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8. 12. 26. 12:00

인생 후르츠를 에코팜에서...

 

 

                                                                                                          조규익 

 

 

 

 

 

 

아내의 손에 이끌려 떨떠름한 표정으로

일본 다큐영화 인생 후르츠를 보러 가는 길.

 

일본영화, 그것도 다큐라는 점이 매력을 반감시켰으나, 전원에서 삶을 마감해가는 노부부의 이야기라는 사실이 에코팜 주인인 내 흥미를 끌었다.

잡답(雜沓)의 도회에서 적막강산 에코팜으로, 에코팜에서 다시 알 수 없는 저세상으로 입사(入社/initiation)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사실 적절한 참고서가 필요하던 차였다.

 

 

 

 

 

원제로 보이는 ‘Life is Fruity'.

인생은 감미로워라혹은 '인생 결실' 쯤으로 번역될 수 있는 말이리라.

진세이 흐루--’ 라고 느릿느릿 나직이 깔리는 일본인 여성 내레이터(키키 키린)의 음성도 노인들의 호흡에 맞춘 것일까. Slow Life를 손에 잡을 듯이 들려주고 보여주었다.

 

아이치현(愛知県) 가스아이시(春日井市)의 고조지(高蔵寺) 뉴타운. 45,000의 인구가 모여사는 이 도시의 변두리에 그들의 집은 그림인  듯 온갖 나무들에 둘러싸여 있다. 그 숲에 70여 종의 채소들, 50여종의 과수들이 모여 이들과 함께 살아간다. 슈이치가  존경하던 선배 건축가 안토닌 레이몬드의 집을 본떠 지은, 40년 된 작은 집이다.

 

1950년 도쿄대학 요트부원이었던 슈이치와의 만남, 1955년의 결혼 등으로 시작되는 두 사람의 스토리는 1945년 패전, 1960년 나고야 교외의 뉴타운 설계, 1970년 고조지 뉴타운 집합주택 입주 등으로 이어지면서 약간의 서사성이 가미된다. 그러나 최근까지 이어지던 그들의 서정적 삶은 1975년 뉴타운 안의 300평 토지를 구입하면서부터다. 숲을 남기고 바람 길을 만드는 꿈의 계획을 이루고자 하던 슈이치의 마스터 플랜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소박한 꿈이 실용주의에 밀려 상자를 모아놓은 것 같은 신도시의 모습으로 바뀌고 마는 현실을 하릴없이 바라보며, 슈이치는 고조지의 뉴타운에 50년째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슈이치가 90세 되던 해 사가현 이마리의 정신과 병원에서 사람이 찾아온다. 환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건축물을 만들고자 슈이치에게 조언을 구한 것. 사례금과 설계료 등을 일체 받지 않은 그는 멋진 설계도를 건넨다. "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꾸준히, 시간을 모아서 천천히"라는 충고와 함께. 생전에 그 건물을 보고 싶어했지만, 결국 그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8개월 되던 시점부터 이마리에는 슈이치의 설계대로 건축이 시작되었고, 완공 후 그 시설을 히데코가 방문하게 되었다. 가슴에는 슈이치의 사진을 안고...

 

90세의 할아버지 츠바타 슈이치와 87세의 이쁘고착한 할머니 츠바타 히데코. ‘둘이 합쳐 177이란 멘트가 자주 들려왔다. 177살을 살면 신선이 될 만한 나이인데, 그들은 과연 신선일까. 신선이 별 것이던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하면 신선이 된다. 애면글면 삶에 집착하지 않으면, 그게 바로 신선이다! 불로장수(不老長壽)의 해탈 경에 든 두 노인이 신선처럼자연의 리듬에 맞추어 느릿느릿 살아가고 있는 삶이 계절의 변화와 함께 한 폭의 수채화나 감미로운 서정시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면 이파리가 떨어진다

이파리가 떨어지면 흙이 비옥해진다

흙이 비옥해지면 열매가 맺는다

꾸준히 그리고 천천히

 

내레이터는 간헐적으로 시 구절같은 이 말들을 들려주곤 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뭔가 허전했다. 생각해보니 생략의 미학이 구사되고 있었음을 영화가 끝난 뒤에야 깨달았다. 장난삼아 다음의 말을 덧붙여 본다.

 

열매가 떨어지면 싹이 튼다

싹이 자라면 나무가 된다

나무에 이파리가 달리면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면 이파리가 떨어진다

꾸준히 그리고 천천히

 

, 생략된 부분을 채워 넣으니 윤회(輪廻)’의 한 고리가 이루어지지 않는가.

함께 죽은 뒤 육신을 태워 남태평양에 뿌렸으면 좋겠다하얗게 웃는 히데코 할머니의 얼굴이 빛난다.

육신의 재가 태평양에 뿌려진 뒤 다시 무슨 모습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노부부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을 감싸고 돌아가는 자연의 모습만 되뇔 뿐이었다.

그 이상의 일은 자신들이 관여할 바가 아니라는, 초탈(超脫)의 경지랄까.

 

두 노인의 삶에서 복잡다단한 것들을 모두 약분하면 남는 건 성실과 무욕두 가지였다.

일생을 건축가로 지내온 할아버지 슈이치는 자연과 어우러진 주거공간을 성실히 만들고자 했다.

자신의 철학과 미학을 듬뿍 담은 아이디어를 제공하고는, 일이 본 궤도에 오르면 슬쩍 빠지곤 했다.

열매를 탐하지 않겠노라는 무욕의 자세이리라.

등이 굽은 히데코 할머니는 일생 텃밭을 가꾸고 할아버지를 위해 음식을 만들며 살아왔다.

텃밭의 딸기를 수확하여 굽는 케이크도 슈이치를 위한 것이었다.

할머니가 만든 음식, 할머니가 내놓는 아이디어에 언제나 좋아!’로 대응하는 할아버지 슈이치.

에덴동산에 내려 보낸 천상의 배필이다!

