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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26 장관의 탄식
  2. 2007.04.10 부교재 리베이트와 착취형 교육구조
글 - 칼럼/단상2010. 4. 26. 10:43

장관의 탄식 

 

최근 기획재정부 윤증현 장관은 ‘지식의 빈곤을 절감한다’, ‘세계의 중심이 되기에 우리의 지식수준은 어림없고, 너무나 모자라다’는 요지의 한탄을 기자들에게 털어놓았다. 자존심을 생각한다면, 한 나라의 경제수장으로서 쉽게 할 수 없는 말이다. 그래서 그의 말은 그간 세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고 목에 힘을 주던 국민들을 당혹스럽게 만든 ‘폭탄선언’이기도 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국제회의에 자주 참석, 선진국의 경제계 인사들과 대화를 나누던 그였다. 그들의 대화에는 예술이나 문화 등 폭 넓은 교양에서 전문적인 경제정책까지 두루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객관적인 면에서 윤장관의 소양을 의심할 만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해외 유수의 대학에서 공부를 했고, 재무부와 재정경제원의 요직들을 두루 역임했으며 금융감독원장을 거쳐 이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그 스스로가 ‘무식함’을 토로했다면, 그 고백 속에는 우리의 문제적 현실을 아프게 지적하려는 복합심리가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아는 게 없는 것이 ‘무식’이고, 지혜롭지 못한 것이 ‘무지’다.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라도 지혜롭지 못할 수 있고, 배운 게 없어도 지혜로울 수 있다. 따라서 그의 말은 우리의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강하게 요구한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하루 중 밥 먹고 쉬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를 깡그리 배움에 쏟아 붓는다. 그런 지옥 같은 관문을 통과한 사람들 중 일부가 엔진역할을 하며 이끌어가는 게 우리나라다. 그런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윤장관이 ‘우리는 아는 것이 없다’고 일갈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자녀교육에 열성인 나라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우리나라만큼 공교육, 사교육에 많은 재원을 투입하는 나라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국격(國格)의 향상’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모두가 무식하다면 무언가 잘못되었음에 틀림없다. 육체적, 심리적으로 심한 압박을 받을 정도로 아이들이 공부에 몰두해온 것이 우리의 현실임에도 그 결과가 ‘무식’이라면, 우리는 대체 공교육과 사교육을 통해 무엇을 가르치고 배웠단 말인가.

  현재 유치원부터 중등학교까지의 교육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준비 단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듯 ‘중등학교는 대학에 골인하기 위한 관문’에 불과하다. 따라서 ‘좋은 인간’을 만드는 것보다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학교 당국이나 학부모 모두의 유일한 목표일 수밖에 없다. ‘폭 넓은 교양과 훌륭한 인성의 바탕 위에 지식을 쌓는 것’이 교육의 보편적인 목표라면, 바탕을 도외시한 채 도구로서의 지식 획득에만 주력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일단 대학만 들어가면 그런 바탕은 저절로 마련되는 것으로 착각한다. 필수 영양소처럼 인간 성장의 단계마다 필요한 것이 교양교육과 인성교육인데, 우리는 대학에 들어가서 한꺼번에 그런 영양소들을 공급해도 되는 것처럼 착각한다. 아이들의 교육실조(失調)가 대학에 들어왔다고 치유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스스로 찾아서 공부할 수 있는 훈련을 받지 못한 아이들, 입시에만 초점을 맞추어 요령껏 자라온 아이들이 대학에 적응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국가나 사회가 아닌 학생들이 수요자라고 착각하는 대학들은 그들 나름의 생존법을 강구하고 애를 쓴다. 학생들의 마음이 떠나가면 대학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수들로 하여금 거친 지식을 ‘말랑말랑하게 씹어서’ 학생들의 입속에 넣어 주길 요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걸 대학들은 ‘수요자 중심의 교육’이라고 강변한다. 그런 대학들이 학생들에게 어린 시절 받지 못한 예술이나 교양교육을 제대로 시켜 줄 리 없고, 학생들 또한 부족한 영양소를 스스로 찾아서 보충할 리는 더더욱 없다. 지금처럼 교수들이 입으로 잘근잘근 씹어준 전공지식을 간신히 받아먹고 자란 학생들이 졸업 후 사회의 중추를 이룰 때, 우리들의 입에서 ‘우리는 무식하다’는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무식함에 대한 자성을 많이 할수록 상황이 개선될 가능성은 크겠지만, 국민들 스스로가 무식하다는 사실 조차도 알지 못하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의 심각한 문제다.

