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8.01.17 12:47

작비금시(昨非今是)의 깨달음

 

 

4년 전(2013. 9.~2014. 2.) 미국에 다녀와서 책(<<인디언과 바람의 땅 오클라호마에서 보물찾기>>, 푸른사상, 2014. 11.)을 한 권 낸 바 있다.(백규서옥 블로그 No.119 참조) 당시 그 책을 교수들에게 증정하면서 나름대로의 소회를 적은 서한도 책갈피에 끼워 보냈는데, 책을 받았다는 반응은 10% 정도였고 그 서한에 대한 반응은 거의 zero에 가까웠다.

 

객쩍은 짓을 했나?’라고 자책하며 한동안 겸연쩍은 시간을 보냈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 그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지난해 숭실 근속 30을 맞게 되었다. 나름대로 어떻게 기념을 할까 생각하다가 부랴부랴 새 책(<<<거창가> 제대로 읽기>>, 학고방, 2017. 10. 23.)을 내고, 교수들에게 돌렸다.(백규서옥 블로그 No.3 참조) 학자가 시간의 마디마디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수단으론 책을 능가할 게 없다는 것이 내 철학이기 때문이었다. 이번의 응답률은 대략 20%였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표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휴지통에 버린 경우가 대부분이었겠지만, ‘당신과 같은 직장에서 한 솥밥을 먹으며 30년을 근속하고 있노라는 인사는 전해지지 않았을까.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허전한 마음을 다독여야 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논문을 쓰다가 책 한 권이 필요하여 책장을 뒤지던 중, 책들 속에 끼여 질식하기 직전의 <<인디언과 바람의 땅 오클라호마에서 보물찾기>>를 발견했다. 책을 펼치자 이쁘게편집출력된 서한이 접힌 채로 툭 떨어졌다. , 바로 내가 정성스레 작성하여 교수들에게 보낸그 편지였다. 읽어보니, 숫자(3336/3033)만 바꾸면 현재의 내 상황을 정확히 드러낼 만한 내용이었다. 교수직이 얼마나 따분한생활인지, 이 글을 읽고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이 편지를 버리기가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숫자만 바꿔 이곳에 올리고, 그 때 그 편지와, 그 글에서 숫자만 바꾼 숭실 근속 30년의 인사장을 늦었지만 이곳에 올린다.

 

                                                       ******

 

        님께

 

 

안녕하신지요?

인문대 국어국문학과에 재직하고 있는 조규익입니다.

 

엊그제 여름이었는데, 벌써 겨울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늘 그래 왔습니다만, 최근 들어 시간의 덧없음을 더욱 절감하게 됩니다. 저는 해군사관학교의 전임을 시작한 스물넷부터 36년째, 경남대학교의 전임을 시작한 스물일곱부터 33년째 상아탑을 지키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도 저보다 앞서 이 길을 걸어가신 선배님들을 뵈며 참으로 끈기 있게 한 길을 걸어오셨구나!’라고 경이로운 눈길을 보내곤 했는데, 저도 이미 그 반열에 들어서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간의 세월을 돌이켜 보면, 그저 잠시 졸다 깨어보니 한낮이 기울어 버린그런 느낌입니다. 이제 비로소 흘려보낸 시간의 덧없음과 함께 맞이하는 시간의 질과 양이 나날이 달라짐을 절감합니다. 명문 <귀거래사(歸去來辭)>를 통해 마음이 육신의 노예가 되어(心爲形役)’ 동분서주하던 과거의 시간대에서 전원으로 돌아온 뒤 어제가 그릇되었고 지금이 옳다(昨非而今是)’고 선언한 도연명(陶淵明)을 떠올립니다. 저도 무명(無明)의 어제에서 깨달음의 오늘로 돌아 왔다고 한다면, 좀 주제넘은 말일까요? 시간의 소중함을 이해하고 좀 더 본질에 충실한 생활로 돌아간() 것을 도연명이 말한 작비금시(昨非今是)’의 뜻으로 이해해도 되겠지요?

 

꽤 오래 전에 귀한 자료(<거창가>)를 입수한 뒤 책 한 권과 논문 여러 편을 낸 바 있으나, 다른 데 신경을 쓰다가 그 귀한 것을 그만 10년 넘게 망각의 늪에 빠뜨려 놓고 있었습니다. 최근 새로 쓴 글들을 하나로 엮고, 오독(誤讀)오역(誤譯)을 바로잡아 새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우리네 속담이 있던가요? 책이 나온 뒤 가족들과 지인들을 불러다가 소중한 약속을 나누다가, 오랜 세월 한솥밥을 먹어 온 벗님들을 문득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욕심은 후회를 남기고, 반성 없는 후회는 파멸을 부른다는 금언을 되새기며, 이 공동체에서 더 머물게 될 몇 년 간 좋은 추억들만쌓고 싶은 소망으로 파편화된 제 학문적 견해들이나마 엮어 올리오니, 부디 소납(笑納)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017. 12. 31.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조규익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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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6.08.20 21:01

