까지 세밀한 교육을 받았다. 빠리 시가지로부터 돌아와 저녁상을 물리면 그 때부터 시작되는 기쁨이 아버지의 교육. 건축학 전문가답게 각종 건물양식에 대한 설명도 자상했다.
첫판부터 이상한 곳, 예컨대 이번 폭동의 발원지인 생드니 같은 곳으로 들어가 헤맸다거나 심지어 ‘강도까지 당했다’는 일부 한국 여행자들의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기쁨이네를 선택한 우리가 얼마나 안전하고 경제적이며 유익한 여행의 첫 단추를 끼었는가를 절감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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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폴란드의 눈 내린 산길을 달려 슬로바키아로 넘어간다. 부다페스트를 향해. 설경이 환상적인 산길을 달리며 새삼 기쁨이 아버지를 생각한 이유가 있다. 운전자와 내비게이터navigator의 마음이 ‘절대로’ 맞아야 한다는 것, 운전자는 운전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어느 경우라도 내비게이터는 지도를 철저히 연구하여 노정을 꿰고 있어야 하며, 설사 틀렸다고 생각해도 운전자는 내비게이터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것, 어느 방향으로 달리다가 표지판 둘을 지나도록 가고자 하는 도시명이 나오지 않을 경우에는 방향이 잘못된 것이니 차를 다시 원점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 유럽에서는 눈이 아무리 많이 와도 도로만은 문제없으니 당황하지 말 것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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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가르쳐 준 것이 어찌 이 뿐이랴. 그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려 했고, 우리 역시 그 가운데 많은 것들을 귀에 담아두었다. 지금 우리가 눈 내린 산간지방을 지나며 콧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도 출발점에서 좋은 길잡이를 만난 덕분이다. 새삼 폴란드 국경 주변의 아름다운 설경과 기쁨이 아버지의 어글어글한 표정이 오버랩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2005. 11. 19. 쟈코펜의 산악지대를 지나며
**기쁨이네 연락처
전화번호 33-01-49-56-11-72, 33-06-64-51-66-68(박세혁)
**이 글의 출처는 백규서옥(http://kicho.pe.kr)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