  조규익(숭실대 교수/인문대 학장)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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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7. 4. 10.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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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적인 말이지만 땅 좁고 부존자원 없는 우리가 기댈 곳은 두뇌뿐이고, 두뇌 육성의 주체는 교육이다. 근대교육이 시작된 이후 우리는 학교 교육에 목매달아 왔지만 아직도 교육현장은 문제투성이다. 지금 나라를 흔들고 있는 주택문제의 바탕에도 교육문제는 도사리고 있다.
최근 터져 나온 중·고교 교사들의 거액 리베이트 수수사건은 그래서 우리를 참담하게 한다. 출판사와 해당 교사들은 돈을 주고받기 위해 수요자들인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바가지를 씌웠다. 리베이트를 챙기느라 불량 자재를 써서 부실 공사를 하는 토목공사 현장과 똑같은 부조리다. 리베이트만큼 건설비용은 올라갈 것이고, 교사들이 받는 ‘검은 돈’만큼 책값이 비싸질 것이다. 불량 자재를 쓴 만큼 건축물의 질은 떨어질 것이고, 부실한 교재를 쓴 만큼 교육이 저급해질 것은 당연하다. 억울한 건축주들과 마찬가지로 교육의 수요자인 학생이나 국민은 이중의 피해를 입어 왔다. 공교육을 신뢰하지 못하여 사교육시장으로 달려 가는 일도, 툭하면 급식 당번이나 교실 청소 등으로 학부모를 호출하는 일도, 환경 미화에 기부금을 내는 일도 국가가 교육의 불가피성이나 절실함에 편승하여 학부모나 학생들을 ‘착취’하는 행태 그 자체다. 수시로 교육과정을 개편함으로써 교과서나 참고서 등을 사게 하는 것도 ‘착취’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몇 년 전 미국에서 경험한 일이다. 처음으로 학교에 간 아이들이 교과서라고 받아 온 책을 보니 상당 기간 선·후배 간에 물려 내려온 너덜너덜한 것들이었다. 한심한 생각이 들어 책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았으나 들어 있어야 할 내용은 빠짐이 없었다. ‘그렇다 해도 이런 구닥다리 교과서를 가지고 홱홱 변하는 세상의 이치를 배워낼 수가 있을까?’ 걱정이었다. 그러나 학기가 진행되면서 나의 의문과 걱정은 저절로 해결이 되었다. 중학생들의 교과서를 몇 년 단위로 바꾸어야 할 만큼 세상의 지식은 변하는 게 아니며, 설사 새로운 것들이 추가된다 해도 교사가 그때마다 보충자료를 통해서 충분히 교육을 시킨다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교과서를 살 필요가 없었고, 배부된 교과서에는 절대로 낙서를 못하게 했다. 그 책을 학교에 보관했다가 후배들에게 물려주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교사들은 추가할 내용을 복사하여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고, 도서관 등에서 필요한 참고자료를 찾아보도록 과제를 내 주는 것이었다. 이런 일을 통하여 학생들은 책을 아낄 줄도 알게 되었다. 책에 스며있는 정신적 자산을 소중히 여기게 되고, 교사들은 교육을 위하여 늘 ! П맨瞞 했다. 돈을 낭비하지 않으면서 좋은 교육을 시키려는 부자 나라 미국의 마음 씀씀이와 합리성이 놀라웠다.

우리는 해방 후 미군정기로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교육개혁’을 실시해 왔다. 그러나 그간 시행된 개혁들은 상당 부분 어설픈 실험의 연속이었고, 그 실험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더욱이 우리는 몇 년마다 한 번씩 교과과정을 개편하고 교재를 새로 만든다. 학생들은 이것들이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정가대로 사야 한다. 참고서와 교사용 지도서 등 교과서 한 종류에 따르는 부수적 이익도 대단하다. 선택의 자유가 없는 학생들, 말 없는 고객들이 있는 한 그 책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시장은 무궁무진하다. 교사들만 잡으면 소비자들을 모조리 휘어잡을 수 있는데 ‘검은 돈’을 안 쓸 수 없을 것이다. ‘초·중등학교 개혁의 핵심은 교사개혁, 대학개혁의 핵심은 교수개혁’이란 말은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이제 ‘국민 착취형 교육체제’를 확 바꿔야 할 때다. 그것이 교육개혁의 핵심이다. <2006.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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