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6.12.17 대통령의 콤플렉스
  2. 2015.04.14 성완종 사건을 보며 (2)
  3. 2015.01.23 박근혜 대통령을 보며
  4. 2012.03.10 못난 놈들
글 - 칼럼/단상2016. 12. 17. 13:51

대통령의 콤플렉스

 

 

 

최근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사람들은 그를 비판하고 질타하느라 여념이 없다. 단군 이래 우리가 이렇게 하나로 단결된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보면, 우스갯말로 못난 대통령이지만 국민들의 단결을 위해 큰 공을 세웠다고 말할만도 하다. 의정 단상에서 사자후를 토하는 선량(選良)들 가운데 몇이나 돌을 던질 만한자격을 갖추고 있을 것이며, 촛불을 들고 나선 나 같은 장삼이사(張三李四)들 가운데 몇이나 국민으로서의 모범적인 삶을 살고 있을까. 어차피 물러날 대통령이긴 하지만, 이쯤 우리는 그를 거울로 삼는 게 옳다그를 거울로 삼기 위해서라도 우리 스스로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질 필요는 있다.

 

비선(秘線)의 인물이나 조직이 국정을 농단케 한 일에 대해서는 입이 천 개라도 변명할 수 없다. 그와 함께 불통, 여염집 여인에 의한 연설문 수정(혹은 대필), 머리 손질과 피부미용에 대한 집착 등은 대통령의 큰 문제로 지적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들을 관통하는 핵심은 콤플렉스. 인간의 현실적 행동 및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이나 감정의 복합체가 콤플렉스다. 콤플렉스는 열등의식을 비롯한 내면의 응어리 혹은 억압된 감정으로 구체화 되며, 이런 무의식은 대부분 개인차가 있지만, 간혹 집단적인 모습을 띠기도 한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콤플렉스는 무엇일까. 미안한 이야기지만, ‘공주로 자란 대통령이 타고난 책벌레는 아닌 듯 하고, 순발력 있는 두뇌의 소유자는 더더욱 아닌 듯하다. 성장기 내내 생존경쟁의 현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던 까닭일까. 앎에 대한 욕망과 투지에서 평균치 이하이고, 그러다 보니 모든 분야의 지적 수준이 평균 이하임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인사에 실패했다고 비판을 받긴 하지만, 대통령 주변의 인물들이 대체로 우수한 인재들인 것은 사실이다. 그들로부터 대면보고를 받으면서 자자구구(字字句句) 사전이나 인터넷을 들춰볼 수도 없고, 초등학생처럼 사사건건 질문을 던짐으로써 자존감을 손상받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 모든 보고사항을 문서로 받아보고자 했을 것이다. 혼자 꼼꼼히 읽어가면서 자유롭게 사전이나 인터넷의 도움을 받고자 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자신의 충분치 못한 지적 용량을 부하직원들 앞에서 노출시키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으리라. 대면보고를 수용하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었고, 그 점은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불통이란 비판이 따라붙게 된 것이다. 대통령 자신의 자존심만 지킬 수 있다면, 불통에 대한 비판 쯤 감수할 수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이와 관련되는, 대통령의 특징이 바로 눌변(訥辯)이다. 공자는 欲訥於言 而敏於行(말에 있어서는 어눌하게 하고 실행에 있어서는 민첩하게 하고자 한다)’이라 했다. 공자의 언급대로 심사숙고 끝에 내놓는 말을 어눌하다고 한다면, 그 어눌함이 생각 없이 내뱉는 達辯(달변)’보다 훨씬 낫다. 이 글을 쓰는 나도 대통령  뺨칠 만한 눌변이다. 사실 세상엔 말 잘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런데, 그 말 잘 하는 사람들에게 도무지 믿음이 가질 않는다. 그래서 나는 말 잘하는 사람을 만나면, 대부분 첫판에 , 사기꾼이다!’라는 느낌이 전기처럼 전해져온다. 내가 목격한 사기꾼들 치고 말 못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나의 눌변이 결코 부끄럽지 않고, 대통령의 눌변을 그리 큰 흠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2012년 대통령 선거 토론 때 야당 후보로 출마한 어떤 젊은 여자와 마주 앉은 모습을 TV로 지켜본 적이 있다. 그 젊은 여자는 참으로 말을 잘했다. 그러나 그 역시 내겐 입만 살아있는선동가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차라리 어눌한 대통령이 나았다. 그런데, 대통령은 자신의 어눌함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TV에 나와서 사자후를 토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모두 달변가들이다. 그러나 입으로 하는 말과 속셈이 대부분 다른 경우가 적지 않다. 따라서 잘 놀리는 혀가 그리 중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자신의 어눌함을 매우 부끄럽게 여기는 것 같다. 차라리 자신이 말로 뱉어낼 콘텐츠의 부족을 부끄러워해야 하는데, ‘말솜씨 없음만 부끄러워한다. 그게 바로 해결할 수 없는 그의 어리석음이다.