박사학위를 받은 두 제자를 보며

 

 

 

 

 

 

 

 

박사학위만 받으면 그럴 듯한 자리를 차지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박사학위는 사람까지 달라보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박사학위는 아무나 받을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었을까. 세상사람들은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을 외경(畏敬)의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박사학위 수여식은 긴 가방끈의 종착역이었으며, 상아탑 안에서의 연찬(硏鑽)을 종결하는 표지가 바로 박사학위였다. 세상 사람들이 박사학위를 존경하니,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은 함부로 행동하지 못했다. 박사학위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지긋이 눌러주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지방 소도시의 어느 대학에서 있었던 일 하나. 당시 그 도시엔 작은 대학 둘이 있었다. 둘 중 큰 대학의 학장이 그 도시의 유일한 박사였다. 대학의 졸업식이나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이면, 그는 집에서 가운과 박사모를 착용한 채 휘적휘적 걸어서 학교 혹은 행사장까지 나가곤 했다고 한다. 그 스스로 자신의 박사학위가 얼마나 자랑스러웠겠으며, 그곳 사람들은 그가 얼마나 존경스러웠을까.

 

구제(舊制) 박사 시대가 오래 지속되면서, 박사학위는 그야말로 학문의 완성자에게 주어지는 완장 같은 역할을 했다. 정말로 아무나 받을 수 없는 게 당시의 박사학위였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명분과 이념을 중시하는 시대정신이 무너져 가면서 그 자리를 실용과 실리가 메우기 시작했고, 박사학위의 의미 또한 묘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가끔은 약간 우스운 인사들이 박사학위를 받는 일이 생기기도 했고, 박사학위가 돈으로 거래된다는 소문들이 심심치 않게 돌기도 했다. 구제 박사의 구제(舊制)’구제(救濟)’로 희화화되기 시작한 것도, 가짜박사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시절부터였다.

 

서양에서 받아들인 제도이겠지만, 우리 사회에도 신제박사가 등장했다.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자격시험과 논문만 통과되면 누구나 박사를 받을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든 건 일종의 혁명이었다. 박사모의 아우라가 바람처럼 사라지고, 근엄한 박사가운의 신비로움은 거추장스러움으로 전락했다.

바야흐로 박사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한참 전에 '도나 개나 모두 박사 되는세상에 살게 되었다고 도 넘은 탄식을 내뱉던 구제박사 한 분을 만난 적도 있다. 권위와 우상이 파괴된 보통인들의 사회이자 대중 사회가 그에게는 바로 도나 개나 모두 박사인 세상으로 비쳐진 모양이었다. 물론 제대로 된 박사가 드문 세상, 표절박사들이 고위직에 앉아 거들먹거리는 세상, 우리가 지금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것도 사실은 사실이다.

 

***

 

오늘, 내 제자 둘이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가운데 열정 하나로 힘겹게 박사학위를 받은 그들을 힘 빠지게 하려고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다. 옛날의 박사학위는 값이 나갔는데, 지금의 박사학위는 그렇지 못함을 말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옛날은 옛날대로, 지금은 지금대로 박사모를 쓰는 일은 쉽지 않다. 사실 신제박사 초창기에는 박사학위를 받고나서 크게 앓아눕는 인사들이 많았고, 박사학위를 받자마자 유명을 달리하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나왔으며, 심지어 학위수여식장에 가기 직전 삶을 마감한 분들도 더러 있었다. 박사학위가 통과된 뒤 혹은 박사학위를 받은 뒤 한동안 앓아눕는 사례를 지금도 자주 목격한다. 예나 지금이나 박사학위 공부가 쉽지 않다는 방증이리라.

 

최연 박사는 중국 산동성 옌타이에 있는 노동대학교(魯東大學校) 교수다. 2012년 과정을 시작한 두 학기 만에 아이를 출산했고, 첫 돌도 안 된 아기를 떼어놓고 돌아와 박사공부를 이어온 입지전적여성학자다. 3년 만에 박사학위를 따낸 저력의 근원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뛰어난 천품이나 자질이 1차적 요인이었겠지만, 아가와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 기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분투노력한 지극한 모정이야말로 결정적 요인이었으리라. 한국에서 살아온 우리도 재미없고 어렵게 여기는 계녀가류 규방가사이쁜 아가 옷 누비듯한 땀 한 땀 떠 내려 간 작업이 바로 그의 논문이다. 시간·공간의식이나 에코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꽉 막힌 규방에서의 한심함을 정연한 담론으로 승화시킨 그 옛날 여성들의 삶을 잘도 요리하여 먹음직스런 모습으로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최 박사는 조만간 출간될 그의 책 머리말에서 계녀가류 규방가사에 대한 깨달음을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계녀가류 규방가사를 공부하면서 놀라운 깨달음이 왔다. 사실 여성 억압적 담론의 계녀가류 규방가사로부터 시대정신과 어긋나는 따분함을 느끼고 떠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한 꼭지 두 꼭지 작품들을 읽어나가면서, 마냥 따분한 이야기들의 반복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대로 하나의 구조 안에 공존하는 표층성과 이면성을 해석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특별히 여성들에게만 엄혹한 잣대가 적용되던 암흑시대에 여성들이 살아남기 위한 돌파구는 무엇이었을까. 이면적 의미를 역으로 마련해 놓은 그 시대 여성들의 지혜가 바로 생존을 위한 돌파구였고, 의도하지 않고도 오늘날의 여성시대를 마련하게 된 그 시대 여성들의 역사적 혜안이었다. 작품들에서 공간이나 시간의식, 생태여성주의 등을 읽어낸 것도 바로 그런 깨달음의 결과였다. 남성들의 기세가 등등하지만, 결국 그들도 언젠가는 남성과 동등한 여성 고유의 역할을 인정하게 되리라는 믿음 아래 인고(忍苦)의 세월을 견디며 살아나온 건 아닐까.”