 

에코팜의 주인인 나는 종말에 인생 후르츠!’를 외칠 수 있을까.

정원에 가득한 모과나무, 감나무, 도토리나무들을 바라보며 내게 주어진 삶의 이치를 깨닫고

성실과 무욕 속에 자적할 수 있을까.

잡초를 뽑고 나서 잠들었다가 잠든 모습 그대로 저세상에 입사(initiation)한 슈이치처럼 윤회의 한 도막을 추하지 않게마감할 수 있을까.

 

***삼가 슈이치 할아버지의 명복과 히데코 할머니의 행복을 빕니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6. 1. 1. 00:39

 

 

 

새해인사

-우리 모두 신선에 도전합시다!-

 

 

유쾌하고 슬기로운 원숭이를 떠올리며 병신년 새해 아침을 맞았습니다.

백규서옥을 찾아주시는 여러분 댁내 두루 무고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지난해는 저 자신에게도, 나라에도, 제가 속해있는 공동체(가정학교)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저처럼 많은 일들을 겪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제 나이 또래에게는 즐거운 일과 궂은 일이 반반, 아니 궂은 일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자녀들이 좋은 직장을 잡거나 좋은 배필을 만나 행복한 출발을 하는 일도 있겠습니다만, 연로하신 부모 세대의 잦은 병고(病苦)와 하세(下世) 등 슬픈 일들이 훨씬 더 자주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슬픈 일들은 이제 우리 역시 그로부터 멀지 않은 지점에 있음을 깨닫게 하는 이정표이기도 하고, 우리로 하여금 지나온 길과 걸어갈 길을 되짚어보게 하는 반성과 통찰의 자료이기도 하지요.

 

옛날의 현자들이 익혔다는 신선술(神仙術)’이나 우화등선(羽化登仙)’이란 말들을 아시지요? 중국 진나라 갈홍(葛洪)이란 사람의 <<포박자(抱朴子)>>란 책에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만. 저는 왜 옛날의 현자들이 신선이 되고 싶어 했을까?/날개 돋친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오르고 싶어 했을까?’ 등에 대하여 요즘 들어 가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처럼 옛날에도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늙고 아프기 마련이었겠지요. 변변한 약도 없던 시절, 자리보전하고 누워버리면 누가 돌봐줄 수 있었을까요? 그러니 그저 몸져누운 후를 대비하는 일이야말로 몸져눕기 전에 해야 할 일의 모두가 아니었을까요? 신선이 되는 일이야말로 최선의 길이었겠지요? 신선이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며,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우선 먹는 것을 절제하고 종국에는 곡기(穀氣)를 끊어 마냥 가벼워진 육신을 공기 속에 흩어버림으로써 존엄하게 일생을 마치는 최고의 소망이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저는 새해에 욕심을 줄여 몸무게를 가벼이 하는 일의 실습을 해보려 합니다. 물질적 욕망, 세상 권세욕 등을 버리면 몸무게를 줄일 수 있겠지요. 그건 세상사에 미련을 버리는 일이고 세상사에 미련을 버리면 좀 더 신선의 경지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겠지요? 교회에서 운영하는 단식원에 가든, 절에 마련된 선방에 가든 먹는 것에서 해방되는 방법을 체험적으로 터득해보려는 것이지요. 그런 일을 자꾸 반복하다보면 종국엔 신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지 않겠는지요?

 

, 할 일 없으니 별 궁리를 다 하는구나!’라고 혀들을 차시겠지만, 온몸에 주렁주렁 주사바늘을 꽂은 채 눈만 멀뚱멀뚱 뜨고 계시는 주변의 어른들을 한 번 보시면,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는 것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길인지 적절한 해답을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 문제를 화두(話頭)로 삼아 한 해를 보내볼까 합니다. 어쩜 올해 연말쯤엔 그 해답의 윤곽 정도는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져보기로 했습니다. 어쨌든 저는 병신년을 욕심을 버리는원년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함께 노력해보지 않으시려는지요?

 

제 생각에 동의하셔도 좋고 동의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만, 건강관리에 최선은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조물주의 허락 하에 부모님이 주신 육신과 정신을, 살아있는 한 잘 관리해야 하는 것은 우리 각자의 책임이라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올 한 해, 행복하게들 지내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병신년 첫날 아침

 

백규 절하고 아룀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4. 10. 17. 22:01

[서평] 조규익, 조선조 악장 연구(새문사, 2014)

 

 

 

본질 탐구로 길어낸 악장 연구의 새로운 이정표

 

 

 

 

 

                                                                             박수밀(한양대 국문학과)

 

 

1.

조규익 교수의 조선조 악장 연구(2014)는 저자가 수십 년간 줄기차게 매달려온 악장 연구의 3부작 완결판이다. 악장은 고전시가에서 자립적인 위상을 지닌 양식임에도 불구하고 연구하는 학자는 극히 적다. 연구 초기 장르상의 귀속이 애매했을 뿐더러 특정한 시기에만 나타났다 사라진 장르라는 점, 소수 계층의 욕망을 대변한 승리자의 노래라는 관점이 작용한 결과이다. 저자가 지적해 왔듯이 악장은 아부문학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진 결과 학자들의 외면을 받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3권의 악장 연구서를 간행해 왔다. 첫 연구서인 선초악장 문학 연구1990년도에 간행되었으니 최소한 족히 삼십년 이상을 악장 연구에 매달려온 셈이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삼십 년 이상 지속적으로 꾸준한 성과를 보여주는 학자도 드물거니와 소외된 문학에 대해 지속적인 애정을 쏟는 일도 쉽지 않다. 기왕이면 많은 학자들이 인정하는 영역에서 주목받는 글을 쓰고 싶은 것이 연구자들의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저자는 주위의 시선에는 아랑곳 않고 그다지 건질 것이 없어 보이는 악장 연구에 매달려왔다. 이 집념이 묘한 흥미를 끈다. 저자는 성산학술상, 도남국문학상, 한국시조학술상 등의 이력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고전시가에서 탁월한 연구 역량을 보여주고 있는 학자가 아니던가. 저자는 이번 저술이 25년 악장 연구사에 대한 마무리라고 고백했다. 과연 오랫동안 악장 연구를 진행하면서 저자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수십 년간 한 우물을 판 노고는 그 자체로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연구의 햇수와 연구의 질은 별개의 문제이므로 연구서가 얼마만큼의 성취를 보여주고 있는지, 저자의 문제의식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를 꼼꼼히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2.