 

대통령이 눌변과 함께 부끄러워하는 것이 바로 렬한 글 솜씨인 것 같다. 연설문 담당관에게 연설문을 받고서도 다시 최순실의 수정을 받은 이유는 뭘까. 최순실의 어투나 문장이 편했을 것이다. 잘 나고 뛰어난 사람들이 현학적으로 작성한 글보다는 통일은 대박식의 단문이 수준에 맞아 훨씬 맘이 편했을 것이다. 누구나 한 번 두 번 글 도움을 받다 보면, 스스로 글 쓰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글은 습관이다. 한 번 최순실에게 맡겨 본 대통령으로서는 어느 순간부터 대필자 혹은 검토자를 다른 누구로도 바꿀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내 맘을 콕 짚어낼 수 있을까?’라는 찬탄을 보내며, 대부분의 연설문을 그녀에게 맡기는 동안, 대통령 자신의 글 솜씨는 점점 퇴보하고 말았으리라. 아니, 단 한 줄의 글도 제 손으로 써내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말이 어눌하고 글이 졸렬하니, 내로라하는 참모들을 대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말이 어눌하고 글이 졸렬하면, 책이라도 열심히 읽고 짧은 글이라도 열심히 써야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어느 정도 자신감을 회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고자 하는 대통령으로서는 단 한 번도 국민들 앞에서 어눌한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으며, 참모들 앞에서 단 한 점의 무식한 모습도 보여줄 수 없었다.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것이 대통령 권위의 전부라 생각하여 아예 취임 첫날부터 대면보고를 받지 못했던 것일까. 처음부터 그런 콤플렉스를 갖고 있지 않았다면, 어쩌면 오늘과 같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다음이 머리 손질과 피부미용이다. 대통령만큼 나이에 맞지 않는 외모와 고운 피부를 갖고 있는 여성도 드물다고들 한다. 그럼에도 그는 늘 자신의 얼굴과 피부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역시 여성인지라 아름다움에 관한 콤플렉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일 것이다.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여인들의 욕망은 끝이 없다. 그 덕에 우리나라의 화장품 산업이 이토록 발전했겠지만, 대통령까지 그래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각종 주사까지 맞아가며 피부나 머리 관리를 해야 했는지, 생각할수록 한심하다. 화장품 광고마다 화이트닝(whitening)’을 강조하고, 각종 주사제를 선전하며 어린애 같은 피부를 내거는 광고에 한국 여성들이 거금을 아까워하지 않는 건 일견 당연하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나랏돈으로 각종 주사제까지 사들이고, 마구잡이로 비선의 의사들을 불러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런 와중에 불거진 사건이 세월호 7시간이다. 남자고 여자고 간에 60 넘어 귀한 것은 내면의 덕이 내뿜는 광채다. 쓸데없이 이것저것 덕지덕지 바르고, 주사바늘로 밀어 넣어 팽팽해진들 그게 얼마나 지속되겠는가. 대부분 돈과 시간의 낭비요,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우스워지는 일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런 부질없는 일로 국민의 기대와 공적 임무를 저버리는 것은 왜일까.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콤플렉스 탓이다. 그리고 그 콤플렉스는 그간의 삶이 정상적이지 못했거나 불건전했음을 드러내는 증거일 뿐이다.

