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20.03.22 대통령을 보며
  2. 2016.12.07 FM도 몰랐던 박근혜, 깜빡 속은 국민들
  3. 2015.08.15 광복절 아침에
  4. 2014.07.26 에프 엠(FM)대로 살면, 망할까? 2
글 - 칼럼/단상2020. 3. 22. 01:13

 

                                                                                                                                                    조규익

 

박근혜가 탄핵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무능함이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반대 진영에 의해 ‘대통령 탄핵’의 사유가 날조되었고, 그들이 불법으로 동원한 이른바 ‘촛불 시위대’의 협박에 비겁한 대법관들이 꼬리를 내린 결과가 탄핵으로 귀결되었다고, 지금까지 그의 진영에서는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설사 부분적으로 그런 점을 인정한다 해도, 당시 박근혜의 상황 대처 모습에 대하여 나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실망했던 것이 사실이다.

 

나는 처음부터 변함없는 보수 쪽 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박근혜가 대통령 자격을 흡족하게 갖추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고, 그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아버지 박정희의 후광이 없었다면 그는 결코 ‘홀로서기’를 할 수 없었다고 보기 때문이었고, 그런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원천적으로 그에겐 내가 생각하는 ‘대통령으로서의 자질과 카리스마’가 없었다. 순발력 있는 상황판단과 결단력, 설득과 포용의 인간적 매력, 시대의 변화를 읽을 줄 아는 최소한의 예지력, 권력에의 선한 의지 등을 바탕으로 시운(時運)의 도움을 만나야 비로소 대통령으로서의 카리스마를 갖추게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럼에도 당시 나는 투표장에서 그를 찍었다. 사실 당시 박근혜와 문재인 후보 모두 내 기준에 부합하는 ‘대통령감’들은 아니었다. 처음엔 투표장에 가지 않으려 했다. 좀 우스운 고백을 하자면, ‘박정희 숭배자’에 가깝던 노모의 소원을 들어드리는 것이 불효자의 마지막 소원이라는 소박한 생각에 결국 박근혜에게 한 표를 던지고 말았다. 몸속에 중병을 안고 계시면서도 ‘박근혜 당선’의 소식에 파안대소를 하시던 어머니의 표정을 뵈며 ‘내가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박근혜가 몰락의 길을 걷고 있을 때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문재인은 그 자리를 ‘꿰어 찼다’

 

***

 

나는 원래부터 문재인에게 아무런 기대도 갖고 있지 않았다. ‘기대를 갖고 있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확신에 가까운 반감을 갖고 있었다. 그에 대한 원천적인 환멸을 설명하기 위해서라도 노무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원래 나는 취임 직후부터 우왕좌왕하며 문제를 야기하던 노무현을 싫어했다.

 

나도 ‘흙 수저’ 출신으로 이 땅의 ‘운명적 비주류’이기 때문에, 당시 혜성 같이 등장한 노무현에게 작지 않은 기대를 걸었던 게 사실이다. 부디 그가 조심조심 ‘기득권 주류세력’을 다독여 가며 연착륙 해주기를 바란 것이 내 진심이었다. 대한민국 정치판의 험난함이야 꼭 정치를 해본 사람만 아는 사실은 아니기 때문이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는 그가 큰 충돌 없이 ‘주류세력 교체’를 성공적으로 이룩해야 하는 역사적 사명을 타고 났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했다. 당시 좌파 개혁세력의 역량이 실제로 모자랐는지 알 수는 없으나, 나는 기득권 주류세력에 대한 노무현의 콤플렉스와 조급증이 오히려 일을 그르친 것이 아닌가 판단하고 있다.[이 점에 대한 나의 생각은 다른 자리에서 거론하기로 한다.]

