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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3.28 만 하루 동안의 시간여행
  2. 2011.02.13 아, 윤형주!
글 - 칼럼/단상2021. 3. 28. 06:54

말없이 누워 시간을 증명하는 태안사구

 

세사(世事)가 번잡하다는 생각이 들면, 지체 없이 고향을 찾을 일이다. 고향을 찾는 일은 시간여행이다. 하기야 모든 여행이 시간여행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고향을 찾는 일은 다른 곳을 찾는 것과 다르다. 낡은 집 혹은 집터와 부모님의 산소가 있어 특별하다. 자연이 변했고 그 옛날의 사람들도 더는 살고 있지 않지만, 다북쑥으로 뒤덮인 집터나 산소는 의연히 그곳을 지키고 있지 않은가. 수많은 발자국들이 찍혀 있고 그 발자국들에 묻어온 바깥세상의 티끌들이 켜켜이 쌓여 있으며 각종 잡초들이 자라나 엉켜 있는 곳. 그곳에 서리고 앉아 있는 스토리와 히스토리를 헝클어진 실타래 풀 듯 정리하려면 어쩔 수 없이 타임머신을 타야한다. 그래서 심사가 복잡할 때면 삽과 쟁기를 던져두고 달려가는 곳이 고향이다.

 

어릴 적 소에게 풀 뜯기러 다니던 백사장. 물소리와 물빛은 여전하고, 수평선에서 들려오는 뱃고동 소리도 그대로다. 겨우내 말라붙은 통보리사초가 바닷바람에 일렁이고, 그 사이에서 간신히 삶을 부지하고 있는 해당화 줄기들은 조심스레 눈을 틔워내고 있다. 해변에 빠끔빠끔 뚫려있는 작은 구멍들은 아마 부모 품에서 갓 떨어져 나온 달랑게 아가들의 새 집들일 것이다. 주변이 말끔한 어미 게의 집들과 달리, 녀석들의 집 주변은 온통 장난처럼 그어놓은 그림들로 어지럽다. 하하, 장난꾸러기 아가 달랑게들이여, 부디 행복하기를!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모래언덕을 힘겹게 지나 소나무 숲으로 들어간다. 뚫고 들어갈 수 없을 만큼 빽빽한 곰솔들. 바람에 실려 번져 나가는 그들의 노래가 미세먼지로 더껑이 진 내 귀를 간질인다. 그래, 잘들 자랐구나. 손가락 굵기의 묘목을 새하얀 모래 언덕에 꽂아 넣던 수십 년 전 그 시절. 어찌 알았으랴? 순식간에 이토록 장대한 소나무 숲으로 자라날 줄을! 해신(海神)과 풍신(風神), 그리고 토신(土神)이 누천년 쉼 없이 불고 쓰다듬으며 만들었을 모래동산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신의 손길이 만든 사구(沙丘)들 대신 개미 같은 인간들이 그 곱고 이국적인 동산들을 눈 깜짝 할 사이에 집어 삼키지 않았는가. 해신과 풍신이 안간힘을 써가며 모래 알갱이들을 불어 올리고 있지만, 저 무성하게 태양을 향해 뻗어 올라가는 소나무 숲을 어찌 덮어버린단 말인가. 소를 풀밭에 풀어놓고 벌렁 누운 채 수평선을 바라보며 ‘따분한 고향’ 탈출을 꿈꾸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모래밭 한 가운데 화석으로 남아 있음을 비로소 발견한다. 수십 년 세월의 강을 건너며 모래밭에 남은 그 자국은 오히려 선명하게 내 눈앞으로 다가 서지 않는가. 자연은 바뀌어도 자연 속에 남겼던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은 계절 따라 색깔만 바꾸어 갈 뿐, 사라지지 않음을 비로소 확인해주지 않는가.

 

내 옛집이 앉아있던 빈 터, 아직도 나를 쓰다듬어 주시는 조부모와 부모의 산소, 어린 시절 뒹굴며 찍어 놓은 모랫벌의 내 모습, 순식간에 모랫벌을 삼키고 하늘같이 자라난 소나무들,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않고 모래알을 불어 올리는 해신과 풍신 그리고 토신, 작은 구멍을 뚫고 구멍 앞에 현란한 그림들을 그려놓은 아가 달랑게들... 모두가 내 시간여행을 가능하도록 한 도우미들이었다. 시인 서정주는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라고 국화를 노래했지만, 젊은 시절 욕망과 꿈의 미로에서 헤매다가 고향 앞에 돌아와 끊임없이 밀려드는 바닷물과 이젠 한 줌 사구에 남은 그 옛날의 내 모습이나 찾아볼 뿐이다.

 

왜 고향을 찾는가. 내 모습을 찾기 위한 시간여행. 그것을 가능케 하는 타임머신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말없이 누워있는 사구

 

할 말이 많은 사구

 

사구와 풀들

 

사구 뒤편의 곰솔밭

 

 

 

건강한 곰솔

 

 

곰솔의 남성미

 

 

사구 앞의 등대

 

 

사구의 주인 갈매기들

 

사구 앞 해변

 

 

태안사구 아가 달랑게들의 집들과 그림

 

태안사구의 태양

 

부모님 산소

 

나무숲이 되어버린 고향집터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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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1. 2. 13. 15:31

아, 윤형주!