 

처음부터 대통령에게 이런 콤플렉스가 없었다면, 비선을 가까이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고, 비선이 없었다면, 국정농단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콤플렉스는 물론 죄가 아니다. 자신의 의지나 의도와 무관하게 생겨난 내면의 암 덩이일 뿐이다. 형사법으로 다스릴 죄이기 이전에, 용한 의사들이 달려들어 정확히 진단을 내린 다음 뿌리를 뽑아야 할 병일뿐이다. 지금 우리는 불쌍한 환자 하나를 거리로 내쫓은 뒤 괜한 마음고생으로 뒤척이고 있는지 모른다대통령은 다중(多重) 콤플렉스 환자일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그에겐 추상같은 법의 단죄와 함께 치료의 손길을 건네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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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5. 4. 14. 14:49

성완종 사건을 보며

 

 

 

참 가관이다.

산다는 게 무언지, 우리가 뭘 위해 사는지 참으로 많이 헛갈리는 나날이다.

돈 썩는 냄새가 천지에 진동할수록 국가를 경영하는 인간들이 죄를 짓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가소롭고 딱하다. 매에 쫓긴 꿩이 머리를 논바닥에 쳐 박고 몸부림치는 모습 같아 애잔하기까지 한 요즈음이다. 사방팔방 돈을 퍼주다가 법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게 되자, 동네사람들에게 일러바치고 목숨을 끊은 그 또한 가소로운 건 마찬가지다.

 

돈을 아끼고 불려가며 기업이나 잘 운영할 것이지. 정치에 뛰어들어 기업을 망치고 자신마저 비명에 간 일을 어떻게 변명할 수 있을까. 물론 정치인이 처음부터 정치인으로 태어나는 건 아닐 테고, 기업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정치에 한 발을 들여 놓아야 하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정치판과 거리를 두고도 세계적인 기업을 이룩한 주변의 인물들이 어디 한 둘인가. 모름지기 기업을 운영하는 자라면, 기업인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그 기업을 성실하게 키워가야 하는 것이 본연의 의무일 터. 만에 하나 정치 모리배들에게 돈을 퍼부어야 겨우 기업을 운영할 수 있다면, 만사 밀어두고 그 문제부터 고발하거나 바로잡았어야 옳다. 그런 일이 불가능하여 자살이란 극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다. 그러지 않고 그럴 듯한 감투 하나를 얻기 위해 온 나라를 휘저어 놓은 것이라면, 죽음으로도 그 죄과를 씻을 순 없다.

 

나이 먹을수록 먹는 양이 줄어든다. 잘 차린 밥상을 보면 회가 동하기 전에 걱정부터 앞선다. ‘저걸 다 어떻게 먹는단 말인가’, ‘반도 못 먹고 남기면 그냥 쓰레기로 버려질 텐데...’, ‘엊그제 보도에 한 두 끼로 하루를 지내는 아이들을 보았는데...’ 등등  ‘먹는 것’의 육체적 부담과 사회적 함축의 복잡성 때문에 편치 않은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사실 고량진미의 확보에서 삶의 행복을 느끼는 단계를 넘어서야 비로소 사회적 자아가 제대로 작동되는 법이다. 열심히 먹어도 1년 동안 쌀 한 가마를 못 먹는 게 인간이다. 정치하는 게 ‘돈 쓰는 일’이라면, 돈 없는 자는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한다. 돈 받은 사람들이 모두 ‘꿀꺽했다’고 돈 준 사람은 항변했다. 정당한 정치자금으로 처리하지 않고, 사복(私腹)을 채우더라는 것이다. 참, 그 큰 뱃구레들이 부럽고, 그악스런 욕심보가 놀랍다. 하나같이 돈 받은 일 없다고 발뺌들을 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논바닥에 주둥이를 쳐 박은 꿩’의 형상이다. 애시당초 달라고 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돈 주어놓곤 어려울 때 도와주지 않는다고 앙앙불락하며 '다 까버리는' 행위도 시쳇말로 '껄쩍지근하기'는 마찬가지다.  