 

대통령 노무현의 실패에 큰 역할을 했으리라 보는 것이 문재인이다. 노무현은 2003년 2월 대통령에 취임했고, 문재인도 똑 같은 시점에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이 되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04년 3월부터 연말까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을, 1년 뒤인 2005년 1월부터 2006년 5월까지 다시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냈다. 그리고 2007년 3월부터 2008년 2월까지 1년 동안 비서실장으로 노무현의 곁을 지켰다. 문재인이 노무현 실패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2008. 2.~2013. 2.]에 이어 들어선 박근혜 정권[2013. 2.~2017. 3.]이 탄핵되면서 문재인 정권[2017. 5.~]이 들어섰고, 현재 임기 만 3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박근혜 정권 출범 1년 남짓 만인 2014년 4월 16일에 세월호 사고가 터졌고, 그로 인해 박근혜는 임기 내내 사고의 마무리를 두고 야당과 좌파세력에게 끌려 다니게 되었다.

 

***

 

나는 세월호 사고의 진상조사를 요구하며 한 피해 학생의 아버지가 광화문에서 벌이던 단식농성 사건을 잊지 못한다.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의 대표 문재인이 ‘단식을 중단하도록 그를 설득하겠노라’며 천막을 찾았다. 그런데 천막에 들어간 문재인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피해학생의 부친과 함께 앉아 단식을 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아무리 설득해도 학생의 부친이 말을 듣지 않아서 자신도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함께 단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그의 그런 모습에 사람들은 어떤 평가를 내렸는지 알 수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언론에서도 크게 보도들을 했지만, 그에 대한 언론의 분석들이 어떠했는지 기억할 수도 없다.

 

 

그러나 당시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자신있게 문재인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 애당초 학생의 부친을 설득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쉽게 설득당할 거라면, 애당초 광화문에 천막을 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럼 공당(公黨)의 대표로서 어떻게 처신했어야 할까. 제1야당의 대표란 여당의 상대가 되어 행정부를 견제하고 국정을 조율해 나가야 할 자리 아닌가. ‘내가 국회의원들과 협의하고 정부와 싸워서라도 해결책을 모색할 테니, 나를 믿고 빨리 단식을 끝내라’고 당부한 다음, 국회로 돌아가 동분서주하며 해결책을 찾았어야 마땅한 일 아닌가. 말끔한 얼굴로 농성천막에 들어간 뒤 수염이 더부룩해지도록 여러 날 단식하고 앉아 있는 그에게서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를 읽어낼 수는 없었다.

 

사람에 대한 동정도 중요하지만, 그건 장삼이사(張三李四) 모두가 지녀야 할 선한 마음일 뿐이다. 그 학생의 아버지를 동정하여 함께 벌여야 할 동조단식은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지, 국정을 맡아야 할 지도자의 처신은 아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간도 못하는 사람에게 대통령이란 크나큰 직임(職任)이 주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철학이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가 혹시 ‘선한 사람’일 수는 있지만, 한 나라의 운명을 지고 나갈 지도자는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노무현 실패의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첫 평가에 이은 두 번째 평가였다.

 

***

 

자타가 평가하는 대로 그는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짐작한 바와 같이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그가 질러대는 헛발질은 처음부터 가관이었다. 내 기억에 남는 것들은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제, 주 52시간제, 탈 원전’ 등 섣부르고 민감한 경제정책들 뿐이다. 겉멋만 잔뜩 들어있는 이 어휘들은 극소수 비주류 경제학자들의 ‘논문 쪼가리’나 좌파들이 제작한 '감성 만땅'의 영화를 보고 즉흥적으로 잡게 된 문재인 경제정책의 키워드들로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방향타가 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북한과 섣불리 체결한 ‘군사합의서’는 안보의 근간을 허물었고, 그 합의서 체결 이후 북한의 각종 장・단거리 미사일 발사는 일상적인 일이 되고 말았다. 형편없는 국제인식에 무능하기 짝이 없는 외교장관이 가세함으로써 ‘대미・대일・대중・대아세안’ 등 우리나라 전통외교의 주축이 모두 내려앉았다. 즉 한 정부 혹은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책임 사안인 국방・경제・외교 등을 짧은 시간에 송두리째 ‘말아먹은 것’이다.