악장에 대한 본격적인 저자의 첫 연구서라 할 선초악장 문학 연구(1990)은 선초 악장의 형성 및 장르적 성격을 밝히고 악장의 국문학 장르상의 위상에 대해 논한 저술이다. 악장에 대한 학계의 인식이 부정적인 상황에서 악장의 위상을 새롭게 제시함으로써 선초 악장 연구서의 바이블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로부터 9년 뒤엔 조선조 악장의 문예미학(2005)을 간행하여 악장의 가치와 전개 양상을 구체적으로 파고들었다. 이 책에서는 조선조 악장의 현상과 미적 본질, 조선조 악장과 왕조의 현실, 개인의식과 집단이념의 조화, 조선조 악장의 흐름 등을 밝혔다. 저자는 종합예술이라는 관점에서 악장의 독자적 미학을 치밀하게 탐구, 악장에 대한 편견과 오류를 해소하고 악장을 경세의 문학으로 끌어올렸다.

이번에 펴낸 조선조 악장 연구는 악장 연구사를 마무리 짓는 세 번째 연구서이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기존 연구에 새로운 보완의 시각을 제공하고자 한 것이다. 그 동안의 악장 연구에 대한 저자의 성과를 종합하고 아악악장과 향당악악장에 해당하는 개별 악장들의 성격과 주제의식에 대해 분석함으로써 악장의 연구 폭을 크게 확장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악장연구를 통해 얻은 성과를 바탕으로 고전시가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을 제안하고 있다.

먼저는 연구서의 구성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었다. 5부가 총론에 해당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는 4부로 이루어진 셈이다. 1부에서는 조선조 악장의 성격을 밝혔는데, 저자는 조선조 악장이 지속과 변이의 원리를 구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무엇이 지속인가? 고려조 악장의 음악적 측면을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무엇이 변이인가? 조선왕조라는 특정 집단의 이념을 강조한 새로운 내용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곧 조선조 악장은 고려조에서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인 아악이나 아악악장들과 함께 고려조에서 수용한 삼국 이래 속악의 악장들이 조선조에서 새롭게 제작된 노래들과 합쳐진 것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악장을 크게 아악악장과 향 당악 악장으로 나눈다. 각종 제향 악장이 전자라면 각종 연향 악장은 후자에 속한다. 2부와 3부는 아악 악장과 향 당악 악장의 성격을 다룬 것이다. 2부의 아악악장에 대해서는 악장의 중세적 문명론의 표준과 보편성의 확보라는 관점에서, 3부의 향, 당악 악장은 조선 왕조의 문화적 독자성과 정체성의 확보라는 관점에서 살폈다. 아악악장은 종묘제례, 문묘제례, 사직제례, 선농제례 등 제례에 쓰인 악장을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조선조는 문묘제례와 종묘제례를 통해 왕조의 정치적 이념적 정당성을 주장하고 왕조 존립의 보편적 가치와 당위성을 선양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중국의 <시경>, <주역> 등에서 악장의 주요 문구나 모티프를 직접 차용해 악장으로 쓰거나 혹은 선행 악장들의 구절이나 모티프 등을 차용해 선초 악장에 사용해 왔다. 곧 아악악장을 통해 동아시아적 중세적 문명론의 표준과 보편성을 확보하려 했다는 것이다. <문선왕 악장>, <사직악장>, <선농악장> <선잠악장>, <풍운뇌우 악장>을 분석하여 이러한 주장에 대한 논거를 확보한다.

이에 비해 3장의 향 당악 악장에서는 조선조 악장의 독자성을 살핀다. <문소전 악장>, <석전음복연 악장>, <창수지곡 악장>, <경근지곡 악장>, <오륜가>, <봉래의 악장> 등을 다루었다. 당악 악장에서는 우리의 고유한 노래 장르를 악장으로 수용함으로써 우리만의 독자적이고 특수한 미의식을 담아냈다고 주장했다. 이들 노래에서 발견되는 텍스트의 구성이나 주제의식의 실험성은 아악악장과 구별되는 지점이며 악장이 고전시가사 전개에 큰 기여를 한 점이라고 보았다.

4부는 다른 각도에서 본 조선조 악장의 본질적 속성이란 제목을 붙였는데, 정재 악장에 나타나는 송도 모티프와 선계 이미지의 연원을 밝힌 대목이 흥미롭다. 이 외에도 저자는 악장에 대한 북한문학사의 관점을 살펴본다. 북한의 연구자들은 악장을 아부문학이나 무조건적 송축문학으로 배척해온 남한 학자들과 입장을 같이 해오고 있는데 북한 역시 악장을 백성들의 문화생활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무가치하다고 폄하한다는 것이다. 경직된 이념이나 선입견에서 벗어나야 악장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연구서는 악장의 문학성을 다룬 것이 아니라 악장의 본질과 성격에 대한 탐구이다. 양식의 문학성을 파고든 것이 아니라 양식을 둘러싼 맥락에 주목했기에 문학 연구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저술의 가치는 덜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악장 연구를 둘러싼 저자의 궁극적인 문제의식, 주제에 접근하는 남다른 방식, 실사구시에 입각한 꼼꼼하고 치밀한 논증의 결과를 들여다보노라면 이 저술이 갖는 의미와 무게는 남다르게 다가온다. 어쩌면 이 연구서의 진정한 가치는 고전시가를 접근하는 시각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보여준데 있을지도 모른다.