 

나라는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고, ‘돈 받지 않은 놈 없는 정치판'은 ‘개판’으로 전락했다. 정신 제대로 박힌 인재들은 산야로 숨고, 사기꾼들만 ‘살판났다’ 활개 치는 세상이다. 정신 나간 기업인은 제가 먹여 살려야 할 종업원과 그 가족들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다. 월급날이 오기만 고대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종업원 아내들의 표정을 단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면, 월급날 아빠가 통닭이라도 몇 마리 사오기를 기다리는 종업원 자식들의 눈빛을 단 한 번이라도 떠올렸다면, 성완종 씨는 ‘천금 같은’ 기업을 그런 식으로 ‘아작 내지는’ 않았으리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과연 그 죄가 사해질 것 같은가.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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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런걸 보면, 기업인은 정치권에 끈을 대야만 잘 살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의문마저도 드네요.

    씁쓸한 현실입니다.

    2015.04.17 12:5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백규

    기업인이 기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날이 바로 우리나라가 한 단계 올라서는 날이겠지요. 기업인들에게 돈을 갈취하지 않고도 정치인으로 바로 설 수 있는 날이 바로 우리나라가 한 단계 올라서는 날이겠지요. 언젠간 그런 날이 오겠지요?

    2015.04.19 23:06 [ ADDR : EDIT/ DEL : REPLY ]

글 - 칼럼/단상2015. 1. 23. 12:30

박근혜 대통령을 보며

 

 

 

‘군자는 말은 어눌하게 하나 행동은 민첩하게 한다’[子曰 君子欲訥於言而敏於行: <<論語>> <里仁>]는 공자의 말이 있다. 군자라면 ‘말수가 적고 좀 느려도 행동만큼은 민첩하게 해야 한다는 것’. 달리 말하면 ‘쉽게 말하지 말아야 하고 일단 말했으면, 반드시 재빨리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뜻이 들어 있을 것이다. 번지르르한 말들을 속사포처럼 내 쏘면서 하나도 실천에 옮기지 않는 달변가들을 꾸짖은 말씀이었을 텐데, 공자 시대의 그런 사정이 오히려 심화 되고 있는 요즈음이다.

 

박 대통령은 누가 보아도 달변가는 아니다.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늘 조마조마한 것이 사실이다. 한 마디 내뱉는 데도 그렇게 힘이 든다면, 도대체 무슨 수로 ‘만기친람(萬機親覽)’을 할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어쩌면 대통령이 소통을 싫어하는 이면에는 말에 대한 콤플렉스가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달변가인 참모들과 정치인들, 기자들을 대하는 일이 끔찍하게 생각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나이 또래의 우리나라 아줌마들을 한번 생각해 보라. '석학 할아비'라 한들 말로 해서야 누가 그들을 이길 수 있을까? 그런 걸 생각하면 박 대통령의 언변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 말 실력으로 정치에 입문하여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니, 대단하다 아니 할 수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바로 그것이 ‘대선 승리의 한 요인’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우리 속담에 ‘말 못하는 사기꾼 없다’는 말이 있다. 대개 앞에 인용한 공자의 말을 보거나 ‘말과 실천’을 결부시켜 온 동양적 사고를 생각해 보아도 ‘말 잘하는 것’이 늘 장점만은 아니었다. ‘깡촌’의 흙 속에서 꼬물거리던 내 코흘리개 시절, 그 때까지 본 적 없는 ‘말끔한 양복’을 갖춰 입고 우리 마을에 내려와  ‘말끔한 달변의 서울말’로 사기 치던 토지 브로커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사기꾼에게 넘어가 몇 십 년을 고생하시던 농사꾼 내 부모의 한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대부분 박 대통령에게 표를 던졌다는 내 친구들의 마음속엔 다른 세대가 쉽게 이해 못하는 그런 공감영역이 있다.