 

사실 이런 것들은 유능한 후속 대통령만 뽑힌다면 시간이야 많이 걸릴지라도 얼마간 복구할 수 있는 문제들일 수 있다. 그러나 문재인이 자행한 ‘씻을 수 없는’ 최대의 죄과가 있으니, 바로 ‘국민 분열’을 앞장서서 선동한 점이다. 문재인은 취임하자마자 이른바 ‘적폐청산’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전 정권의 인사들을 탄압하고 그 시기의 정책들을 폐기하기 시작했다. 그 대상 또한 입법・사법・행정 등 모든 분야의 인사들을 망라했다. 이미 사법적 판단을 받은 사건들도 다시 들춰내어 탈탈 털기 시작했다. 문재인의 눈으로 보기에 전 정권의 인사들은 모두 나쁘고 부패했으며, 정책들은 폐기되어야 했다.

 

모르고 그랬는지 알면서도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급기야 문재인 일파도 그러한 아니 그보다 훨씬 부정한 일들을 자행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것을 사람들은 ‘내로남불’ 혹은 ‘문로남불’이란 속어로 풍자하고 있지만, 이미 ‘게이트’ 수준으로 확대된 많은 사건들이 이런 점을 웅변으로 입증한다. 자신들의 말을 고분고분 따를 것이라 기대했던 검찰총장이 원칙대로 밀고 나가려 하자, 취임 초엔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그를 ‘검찰개혁’이란 미명으로 정권과 지지자들을 총동원하여 밀어내고자 안간힘을 쓰는 ‘코미디’가 대명천지에 1년 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이 점은 너무 식상한 일이 되었으므로, 이 자리에서 더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그렇다면, 애당초 문재인은 대통령으로서 어떻게 처신했어야 하는가. 어떻게 처신했어야 성공적인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가. 아니, ‘모자란 자질의’ 그가 성공한 대통령은 되지 못한다 해도, 최소한 탄핵의 구덩이에 빠지거나 지탄을 받지 않고 ‘임기만이라도 채우려면’ 어떻게 했어야 하는가. 그는 취임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어야 하고, 또한 실천했어야 한다.

 

 

“우리 헌정사에는 부끄러운 오점들이 많습니다. 나라를 위해 잘 해보려다 그런 오점을 남긴 경우들도 있고, 개인의 욕망 때문에 오점을 남긴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대통령으로서 전 정권들의 잘 한 점들을 적극 수용하고, 잘 못한 점들을 적극 고치겠습니다. 저와 이 정부는 이 전 시대의 잘못한 점들을 다시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 일들을 지금 법규의 잣대로 다시 재어 그 책임자들을 벌함으로써 대립과 갈등의 역사를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부로 지난 시대의 과오를 모두 용서하고, 국민 단결의 출발선에 서도록 합시다. 온 국민의 촛불은 ‘화합의 신호탄’입니다. 따라서 국가의 일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나는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선거 과정에서 저를 지지한 분들이나 지지하지 않은 분들 모두 이 나라의 소중한 국민들입니다. 진보와 보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뉘어 갈등을 벌여 온 지난 시기의 어리석음은 우리가 버려야 할 가장 큰 적폐입니다. 그런 갈등을 오늘의 취임식을 계기로 모두 해소하고, 한 마음이 되어 국가 발전에 매진합시다.”

 

 

대통령의 어법은 화합과 용서를 바탕으로 해야 하고, 검찰총장의 어법은 ‘정의 구현’을 바탕으로 해야 하며, 국방부 장관의 어법은 ‘국가 안보를 통한 국민의 안심’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대통령이 증오를 갖고 어느 한 편을 징치(懲治)하려는 마음을 갖는다면, 그 밑에 도열한 공직자들 모두는 증오와 징치를 행동수칙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나라는 완벽하게 두 패로 갈리게 되었고, 문재인은 대통령 아닌 ‘문패’의 두목으로 전락하여 두목 없는 나머지 국민들을 두들겨 패는 ‘깡패’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경제나 외교의 실패보다 훨씬 치유하기 어려운 것이 ‘국민들의 분열’이다. 정권의 연장을 위해 국민의 ‘융합’보다 ‘분열’이 훨씬 쓸모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 바에야, 어찌 지금같은 대한민국의 문제적 현실이 대통령의 손과 머리에서 빚어질 수 있단 말인가. 문재인은 지금 국민 반쪽의 확고한 지지만 받으면 무슨 짓을 해도 탄핵 당하지 않을 수 있고, 정권을 무한 연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 현재로선 다른 무슨 문제들보다 바로 이 점이 문재인의 죄를 무겁게 하는 근거가 될 것이다.