 

 

3.

저자는, 텍스트와 콘텍스트 및 상호텍스트에 대한 면밀한 고찰 없이는 고전시가론이나 고전시가사 혹은 국문학사는 완벽을 기할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연구서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텍스트 측면은 관찬문헌인 조선조의 악서들에 지금 고려속요로 불리는 고려의 악장들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고 콘텍스트 측면은 악장은 조선과 고려의 궁중 무대예술이라는 점이다. 상호텍스트 측면은 악장은 당악을 비롯한 외래 음악이나 공연과의 연계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악장은 이와 같은 외적 맥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그 본질이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문학은 그 시대의 사회, 문화, 정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에서 나온 발언이라 본다. 지식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지식은 순수하고 객관적인 결과물이 아니라 그 시대의 사회 구조와 공동체 구성원에 따라 의미를 형성하고 바꾸어간다. 곧 지식은 맥락과 관계에 따라 구성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학을 둘러싼 맥락에 주목하는 저자의 관점은 충분히 설득력 있으며 답보 상태에 빠진 고전시가 연구 방법론에 새로운 활로를 뚫어줄 것으로 기대가 된다.

다만, 말했듯이 작품의 문학성 자체에 대한 탐구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받을 수 있겠는데, 가만히 반추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저자는 악장의 본질을 제대로 간파하고 악장 문학에 접근하는 가장 올바른 방향을 잡아낸 것이다.

조선조 악장은 국가의 공식 행사에서 사용되던 악사(창사)이다. 저자는 말하길, 악장은 정재라는 틀 안에서 음악과 춤이 결부될 때 비로소 그 생명성이 온전히 드러날 수 있다고 한다. ‘고려조에서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인 아악이나 아악악장들과 함께 고려조에서 수용한 삼국 이래 속악의 악장들이 조선조에서 새롭게 제작된 노래들고 합쳐진 것이 조선조의 음악이고 악장’(45)이라는 것이다. 악장이 가(), (), ()의 예술이 함께 어우러지는 종합무대예술인 정재에서 가창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악장은 춤까지 관여되어 복잡한 내포를 지닌 언어예술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악장을 문학적으로만 재단해온 지금까지 연구는 악장의 본질을 왜곡시켰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악장이 상대적으로 문학성이 쳐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면 이는 악장을 악장답게 다루지 않은 데서 초래된 결과였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접근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악장에 대한 저자의 접근 방식은 바로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러므로 악장이란 장르를 문학성이라는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것이, 저자에게는 오히려 왜곡의 위험성을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악장의 본질은 텍스트를 둘러싼 외부 맥락과의 관련 아래 탐구해야 한다. 악장의 본질, 그것은 가무악이 어우러진 궁중의 정재이다. 노래로서의 악장이 실현되는 사회 문화적 맥락을 따져보아야만 악장의 진면목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의 접근 방식이 얼마나 의미 있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지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저자의 관점이 정채를 발하는 장면은 정재 악장에서 확인되는 송도 모티프와 선계 이미지의 연원과 지속 양상을 밝힌 곳에 있다. 조선조 악장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왕에 대한 송축이나 송도를 통한 왕조 영속의 당위성 선양이다. 당악정재를 살펴보면 왕을 송축하기 위해서 신선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다. 당시 당악정재들에 등장하는 중심 배역은 선모나 신신들이었고 그들의 창사나 담화에는 송도 모티프가 담겨 있다. 신선으로 분장하여 왕에게 드리는 송도의 말이 바로 송도시자이자 선어였다는 것이다.

이 점을 논증하기 위해 저자는 동동정재를 살핀다. 고려사악지에는 동동에 대해 동동 놀이는 송도지사가 많은데 대개 선어(仙語)를 본떠 마든 것이다[動動之戱 多有頌禱之詞 盖效仙語而爲之]”라고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 나타나는 송도와 선어(仙語)는 동동의 성격을 이해하는 관건이 되는 까닭에 많은 학자들이 이 뜻을 밝히기 위해 다양한 주장을 펼쳐 왔다. 중국 전래의 도교 사상과 관련시키거나, 화랑, 풍류 등에 연원을 둔 무속과 같은 연장에서 이해하거나 팔관회 때 상연되는 백희가무에서 불린 노래로 보기도 했다. 신선 기녀와 연관 짓거나 무격(巫覡), 우인(優人)의 말로 보기도 했다. 그야말로 각자 입론에 따라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어 왔는데, 이에 대해 저자는 선학들이 동동을 둘러싸고 있는 콘텍스트로서의 속악정재나 속악정재의 표본으로 기능했을 당악 정재에 시선을 주지 못한 까닭에 송도지사와 선어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364) 노래의 주제적 측면을 지칭한 송도지사와 표현적 측면을 지칭한 선어 모두 동 시대의 당악정재에 근원을 두고 있는데, 그런 표현법이나 주제의식은 당대 궁중에서 성대하게 공연되던 당악 정재의 창사를 본뜬 것들이다. 선어는 바로 이들 정재에서 서왕모 등 신선으로 분장하여 송도의 노래를 가창하던 여기(女妓)들의 창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곧 헌선도(獻仙桃), 수연장(壽延長), 오양선(五羊仙) 등 당시에 성행하던 당악정재들 속의 선모(仙母)를 비롯한 신선(神仙)들이 잔치 자리의 좌상객인 임금에게 바치던 '송도(頌禱)의 말'이 바로 선어’, 즉 신선의 말이라는 것이다.

악장의 본질을 간파하고 상호 텍스트적 상황에 의거하여 송도지사와 선어의 의미를 밝힌 저자의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선어에 대한 제 학자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저자의 글을 읽었음에도 이 주장을 비판하지 못한 채, 각자의 입론을 만들어 제각기 주장을 펼치고 있다. 고려가요를 악장의 한 형태로 보려는 저자의 생각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저자의 주장을 극복할 수 있는 논거를 대거나 저자의 주장을 수용하거나 하는 엄정한 학문 태도가 필요하리라 본다.

