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다, 네티즌 수사대여!
드디어 ‘크림빵 뺑소니 범인’을 잡았다.
밤늦게 일을 마친 젊은 남편. 만삭의 아내가 좋아하는 크림빵을 사서 길을 건너다 차에 치여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났다는, 슬픈 소식을 접한 것이 며칠 전이었다.
인적도 드문, 휑하게 넓은 거리. 누가 그 현장을 보았으랴? 절망감이 나를 엄습했다. 며칠 전 우연히 TV에서 ‘산 속 농장의 염소를 모조리 물어 죽인 사건’을 보았다. 피해자가 CCTV 영상을 갖다 들이대도 ‘나 몰라라’하던 경찰들. 그런 경찰들이 우글거리는 곳이 우리나라다. CCTV가 있다 한들 제대로 사진이 찍히지 않았다면, 어떻게 범인을 찾아낸단 말인가. 그러니 뺑소니 범은 안심하고 있었겠지.
슬픔과 절망을 느낀 게 나 뿐만은 아니었던가. 드디어 앞장 선 네티즌 수사대. 국민적 공분(公憤)이 네티즌 수사대를 움직였던 것이다. 그러니 뒤에 서서 구경만 하던 경찰도 어쩔 수 없었던 걸까. 네티즌 수사대와 경찰이 전 방위로 움직였고, 드디어 뺑소니 범은 자수하고 말았다.
당나라 때 ‘황소의 난’이 발발했다. 당시 토벌대 대장 고변의 종사관이었던 최치원 선생은 명문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으로 당시 사람들과 반란군의 수괴 황소의 마음을 움직였다. 특히 다음과 같은 문장들은 대표적이다.
“온 천하 사람들이 너를 드러내놓고 죽이려 할 뿐 아니라, 지하의 귀신들까지 너를 죽이려 이미 의논했을 것이다.(…)나는 한 장의 글을 남겨 너의 거꾸로 매달린 위급함을 풀어주고자 하는 것이니, 너는 미련한 짓을 하지 말고 일찍 기회를 보아 좋은 방책을 세워 잘못을 고치도록 하라.”
이 격문을 본 황소는 앉아있던 자리에서 굴러 떨어졌다고 했다. 그만큼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전의를 상실했고, 결국 반란은 제압되고 말았다. ‘황소를 격퇴한 것은 칼이 아니라 최치원의 글이었다’는 것이 당대의 중론이었다고 한다.
‘네티즌 수사대’라! 일일이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언제부턴가 우리 앞에 자주 등장하여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해주는 민중의 ‘숨은 파수꾼들’이다. 이번만 해도 네티즌 수사대가 나서지 않았다면, 어찌 경찰들이 나섰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번 일이야말로 ‘황소의 난을 해결한 최치원 선생의 격문’에서 언급한 그 ‘민심의 아우성과 힘’을 네티즌 수사대가 보여준 경우라 생각한다.
장하다, 네티즌 수사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