 

***

 

대통령 탄핵이란 국가의 큰 불행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이 땅에서 그런 불행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미 ‘그런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라는 불안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게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어쩌면 ‘검찰개혁’이란 미명 아래 자행되어온 많은 부조리들이야말로 대통령 주변이나 그의 지지자들도 이미 그런 위험이 박두했음을 감지하고 있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어떻게 이 국가적인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대통령 스스로 대오각성(大悟覺醒)하여 잘못을 고백하고, 개선광정(改善匡正)의 길로 나서는 수밖에 없다. 부디 지금이라도 문재인은 은폐와 사술(邪術)의 뒷골목에서 허둥대지 말고, 햇볕 내려 쪼이는 대로(大路)로 과감하게 나서야 할 것이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6. 12. 7. 12:20

FM도 몰랐던 박근혜, 깜빡 속은 국민들

 

 

 

올해 돌아가신 어머니는 당신의 판단과 주장에 놀라울 정도의 확신을 갖고 계신 분이었다. 힘들었던 시절, 조랑조랑 5남매를 베이비부머 세대의 일원으로 낳아 기르신 이 땅 어머니들의 일반적인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있던 해 초겨울쯤이었다. 찾아 뵈온 자리에서 내 손을 꼭 잡고 하신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자네, 박근혜를 찍어야 하네! 생각해보게. 박정희 대통령 덕에 우리가 이만큼이나 살게 되었고, 아베 어메 다 잃고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대통령에까지 나오게 되잖았는가. 그러니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꼭 박근혜를 찍게!”

 

, 이처럼 절절하고 영향력 있는 선거운동원이 있을 수 있을까. 그저 지나가는 촌로의 말씀으로 들어 넘기기에는 너무나 간결하면서도 확고한 호소였다. 그 앞에서는 알았어요. 어머니 말씀대로 하지요!”라고 시원한 대답으로 어머니를 안심시켜 드렸지만, 그 말씀은 대선 판에서 흔들리던 내 마음을 꽉 잡아두는 효과를 발휘한 것이 사실이다. 당시 문재인에 대해서도 뭐라 말씀하셨는데, 내용이 너무나 부정적이었으므로 굳이 이곳에까지 옮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2012년 대선에서 맞붙은 박근혜와 문재인. 그 선택의 기로에서 헤맨 것이 나뿐 만은 아니었으리라. 베이비부머 세대인 나로서는 같은 시대를 살아오며 공주의 이미지로 남아있는 박근혜와,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문재인 사이에서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내 마음 속에 공주로 남아 있던 박근혜를 선뜻 찍기가 망설여졌고, 안보 관련 측면에서 문재인은 더더욱 아니었다. ‘최선보다는 차악(次惡)을 선택하는 것'이 선거라지만, 사실 그들 모두 최악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내 고민은 컸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박정희 전 대통령과 시대를 함께 한 내 어머니 세대의 노인들과 그 노인들의 자식들인 베이비부머 세대의 확고한 지지 덕에 박근혜는 문재인을 이길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나 스스로 이제 남성 대통령의 시대를 잠시 접고, ‘깨끗하고 푸근한모성의 리더십이 힘을 발휘할 때라고 믿음으로써 내 선택을 정당화하기로 했다. 어째서 남성 대통령들은 임기 말만 되면 측근이나 식구들과 함께 권력과 물신(物神)의 포로가 되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얼렁뚱땅 술 한 잔에 넘어가기 쉬운 남성과 달리 꼼꼼하고 다사로운 모성으로 무장한 여성은 무언가 다를 것이라고, 무엇보다 혼자 사는 박근혜는 분명히 다를 거라고, 근거 없는 확신에 사로잡혔던 것이 사실이다.

