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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3. 12. 9. 01:09

 

 

도올 선생과 홍준표 지사를 보며

-신문기사를 읽고-

 

 

 

 

 
          도올 선생이 홍준표 지사에게 증정했다는 책[사진은 중앙일보 2013. 12. 7.]

 

 

10 몇 년 전의 일이다.

평소의 습관대로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가까이에 모시고 있던 선배 교수 한 분이 평론가 모씨에게 증정한 책이 경매 물건으로 나온 것이었다. “○○○ 교수님께, △△△ 삼가 드림이란 헌사가 대문짝만한 사진으로 만천하에 공개되어 있었다. 저자가 유명인사에게 증정한 책일 경우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는 것이 경매업계의 상식이다. 그 책을 내놓은 사람은 그런 관습을 이용한 것일 테지만, 당시의 나로서는 충격이었다. 실망으로 일그러지실 선배 교수의 표정이 떠올라 몹시 불안했다. 그래서 잽싸게 비교적 높은 가격으로 내가 찜했고, 결국 그 책은 지금도 내 서재 속에서 편안히 잠들어 있다. 인터넷 경매에 참여하는 경우 언제나 혹시 그런 헌사가 붙은 책이 없는가를 먼저 보게 된 것도 그 일을 경험한 뒤부터다.

 

 

어제 인터넷을 열었다가 우연히 중앙일보에 접속하게 되었는데, 흥미로운 기사 하나가 떠 있었다. 읽어본즉 도올 선생이 홍준표 지사에게 증정한 책이 고서방에 나왔고, 누군가 그것을 구입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책을 구입했으면 조용히 가지고 있을 것이지, 만천하에 공개한 그가 일단은 서운했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헌사까지 사진으로 대문짝만하게 공개되었으니, 분명 도올 선생은 발분(發憤)했을 것이고, 홍 지사는 적지 않게 당황했을 것이다. 기사 말미에 홍 지사는 국회의원 등 공직들을 그만 둘 때 사무실을 정리하던 사람들이 그렇게 했다는 식으로 해명을 했지만, 궁색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인터넷이 하도 발달하여 카메라에 찍히기만 하면 순식간에 지구를 몇 바퀴나 도는 세상이다. 지금 내가 미국 오클라호마의 오지에 틀어박혀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조국에 있는 친구들의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세상이다. 그렇게 밝혀진 증거물 앞에서 무슨 둔사(遁辭)’가 필요할까.

 

 

그간 고서에 관심을 갖고 종종 온라인, 오프라인 경매에 참여해왔다. 심심치 않게 확인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생전에 책들을 열심히 사 모아도 세상을 뜬 뒤 그 책들의 가치를 알 리 없는 자식들이 그것들을 쓰레기 취급하여 고물상에 넘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오프라인 경매에서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어떤 학자의 책을 여러 권 입수한 적이 있다. 어째서 이런 책들이 경매시장에 나올 수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책 주인 죽은 뒤 두 달 만에 그의 소장서적들 모두가 시중에 깔렸다는 대답이었다. 무식한 자식 놈들의 소행일 것이다.

 

 

그간 저서들을 몇 권 내놓은 입장으로 고서 경매에 참여하면서 혹시 내 책을 경매장에서 만날까 불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제발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최근 들면서 내 책도 경매 사이트에 뜨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발견한다. 출판사에서 재고도서를 고서점에 돌렸을 수도 있겠으나, 독자들이나 학생들이 내놓은 것들이 대부분이리라. 그 책들이 그저 내가 누구에겐가 정성스럽게 헌사를 써서증정한 것들만 아니길 기원할 뿐, 이제 그런 것들을 거둬들일 방법도 의지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

 

 

