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5. 11. 16. 22:09

불효자 방지법으로 효도 많이 하겠습니다!

 

 

길을 건너려고 횡단보도 끝에 서 있는데, 건너편을 보니 기상천외한 현수막이 걸려 있는게 아닌가.

 

 

 

 

불효자 방지법으로 효도 많이 하겠습니다!

 

                                ○○○○○

 

 

갑자기 픽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떤 야당에서 내건 모양인데, 기가 막히는 현수막이었다.

패륜자식들의 소식이 하루가 멀다 않고 터져 나오는 요즈음. 얼마 전엔 참다못한 아버지가 40대 아들에게 양육비와 교육비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일도 있었다. 이런 저런 일들이 터져 나오니, 표가 급한 그 당에서는 그런 패륜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기상천외한 불효자 방지법을 내 걸었을 것이다.

 

대체 효도란 무엇일까. 법이 무서워서 하는 효도를 효도라 할 수 있을까. 내가 하는 효도가 남에게도 효도일 것이며, 내 부모가 생각하는 효도를 남의 부모도 효도로 생각할까. 법조문을 만들려면 효도의 개념이나 실행내용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할 터인데, 그걸 대체 무슨 수로 규정한단 말인가.

 

노부모 학대의 주범이 아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는 세상이다. 학대를 받으면서도 자식에게 혹시 해가 갈까봐 다른 사람들에게는 쉬쉬하는 게 우리네 부모들의 마음이다. 아무리 엄한 법을 만들어 놓으면 뭣하랴. 우리나라에서 불효자식을 사법기관에 고소할 부모의 비율이 몇 %나 될 것이며, 불효를 저질러 고소될 정도의 인간으로 법조문 앞에 무릎 꿇을 자식 놈들은 또 몇 %나 되겠는가. 그러니 일 꺼리 모자라는 변호사들만 가뭄에 단비 만난 듯 부모-자식 송사를 찾거나 부추기며 돌아다닐 것 아닌가. 부모로부터 수임 받은 변호사가 다른 곳에선 불효자로부터 수임 받는 유능한 변호사도 나올 것 아닌가. 오전의 어떤 법정에서는 피해 입은 부모를 위해 변론하다가 오후의 다른 법정에서는 불효자를 위해 변론하는 일도 비일비재할 것 아닌가. 부모와 불효자의 싸움판에서 오락가락하며 변론을 벌이다 보면 불효문제에 관한 창과 방패가 변호사의 손에서 마련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부모와 자식은 단순히 사회적 계약 관계 혹은 그 이하의 우스운 관계로 전락될 것 아닌가.

 

, 할 일 없으면 모자라는 잠이나 잘 것이지. 세비만 받고 놀기가 계면쩍어서들 그러는 것일까. 아니면 변호사들로부터 로비라도 받은 것인가. 납득이 안 되는 법을 만들겠다고 대형 현수막까지 내건 그 당의 의도는 대체 어디에 있을까. 표를 얻을 목적으로 내건 것이면, 지금 당장 내리는 것이 좋다고 본다. 표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자꾸만 그런 일을 벌이는 그들의 생각을 알 수가 없다. 이 법이 제정된다 해도 통과되기 쉽진 않겠지만, 통과된다면 그 순간부터 그나마 남아있던 우리의 미풍양속은 사그리 없어질 터. 불효자 방지법 제정이 불가능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첫째, 효도가 무엇인지 법리적으로 설명할 도리가 없다.

둘째,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기 위해 들어간 돈과 정성을 산정할 방도가 없다.

셋째, 만일의 사태를 생각하여 애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치부책을 써야 할 텐데, 그 스트레스를 생각해 보았는가. 그리 하여 아이 낳지 않으려는 남녀가 양산될 것이니, 민족과 국가의 생명은 서서히 끊어져 갈 것이다.

 

, 살다 살다 별 해괴한 일을 다 보게 된다. 그래서 지금이 말세인 것이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5. 11. 8. 23:33

 

 

 

 

 

종합편성채널들에게 한 마디

-출연자들의 어법을 제대로 모니터링하라-

 

 

 

 

 

 