 

그 뿐인가. 베이비부머 세대의 특징은 근면과 안보의식인데, 박정희의 딸 박근혜는 사상이 불투명한 사람()과 달리 안보를 맡기기에도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개표가 끝난 다음, 이 땅의 베이비부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등극한 2012년 대선은 동정(同情)과 감정이입(感情移入)’의 광풍(狂風)이 빚어낸 결과였다.

 

그 환상이 참담하게 깨진 지금. 누굴 원망할 수 있을까. 감히 그에게 민족통일이나 선진국 진입 같은 국가와 민족의 도약을 가능하게 할 경국(經國)의 웅략(雄略)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그저 대과(大過) 없이, 측근들과 친인척에 의해 자행되던 임기 말의 비리만이라도 없었으면 하는 것이 박근혜 지지자들의 대체적인 생각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나로서는 그가 깨끗하게 임기를 마치고 상큼하게 물러나서 고귀한 대통령직(noble presidency)의 모범적 선례를 만들어 놓기만을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취임 초기부터 인사문제 등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일들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국 터져 나온 게 비선 최순실의 국정농단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 역시 분통 터질 만큼 폭 속아넘어간 일이 있는데, 바로 '통일 이야기'다. 통일에 대한 그의 허황한 구호야말로 대대로 회자될 역대급 코미디가 아닐 수 없으리라. 독자 여러분은 얼마 전부터 그가 난데없이 부르짖던 통일대박이란 말을 기억하실 것이다.

 

 “, 분명 무언가가 있다! 대통령이 그토록 대중국외교에 공을 들이더니, 드디어 무언가 확실한 끈을 잡았구나. 그저 깨끗했던 대통령직의 선례나 만들어 놓으면 그걸로 대만족이라 생각했는데, 민족통일의 위업까지 이루겠다니!”

 

나는 감격했다. 귀찮게 투표소까지 찾아가 붓 뚜껑을 농()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웬걸? 그 말은 그냥 말 뿐이었음이 최근 밝혀지고 말았다! 그 말의 지적 소유권이 최순실에게 있네, 무슨 위원회에 있네논란을 벌이는 것을 보면서 나는 한동안 끝 모를 자기모멸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

 

날마다 언론매체들에는 대통령의 비정(秕政)들로 넘쳐나고 있다.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추행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코흘리개 어린애들까지 대통령을 웃음꺼리로 삼는다 하니, 다시 무슨 말을 더 보태랴. 그런 그에게 '세월호 7시간동안 무엇을 했느냐고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런 순간에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몰랐으리라는 누군가의 지적이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적시하고 있지 않은가. 배에 갇힌 300여명의 어린 학생들이 눈앞에서 수장되고 있는 순간에 대통령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타고난 순발력이 있을 턱이 없고, 얼른 들춰볼 규정집도 없었을 것이며, 평소 무게를 잡으며 멀리하던 참모들에게 새삼 물을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저 하염없이 머리만 매만지며 시간을 보낼 뿐이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대통령으로서의 기본적인 FM(field manual)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무토막을 왕으로 모시고 행복하다고 여긴 연못 속의 개구리들처럼 그런 청맹과니를 대통령으로 모신 채 우리는 한동안 희희낙락 잘 살아온 것이다.

 

***

 