 

 

 

 

 

 

 

 

4.

본 저술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는 집요하고도 치밀하게 악장의 본질과 성격을 탐구함으로써 별 문학성이 없어 보였던 양식을 의미 있는 양식으로 끌어올린데 머물지 않는다. 저자의 궁극적 시선은 고전시가사와 고전문학사를 재편하는 데로 향한다. 저자는 조선조 악장의 존재나 본질을 도외시할 경우 아무리 현란한 고전시가 장르론을 펴더라도 공허할 뿐이며, 국문학사 기술의 합리성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한다. 과연 이러한 주장은 타당한 것일까? 저자에 따르면 고려의 노래들은 대중가요로서의 속요이기 이전에 궁중악으로서의 속악가사이다. 곧 고려 노래의 1차적 분류 범주는 악장이 된다. 그러므로 고려가요는 1차적으로는 악장론을 거쳐야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조선조 악장의 콘텍스트 안에 엄연히 존재하는 고려가요의 텍스트를 고려의 시대적 속성에 맞추어 놓고 고려시대의 속요라는 이름으로 재단해본들 결과가 신통할 리 없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고려가요가 악장으로 수렴된다면 의당 고려가요는 악장이라는 틀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고려가요의 성격과 위치에 대한 재검토가 요청된다. 조선조의 시조와 악장을 다룬 시조와 궁중악장의 관계장을 읽노라면 악장과 시조 간의 새로운 관계 설정도 필요해 보인다.

또 악장의 본질이 문학이 아닌 정재로서의 성격에 있다면 악장과 관련되는 중세 고전시가 연구의 패러다임이 문화론이나 예술론 차원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고전시가를 문학과의 연관 아래서만 기술하려는 기존의 관행에서 벗어나 음악 무용 등의 예술 및 당대 사회 문화와의 관련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는 고전시가의 문학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고전시가 연구의 폭과 깊이를 확장하고 장르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다. 문학을 고립적으로 가두지 않고 여타 분야와 폭넓게 소통하면서 통섭하려는 오늘날의 시대적 흐름과도 궤를 같이한다.

악장의 본질을 규명하려는 치열한 노력과 성과가 기성과 관행을 타파하고 새로운 변화의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이끌어준다는 점이 본 연구서의 진정한 미덕이자 가치라고 생각한다. 과연 저자의 바람대로 조용하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새롭게 추동될 수 있을 것인가? 본 연구서의 성과와 제안을 비판하든 극복하든 간에, 애써 외면하기보다는 저자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주고 활발한 토론과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저술에서 보여주는 꼼꼼한 논증과 묵직한 문제의식은 저자가 학계에서 보여준 성실함과 무게에 값한다고 본다. 삼십 여년에 걸쳐 남들이 관심두지 않은 길을 뚝심 있게 밀고나간 저자의 학식과 공력이 조선조 악장 연구에 오롯하게 담겨 있다.

 

  *이 글은 <<한국문학과 예술>> 14집(한국문예연구소, 2014)에 실려 있습니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4. 7. 31. 08:07

 


표지

 

 


내용

 

 


악장이 가창되던 무대예술로서의 정재들

 

 


우측이 첫 책(1990), 좌측이 두번째 책(2005)

 

 

새 책 <<조선조 악장 연구>>가 출간되었습니다!

 

 

 

오늘 새 책 <<조선조 악장 연구>>(새문사)가 나왔습니다.

 

저는 대학에 들어가면서 국문학에 뜻을 두었고, 대학원에 들어가면서 고전문학으로 범위를 좁혔으며, 석사논문을 쓰면서 아예 고전시가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20대 후반 경남대학교의 전임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같은 방향의 연구를 지속했으나, 숭실대학교로 옮긴 뒤부터는 조금씩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관심을 가져 온 여러 대상들 가운데 악장은 초기부터 꾸준히 천착하고 있는 분야입니다. 1990년에 이 분야의 첫 저서인 <<선초 악장문학 연구>>(숭실대학교 출판부), 2005년에 <<조선조 악장의 문예미학>>(민속원)을 각각 펴냈고, 이제 <<조선조 악장 연구>>를 펴냄으로써 저 개인의 25년 악장 연구사를 일단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물론 악장에 더 이상 파낼 만한 것이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사실 내심으로는 해답을 찾지 못한 이 분야의 화두(話頭)’가 한 둘 더 남아 있습니다. 그 때문에라도 마음이 바뀌어 옛날의 우물터를 다시 찾을지 알 수는 없으나, 지금 갖고 있는 앞으로의 연구 스케줄로 보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출중한 후배들이 그들 나름의 통찰력으로 새로운 차원의 연구를 지속해 가리라 믿기 때문에 지금 제 관심의 물꼬를 다른 곳으로 돌려 보려는 것뿐입니다.

 

이 책의 몇 부분에서 강조했습니다만, 텍스트와 콘텍스트 및 상호텍스트에 대한 면밀한 고찰 없이는 고전시가론이나 고전시가사 혹은 국문학사는 완벽을 기할 수 없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고려조선의 시가문학은 비생산적 동어반복의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봅니다. 관찬문헌인 조선조의 악서들에 고려의 악장[학계에서 말하는 이른바 고려속요’]들이 기록되어 있다는 텍스트의 측면, 조선과 고려의 궁중 무대예술이라는 콘텍스트 혹은 시대문화적 맥락의 측면, 당악을 비롯한 외래 음악이나 공연과의 연계에서 이루어지는 상호 텍스트적 측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비로소 그 본질은 분명히 드러날 것입니다. 악장에 관한 책은 다시 내지 않더라도 기회 있을 때마다 논문이나 발표문 등을 통해 이 문제만은 더 심도 있게 규명해볼 생각입니다.