 

자라면서 ‘말만 말끔하게 잘 하는 인간들’을 자주 만났고,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사기꾼들이었음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판들을 여러 번 접해오는 중이다. 참, 말 잘하는 사기꾼들이 많았다. 최근 10년 이내 두 번의 선거판을 말로만 본다면 ‘눌변 : 달변’으로 요약된다. 지금의 50대들이 누구인가? 대부분 어려움 속에서 근근이 살아남아 이제 은퇴기에 도달한 연령대다. 전통 교육 속에서 자라나 ‘농경사회→산업화사회→정보화사회→지식기반 고도정보화사회’의 고비들을 용케도 탈 없이 거쳐 온 사람들이다. 어쩜 비슷하게 고단한 환경과 의식 속에 성장했다는 ‘연대감’으로 뭉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국회에서 사자후를 토하던 달변가도 보았다. 당시 나는 그가 대통령이 되면 안 되겠다는 판단을 내렸는데, 과연 그는 떨어지고 말았다. 그런 달변이 이른바 ‘종북’이나 ‘극좌’와 합쳐지면 나라로서는 재앙이라는 판단이 들었는데, 나 말고도 그런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일까. 그는 결국 떨어지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나라를 위해서 천행이었다.

***

지금 50대의 민심이 대통령으로부터 이반(離反)되고 있다고 북악산 언저리에 수심이 가득하다. 50대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불리던 그 50대가 민심이반을 추동(推動)하고 있으니, 당하는 심정으로선 적잖이 당혹스러울 것이다. 오늘 아침 인적 쇄신책이라고 내 놓았으나, 그 역시 ‘격화소양[隔靴搔癢: 신발을 신고 발바닥을 긁는다]’의 미봉책일 뿐이다. 참, 답답하다.

 

대통령이 자신의 신조나 철학으로 주변의 개인들을 신뢰하거나 믿음을 가질 수 있고, 또 그렇게 하는 게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으로서 갖는 신뢰와 대통령으로서 가져야 할 신뢰는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 대통령은 만인을 상대로 하는 공인이지 개인은 아니다. 두 사람 이상을 상대로 할 때 작동하는 것이 ‘정치 논리’다. 하물며 5천만의 생령(生靈)들을 상대로 하면서 정치논리를 도외시하고, 어찌 개인의 소신이나 철학을 판단의 잣대로 들이댄단 말인가?

 

인사를 말끔히 쇄신하라는 국민의 명령이 있다면, 그간 쓰고 있던 개인의 안경을 국민의 안경으로 즉각 바꿔 써야 한다. 박 대통령이 아직도 개인의 안경을 쓰고 있다면, 그건 공자가 말한 군자의 ‘눌변’ 차원이 아니라 김 모 전 대통령이 언급했다던 ‘칠푼이’의 수준에 머무는 일이다. 누가 보아도, 비서실장이나 ‘문고리 3인방’은 깨끗이 물러나야 한다. 누가 쫓아내기 전에 스스로 물러서는 게 맞다. 누구 말대로 ‘인간적 신뢰를 지킨답시고’ 그들을 껴안고 간다면, 그런 상태에서 아무리 강호의 현사들을 등용한다 한들 그게 어찌 ‘쇄신’이란 말인가? 그래서 국민들, 특히 50대들은 대통령이 답답하다는 말이다. 그의 입을 쳐다보기에도 지쳐 있는데, 행동마저 이리 굼뜨다면 참으로 절망이다.