청와대 공주로 살아서, 대통령직의 FM을 꿰고 있으리라 믿은 국민들만 불쌍하게 되었다. 원래 알고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를 찍지 않은 국민들은 그것 봐라!’며 고소해 하고 있으리라. 고소해 하며 그에 대한 욕을 퍼붓는다고 나라가 좋아질 리는 없다. 그를 욕하면서도 나라는 나라대로 건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모든 것을 빨리 이루어온 장점을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FM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아예 무시하기 일쑤다. 일을 당하고 나서야 FM을 펼쳐 보지만, 그 때 뿐이다. 박근혜도 그랬을 것이다. FM을 모르면, 주변의 참모들에게 일일이 자문했어야 한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면 모든 게 이뤄지던 그의 아버지 박정희 시대와 완벽하게 다른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그 때도 대통령의 FM이 없었는데, 그 때 배운 관행을 지금에 와서 반복하려니 탈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조그만 자동차 하나를 사도 웬만한 사전 크기의 매뉴얼 북이 따라온다. 제대로 된 운전자라면 그 책을 한 번 쯤 통독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제 대통령, 국회의원, 장관들의 업무수칙이나 매뉴얼 북을 모두 달려들어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한때의 인기몰이로 대통령에 당선된 자라도 대통령에 취임하기까지 그 FM을 학습해야 하고, 학습 여부를 테스트하기 위한 청문회(함량미달의 국회의원들을 제외한 사계의 권위자들이 주관)를 열어야 한다. 청문회에 통과하기까지는 임시 대통령의 호칭만을 부여하도록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는 보내도, 대한민국은 영원해야 한다. 지금 자기 세상 만났다고 날뛰는 몇몇 인간들은 빼고, 제대로 된 사람을 대통령으로 발탁하여 나라의 운명을 맡겨야 할 절체절명의 시점에 도달했다. 우리에겐 더 이상 갈팡질팡할 시간이 없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5. 8. 15. 16:43

광복절 아침에

 

 

아베란 친구, 그럴 줄 알았다. 스스로의 언행으로 속 좁은 일본인들을 대표해온 그 아닌가. 이 시점에서 대인배의 면모를 보여주었다면, 오히려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오랜 세월 일인들을 보면서 내린 결론이 있다. ‘마른 밴댕이’. 그 평가가 한 순간이라도 바뀔 수 있었다면, 판단력의 옹졸했음과 미숙함에 대한 자기 모멸감을 솔직히 나는 견딜 수 없었으리라. 요즘 들어 북쪽의 김정은이가 야료를 부릴수록 부쩍 그에게 접근하려는 듯한 아베의 행적. 말투처럼 참으로 덕이 느껴지지 않는 그의 행동거지다. 아베를 비롯한 주변의 소인배들을 보며, ‘소이부답심자한(笑而不答心自閑)’의 여유를 가지려 해도 그럴 수 없는 건 왜일까.

 

엊그제 전직 해군참모총장 부자(父子)가 실형을 선고 받았고, 툭하면 방송에 나와 수레 목으로 열변을 토하던 별 둘짜리 제독도 심판을 받았다. 각종 비리로 줄줄이 엮여 들어간 고위 장교들이 이제 속속 무대에 나와 실형을 받을 것인데, 꼬락서니가 목불인견(目不忍見)일 것이다. 북괴가 설치한 지뢰에 우리의 꽃다운 20대들이 발목이 잘리고 다리가 날아갔는데, 이번에도 군 수뇌부는 마냥 굼뜨고 태평하다. 그 와중에 부하들과 폭탄주를 마신 합참의장도 있었고, 사고 부대의 어떤 중령은 부하 여장교를 어떻게 해볼까 수작을 부리기도 했다. 술 한 모금 며칠 참으면 위장이 졸아붙는가. 해서는 안 될 짓이지만, 하필 성추행의 대상이 부하 여장교란 말인가. 두 명의 전직 해군참모총장이 목돈을 우려낸 그 배. 꽃다운 우리의 젊은이들이 타고 다니며 북괴와 싸움을 벌여야 할 군함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참모총장 등 해군장교들이 뇌물을 받고 그 군함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다시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세월호에 허둥대는 와중에 메르스를 만나 우왕좌왕, 그 메르스 끝나자마자 지뢰사건으로 혼비백산. 지뢰사건에 허둥대는 중에 유병언의 재산은 다시 그 구원파가 가져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지뢰에 발목과 다리가 날아간 젊은 군인의 병실에 대통령이 숨 가쁘게 달려가 안아주는 일이 뭐 그리도 어렵고 대단한 일이란 말인가. 세월호 대책이랍시고 해양경찰을 없애놓으니, 피서철 해수욕장에 안전요원을 배치할 수도 없고, 서해 어장엔 중국 어선들만 새까맣게 몰려들고 있다. 국가안전처는 뭐하는 곳일까. 고급 공무원들만 잔뜩 만들어 놓고, 사건이 터져도 하는 일이 없다. 공무원이란 자들은 그저 규정집이나 들고 설치며 간섭이나 할 뿐. 차라리 규정집이라도 제대로 보면서 ‘FM에 맞추어일처리라도 하면 나을 텐데. 그들에게서 감동을 느끼는 국민이 거의 없는 현실이 비극이다.