 

악장의 존재를 인지하기 시작한 초기에 비해 지금은 좀 나아졌습니다만, 그래도 악장에 대한 폄하의 분위기는 지속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동동>이 조선조 <<악학궤범>> 아박정재의 창사[혹은 악장]로 기록되어 있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고려의 시대정치문화적 맥락으로만 재단하려는 관성이 바뀌지 않고 있는 점은 아주 흥미롭습니다. <<고려사 악지>>를 비롯한 몇 기록들에 간단히 기록된 동동관련 언급이 학자들의 생각을 아직도 지배하고 있는 점으로도 분명해지는 문제입니다. ‘동동이란 노래가 고려 궁중에 수용되어 속악정재라는 무대예술로 꾸며질 때 이미 존재하던 당악정재들의 양식이 그 표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은 처음부터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動動之戱 多有頌禱之詞 盖效仙語而爲之 然詞俚不載라는 말에서 선어(仙語)’란 말을 엉뚱하게 해석해온 것을 그 분명한 예로 들 수 있습니다. 헌선도(獻仙桃), 수연장(壽延長), 오양선(五羊仙) 등 당시에 성행하던 당악정재들 속의 선모(仙母)를 비롯한 신선(神仙)들이 잔치 자리의 좌상객인 임금에게 바치던 송도(頌禱)의 말이 바로 선어’[신선의 말’]이었음을 몰랐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당시 조성되어 있던 상호 텍스트적 상황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해프닝이었습니다. 원천적으로 고려노래의 정체는 대부분 궁중의 음악에 쓰이던 악장들이었다는 점과, 조선조 악장의 모범적 선례가 고려의 악장이었다는 점만 인지했다면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이 경우는 악장 연구로 얻을 수 있는 단편적 소득에 불과합니다만, 연구하기에 따라서는 앞으로 이것 말고도 다른 많은 것들이 밝혀지리라 봅니다.

참고로 이번에 출간된 책의 목차를 이곳에 들어놓겠습니다.

 

1부 총서: 지속과 변이의 원리, 그 구현체로서의 조선조 악장을 바라보며

. 계승과 극복 대상으로서의 고려악장

. 조선조 악장에 나타나는 지속과 변이의 양상

. 전환의 양상: 포괄화추상화에서 구체화로

. 앞 시대 유산의 포용과 새로운 정체성의 추구

 

2부 아악악장: 텍스트 및 주제의식의 중세적 관습성

왕조와 통치이념의 정당성, 제례악장의 모범적 선례: <문선왕 악장>

. 석전과 <문선왕 악장>

. <문선왕 악장>의 원형과 수용과정

. <문선왕 악장>과 조선조 아악악장의 형성

. <문선왕 악장>의 악장사적 위상

. <문선왕 악장>과 제례악장의 중세적 보편성

 

왕조 존립과 영속의 당위성 및 자신감: <사직악장>

. 사직제의 위치

. <사직악장>의 텍스트 양상과 내용

. 악장제작의 관습과 <사직악장>의 위상

. <사직악장>의 중세적 보편성과 특수성

 

먹거리의 풍요에 대한 기원과 애민의식: <선농악장>

. 선농과 선농제

. <선농악장>의 텍스트와 주제의식

. <친경악장>의 텍스트와 주제의식

. 악장사적 위상

. <선농악장><친경악장>의 중세적 보편성

 

입을 것의 풍요에 대한 기원과 애민의식: <선잠악장>

. 선잠제와 <선잠악장>

. 선잠제 전통의 정착과 의미

. <선잠악장>의 텍스트 양상과 주제의식

. 악장사적 위상

. <선잠악장>의 중세적 보편성

 

우순풍조를 통한 백성들의 안녕과 풍요 기원: <풍운뇌우 악장>

. 풍운뇌우 제의와 <풍운뇌우 악장>

. 풍운뇌우 제의의 전통과 정착과정

. 풍운뇌우 악장의 텍스트 양상 및 내용

. 변계량 악장의 變改 문제

. <풍운뇌우 악장>과 중앙집권적 통치철학

 

3부 향당악악장: 텍스트 및 주제의식의 실험성과 조선조 악장의 독자성

 

천명에 의한 개국의 업적 찬양, 왕조의 무궁함 기원: <문소전 악장>

. 문소전 제례와 <문소전 악장>

. <문소전 악장>의 문헌적 양상 및 내용의 짜임

. 악장사적 위상

. <문소전 악장>과 정격 악장의 맥

 

왕조의 문화적 자부심과 독자적 미학의 발현: <석전음복연악장>

. 석전제와 음복연

. ‘신찬 등가악장의 내용적 짜임과 주제의식

. 악장 제작의 방법 및 시가문학사적 의의

. <석전음복연악장>의 독자성과 문화적 자부심

 

창업과 수성, 경천근민의 이상적 치도: <창수지곡><경근지곡>

. 제례 속의 음복연 절차와 두 노래

. 두 작품의 내용 및 악장사적 위상

. 제작상황

. <용비어천가>의 제작원리와 <창수지곡><경근지곡>

 

새 장르의 노래를 통한 합리적 생활윤리의 제시: <오륜가>

. 궁중악장 <오륜가>

. <오륜가>의 존재양상 및 의미

. <오륜가> 작자 및 창작 토양으로서의 시대 상황

. <오륜가), 지배이데올로기의 경기체가 식 표출

 

여민동락감응형통취포절제경천근민의 가르침: 봉래의 악장

. 조선조 최대의 창작악무 봉래의, 그리고 <용비어천가>

. 악무 명칭의 문헌적 근거와 악장 내용의 상관성

. 봉래의 악장에 아로새긴 세종의 철학, 왕조의 이상

 

제왕의 통치이념을 선양한 언어구조물: 봉래의 진퇴구호

. 퇴구호와 악장

. 봉래의 진퇴구호와 악장의 의미적 상동성

. 봉래의 진퇴구호의 텍스트 양상과 주제의식

. 봉래의 악장의 주제의식과 진퇴구호

 

