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09. 2. 5. 15:42

 

스페인 기행 4-2 : 종교 간의 불화가 빚어 만든 메스키타(Mezquita)의 조화와 부조화-꼬르도바(Cordoba)행의 감동


 정갈하고 유서 깊은 유대인 거리를 지나자 메스키타(Mezquita)[메스키타는 모스크를 지칭하는 스페인 말이다] 혹은 Cathedral-Mosque, 즉 ‘모스크 겸 성당’과 거대한 종탑이 나타났다. 술탄의 정원에 들어서니 무성하게 자란 대추야자 나무들이 우릴 반겼다. 대추야자는 그 옛날 모하멧이 살았던 곳에 흔히 자라던 나무였는데, 모스크의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들이 그런 대추야자 나무 형상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이 사원에서 비로소 확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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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르도바 메스키타 입구>

 원래 무어인들의 모스크였던 건물을 기독교 왕조가 접수함에 따라 안쪽 중앙에 성당이 들어서 있었다. 그러나 요소요소 이슬람 왕조 시절의 흔적을 완벽하게 지울 수는 없었던지, 대부분 모스크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원래 이 건물은 780년 서고트 왕국의 교회가 있던 자리에 압둘 라흐만 1세가 세운 것이다. 그 후 세 차례에 걸친 확장공사 끝에 현재의 규모로 이루어졌다. 처음에 메카 방향의 미흐라브(Mihrab)를 향해 좌우 대칭으로 지었어야 하나 공간의 협소함으로 건물은 균형을 잃게 되었다. 대추야자 나무와 우물[모슬렘들이 기도하기 위해 몸을 정결하게 하던 연못의 흔적]이 있는 오렌지 정원과 모스크가 합쳐진 건축물이 바로 메스키타였다. 바로 이 건물의 중앙에 성당이 있었다. 기독교군이 이 건물을 접수한 다음 성직자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당시의 왕 카를 5세가 지은 것이다. 그러니 이 건물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 우리는 잠깐 동안 난감했다. 그래서 생각 끝에 ‘모씨드럴(Mothedral)’이란 조어(造語)를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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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르도바 메스키타 정원의 대추야자나무와 오렌지 나무들>

 모씨드럴은 찬란했던 꼬르도바의 전성기를 상징한다. 이 성전은 24,000㎡의 거대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메디나(Medina)의 아사하라(Azahara)궁과 함께 이슬람 예술로 알려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례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그런 바탕 위에 기독교의 모습이 덧씌워져 묘한 조화와 부조화가 공존하는 양상을 보여 주었다. 원래 한 뿌리였던 이슬람과 기독교. 유일신을 섬긴다는 것 뿐 아니라 발생의 바탕을 공유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민족적․정치적 이해가 엇갈리면서 불구대천의 원수로 변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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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추야자나무의 모양을 본떠 만든 메스키타 내부의 열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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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르도바 메스키타 내부 성당의 성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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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스키타 내부 성당에 진열된 성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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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스키타 정원의 종탑>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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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9. 2. 2. 02:46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당시 술탄과 귀족들의 호화롭던 사생활을 훔쳐볼 수 있는 공간, 헤네랄리페였다. 14세기 초에 정비된 술탄의 여름 별궁이었다. 이 공간에서 가장 이채로운 곳은 아세키아(Acequia) 수로. 전체 길이 50m의 중앙 정원에 을 흐르게 하고 좌우에 많은 수의 분수를 설치한 곳이었다. 수로를 에워싸고 많은 꽃나무들과 정원수들이 무성하게 자라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천국 아니냐고 했다는 당시 술탄과 귀족들의 말을 곱씹어 보며 정원을 산책하는 내 마음이 복잡했다. 이슬람과 가톨릭이 번갈아가며 지배하던 곳. 세월은 흘러도 그들이 누렸던 향락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고, 역사의 저변을 끊임없이 맴도는 곳. 오늘 나는 쏟아지는 햇살 아래 안달루시아의 핵심인 알함브라에서 반복되는 인간사의 영욕을 체험한다.

이제 우리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또 다른 역사를 찾으러 꼬르도바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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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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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9. 2. 2. 02:22

 나자리 왕궁은 이슬람 문화의 정수였다. 메수아르의 방(Sala del Mexuar)을 출발하여 헤네랄리페에서 우리의 관람은 끝이 났다. 메수아르의 방은 술탄이 집무도 하고 예배도 보던 방으로 사면의 벽이나 천정이 아라비아 문양의 타일로 덮여 있었다. 이슬람 문화에서 시작되어 중국의 도자기 문화와 만나 더욱 고급화 된 것이 타일이다. 이 방에서 아라야네스 중정(Patio de los Arrayanes)으로 나가니 양 옆으로 향내 그윽한 아라야네스가 심어진 직사각형(남북 35m, 동서 7m)의 연못이 나오는데, 작은 원형의 분수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곳의 조경에는 단 한 명의 노예도 동원되지 않았을 만큼 민폐를 끼치지 않은 역사(役事)였다는 점이 이채로웠다. 타지마할 등 동서의 건축술이 만나 이루어진 것이 이 왕궁이었던 만큼 노예들의 노역(勞役)이 그다지 달갑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이곳 연못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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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함브라의 아름다운 타일 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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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아라야네스 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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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타일 문양>
 
7개의 아름다운 아치 앞에는 정사각형의 공간인 대사의 방이 있었다. 술탄이 외국사절들을 알현하던 장소로서 그림 타일의 벽면, 상감 공예의 천장, 바닥 등 아라베스크 문양으로 덮인 곳이었다. 그곳에서 나가니 사자의 중정(Patio de los Leones)이 나타난다. 이곳은 술탄을 제외한 남성들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던 하렘 구역이었다. 정교한 석회세공과 유대인의 12부족을 상징하는 열두 마리의 사자가 받치고 있는 원형분수가 눈길을 잡았다. 사자의 궁전을 나서자 파르탈 정원(Jardines del Partal)이 앞길을 막아선다. 연못 주위로 꽃과 나무들이 서 있고, 연못에는 귀부인의 탑이 서 있으며, 두 자매의 방과 그 주변의 아름다운 장식들은 우리의 눈을 사로잡았다. 술탄이 가장 사랑했던 카톨릭의 두 자매를 위한 방으로, 그들의 위한 사랑의 글귀가 새겨져 있었으며, 모카라베스 양식으로 건축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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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렘 구역의 아름다운 열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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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렘 구역의 아름다운 열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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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싱턴 어빙 집필실의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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