 

그의 깨달음이 명료하여 나는 일단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 시대 여성들에 대한 동정이나 공감 없이 이런 논리가 가능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에 더욱 그랬다. 그 정도의 결심과 노력을 지속한다면, 조만간 학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겼던 것이다.

 

2002년 강의실에서 만난 학부 초년생 이상욱(무늬상점 대표)의 반전(反轉)과 발전(發展)은 내 자긍심의 바탕이다. 학부 초기 술에 찌들어 지내던 그였다. 그러나 단 한 번의 꾸짖음과 결심으로 학구(學究)에 몰두하면서 보여준 변신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내 강의와 논저들을 통해 노래문학으로 보아야 하는 고전시가의 본질을 잘도 캐치하여 오늘날의 케이팝(k-pop)으로 연결시킨 그는 얼마나 명민한가!

그는 싱어송라이터(singer-song writer)로서 음반도 여러 장 냈고, 음악시장의 한 부분을 담당하게 되었으니, 그의 미래는 참으로 밝다. 사실 케이팝이 세계 음악 시장의 핫한이슈로 떠올라 있긴 하지만, 현상에만 열광할 뿐 그 미학적 근원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지한 것이 우리의 한계였다. 조만간 출간될 그의 책 머리말 가운데 한 부분을 보자.

 

“'우리의 가맥(歌脈)은 단 한순간도 끊어진 적이 없다.'

철부지 학부생 시절, 스승인 조규익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이다. 별 생각 없이 흘려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옛 노래와 지금 노래가 이렇게나 다른데 무슨 말인가? 둘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는 말인가?’ 나의 연구는 아마 그때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겉모습만을 가지고 성급한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될 일이다. 조금만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대상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왕조나 국가가 바뀌었다하여, 전쟁이 일어났다하여, 심지어 국권을 빼앗겼다하여 한 민족의 노래 문화가 한순간 단절되거나 송두리째 바뀔 수는 없는 일이다. 한국 노래는 아주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변화하며 이어졌다. K-pop에서 전통의 요소와 외래의 요소를 동시에 발견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책은 K-pop을 통해 엿볼 수 있는 한국 노래의 지속과 변이의 양상, 미학 등에 대한 연구서이다. 아울러, 음악 산업의 현장에서 내가 직접 경험한 것들을 정리한 실무 보고서이기도 하다.”

 

그렇다. 내 말을 흘려듣지 않고 결국 박사논문으로까지 승화시킨 사례로는 그가 유일하다. 옛 노래문학으로부터 흘러오는 전통을 인식하며, 스스로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일을 업으로까지 삼고 있으니, 그가 내 학문적 자부심의 바탕이 되어 준 것은 분명하다. 융합과 통섭이 시대정신으로 정착한 지금, 반려자의 전공이자 주업인 디자인과 그의 노래가 시너지를 발휘하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그의 시대가 꽃피어나길 기다리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

 

누구는 주마가편(走馬加鞭)하라했고, ‘미운 자식에겐 떡 하나 주고, 이쁜 자식에겐 매 한 대 안기라는 옛말도 있다. 그러나 옛 말들이 반드시 맞는 것은 아니다. 달리는 말에 채찍을 더하면 그냥 쓰러질 수도 있다. ‘매 한 대보다 떡 하나가 젊은이들에게 오히려 도움 되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다. 시대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옛 어른들의 말씀을 묵수(墨守)하는 것은 지혜가 아니다. 술이부작(述而不作)보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을 삶의 지표로 삼아야 한다는 내 철학을 바탕으로 오늘 학위를 받은 두 제자들의 단점 대신 장점을 들어 보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니 당사자들이나, 이 글을 읽으시는 강호제현은 부디 양찰(諒察)하시기 바란다. 