4부 다른 각도에서 본 조선조 악장의 본질적 속성

 

정재 악장에서 확인되는 송도 모티프와 선계 이미지의 연원 및 지속양상

. 궁중악장과 콘텍스트로서의 송도 문화 및 선계 이미지

. 송도 모티프의 초기 양상

. 송도 모티프의 지속 및 확산과 문화적 의미

. 조선조 후기 창작 정재들과 선계 이미지의 변주

. 정재 및 정재 악장의 선계 이미지, 그 지속과 변이의 문화적 의미

 

시조와 궁중악장의 관계

. 악장과 시조가 공존하던 시공, 조선조

. 악장과 시조의 연계, 그 외연과 내포

. 악장과 시조, 새로운 관계 설정의 가능성

 

북한문학사와 악장

. 악장에 대한 일반적 관점과 북한문학사

. 북한문학사의 악장관

. 악장을 왜곡시킨 북한문학사의 이념적 경직성

 

고전시가교육과 조선조 고려속가 악장의 텍스트 및 콘텍스트: <동동> 지도론

. 고전시가와 고전교육, 그리고 악장

. 교육과정과 고전시가교육의 현실

. ‘동동의 속성 및 환경

. 고전시가 교육과 복합 텍스트로서의 궁중악장

 

5부 총결: 악장에 그려진 왕조의 이상과 현실, 그 거리를 음미하며

 

 

강호 고사(高士)들의 지도와 편달, 부탁드립니다.

 

2014. 7. 31.

 

백규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9. 7. 12. 20:53


까를라가쉬와 헤어진 우리는 한국식당 청기와에서 시장기를 지웠다. 더위에 지친 우리는 천산의 만년설이 잡힐 듯한 곳에 둥지를 틀고 있는 최석 시인을 만나기로 했다. 택시로 30분을 달려 도착한 곳에서 마중 나온 최 시인의 차를 만났고, 함께 하기로 연락된 리 스타니슬라브 시인, 문희권 선생 등을 만났다. 최 시인의 차로 20분 이상을 달려 올라간 산중턱에 빨간 지붕을 한 최 시인의 집이 참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주변엔 과수원이, 저 멀리로 알마티 시가지가, 아득히 펼쳐져 있었다. 알마티 시가지 너머에는 보일락 말락 지평선이 그어져 있고, 발코니에서는 천산의 만년설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과연 신선이 깃들만한 곳. 아니 내 자신이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매연에 절은 인세홍진(人世紅塵)의 추억이 먼 옛날의 일인 듯,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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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석 시인 집 발코니에서 올려다 본 천산의 만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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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석 시인 집 발코니에서 내려다 본 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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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석 시인 집 뜰에 피어있는 아름다운 꽃>

그곳에서 만난 세 시인 모두 고려인 사회의 독특한 존재들이었다. 우선 최석 시인. 논산에서 태어난 그는 1987년부터 무크지『현실시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1989년 시집『작업일지』를 도서출판 청하에서 펴냈으며, 현재 카자흐스탄에서『고려문화』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중견시인이다.

 전남 신안 출생인 김병학 시인은 1992년 카자흐스탄으로 건너와 한글학교 교사, 대학 한국어과 강사, 고려일보 기자 등을 역임했고, 2005년 시집 『천산에 올라』를 도서출판 화남에서 펴냈으며, 2007년에는 『재소 고려인의 노래를 찾아서』Ⅰ과 Ⅱ를 도서출판 화남에서 펴내는 등 카자흐스탄 고려인 사회의 정신적 자취를 발굴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1959년 우슈또베에서 고려인 3세로 출생한 리 스타니슬라브 시인. 그는 1985년 시집 『이랑』을 알마티에서 출판했고, 1997년 제2시집『별들은 재 속에서 간혹 노란색을 띤다』를 출간했으며, 1999년 카자흐스탄 공화국 11학년용 교과서에 그의 시가 수록되었고, 최근 러시아 문학잡지 『유노스찌/청춘』에 그의 시가 실리는 등 문학적 성가를 높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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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석 시인 집 발코니에 선 세 시인-왼쪽부터 최 시인, 리 스타니슬라브 시인, 김병학 시인>

보드카의 주향 속에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화의 미래에 관한 이들의 담론들은 무르익어 갔다. 다민족 사회의 소수자인 고려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가, 한글로 문학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고려인들끼리의 갈등을 어떻게 해소해나갈 것인가, 등등. 천산의 만년설은 말없이 굽어보고 있는데, 민족의 미래를 놓고 토론하는 이들의 가슴은 장작불마냥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 불꽃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드는 어둠을 밝히고, 중앙아시아의 평원을 고독하게 걸어가는 고려인들의 앞길을 이끄는 향도가 될 것이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8. 2. 16. 18:48
춤추는 무희여, 그대 새의 모습을 한 신선이여!
           -춘앵전을 보고-



                                                                                     조규익

당나라 고종때의 일이다. 무슨 근심이 있었던지 새벽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있던 황제. 밖으로부터 꾀꼬리 울음소리를 들었다. 슬며시 창을 열고 내다본즉 노란 색 꾀꼬리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게 아닌가. 갑작스레 흥이 일어, 즉시 악공 백명달을 불렀다. ‘저 꾀꼬리의 자태를 춤과 노래로 만들어보라’는 황제의 명을 받은 그는 침식을 잊은 채 며칠을 고심했다. 마침내 ‘춘앵전(春鶯囀)’을 완성한 그는 아리따운 무희를 선정, 무복(舞服)으로 분장시킨 뒤 또 며칠을 연습시켰다. 자신이 붙은 악공은 드디어 황제 앞에 그 춤과 노래를 올렸다. 황제는 크게 만족했고, 그로부터 이 춤곡은 궁중에서 공연되었으며, 우리나라에까지 전승되었다.