 

내 10대 중반에서 20대 초반에 걸쳐 있던 70년대는 온통 회색빛 시간대였다. 독재정치와 매판자본(買辦資本)에 의한 산업화가 우리 사회를 짓누르던 그 시절. 우울한 내 청춘에 따스한 햇살이 비집고 들어올 틈은 조금도 없었다. 그 때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 조영남, 양희은, 박인희, 이장희 등이 동분서주하며 가난하던 내 심령을 토닥여주었다. 그들이야 삶의 방편으로 자신들이 좋아하던 노래를 열심히 불렀겠지만, 나는 그런 노래를 들으며 새로운 세상과 삶을 상상하곤 했다. 지금 가요계 아이돌들의 노래는 체험의 세계로부터 한 발짝도 못 나가지만, 당시 그들의 노래는 우리를 ‘꿈꾸게 하는’ 마력을 갖고 있었다.

 

그 때 윤형주는 젊은 여성들의 로망이었다. 당시 우리 인구가 3천만이라 했다. 그 중 반은 1500만의 여자, 그 중의 반에 해당하는 750만의 젊은 여성들은 모두 윤형주의 팬이었다. 전 인구의 4분지 1이 윤형주를 바라보며 가슴앓이를 하던 형국이었으니, 그로서 무엇 때문에 대통령을 부러워했으랴? 같은 남자로서 그의 여성적인 목소리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으나, <하얀 손수건>ㆍ<축제의 노래>ㆍ<웨딩 케익>ㆍ<슬픈 운명>ㆍ<비와 나>ㆍ<조개껍질 묶어>ㆍ<비의 나그네>ㆍ<두개의 작은 별>ㆍ<우리들의 이야기>ㆍ<바보>ㆍ<고백>ㆍ<사랑스런 그대>ㆍ<어제 내린 비> 등 무수한 히트곡들은 어쩌면 그리도 무딘 내 감성을 못 견디게 긁어대던지! 지금도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잡으면 나는 어김없이 <어제 내린 비>를 첫 노래로 부른다. 부드러운 멜로디가 내 목을 가다듬는데 효과적일 뿐 아니라,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가 내 몸과 마음을 흠뻑 적셔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내 청춘의 일부를 지배해온 윤형주가 이 나이 먹도록 내 감성의 한 부분을 휘어잡고 있음을 새삼 확인하는 요즈음이다.

 

***

 

그 윤형주를 낙산의 바닷가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간헐적으로나마 방송매체들을 통해 수십 년 간 만나온 그를 이번에는 바로 수m 앞에서 육성으로 만나게 되었다. 가수 아닌 장로의 직함을 갖고, 우리에게 달려온 그였다. 통기타를 멘 60대의 장로님. 그러나 그의 해맑은 얼굴과 음성은 젊은 시절 그대로였다. 청중석에 앉은 30대에서 60대까지의 교수들은 숨죽인 채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응시했다. 그가 1947년생이라니 올해로 만 64세. 나이로 치면 청중석의 원로교수들과 동렬이었지만, 청중들은 모두 40년 전인 20대로 돌아가 20대 청춘인 그의 손끝과 입술을 주목했다. 조분조분한 미성(美聲)으로 자신의 삶을 말하고, 간간이 노래를 섞었다. 열린 무대 위에서 ‘말과 노래’를 적절히 엮어가며 자신의 일생을 서사적으로 짜 나갔으니, 말하자면 그를 일러 현대판 ‘판소리’의 창자(唱者) 혹은 광대(廣大)라고나 할 수 있을까. 그렇게 그는 장시간 청중을 휘어잡는 마력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무식했던 나는 그가 단순히 뛰어난 아티스트인줄만 알았다. 그러나 식민 상황 아래 북간도에서 시작된 그의 집안 내력을 듣는 순간, 갓난 윤형주를 안고 찬송가를 자장가처럼 들려주시던 그의 모친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가 이 시점에 어떻게 장로의 직함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혼의 위안을 제공하는 정신적 아티스트가 되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와 함께 사촌형 윤동주 시인이나 동경에서 시인과 함께 공부했다는 부친[중문학자 윤영춘 박사]의 사연을 듣고는 그의 서정적 감수성이 어디서 발원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함께 새로운 음악세계를 열어간 동료, 후배들과의 교분을 통해 그가 지닌 감성의 온도까지 느낄 수 있었다. 끈끈한 인간적 교분으로 마지막 가는 길을 찬송으로 배웅해드린 미당 서정주 시인을 언급하면서 반짝 보인 눈물이나 카네기 홀에서의 성공적인 가족 음악회를 언급하면서 살짝 보여준 달뜬 표정 등은 아름다운 목소리 저 너머에서 빛을 발하는 일종의 후광(後光)인 셈이었다.

 

압권은 자신이 발견한 절대자의 존재를 말할 때였다. 뜻하지 않게 얽혀 들어간 감옥에서 만난 하나님. 그러나 그건 태아시절부터 어머니로부터 받은 신앙의 힘이었음을 그는 힘주어 말하고 있었다. ‘물에 빠진 자가 스스로의 머리털을 잡아 올린다고 구원받을 수 없듯이 누군가가 나를 구원해 줄 때 비로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 스스로 간절하게 찾아야 구원자가 나타난다는 것, 간절하게 찾는 이웃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 그의 나직하면서도 힘 있는 말들은 감미로운 선율과 함께 낙산의 해변에 밀려드는 동해바다 파도보다 훨씬 강하고 무겁게 내 마음을 적셨다. 내 청춘의 한 부분에 남아있던 아티스트 윤형주와의 첫 만남은 희미해진 내 마음 속 윤형주의 이미지를 새롭게 색칠해줄 것이다. 그리고 그 추억은 새롭게 한동안 이어질 것이다. <2011. 2. 10.>

조규익(숭실대 교수)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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