 

 

 

백규 연구실에서

 

                                선배들, 지도교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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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4.07.10 12:13

교육부 장관 후보 청문회를 보며

 

 

 

몇 년 전의 일이다. 가까이에 있던 지인들 중의 하나가 연구비 부정 집행으로 검찰에 불려간 일이 있었다. 학생들에게 돌아가야 할 돈의 상당부분을 자신이 편취(騙取)’한 혐의였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새파랗게 젊은 검사에게 그건 자신이 주도한 일은 아니며, 그간 학계에서 관행적으로 해오던 일이라는 요지로 강변을 했다 한다. 평소 그에게 별 호감을 갖고 있지도 않았지만, 당시 그가 했다는 그 말을 듣고 나서 그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마저 접고 말았다. 자신의 범죄행위를 학계의 관행으로 눙치려고 한 그의 그 말만으로 판단하자면, 그는 인간도 아니었다. 

 

                                 청문회에서 진땀을 닦고 있는 교육부 장관 후보[사진은 중앙일보에서 가져 옴]

                    

 

요즘 또 다시 내 속을 긁는 인간이 하나 등장했다. 언론 매체들을 매일 매 시간 새로운 뉴스로 도배하고 있는 인물. 바로 교육부 장관 후보로 내정된 김명수 교수다. 처음에 그 이름을 접하곤 하도 듣보잡이라서, ‘박 대통령이 모처럼 의외의 인물을 하나 찾아냈구나!’ 하고 은근히 기대를 했었다. 나와 분야가 다르니 처음 듣는 이름이라고 무조건 폄하할 일은 아니고, 무엇보다 똑똑한 인물로 차고 넘치는 대한민국에서 상아탑에 틀어박혀 조용히 학문을 연구해온 참 학자이려니!’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후보 지명의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그에 관한 온갖 추잡하고 저급한 소식들로 매스컴은 도배되기 시작했다. 논문 표절[*후보자의 사례는 '표절'과 '탈취'가 뒤섞인 경우다], 칼럼 대필, 사교육 업체 주식 투자 등등. 학자로서는 가장 추악하면서도 빠져나갈 수 없는 범죄행위들의 한복판에 그는 서 있었다. 급기야 그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은 그런 범죄의 과정들을 언론에 낱낱이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도 얼굴을 들고 청문회 자리에까지 나온 그는 참으로 후안무치했다. 더욱 고약한 건 청문회장에서 자신의 비행을 변호하기 위해 관행이란 말을 꺼내들었다는 점이다. 자신의 그런 행위들이 그 시대의 관행이었으니, 잘못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의 그 말 한 마디에 나는 조금 전에 먹은 음식을 토하고 말았다. 앞에 말한 연구비 부정 집행 교수가 사용한 관행이란 말을 김 교수 역시 청문회장에서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만 것이다.

 

 

관행이라? 학생들에게 돌아가야 할 연구비를 편취한 행위가 관행이라? ‘제자의 논문에 자신의 이름을 제1저자로 얹고, 그 논문으로 연구비를 받아 챙기고, 한국연구재단의 실적목록에는 아예 자신의 단독논문으로 올리고, 그런 논문들로 승진을 하고, 일간신문에 기고하던 칼럼을 학생들에게 대필시킨그런 행위들이 관행이라?

 

 

국가가 발주하는 모든 프로젝트의 경우 반드시 연구원들에게 돌아갈 인건비의 액수가 예산으로 정해져 있고, 연구비 집행 기관에서는 연구 책임자인 교수를 경유하지 않고 그들에게 직접 지급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연구 책임자가 연구원들이 지급받는 돈의 일부를 자신에게 보내도록 강요한다면, 어렵지 않게 그 돈을 편취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칼을 들고 행인들의 돈을 빼앗는 것만큼이나 극악한 범죄행위다. 자신이 책임자로 되어 있는 프로젝트에서 가난한 젊은 학자들이 일시적으로라도 생활비를 지급받게 되는 사실에 마음 편해 하고 안도하는 것이 대부분 교수들의 상정(常情)이다. 주변의 젊은 학자나 학자 지망생들이 생활고에 부대끼지 않고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을 자신이 만들어 주었다면, 그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논문 한 편을 써보면 안다. 글 쓰는 노동이야말로 등잔 속의 기름이 바작바작 말라가듯얼마나 삶의 진액을 소모하는 일인가를, 직접 써본 사람만 알 수 있다그런 논문을 빼앗는다는 것은 무엇으로도 변명할 수 없는 범죄다. 그것도 다른 사람 아닌 제자의 논문을 자신의 것으로 빼앗았다니, 말문이 막힐 일 아닌가. 교직에 종사해온 그 긴 세월 동안 단독저서 한 권 내지 못했다는 사람이니, 단독 논문인들 제대로 낸 적이 있을까. 학문과는 거리가 먼 국회의원들이 표절의 의미에 대해서 물었으나 제대로 답변조차 못했다니, 다시 무슨 말을 덧붙이랴! 그런 사람을 교육부 장관으로 간택하고 국회에 통과시켜 줄 것을 요청한 대통령은 대체 어떤 사람인가. 

