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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1.29 어수선한 새해를 맞으며
  2. 2015.04.17 촌놈들의 향연-성완종과 이완구- 2
글 - 칼럼/단상2017. 1. 29. 14:38

어수선한 새해를 맞으며

 

 

 

 

 

 

정유년이 밝았다.

닭의 해라지만, 첫날 새벽에도 상서로운 닭의 울음소리를 듣지는 못했다.

 

TV를 켜기가 무섭게 보기 싫은 얼굴들이 화면 가득 밀려온다.

이른바 국정농단의 세력이 밉지만, 권력을 좇는 부나비 군상(群像)도 밉상이긴 마찬가지다.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도 국민들의 눈만 속이면 그만이라는 모양새들이다. 누구를 뽑아도 그놈이 그놈이라지만, 안 뽑을 수도 없으니 고민이다.

 

몇몇 부나비들의 현란한 춤에 민초들은 마음 둘 곳이 없고, 언론 매체들은 칠팔월 각다귀들처럼 날뛴다. 물 건너에서는 전대미문의 듣보잡이 등장하여 조자룡 헌 칼 쓰듯대권을 휘두를 태세이고, 휴전선 이북에서는 막 되먹은 애송이 하나가 위험한 칼춤을 추고 있으며, ‘깡패국가중국과 왜구 나라일본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려 길길이 날뛰고 있다. 이 판에 우리만 좁디좁은 한반도 남쪽에서 굿판 아닌 굿판을 벌이는 중이다. 굿판의 끝이 어떨지 뻔히 보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요란한 작두춤 속에 환호작약 시끄럽다.

 

젊은이들에겐 힘 쓸 만한 일자리가 없고, 일찌감치 일자리를 잃은 젊은 노인들은 한숨 속에 시간만 죽인다. 지식인을 자처하는 자들은 일신 편한 것만 도모하고, 돈 있는 자들은 긁어모으느라 여념이 없다. 젖도 안 떨어진 피붙이에게 금 수저 물려주기 바쁘고, 부와 권력 허세 속에 날 새는 줄 모른다.

 

사람을 키우지 못한 죄, 제대로 사람을 키우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죄, 좋은 싹들을 모조리 경쟁으로만 내 몰아 온 죄, 잘 하는 자와 훌륭한 자를 존경하지 않고 줄줄이 매장시켜 온 죄, 감당도 못할 자리에서 시위소찬(尸位素餐)만 즐겨온 죄, 코드 맞는 자들끼리 동아리를 만들어 권력과 이익을 독점해 온 죄, 오늘만 살고 내일은 생각하지 않으려는 이기적 탐욕죄...

 

돌아가는 형세가 어찌 올해라고 나아질 수 있을까.

누군가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지만,

어제와 같은 오늘이라면, 그 오늘이 무슨 의미가 있으리?

그 오늘이 좀 더 나은 내일을 잉태하지 못한다면,

오늘로 이어진 어제의 그 아수라장을

무슨 수로 견뎌낼 것인가.

 

지금은 난국.

정유년은 어쩌면 그 난국의 시작일 수 있다.

임진왜란의 어리석음을 반복한 통절의 정유재란을 기억하는가.

부나비들에게 깨달음을 기대하는 건, 부질없는 일일까.

유황불이 몸을 태워 역한 냄새를 뿜어내면 모두가 괴롭다.

나라의 내일을 위해, 후손을 위해,

제 몸들을 스스로 파묻어, 모두를 살려야 할 때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5. 4. 17. 11:45

촌놈들의 향연-성완종과 이완구-

 

 

 

 

성완종이 뿌리고 간 오물이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 누구의 험한 말대로 ‘달라고도 하지 않은 돈을 주어놓고 부린 지랄’이 온천지에 악취를 풍기는 나날이다. 녹음된 성완종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땐 그의 어눌하면서도 약간 순박하기까지 한 듯한 톤에 동정이 갔는데, 두 번 세 번 들으면서 참으로 ‘가증스럽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슬쩍 돈을 받아 챙긴 인물들도 구린 건 사실이나, 성완종이 흘리고 다닌 엄청난 양의 오물들은 참으로 처치곤란이다. 설사 수백억의 돈을 받았다한들, 요즘 같은 세상에 죄인의 구명을 목적으로 누군들 검찰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단 말인가. ‘내 돈을 받고도’ 구명에 나서주지 않았다고 원망한다면, 그야말로 앞뒤 분간 못하는 멍청이다.  

나는 지금까지 ‘촌놈’을 자처하며 살아왔다. 충청도, 그것도 성완종의 고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출신이니, 내가 자처하지 않아도 남들 보기에 내 몸에서 촌티가 줄줄 흘렀을 것은 자명한 일. 그러나 촌놈인 덕에 남으로부터 지탄받을 죄 지은 적 없고, 황소처럼 그저 묵묵히 앞만 보고 걸어 올 수 있었다. 그래서 그동안은 ‘촌놈’이란 딱지가 그나마 내 자부심의 바탕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성완종의 출현으로 ‘촌놈’에 대한 내 철학은 근본부터 흔들리게 되었다.

내가 보기에 성완종은 결코 ‘촌놈’이 아니다. 무늬만 촌놈으로 어수룩해 보일 뿐, 그의 야망이나 사기성은 여느 ‘도시 놈들’ 못지않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긁어모은 ‘남의 돈’으로 힘 있는 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을 옭아맬 덫을 놓고 다닌 것이 그의 한평생이었다. 돈 봉투로 만든 덫에서 누군들 자유로울 수 있을까. 돈에 약한 인간의 심성을 그리도 교활하게 간파하고 이곳저곳에 덫을 놓고 다닌 그였다. 그러니 그를 결코 내 사전에 규정된 ‘촌놈’의 범주에 넣을 순 없는 일.  

엊그제 고향의 선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고향 사람들이 두 편으로 갈라섰다고 탄식했다. 한쪽은 성완종 편, 다른 한쪽은 이완구 편일 것이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헛똑똑이’라 할 만큼 순진한 이완구도 교활함에서 성완종 못지않은 인물이지만, 분명한 것은 두 사람 모두 내가 생각하는 ‘촌놈’들은 아니다. 어리석음과 교활함을 바탕으로 부나비처럼 야망의 불꽃에 몸을 던진 존재들일 뿐이다. 그들은 결코 촌놈들이 아니다.

참, 세상 살기 어렵다. 촌놈으로 사는 일은 더 어렵고, 제대로 된 촌놈으로 사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무늬만 촌놈’인 촌놈들이 득실대는 세상에 나 혼자 ‘제대로 된 촌놈’임을 표방하기란 불가능하다.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애국가>의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를 ‘태안사람 태안으로 길이 보존하세!’로 알아 온 내 ‘촌놈성’은 성완종과 이완구로 인해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아니 그 두 ‘사기 혐의자들’을 둘러싸고 갈려 있는 고향 사람들의 딱한 모습으로 인해 내 ‘촌놈성’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래서 더욱 부끄러운 나날이다.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