***

이번 숭실대학교 한국전통문예연구소의 학술발표회에서는 조선조 후기 정재에 관한 5편의 논문이 발표되었고, 춘앵전 공연도 있었다. 발표된 논문들도 쉽게 들을 수 없는 것들이었으나, 춘앵전 공연은 그날 행사의 ‘화룡점정(畵龍點睛)’ 격이었다.
황금색 옷으로 갈아입은 무원 최서윤씨는 흡사 신선이라도 된 듯, 일렁이며 춤을 추었다. 객석에 앉은 학인(學人)들은 넋을 잃고 아름다운 춤사위에 취했다. 춤이 진행되는 10분 가까이 객석으로부턴 숨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고, 가끔씩 탄성만 흘러나왔다. 그야말로 숨 막히는 아름다움이었다. ‘감동적인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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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지경에 몰입한 춤꾼 최서윤씨

 

***

춘앵전에는 두 가지 이미지, 즉 아름다운 꾀꼬리의 그것과 가볍고 자유로운 신선의 그것이 겹쳐 있었다. 옛날부터 사람의 몸에 날개가 돋으면 신선이 된다고 믿었는데, 그 상태로 날아오르는 것을 ‘우화등선(羽化登仙)’이라 했다. 하느님의 사자로 선향(仙鄕)인 곤륜산을 오르내리던 신조(神鳥)가 봉황이었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신선이 봉황이나 학을 타고 하늘을 나는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덕흥리 고분과 무용총에도 사람의 얼굴에 새의 몸을 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승천(昇天)하는 존재, 혹은 자유로운 존재라는 점에서 신선과 새는 유사한 것일까. 새의 동작을 모방하여 춤사위의 상당 부분을 만들어낸 것도 새가 날개를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날개는 ‘날아다니는 신선’과 긴밀하게 연관된다. 날개가 있어야 복잡한 인간세상을 초탈하는 신선이 되어 신적인 권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오늘날 기독교의 천사와 비슷한 존재일까.
꾀꼬리의 아름다움을 본떠 만든 춘앵전은 새의 이미지와 인간 및 선계를 성공적으로 연결시켰으니, 이 정재 30박 째의 동작인 ‘과교선(過橋仙)’은 그 핵심이다. 이것은 춘앵전 동작 가운데 압권인 이 용어를 번역하면 ‘다리를 건너는 신선’ 더 구체적으론 ‘신선이 다리를 건너듯 추는 춤사위’가 될 텐데, 무원이 좌와 우로 돌 때 마치 신선이 다리를 건너가듯 사뿐사뿐 춤을 추는 모양에서 유추된 용어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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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꾼 최서윤씨의 환상적인 춤사위



***

그러나 과연 이것뿐일까. 다음의 동작들은 내 눈을 어지럽게 했다.

 *새가 날개를 펴고 날듯이 빙글빙글 도는 ‘회란(廻鸞)’(8박)
 *날아오르듯 발을 가볍게 디디며 추는 ‘비리(飛履)’(11박)
 *한 층 한 층 탑에 올라가듯 세 걸음 나아가며 차츰 두 팔을 올려 드는 ‘탑탑고(塔塔高)’(15박)
 *원앙을 쳐서 날갯짓을 하도록 소매를 뿌려 내리는 ‘타원앙장(打鴛鴦場)’(16박)
 *기분 좋은 산들바람에 하늘하늘 걷는 듯 악절에 맞추어 추는 ‘사사보여의풍(傞傞步如意風)’(24박)
 *금모래가 날리는 것처럼 황금색 꾀꼬리가 나뭇가지를 분주하게 오락가락하듯 앞뒤로 나왔다 물러
   갔다 하는 ‘비금사(飛金沙)’(27박)
 *제비가 둥지로 돌아가듯 춤추며 물러가는 ‘연귀소(燕歸巢)’(32박)
 *새가 아름다운 꽃 앞에서 요염한 자태를 짓듯 교태를 부리는 ‘화전태(花前態)’(18박)
 *꾀꼬리가 날갯짓을 하듯 소매를 들어 휘두르는 ‘요수(搖袖)’(17박)
 *새가 바람에 하늘거리는 꽃잎을 물려다 그만 두듯 물러서는 ‘당퇴립(當退立)’(20박)
 *새가 날개를 펼치려다 내리는 것처럼 소매를 살짝 나부끼는 ‘소섬수(小閃袖)’(21박)
 *새가 번갈아 좌우로 몸을 기울여 걷듯 하는 ‘사예거(斜曳裾)’(7박)
 *새가 몸을 높였다 낮추는 동작을 이어 하듯 소매를 낮추었다 높였다 하는 ‘저앙수(低昻袖)’(9박)  
 *꾀꼬리가 날개를 펴고 뛰어 올라 흔들리는 꽃잎을 잡듯이 세 번 몸을 돌리는 ‘전화지(轉花持)’(19
   박)
 *꾀꼬리가 머리를 낮추었다가 들듯 허리를 꺾었다가 다시 펴는 ‘절요이요(折腰理腰)’(10박)
 *꾀꼬리가 두 날개를 한일자로 폈다가 반쯤 내리고 다시 올려 뿌리듯 하는 ‘수수쌍불(垂手雙拂)’(3
   박)
 *꾀꼬리가 살래살래 몸을 돌리듯 물결이 맴돌 듯 몸을 돌리며 춤을 추는 ‘회파신(廻波身)’(29박)

  등등.  거의 모든 춤동작이 새의 움직임이었고, 그 바탕엔 신선이 있었다.  

***

무대 위의 돗자리가 치워지고 무희가 사라진 다음에야 우리는 현실계로 돌아왔고,
그 시점으로부터 나는 황금색 꾀꼬리와 신선이 만들어낸 선계(仙界)의 환상공간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아, 우리를 잡답(雜沓)의 일상으로 되돌려 보낸 무희여!
   잔인하도록 아름다운 ‘춘앵전’의 무희여!

                                  2008. 2. 13.

                                       백규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