 

 

이제 다시 찾을 일 없을 것처럼, 우물에 똥을  퍼붓고 간못된 인간들이다관행이란 편리한 말로 자신들이 몸담았던 대한민국의 지식사회를 잠재적 범죄 집단으로 몰고 갔기 때문이다. 자신의 처지가 아무리 궁하다 해도 대다수 선량한 이웃들의 얼굴에 똥물을 끼얹어서는 안 된다. 물론 어느 공동체에도 범죄자는 있다. 그렇다 해도 그런 범죄행위를 관행 운운의 궤변으로 일반화시켜서는 안 된다. 똑똑하지만 가난한 제자들이나 주변의 배고픈 학자 지망생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길 바라는 대부분의 교수들에게, 지금도 연구실에 틀어박혀 한 편의 논문을 완성하기 위해 기력을 소진하고 있는 학자들에게 그 이상 더한 모욕이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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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0.10.25 10:57
 

 교수들을 ‘구름 위의 신선’이나 ‘도덕군자’ 쯤으로 생각하는 세상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난다. 요즘 들어 교수가 관련된 파렴치 범죄들이 노출되면서 교수들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은 바뀌고 있지만, 그동안 그들에게 주어왔던 기본점수까지는 깎으려 하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 대다수의 가상한 정서다. 전통시대에 형성된 스승관(觀)이 우리 사회에 온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르침과 배움’이라는 ‘정신적 거래행위’를 시장에서 사고파는 ‘물질적 거래행위’와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범주에 올려놓고 전자를 신성시하는 행태는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어렵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요즘의 ‘가르치고 배우는 행위’를 상행위(商行爲)와 일치시킴으로써 교육과 관련된 세태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그다지 일반화된 생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상당수의 대학교수들이 국회의원 혹은 정부의 고위직으로 발탁되는 모습들을 보면서 형성된 보통사람들의 교수관(觀)이야말로 교수직에 대한 일종의 ‘우스꽝스런 외경심(畏敬心)(?)’이라고나 할까.

 그 뿐 아니다. 교수로 임용되는 일의 지난(至難)함 아니 극난(極難)함이 교수직에 대한 환상이나 편견을 고조시키는 데 분명한 일조를 했다. 보라! 넘쳐나는 교수임용 대기자들, 예비 학자들, 그리고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한 채 구체제 속에서 양산되고 있는 대학원생들... 교수직을 아예 뽑지 않거나 뽑더라도 비정년직으로 대충 땜질하고 있는, 교수시장의 급격한 변모양상을 보면, 이런 문제는 갈수록 심화될 것이다. ‘교수직 진입의 어려움’은 ‘교수직에 대한 선망’을 더욱 촉진시킬 것이며, 교수직에 대한 선망은 다시 교수직에 대한 진입 욕구를 증진시킬 것이다. 이런 현실은 유능한 대기자들의 교수직 진입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는 일종의 ‘악순환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교수직 혹은 교수들의 본질에 대한 일반인의 시각은 더욱 왜곡되어 갈 것이다.

 교수도 사람이다. 아니 생활인이다. 뿔을 마주 대고 싸우는 벼랑 위의 산양(山羊)들처럼 공동체 안에서 작은 이해관계로 첨예하게 다투고, 한줌의 이익 때문에 상대방을 음해하기도 한다. 정론을 펴기보다는 하잘 것 없는 입방아로 공동체를 분열시키거나 국가와 사회에 해악을 끼치기도 한다. 말하자면 대학 바깥의 사람들보다 저급한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반인들은 상아탑의 교수들을 ‘맹신’한다.  
    
  ***

 최근 고려대 정 아무개 교수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언론보도들은 공통적으로 그가 ‘왕따’ 때문에 자살했다고 한다. 그리고 ‘왕따’의 원인을 지방대학 출신이라는 데서 찾고 있다. 대한민국의 중심인 서울에 있고, 현직 대통령을 배출한 대표적인 메이저 대학들 가운데 하나가 고려대학이다. 한국 대학들의 저급한 관행으로 미루어 고려대학 교수진이라면 대부분 고려대학 출신 이상들만 모여 있을 것이니, 지방대학인 공주대학 출신의 정교수가 흡사 ‘붕어 떼 틈새의 피라미’ 정도로 여겨졌을까? 피라미 정도가 붕어 급인 자신들 사이에서 노니는 ‘꼬락서니’가 눈에 거슬렸을까? 그들은 왜 ‘가련한’ 그를 왕따시킨 걸까?

 사실 한 집단에서 왕따를 당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대다수 구성원들과 다른 행동양태를 갖는 경우, 다른 하나는 자신들의 평균보다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그것들이다. 양자 모두 사회적 병리현상들로서 ‘치유 불가능한 부정적 집단행동’이라는 점에서 사회의 저급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현상들이다. 실제 대부분의 경우 능력이 모자라서 왕따를 당하는 것은 아니다. 외부로부터 이입(移入)된 구성원의 능력이나 자질이 자신들의 평균보다 낮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 당황스런 다수는 공격성을 보이게 된다. 까닭 없이 특정인을 배척하는 행태, 그것이 바로 ‘왕따’다.