정치가 어수선하고 사회가 혼란스럽다 보니,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으로 약칭)에 출연하여 궁금증을 풀어주는 각계의 전문가들이 반가울 때가 많다. 어쩌면 그렇게 내 생각과 같은지 신기할 때도 있고, 비판의 언성을 높일 때면 속이 후련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매일 똑같은 얼굴들이 등장하여 별스럽지 않은 말들을 반복한다고 불만인 아내와 종종 채널 다툼을 벌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처럼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는 점에서 종편 출연 전문가들의 식견과 말솜씨는 탁월하다. 그러나 가끔 귀에 거슬리는 점도 없지 않다. 최근 방송에 출연하는 변호사들이 부쩍 늘었다. 공부를 많이 하여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들이니만큼 논리적으로는 흠 잡을 데 없다. 그러나 호칭을 비롯하여 몇몇 말투는 몹시 귀에 거슬린다. 그런 실수들을 반복할 때마다 그들에 대한 신뢰감은 저하된다. 예컨대 어떤 여성 변호사는 존대어법을 남발한다. 분명한 범죄인을 언급하면서도 꼬박꼬박 존대어를 붙이는 그의 어투와 어법이 참으로 듣기에 거북하다.(심지어 서술어에까지 존칭어를 남용하는 통에 '과공(過恭)'의 무리를 지나치게 자주 범하곤 한다.)  법정에서 의뢰인인 범죄인을 변호하면서 반복해오던 습관 때문일까. 물론 범죄인에게 대해서라고 경칭을 사용해서 안 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제3의 장소, 객관적 인용의 경우에서까지 범죄인에게 존칭어를 남발해야 하는지, 참으로 거북살스럽다.

 

또 다른 여자 변호사도 비슷한 경우다. 오늘 방송에서도 그녀는 누군가의 아내 혹은 부인을 언급하면서 아내 분이라 했고, 남편을 언급하면서 남편 분이라 했다. ‘이란 사람을 높여 부르거나, 높이는 사람들의 수를 헤아리는 의존명사다. ‘저 분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라거나 국회의원 세 분이 오셨다등은 일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정확한 어법이다. 그러나 신문에 보도된 바와 같이 김○○ 씨의 아내 분이 그런 행동을 했다거나 방송에 출연한 이○○ 씨의 남편 분이 그런 말을 했다고 말한다면 무언가 어색하다. 그냥 아내 혹은 남편이라 해도 무방하나, 굳이 높여줄 요량이라면, ‘부인이나 부군이란 말을 쓰는 것이 마땅하다. ‘아내()+()’에서 나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남편이 자신의 각시를 존중해서 부르는 뜻이라고 설명하지만, 정확한 것은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현재 대부분의 국어사전에서 이 말은 혼인하여 남자의 짝이 된 여자로 설명되어 있으니, 객관적 입장에서 언급하는 특정 남성의 각시를 의미할 경우는 그냥 아내로 호칭하는 것이 옳다. 그래도 굳이 경칭을 써야겠다면, ‘부인이란 말을 쓰는 것이 아내 분보다는 정확하고 듣기에도 좋다. 사실 요즈음에는 '제 아내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처럼 상대 웃사람에게 자신의 각시를 가리키기 위한 객관적 호칭으로 쓰는 경향이 일반적이라는 점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젊은 남자 변호사 한 사람은 다르다라고 해야 할 경우에 자꾸만 틀리다/틀린다/틀렸다고 말한다. 가끔 그가 출연하는 프로를 보곤 하는데, ‘다르다라고 정확하게 말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따라서 그는 평소에도 다른 것틀린 것으로 말하고 있음에 분명한 듯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다르다라고 써야 할 곳에 시종일관 틀리다/틀린다/틀렸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다르다를 써야 할 곳에 가끔은 다르다라고 맞게 말해야, 그가 제대로 알고 있으면서 방송에서만 실수를 하는 것이라고 봐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의 직업이 변호사임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작은 실수가 아니다. 그가 변론을 하면서 다르다라고 해야 할 때 틀리다/틀린다/틀렸다라고 한다면, 변론이 의도한 대로 정확히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 말 때문에 소송의 상대편으로부터 되잡힐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그 말이 참으로 귀에 거슬리고, 가끔은 걱정스러울 때도 있다.

 

신문사에는 교열부라는 곳이 있다. 기자들이 써낸 기사를 편집하고 나면(혹은 편집 이전에?) 전문 기자들이 꼼꼼히 읽고 잘못을 고치는 전담부서다. 그러나 방송국에도 그런 부서가 있는지 알 수 없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모니터링이라는 작업을 하긴 하는 모양이다. 비록 생방송이라 해도 제대로 모니터링이 된다면, 그런 실수들이 다음 방송에서는 반복되지 않을 것 아닌가. 그 변호사들이 방송에 등장한 지 꽤 오래 된 점으로 미루어, 시청자들의 인기는 높은 모양이다. 그럼에도 그런 말투나 말실수는 제대로 교정되지 않고 있다. 방송사가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방송사가 어쩜 그런 말들을 표준어()의 하나로 추인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것들을 개인적인 언어습관으로 가볍게 생각하여 용인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방송은 파급력이 신문에 비해 훨씬 크고, 교육적인 영향력 또한 막대하다. 향후 대중들이 다르다틀리다가 같은 말이라고 받아들인다면, 그건 지금 사회적문화적 영향력을 높여가고 있는 종편들 때문일 것이다. 부디 종편들이 방송 언어의 정확성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주기 바란다.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