 

대통령부터 참모들까지, 장관부터 일선 공무원들까지, 참모총장부터 하급 장교들까지 제대로 된 모습을 찾기 어렵다. 수시로 나태와 독직(瀆職)의 유혹에 매몰되는 지배계층의 행태를 필자와 같은 장삼이사들이 밤낮없이 걱정하고, 불쌍한 병사들이 몸 바쳐 하루하루 땜질해가는 곳이 바로 우리나라다. 집 안에서 제대로 일들은 하지 않으면서, 틈만 나면 이웃나라 아베를 들먹인다. 누구 말대로 아베가 쪼다이긴 하지만, 쪼다를 발가벗겨놓은들 우리의 몰골이 나아지는 건 아니다. 오죽하면 그런 쪼다가 국제사회에서 대놓고 우리를 희롱하고 다니겠는가. ‘새 알 멜빵 걸어 짊어지고 다닐만큼 약아빠진 아베에게 듬직하고 당당한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외에 달리 약이 없는 것을 

 

대통령의 동생 부부가 철부지 망언으로 나라 망신을 시키는 것도, 덕 없는 이웃나라의 아베가 대놓고 업신여기는 것도 한심한 우리 모습 때문 아니겠는가. 우리가 언제쯤이나 지배구조의 교체에 성공할 수 있을지. 아니, 우리에게 제대로 된 지배구조의 개념이 있기나 한 것인지. 이런 나라에 얼마나 더 살아야 하는지 답답한 요즈음이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4. 7. 26. 22:05

 


오클라호마주 무어(Moore) 시 초입의 조형물과 자동차들

 

 

 

 

에프 엠(FM)대로 살면, 망할까?

 

 

 

미국에 도착한 지 일주일 만에 차를 구입하여 몰기 시작했다. 오클라호마의 스틸워터는 십 몇 년 전에 지내던 LA보다 도로가 훨씬 한산하고 넓었다. 미국에서는 교차로에 진입하기 직전에 반드시 정지한 다음 어느 방향이든 먼저 와 서 있는 차가 진입하도록 양보해야 한다. 비록 사방에 차 한 대 없어도 반드시 정지하여 두리번거리며 확인한 다음 출발하는 것이 정해진 법규였다. 저 멀리 차도로 사람이 걸어가면 무조건 서서 기다리는 것도 그들의 원칙이었다. 신호등을 지키는 건 물어볼 필요도 없는 일. 법규를 철저히 지키는 미국인들이 답답할 지경이었다.

초기에는 가끔 착각하여 한국에서의 운전 습관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그런 미국의 운전 관습이 몸에 배기까지 한 달 이상이 걸렸다. 이처럼 내가 미국에 체류하면서 감동을 받았던 건 미국인들의 이른바 리걸리즘(legalism)’이었다. ‘고집스런 법칙 존중주의쯤으로 번역될 수 있을까. 간혹 답답하기도 했으나,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힘을 느낄 수 있었던 최고의 장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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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일이지만, 우리는 일리걸리즘(illegalism)’이 관습화된 나라다. ‘고집스런 범칙주의(犯則主義)’  혹은일상적 범칙주의’  쯤으로 번역할 수 있을까.어기는 맛에 법을 만든다는 말이 상식처럼 되어 있고, ‘예외 없는 법 없다는 속담을 진리처럼 숭상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차를 몰고 거리에 나가보라. 아무리 차량 대수에 비해 길이 좁아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틈만 나면 교통신호를 무시하고, 횡단보도에 사람이 지나가면 전속력으로 가속페달을 밟아 그 앞을 !’하고 가로질러 내빼는 건 일상적인 모습이다. 직진차선에 차가 밀린다 싶으면 그 옆으로 빠져 나가는 우회차선을 쌩 달려 앞쪽으로 간 다음 뒤에서 묵묵히 기다리는 운전자들을 조롱하듯 끼어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총기 소지가 미국처럼 자유로워진다면, 아마도 사망자의 90% 이상은 도로에서 생겨날 거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 요즈음이다.