 나는 정교수의 능력이나 인간관계를 잘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한국 교수시장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자랑하는 ‘카르텔’을 고려해볼 때, 그가 지방대학 출신으로서 고려대학 같은 메이저 대학에 입성했다는 그 사실은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일이다. 그가 능력을 갖추지 않았다면, 무슨 수로 그런 암초들을 피해 ‘교수임용’이라는 피안(彼岸)에 도달할 수 있었으랴. 아마도 간신히[혹은 너끈히] 접안(接岸)에 성공한 그를 보며, 선배교수들이나 동료들은 ‘어라, 저 놈 봐라!’라고 경악했을 것이다. 그의 능력이나 장점을 인정하기보다는 자신들과 다른 학부 졸업장을 쥐고 있는 그가 자신들과 같은 반열에 오른 것을 참지 못했을 것이다. ‘노비문서’인 학부 졸업장의 원천적인 핸디캡을 시원스레 극복해낸 그에게 박수를 치는 대신, 도리어 새로운 양태의 공격을 가하게 되었으리라.
교수들이 뜻만 합친다면 동료교수 하나쯤 ‘왕따’시키는 일이야 무슨 대수이겠는가. 교수가 관여해야 할 온갖 일들이 ‘왕따 작전의 현장’일 것이니, 그 속에서 갓 40의 여린 그가 감내해야 할 부담은 오죽했으랴.

***

한국의 지식사회를 대표하는 것이 대학이고 교수집단이다. 그러나 ‘실력을 제외한’ 온갖 기준들을 지뢰처럼 묻어놓고 차별을 자행하는 ‘무자비한 집단’이기도 하다. 서울과 지방, 서울과 수도권, 본교와 분교 등은 1차적 차별 기준이다. 서울에 있는 대학들이라고 모두 ‘서울대학’은 아니다. 그 속에도 1류, 2류, 3류가 있다. 서울의 1류라고 모두 같은 것도 아니다. 초일류와 범일류가 있고, 준일류도 있다. 2류와 3류도 같은 방식으로 세분되는 것은 물론이다. 최상의 대학 내에서도 음으로 양으로 차별을 자행하는 기준들이 엄존한다. 이런 차별구조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마음의 흐름은 단 두 갈래다. 가당찮은 우월감과 비참한 열등의식이 그것들이다. 일류대학 구성원들이라 하여 모두 같은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속에서도 묘한 차별이 자행되고, 그에 따르는 ‘상대적 열등감’ 또한 엄연히 존재한다.

우월감과 열등의식을 갖게 하는 상황은 언제든 있을 수 있지만, 지식사회의 그것처럼 국가와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것도 없다. 우월감도 열등감도 ‘실력에 의한 자부심’과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현재 한국의 지식사회는 나라의 발전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집단인 셈이다.

***

몇 년 전 미국에서의 일이다. 세칭 일류대학 출신의 유학생을 한 사람 만난 적이 있다. 학교에 갔다가 자신보다 먼저 유학 온 어떤 사람을 반갑게 만났더니, 대뜸 “어중이떠중이대학 출신들이 모두 유학이란 걸 오는구나!”라고 말하더란다. 자신이 나온 대학보다 세상에서 말하는 서열이 한 단계 높은 대학을 나왔다고 생각한 그가 자존심이 상했던 듯 무의식중에 내뱉은 말이었을 거라고 씁쓸하게 웃는 것이었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서 뿔나고,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는 법이다. ‘글로벌 시대’를 고창(高唱)하며 지구촌 곳곳에 나가서도 ‘끼리끼리’ 몰려다니며 ‘누가 감히 우리를 넘보랴?’와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는 못난이들이 바로 우리 지식사회의 자화상이다.  

***

그래서 이 순간,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난 고려대학의 정교수가 아쉬운 것이다. 까짓것 못난이들이 왕따를 시키거나 말거나 굳세게 버티며 ‘노력과 실력’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보여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잘한 참새들의 입방아를 넌지시 웃어주며 학문의 대로(大路)를 뚜벅뚜벅 걸어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2010. 10. 22.

      타쉬켄트의 호텔방에서  
      백규, 통곡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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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0.09.11 08:43

"대리기사 노릇까지… 온종일 교수님 몸종"
상아탑의 그늘- 연구조교 A씨의 하루
교수 자녀 돌보기 등 잡무·심부름으로 하루
"내 공부할 시간은 없어" 참거나…그만두거나…

남상욱기자 thoth@hk.co.kr


'몸종''개인비서'라고 자학하는 학생들이 대학 교정을 배회하고 있다. 교수의 연구보조를 이유로 각 대학 교수 연구실에 상주하는 수 만 명의 대학원생 연구조교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교수의 자녀 보육부터 세금명세서와 같은 개인서류 챙기기, 대리기사 노릇 등 '상전'의 갖은 일을 챙기느라 녹초가 되고 있다. 그렇다고 불만을 드러낼 수도 없다. 교수 눈밖에 나는 순간, 그들의 미래가 단박에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학문의 전당인 상아탑의 그늘에 가려져 있는 대학조교의 실상을 들여다봤다.