얼마 전의 일이다. 가까이 지내는 다른 학과의 모 교수가 내게 책 한 권을 보내왔다. 봉투를 열어 꺼내 본 즉 그 몇 년 전 그에게 증정한 내 책이었다. 서운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여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교수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연구실을 정리하려는데 몇 년 전에 받은 당신의 책이 나왔다. 보관할 여력도 없고 차마 쓰레기통에 버릴 수는 없어서 다시 되돌려 드린다.’는 요지의 말이었다. 일단은 야속했지만, 곰곰 생각하니 고맙고 솔직한 말이었다. 만약 자신의 전공과 무관하다하여 쓰레기통에 버렸다면, 그것이 어느 경로로 중고서점에 들어갔다면, 그러다가 어느 기회에 경매장에 나왔다가 내 눈에 띄게 되었다면... 아마도 나는 그와 대판 싸웠거나 심하면 원수가 될 수도 있었겠지? 그런데, 그는 내 분신을 그렇게 처리하지 않고 내게 돌림으로써, 일어날 수도 있었던 참화(?)를 미연에 막는 지혜를 발휘했던 것이다. 일시적인 서운함으로 더 큰 비극을 막은 셈이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사실, 이사하다 보면 가장 큰 문제가 책이다. 이삿짐센터에서도 책 짐을 반기지 않는다. 부피에 비해 무게가 너무 나가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거문화가 아파트로 획일화 되면서 책을 보관할 공간이 없다. 그래서 이사철만 되면 아파트 쓰레기장이 버려진 책들로 넘쳐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책을 내도 전공자 이외에는 무턱대고 증정하지 않는다. 책을 주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경우 먼저 그에게 묻는다. 내가 이러이러한 책을 냈는데, 한 권 증정해도 되겠냐고. 대부분은 기꺼이 받겠다고 대답하지만, 과연 마음속도 그러한지는 알 수가 없다. 그래도 무턱대고 증정했다가 뒷날 고서 경매장에서 만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

 

 

도올 선생이 홍준표 지사에게 책을 건넨 것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것이다. 도올 선생이 보기에 홍 지사가 정치인으로서 괜찮은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동학사상의 결정체인 동경대전을 해석한 자신의 책을 건넨 것 아닐까. 백성들 편에서 정치를 해달라는 기원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실수이었든 자발적인 행동이었든 홍 지사는 그 책을 버렸다. 그가 아마 한 줄이라도 읽어봤다면 그 책을 버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 여당이든 야당이든 대한민국을 이끈다고 자부하는 인물들 가운데 책을 가까이 한다거나 책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 선거철에 매문가들을 동원, 자신의 일생을 미끈하게 윤색하여 선거용 책자를 내는 인사들은 여의도에 깔려 있지만, 제대로 책을 접하거나 쓰는 인사들은 아예 없는 것으로 안다. 사실 그런 인사들에게 힘 들여 쓴 저서를 증정하는 행위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동안 나는 홍 지사를 정치권에서 그 중 나은 인물들 가운데 하나로 생각해 왔고, 이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믿음을 쉽게 버리지는 않을 생각이다. 이번 일은 아마도 그의 말대로 측근들의 실수였을 것이다.

 

 

그러니, 도올 선생께서는 너무 서운해 하지 마시고, 가가대소(呵呵大笑)하시라. 그리고 그 가가대소에 난해한 주석을 달지 마시라. 홍 지사께서도 더 이상 둔사를 내 놓지 마시고, 화끈한 전화 한 통화로 도올 선생의 마음을 풀어 주시라. “우리 자갈치에서 만나 산성막걸리로 회포 한 번 풉시데이!”하고 말이다.

 

 

미국 스틸워터(Stillwater)에서

백규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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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성원

    개인적으로 안하무인 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는 홍준표와 조교수가 미국 땅에 있다는 생각을 동시에 하다보니,
    문득
    "溫古而知新"과 "Thr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and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on this continent."란 글귀가 생각나는구먼.