 

지금 대한민국 호는 ‘북핵, 경제, 안전’의 불안이란 삼각파도에 휩싸여 있다. 판단력이 흐리고 굼뜬 조타수에게 어찌 대한민국 호의 순항을 맡길 수 있겠는가. 즉각 비서실장과 3인방을 내치시라. 팔팔하고 번뜩이는 감각의 30~50대 초반의 명망가들이 강호에는 넘치고 넘친다. ‘삼고초려’라도 해서 그들을 모신 뒤, 만기친람하려 들지 마시고 그들에게 국정을 맡기시라. 이제 시대는 바뀌었다. 지금 그 시대정신을 거스른다면 대통령 스스로를 파괴할 뿐 아니라 이 민족에게 재앙을 안겨 주게 된다는 사실을 부디 명심하시라.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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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2. 3. 10. 16:29
 

못난 놈들

 

                                                                                                                                                           백규

 

대학입학 후 소설가 정을병의 ‘개새끼들’이란 제목의 소설을 읽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경험을 했다. 그가 통타(痛打)한 것이 과연 ‘시대의 부조리’였는지, 아니면 우리 모두의 내면에 들어 있을 ‘악마적 근성’이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맹수들이 날뛰는 사바나 속에서 작은 초식동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내 운명을 비로소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작품에 나오는 부조리는 작가의 체험이었다. 작품을 탈고한 뒤 제목을 어떻게 달 것인가를 두고 그는 아마도 많은 고민을 했으리라. 머리에 떠오르는 고상한 제목들이 좀 많았을까. 등짝을 서늘하게 하는, 그럴 듯한 제목들 또한 제법 있었으리라. 그러나 ‘간지 나는’ 제목들을 두고 밤을 새워가며 고심하다가 결국 ‘개새끼들’로 낙착을 본 것이나 아닐까.

 

***

 

또 다시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오십 중반에 맞이하는 정치의 계절은 또 다른 차원에서 흥미롭다. 정치판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군상들을 보니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다수다. 아, 그동안 나는 어떻게 지내 왔기에 ‘어리기만 하던 그들’이 경세제민(經世濟民)하겠다고 나설 때까지 그저 남들을 우러러 보는 낮은 자리에서 속 편하게 앉아만 있었을까. 속아만 살아왔던 지난 세월도 억울한데, 그 사기꾼들이 기른 ‘새끼 사기꾼들’을 새로운 상전으로 우러러 보아야만 하는 시간과 공간에 선뜻 들어와 버렸으니, 통탄할 노릇 아닌가.

 

***

 

시절은 참 많이도 변한 듯. 여성들이 공교롭게도 굵직한 정당들의 보스로 자리 잡고 나라의 미래를 요리하겠노라고 각자 칼들을 집어 들었다. 총선에 나설 각 당의 대표선수[후보]들을 골라 발표하는 행사가 연일 민초들의 눈과 귀를 어지럽힌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탈락한 자들의 모습이다. 각 당은 ‘쇄신’이란 명분으로 기득권자들이라 할 수 있는 현역 의원들을 자르기 시작했다. 각 당은 지역구의 여론조사 등의 방법으로 우선 대상자들을 걸러낸 다음, ‘부정과 비리에 연루된 일은 없는가, 임기 동안 얼마나 열심히 의정활동을 했는가, 지역민들로부터 얼마나 지지를 받고 있는가’ 등을 따져 감점하는 식으로 나머지 후보들을 떨어뜨리는 모양이다. 그런데 탈락한 사람들의 모습이 가관이다. 모두 예외 없이 길길이 반발하며 앙앙불락(怏怏不樂)하는 이들의 모습이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 집행부의 꼼수에 걸려 억울하게 낙마한 경우도 있을 것이고, 경쟁자의 음해에 피해를 입은 경우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설사 그렇다 해도,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득이 되는지 심사숙고하는 사람을 찾아 볼 수 없으니, 이들을 바라보며 나라가 잘 되기만을 기원해 온 내 지난 세월이 너무나 아깝고 통분한 것이다. 한사코 자신이 탈락한 것은 칼자루 쥔 자들의 ‘복수심’이나 ‘자파 세력의 부식을 위한 꼼수’ 때문이라고 강변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다. 나 같은 필부의 입장에서도 ‘세상의 변화’를 절감하고 있는데, 내가 경외(敬畏)하여 마지않던 이른바 ‘선량(選良)’들이 그 정도의 상식조차 갖추고 있지 않았다는 말일까.