8일 오후 늦은 시각. 서울 모 사립대 문과계열 대학원 3학기째인 연구조교 A(29)씨가 교수 연구실에서 나와 도서관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1년 내내 연구실과 도서관을 오가는 반복된 생활이다. 가방에 가득 채운 것도 모자라 겨드랑이에까지 두툼한 책을 끼워 든 그는 밤새 공부할 작정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학기 내 학위논문을 끝낼 계획을 세워두고 강행군 중이다. 하지만 A씨는 "오늘도 교수님 딸의 과제를 도와주느라 하루를 다 보냈다. 교수님 뒤치다꺼리에 공부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공부하러 대학원에 왔는데 이게 뭔가 싶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는 석사과정을 마치는 내년 하반기에 대학원을 그만 둘 생각을 하고 있다. "밖에서 보는 것과 너무 다른 현실에 자괴감이 들었다"는 게 가장 큰 이유. 그 중심에는 물론 '부려먹기만 할뿐 공부에 도움을 안 주는 교수에 대한 원망'이 깔려있다. 그는 "교수가 쓸 논문자료를 찾고, 수업보조에다 시험이나 과제물을 확인하다 보면 이렇게 밤 늦게야 내 공부를 할 수 있다"며 "이런 고생도 미래가 보이면 감내하겠지만 지도교수는 논문지도 등에는 무관심하다"고 하소연했다.

A씨의 하루는 어찌 보면 단순하다. 오전 8시 교수 연구실로 출근, 그날 예정된 교수의 수업자료 챙기기로 일과를 시작한다. 수업에 들어가 출석 체크를 하고, 과제물을 걷거나 교수 전달사항을 전하는 게 그의 일상적인 수업보조 일이다. 간혹 과제물 채점을 직접 할 때도 있다. 그 사이 자신의 대학원 수업도 들어야 한다.

최근에는 지도교수가 학술지 발표 논문을 준비하고 있어 자료수집에 여념이 없다. "논문에 이름 하나 걸어준다"는 '대단한' 조건이 암묵적으로 걸렸지만, 그는 "내가 논문을 쓰는 건지, 교수가 쓰는 건지 모르겠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거부할 수 없다. 학술지에 이름 하나 오르는 것이 다음 학기 장학금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조교를 당장에라도 때려치우고 싶은데, 조교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향토장학금(집)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날 오후 그는 교수와 함께 인천공항에 갔다 왔다. 친한 외국 교수가 한국에 도착한다며 지도교수가 마중을 같이 나가자고 했기 때문이다. "지난 주에는 교수 아들이 학교에 놀러 온다고 해서 오후 내내 놀아줬다"고 했다.

이러다 보면 어느 새 퇴근 시간이다. 퇴근은 물론 교수가 집에 가는 시간이 기준이다. 저녁 술자리가 있으면 함께 가는 경우가 많고, 가끔은 술 취한 교수를 집까지 모시는 '대리운전기사' 역할도 해야 한다. 그는 "한 마디로 비서실에서 근무하는 회사원"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의 하루 근무시간은 평균 12시간. '개인 비서'노릇을 하며 월급은 평균 80만원 가량으로 정확히 등록금만큼이다.

물론 그는 마음에 담아둔 말을 교수에게 한 적이 없다. 그는 "장학금은 물론 논문 심사까지 교수가 전권을 가지고 있는데 힘들다고 어떻게 얘기하겠나. 참거나 학교를 그만두거나 둘 중 하나다"라고 말한 뒤 도서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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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심해어

    백규님, 기자의 작문이라고 하셨습니까?

    이 기사 보다 더 한 일들이 대학원생들과 강사들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 대학원의 현실입니다. 다만 그동안 공부한 것이 아깝고, 또한 논문을 포기할 수 없기에 더러워도 참는 것일 뿐입니다.
    교수, 교수가 대체 무엇이라 말입니까? 진정한 스승이 사라진 이 대학 사회에서 교수는 단지 국어 사전에 나와 있는데로 '대학에서, 전문 학술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나 전문 학술을 제대로 가르치는 사람이 몇이며, 제대로 연구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 글을 읽으며 "혹 기자의 작문 아닌가"라는 반문에 화가 날 뿐입니다.
    제 선배들 중에 정말 술자리에 대학원생들을 데려나와 술자리 끝날때까지 기다리게 하는 선배 교수 여럿 봤습니다. 그건 아주 애교로 봐 줄 수 있습니다. 정말 가관인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전 그런 선배들, 그 이후로 인간같지 않아서 만나지 않습니다. 내 비록 학문은 모자라나 인간인 것이 분명한데, 어찌 개떼들과 어울리겠습니까?
    주변을 가만히 살펴보십시오. 그런 교수들 아주 가까이에 떼거리로 있을 겁니다. 개떼들처럼 말입니다.

    조선의 문신 조지겸의 시가 떠올라 한 수 올려 봅니다.

