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09. 2. 2. 01:58


 다음 날 호텔에서 이른 아침을 먹은 다음 서둘러 나간 곳이 이번 여행의 꽃인 알함브라 궁. 멀리 보이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엔 비구름이 걸려 있고, 나그네의 외투 깃으로 빗방울이 파고들었다. 과연 알함브라는 이슬람 문화의 정수였다. 가이드는 산책하는 기분으로 알함브라를 느껴보라 했지만, 알함브라에 엉겨있는 역사의 고비들이 너무 복잡하여 나그네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이 미국 공사관의 자격으로 마드리드에 재직하던 중 알함브라 궁에 머물면서 무어(Moor)인들의 전설을 기록한 <<알함브라 이야기(Tales of the Alhambra)>>에 넘쳐나는 낭만적 상상으로도 이미 지쳐있는 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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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함브라궁의 출입구에 모여선 관광객들. 이 날 비가 내리고 있었다>
 
13세기 전반, 옛날부터 존재하던 알카사바를 확장하면서 궁궐의 건축이 시작되었고, 14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알함브라는 현재의 모습을 드러냈다. 왕궁, 카를로스 5세 궁전, 알카사바, 헤네랄리페(General Life)으로 구성된 알함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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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카사바에서 내려다 본 창고 터, 무기고 터, 군사들의 숙소 터>

 우리는 전망대를 빼곤 흔적만 남은 알카사바에 맨 먼저 올랐다. 벽채의 반 이상이 날아가고, 아래쪽 흔적만 남은 공간들이 바둑판처럼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라나다 왕국의 무하마드 1세가 9세기에 이미 존재하던 성채를 정비․확장한 곳이다. 군인들의 막사, 식량창고, 목욕탕 등이 흔적만 남아 있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저 멀리로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 보이고 가까이는 민간 가옥들의 내부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벨라탑(Torre de Vela)의 전망고 그 아름다움을 만끽했다. 시에라 네바다의 정상에 덮인 흰 눈처럼 왕궁 근처 민가들의 벽채도 모두 새햐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헤네랄리페~알바이신 지구, 사크로몬테 언덕, 그라나다 중심부 등이 이곳에선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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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의 탑에서 내려다 본 그라나다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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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의 탑에서 내려다 본 그라나다 민가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9. 2. 2. 01:35


 2009년 1월 24일 저녁에 도착한 그라나다. 지중해로부터 4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이 도시는 어둠 속에서도 화려했다. 도착하자마자 호텔 식당에서 대충 저녁을 때운 우리는 플라멩코 공연장으로 직행했다. 알바이신 지역의 따블라오 공연장. 허름하고 좁좁한 공연장이 정겹긴 했으나 삐걱대는 의자가 불편했다. 그러나 바로 눈앞에 설치된 한 두 평쯤의 나무 무대, 그곳을 적시는 무희들의 열정과 땀방울은 우리를 환희의 도가니로 몰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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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객들을 무아지경으로 인도하는 플라멩코 무희의 정열>
 
남성 가수 두 사람은 가늘면서도 찢어질 듯 높은 목소리로 플라멩코의 서사를 노래했고, 기타리스트 두 사람은 애절한 톤으로 쉬지 않고 현들을 뜯어댔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네 사람의 무희들. 셋은 함께 나와 번갈아가며 플라멩코를 추었고, 앳되면서도 가냘픈 동남아계 아가씨가 혼자 나와 밸리댄스를 추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추는 플라멩코와 밸리댄스를 보면서 몸 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육감의 본능이 스멀스멀 살아나오는 것은 나만의 경험이 아니었으리라. 아름다운 플라멩코 무희들이 얼굴의 근육을 일그러뜨리면서 정열의 활화산을 터뜨리는 모습에 우리 모두는 전율을 금할 수 없었다. 그 춤사위에 피로가 풀리기도 하고, 또 다른 피로는 쌓여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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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밸리댄스의 춤사위>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9. 1. 27. 05:14
 

돈키호테와 작별한 우리는 끝없는 평원을 달려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넘었다. 산맥의 정상엔 희끗희끗 눈이 덮여 있었다. 분지형의 비옥한 땅, 그라나다. 로마제국과 이슬람 왕조의 마지막 수도였던 곳이다. 시내는 화려하고 복잡했으며, 호텔에는 관광객들이 득실거렸다. 점점 지중해에 가까워지기 때문인가, 날씨도 온화했다. 여기서 밤늦게 플라멩코를 보기로 했다. 알바이신 지역의 따블라오 플라멩코 공연장을 찾았다. 200에 가까운 객석이 가득 찬 가운데 두 명의 악사와 두 명의 가수, 그리고 세 명의 무희가 등장했다. 손바닥 만한 무대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춤을 엮어나가는 세 여인은 말 그대로 정열의 화신이었다. 가까이서 그녀들의 땀방울을 맞아가며 추임새 ‘오레~’를 연발하는 관객들 역시 그녀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열광했다. 두 시간 동안 쉼 없이 관객들을 오르가슴의 세계로 이끌어간 무희들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단순히 춤의 기교로만 설명될 것은 아니다. 무대가 파하고 흩어져 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자연과 인생, 역사와 전통이 함께 어우러진 예술의 정수가 바로 플라멩코임을 깨닫게 되었다. 스페인에 발을 들여 놓은 뒤 나는 처음으로 스페인 문화의 알맹이 하나를 입에 물 수 있었다.

우리의 닫힌 가슴을 열고, 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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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