    2013.12.09 14:33 [ ADDR : EDIT/ DEL : REPLY ]
  2. 백규

    성원, 재미있는 생각을 했군. 홍준표 지사가 좀 그런 면이 있긴 하지. 그런데 그나마 그 정도의 배짱과 고집을 갖고 있는 정치인도 드물 것 같군. 일부에서는 그걸 소신이라고 하는 모양이지만. 가끔 고집과 소신이 혼동되기도 해. 진주의료원 처리하는 모습을 보니 아무나 그렇게 덤벼들 수 있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하더군. 하도 험한 시대라서 제 목소리 내며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 이번 일은 아무래도 홍지사의 입장이 궁하게 되었어. 그래도 아마 멋지게 돌파하리라 보네. 가끔 들어와서 좋은 말 남겨주기 바라네. 추위에 건강 조심하게.

    2013.12.09 21:15 [ ADDR : EDIT/ DEL : REPLY ]
  3. 가가

    도올 선생이 나꼼수에 출연했을 때 "여기 홍준표도 왔었다던데, 그래서 오고 싶은 마음이 뚝 떨어졌었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동경대전 선물한 건 옛날 일이고, 그 이후 홍준표의 행태를 보면서 탐탁치 않게 생각했던 게 분명합니다. 아마 이번 소식을 접하고서도 도올 선생은 가가대소는커녕 냉소조차도 짓지 않았을 겁니다.

    2013.12.09 23:39 [ ADDR : EDIT/ DEL : REPLY ]
  4. 백규

    어디 '흠 없는 인간'이 있겠어요? 그나마 사람들로부터 '그만 하면 괜찮다'고 평가받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지요. 두 분 모두 우리 사회의 '있을 자리에 있는 분들'이라는 게 제 생각인데요. 사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듯, 도올 선생도 홍 지사도 완벽한 인품을 갖춘 분들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한 두 가지라도 남보다 앞서 갈 수 있는 능력을 갖고 태어나셨다면, 그건 그 분들의 행운이고 복이지요. 가가 님은 도올 선생이 홍 지사에 대하여 '냉소조차 짓지 않을 것'이라 단언하셨는데, 만약 그렇다면 도올 선생의 인품이야말로 이백(李白)이 말한 '소이부답심자한[笑而不答心自閑, 빙그레 웃을 뿐 대답을 하지 않으니 마음이 저절로 한가롭다]'의 경지와는 아주 동떨어진 수준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제 생각엔 그렇지 않으리라 봅니다. 가가 님의 말씀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책 한 권'을 두고 만인이 구경하는 링 위에서 맞붙게 된 두 분의 '체급'이나 파이팅의 진행상황, 혹은 그 결과를 잠시 지켜 보기로 하지요.

    2013.12.10 00:33 [ ADDR : EDIT/ DEL : REPLY ]
  5. 나그네

    자신의 책이 경매장에 나올까 두려워 하시는 백규 선생님! 부럽군요. 경매장에라도 나오면 영광 아닌가요? 저는 언젠가 제 책이 그냥 쓰레기장에 버려졌다가 인부들의 손에 의해 '파지'로 분류되는 현장을 목격한 인물이올시다. 그 참담함이란! 우리 어릴 적에야 책 한 권 손에 넣으면 종이가 필 정도로 읽고 또 읽고 하지 않았던가요? 못 되게 변해버린 세상이나 탓해야 할까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013.12.12 01:29 [ ADDR : EDIT/ DEL : REPLY ]
  6. 백규

    나그네 님의 말씀이 맞네요. 저 모르는 사이에 쓰레기장에 버려지거나 한겨울 군밤 종이로, 호떡 싸개로, 그도 아니면 궁한 화장실의 뒷처리 용도로 쓰여 왔거나 쓰이고 있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겠지요. 그런 비참한 상황은 생각지도 못한 채 경매장에 나와 '되 팔리는' 데만 신경을 쓰고 있었으니, 참 저도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아 온 존재임에 틀림 없지요?^^ 물론 그렇게라도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거기에 만족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도 책이 '짐이 되어버린' 시대가 되었으니, 그냥 썩이는 것보다는 화장실의 뒷처리 용으로라도 쓰이는 게 나을 수도 있겠네요. 좀 더 겸허하게 살라는 뜻의 좋은 지적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2013.12.13 05:17 [ ADDR : EDIT/ DEL : REPLY ]

글 - 칼럼/단상2007. 4. 10. 15:43
우리 인구의 상위 1%가 전국 사유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상위 100명이 여의도 면적의 절반 수준인 평균 115만평씩을 갖고 있다 한다. 행정자치부의 이 발표는 간과할 수 없는 역사적·사회적 함의(含意)를 지닌다.