    鬪狗行 개떼들 / 조지겸 趙持謙

    衆狗若相親 개떼들 친하게 지낼 때에는
    搖尾共行止 꼬리 흔들며 어울려 다니지만
    誰將朽骨投 누군가가 썩은 뼈다귀 하나 던져주면
    狗起衆狗起 한마리 두마리 일어나 우루루 달려가
    其聲은은의우牙 이빨 드러내고 으르릉 먹이 다투어
    大傷小死何紛紛 큰 놈은 다치고 작은 놈은 물려 죽지
    所以貴騶虞 그래서 추우를 참 고귀하다 하는 거야
    高臥天上雲 구름 위에 높이 누워 유유자적하니깐

    * 은은(犬+言, 犬+言) 의(犬+示) 우(口+牛) 추우(騶虞)鬪 : 인자한 성질을 지녔다는 전설상의 짐승

    정치판만 이와 같은 개떼가 득시글한 것은 아닙니다. 대학의 교수사회도 개떼와 같습니다. 아무 문제없이 친하게 지낼 때에는 서로 듣기 좋은 말만 하고 다정한 척 합니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걸린 일이 눈앞에 있으면 물불 가리지 아니하고 달려가 서로 물어 뜯습니다. 마치 개떼처럼 말입니다. 이익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아수라장이 됩니다. 결국 대학의 교수들 간의, 또는 교수와 강사들, 교수와 대학원생들 간의 온갖 갈등도 뼈다귀를 차지하기 위한 개들의 아귀다툼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 중에 가장 회생자는 힘없는 강사들과 대학원생들임을 어찌 모른다 하십니까?
    진정으로 모르시는 것입니까? 아님 반어입니까?

    2010.09.13 23:18 [ ADDR : EDIT/ DEL : REPLY ]
  2. 이승희

    동감합니다. 저도 소위 SKY 대학 대학원 연구조교를 하면서 위와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꾹 참고 석사를 졸업했는데 이제는 학교를 쳐다보기도 싫습니다. 교수들 중에는 술 취하면 여학생에게 성희롱을 하는 교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일을 떠맡기고 돈은 한푼도 주지 않는 교수 등 악질 교수가 다양한데, 여러 대학원생들의 밥줄이 걸려 있는 터라 교수를 마음놓고 신고하지도 못합니다.

    2010.09.16 21:36 [ ADDR : EDIT/ DEL : REPLY ]

글 - 칼럼/단상2007.05.07 13:08
 

교수들은 담론 생산의 주체로 거듭 나야 한다


                                                                                             조규익

제1회 숭실 인문학 포럼의 성공을 보면서 대학의 본질과 가능성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고자 한다. 진부한 말이지만, 대학은 교육과 연구의 중심이고 그 핵심에 교수들이 있다.


해당 분야의 체계적인 지식과 창조적인 능력을 지녀야 전문가가 될 수 있다면, 대부분의 교수들은 1차적으로 전공분야의 전문가들이다. 그러나 교수들이 전공의 협소한 분야에 갇혀 좀 더 넓은 세계나 현실을 보지 못할 때, 그 지식이나 창조력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상아탑 속의 존재만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시대는 더 이상 아니다. 전공분야에 대한 탐구와 함께 세상과의 소통이 필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교수들이 고도의 윤리의식과 해박한 전문가적 식견을 통해 공동체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데 일조하길 바란다. 그러나 현재의 교수집단은 다원화 된 현실 속에서 왜소한 지식인 군상으로 전락되어 가고 있다. 초라한 지식상(知識商)들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눈초리는 차갑다. 그들로부터 아무런 비전도, 철학도, 노력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번 교수집단에 들어가고 나면 기득권을 지키기에 급급한 모습이나 보여주기 일쑤인 점은 더욱 한심한 노릇이다.


그러나 교수집단도 기회와 동기만 주어진다면, 사회의 정론(正論)을 생산하고 주도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이번 포럼은 매우 유익한 기회였다. 최근 기독교에 대한 김용옥씨의 비판적 주장에 많은 문제들이 내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반론이나 비판이 없었던 것은 우리 지식사회에 대한 사망선고나 다름  없는 일이었다. 기라성 같은 기독교 대학들이 포진하고 있음에도 어느 대학 하나 나서서 그의 문제적 논리에 반박을 가하지 못하는 현실을 목도하며 우리는 미래에 대한 일종의 ‘공포’를 경험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숭실 인문학 포럼을 통해 김용옥 논리의 시시비비를 가려 줌으로써 학자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 올바른 판단의 자료를 제공해 준 것은 당사자 김회권 교수를 포함 숭실의 인문학자들이 향후 적극적인 담론 생산의 주체로 나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쾌거였다.


이제부터라도 대학교수들은 전공책의 행간에 현미경이나 들이대는 ‘골방의 샌님’ 신세를 청산하고 사회와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가치 있는 담론을 생산해야 한다. 그것만이 자신들의 전공을 살리고 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며 대학을 살리는 길이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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