내비게이터 덕분이긴 하지만, 감시카메라의 위치를 귀신같이 알아낸 뒤 그 사이사이에선 엄청난 과속도 일삼는다. 당국에서는 구간 단속이라는 지혜까지 내놓았지만, 요즘은 머리 좋은 운전자들 때문에 그것도 무력화 된지 오래다.

이런 일리걸리즘이 교통에만 국한되는 문제일까. 많은 돈을 벌면서 세금 한 푼 안 내고, 건장한 체구로 태어났으면서 병역의 의무를 기피하고, 집 지을 수 없는 땅에 호화주택을 짓고, 선박의 구조를 변경하면서까지 화물을 과적하고...주워섬기자면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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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뒤 국가 대개조에 나서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도 날이 갈수록 무뎌지고 있다.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한다고 이루어질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지하철 사고, 열차 사고, 비행기 사고... 운전자, 정비사 등이 간단하지만 중요한 수칙들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대충대충 해!’라거나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겄어?’라는 무심함과 대범함의 천국이 우리나라다. 집을 지을 때도 넣으라는 철근을 다 넣지 않고, 시멘트의 품질규격이나 분량을 지키지도 않는다. 업자들이 찔러주는 돈 봉투에 감독하는 놈들은 슬쩍 눈을 감아주곤 한다. 식당 하면서 식재료의 원산지 표시 원칙을 지키면 멍청이다. 앞 손님이 먹다 남긴 음식을 다른 손님에게 다시 제공하는 것은 애교. 식재료가 쉽게 상한다고 농약을 치는 인간들이 그들먹한 나라가 우리나라다. 남이야 먹고 죽든 말든, 차를 타고 가다가 바퀴가 빠져 죽든 말든, 곤히 잠자다가 집이 무너져 죽든 말든, 북괴군들이 쳐들어 올 때 포탄이 발사되지 않아 귀한 우리 장병들이 죽든 말든, 열차가 부딪쳐 수십 명의 귀한 사람들이 죽든 말든....내 주머니에 돈만 들어오면 장땡인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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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eld Manual, 에프엠이란 야전 수칙이다. 야전에서 수칙을 지키지 않으면 아군들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절체절명의 원칙이 바로 에프엠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에프엠 대로 살면망한다. 미련하고 답답하다고 욕을 먹는다. ‘바쁜 세상 대충 살지. 뭔 일 났다고 원칙 지킨다나? 아니 지가 잘 났으면 얼마나 잘 났다고 저렇게 규정을 지키며 답답하게 군디야?’ 온갖 욕이 쏟아진다. 그러니 에프엠을 지키려던 사람들도 슬그머니 반칙의 대열로 끼어든다. '망할 놈'의 관습이요, 분위기다. 법을 지키는 사람이 욕먹는 사회를 생각해 봤는가툭하면 범칙자들에게 욕을 퍼붓기 좋아하는 우리들. 스스로의 행동들을 한 번 돌아보자. 하루 중 에프엠대로 법규대로 살아가는 순간이 몇 %나 되는지 살펴보자. 사건이 터지면 정부나 대통령만 욕한다. 자신들은 에프엠대로 법규대로 살아 왔는데, 대통령이나 정부 당국자가 무능하고 사악하여 사고가 났다는 투다. 온통 범법자들로 이루어진 이 땅의 야당 인사들은 한 술 더 뜨면서 대중을 선동하려까지 든다. 한심하다 못해 슬프도록 재미있는나라가 '우리 대한민국'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이미 만들어진 에프엠만 제대로 지켜도 국가 대 개조는 당장 이루어진다!!!

 

 

 


뒤집어진 채 점점 물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세월호[네이버 사진]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