이성계(李成桂)와 신흥사대부들에게 체제전복의 명분을 부여하여 고려의 명줄을 결정적으로 끊은 것은 토지제도의 문란이었다. 어림짐작으로 100명도 안 되는 여말(麗末)의 권문세족들이 점탈(占奪)·겸병(兼倂) 등 온갖 탈법적 만행으로 대토지를 소유하여 국가의 재정을 파탄내고,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림으로써 혁명세력에게 좋은 발판을 마련해준 것은 불과 6-7세기 전의 일이다.

‘이쪽 산봉우리에서 저쪽 산봉우리/이 골짝에서 저 골짝’ 으로 표현되던 그들의 땅. 그 규모와 ‘여의도의 절반 크기’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모순과 역리(逆理)의 역사는 이 시점에도 여지없이 반복되고 있음을 확인할 뿐이다.

상당수의 권문세족들이 불량배들을 시켜 농민을 폭행하거나 협박하여 토지를 빼앗았다는 기록들은 지금도 또렷이 남아 있다. 그것은 지배층의 대토지 소유와 체제의 붕괴가 서로 맞물리는 문제였음을 보여주는 근거다. 물론 오늘날의 대토지 소유자들이 여말의 권문세족과는 사회적 위치가 다르며, 토지를 소유한 경위나 배경 또한 다르다고 항변할지 모른다. 고려의 권문세족들은 대대로 권력과 부를 세습하는 가운데 형성된 문벌들이다.

지금의 대토지 소유자들 가운데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일부는 투기(投機)와 탈법(脫法)으로 당대에 부를 이룬 경우도 적지 않다. 고위직에 발탁되었다가 여론의 질타에 밀려 낙마한 일부 인사들의 사례는 그런 가능성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들이 즐겨 사용한 ‘위장전입’, 금융이나 세제상의 각종 탈법·위법 등은 토지를 점탈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한 여말의 권문세족들 못지않게 사회정의 상 용납되기 어렵다. 법망을 피한다거나 규정을 왜곡시키려면 작으나 크나 권력과 결탁하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가의 권위와 공권력을 능멸한 것이다.

지금 우리의 경제는 나날이 나빠지고 있으며, 국민들 간의 빈부 격차 또한 점점 벌어지고 있다. 정당한 방법으로 재물과 권력을 소유하는 것을 질타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우리는 다만 탈법을 통한 부의 편중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현실을 우려할 뿐이다. 정당한 룰(rule)을 지키며 얻은 부와 권력은 존경의 대상이다. 그러나 치부의 과정이 대부분 떳떳치 못한 게 우리의 현실이다. 토지 소유자에 대한 조사가 20 여 년 전에 이루어졌으면서도 지금까지 발표되지 못한 점을 새삼 주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나라를 소유한 자는 백성의 재물이 적음보다 고르지 못함을 근심하고, 가난함보다 편안하지 못함을 근심한다’고 했다. 즉 고르면 가난함이 없고 화목하면 적게 가진 불만이 없으며 백성들이 편안하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가난함에서 오는 고통보다 균등하지 못한 데서 생기는 고통이나 불안의 사회적 파장이 훨씬 크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고려 왕조가 무너진 원인은 편법과 탈법에 의한 대토지 소유가 백성들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만든 데서 찾아져야 한다. 이 땅은 대토지를 소유한 100명만의 나라는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2005. 7. 19.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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