 

***

그래서 탈락한 사람들 끼리끼리 모여 새로이 ‘작당(作黨)’들을 한다고 한다. 어쩌면 새로 만드는 정당에서 여성이 보스로 등장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붕당(朋黨)을 만들든 정당(政黨)을 만들든 내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국사에 참여했던 인사들이라면 자중할 필요가 있다. 국가 대사에 남녀를 가를 필요는 없고, 여자가 보스라 하여 달리 볼 일도 아니지만, 시대의 변화를 잘 읽어보라. 세상의 ‘마초’들이여, 지금은 남자가 호령하던 시대에서 ‘한없이 너그럽고 따스한’ 어머니의 입장에서든 ‘오뉴월에도 서리를 내리게 하는’ 원부(怨婦)의 입장에서든 이제 남자들은 당분간 물러나 앉아 보조역에 충실하거나 ‘때를 기다리며’ 은인자중해야 할 시기로 바뀌었다! 누구누구 손꼽히는 남자들, 그대들이 아무리 용을 써 보아도 국민들로부터 그녀들보다 나은 지지를 받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것이 그대들의 그릇이고 시운(時運)이다. 시운은 돌고돌아 인력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일. 언제일지 모르나 큰 변화의 주기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럴 경우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새로운 지도력에 승복하고 그 지도력을 꽃피울 수 있도록 돕는 일이 ‘큰 남자들의 금도(襟度)’다. 그들이 새 시대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퇴짜를 놓는다면, 앙앙불락할 것이 아니라 냉철히 자신을 점검하고 수양하며 때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게 명철보신(明哲保身)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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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나라 왕 무정(武丁)이 부왕의 상을 치른 뒤 은인자중하고 있다가 재야의 현자 열(說)을 발탁하여 선정을 베풀게 되었다. <<서경(書經)>>의 <열명편(說命篇)>에서는 그의 대인적 풍모를 ‘명철(明哲)’이라 기록했다. 즉 “천하의 사리에 통하고 뭇사람에 앞서 아는 것을 명철이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만이 진실로 정치와 도덕의 법칙을 정할 수 있다고 했다. <<시경>> <대아(大雅)> ‘증민(烝民)’의 다음과 같은 부분을 눈여겨보자.

 

“엄숙한 왕명을/중산보가 받들어 행하며/나라의 잘잘못을/중산보가 밝혔도다/밝고 현명하게 처신하여[旣明且哲]/그 몸을 보존하였도다[以保其身]…”

 

<<서경>>의 ‘명철’, <<시경>>의 ‘명철보신’은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몸을 잘 보존하는 것’을 말한다. 비겁하게 숨으라는 말이 아니다. 나올 때와 들어가 있을 때를 분간하라는 말이다. 시운(時運)이 비색(否塞)하면 한사코 나오려 할 것이 아니고, 때가 이를 때까지 수양에 힘써야 한다. 여자가 주도하든 남자가 주도하든, 시대의 소명(召命)을 받은 주체가 거부함에도 한사코 앙앙불락하며 이 집 저 집 대문 앞을 기웃거리는 것은 ‘같은 남자의 입장’에서도 부끄러운 일이다. 선택을 받지 못했으면, 그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이 누구를 원망하며 동분서주하는 그들을 우리는 과연 무어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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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판국에 더 웃기는 자는 구멍 난 그물을 들고 돌아다니며, 쫓겨난 피라미들이나마 거두겠다고 설치는 인간이다. 그럴 듯한 교수자리 헌 신짝처럼 내팽개치고 오두막이나마 ‘패자당(敗者黨) 하나 건사해보겠다고 나선 그를 우리는 과연 무어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2012. 3. 10.>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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