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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19 소부⋅허유, 그리고 태공망
글 - 칼럼/단상2010. 7. 19. 10:28

소부⋅허유, 그리고 태공망


허유(許由)는 천하나 구주(九州)를 맡아달라는 요임금의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더러운 말을 들었다고 생각하여 흐르는 영수(潁水)에 자신의 귀를 씻었다. 그 모습을 본 소부(巢父)는 허유가 은자(隱者)라는 소문을 냄으로써 명성을 얻게 된 점을 비판하고, 자신의 망아지에게 허유가 귀 씻은 물을 먹일 수 없다하여 망아지를 끌고 상류로 올라가 버렸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한 사람이 태공망(太公望)이다. 주나라 문왕이 위수(渭水)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던 여상(呂尙)을 발탁했으니, 그가 바로 태공망이다. 그는 문왕의 초빙을 받아 왕의 스승이 되었고, 무왕을 도와 상나라 주왕(紂王)을 멸망시켜 천하를 평정한 인물이다.


 최근 대통령은 지방선거의 결과로 나타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청와대 안의 인물들을 바꾸었고, 조만간 내각도 개편할 것이다. 어느 나라나 비슷하겠으나, 특별히 연줄의 문화가 강한 곳이 우리나라다. 연줄 즉 혈연, 지연, 학연은 지금도 인사철만 되면 힘을 발휘한다. 연줄이 닿는 범위 안에 출중한 인사들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연줄은 본질적으로 제한적이기 때문에 그 범위를 벗어나는 곳에 방치된 인사들은 더 많다.

 
 이왕이면 ‘내 부류의 사람을 써야 한다’는 고질적인 인습 탓에, 인사철을 앞두고 ‘이런 저런 면에서 촉망 받는 인사들’은 임명권자와 연결되는 줄을 찾아 헤맨다. 인사철만 되면 임명권자로부터 부름이 올까 전화통 앞에 붙어 앉아 있는 캐리커츄어(caricature)들이 약방의 감초 격으로 언론에 등장하곤 하던 것이 그리 멀지 않은 시기의 일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청와대 고위직의 제의를 거절한 유진룡 전 차관의 경우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현 정권에서 제의하는 고위직을 마다하는 모습을 보며, 지난 정권에서 자신의 자리를 걸고 윗선의 청탁을 막아 낸 결기가 가식이 아니었음을 국민들은 깨닫게 되었다. 자리의 성격이나 자신의 능력을 따지지도 않고 덤벼드는 사람들과 달리 ‘그 자리가 자신에게 맞지 않다’거나 ‘정치할 생각은 없다’고 간략하게 잘라내는 어조에서 사람들은 일종의 ‘멋스러움’을 읽어낸 것이다. 허유나 소부의 현대적 버전이라고나 할까.

 
 현재 ‘세종시’ 건으로 정치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정운찬 총리 또한 임명 당시 여러 차례 고사(固辭)하는 바람에 임명권자의 애를 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중한 능력과 비전으로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던 그의 입장에서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직에 나아가 최선을 다했다. 제의를 거절한 사람이나 제의에 응하여 직에 나아간 사람이나 이런 경우들은 인재 발탁과 등용의 좋은 사례로 기록될 수 있다.

 
 사실 특정한 직에 쓰일 만한 세상의 현자들은 대체로 허유나 소부, 혹은 태공망에 속하고, 현자를 자처하는 나머지 부류는 직책의 명예만을 탐한다고 보면 정확하다. 그러나 능력과 비전을 갖고 있음에도 모두 소부나 허유의 입장만을 고수한다면, 책임 있는 태도라고 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나서서 세상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데, 무조건 거부하는 것은 세상을 향한 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태공망은 요즈음의 상황에 걸맞은 인재다.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지만, 탁월한 재능과 비전에 도덕성까지 갖춘다면 세상을 다스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재다.

 
 연줄을 동원하여 등용되기를 도모하는 것보다 실력을 갖추고 조용히 기회를 기다리는 일이야말로 도덕적 행위 그 자체다. 사실 연줄을 동원하는 것은 재능이나 비전이 남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임명권자가 연줄을 통해 사람을 발탁하려 한다면, 그 역시 인물의 능력이나 비전보다 끼리끼리 무리 짓고자 하는 현실적 욕망 때문이다. 연줄로 인재를 등용했을 경우 일을 그르친 후에 책임을 물을 데가 없다. ‘인재가 없다’고 한탄하는 임명권자는 대부분 자신의 시야가 연줄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함을 스스로 드러낸다. 세상은 좁아도 연줄의 구속을 벗어나기만 하면 한 나라의 살림이나 한 부서의 책임을 맡길 만한 인재들이 제법 많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조규익(숭실대 국문과 교수/인문대 학장)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