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5. 9. 12. 11:42

 


호산방의 박대헌 사장

 

 

 

고서점 호산방(壺山房).

그 호산방이 문 닫았다는 소식을

어제 날짜 신문에서 접했습니다.

바닷물에 모래성 무너지듯

수많은 점포들이 어제도 오늘도 사라지는 세상.

서점이 어디 일반 가게와 같은가?’라는

제 믿음도 이제 접을 때가 된 것일까요?

십 수 년 쯤 되었나요? 종로서적이 닫을 때

며칠 동안 마음이 허전했었는데,

그 때보다 더 한 허탈감입니다.

 

사실 책에 굶주려 지내던 대학원 재학시절엔 고서점들을 뻔질나게 찾았지요.

호주머니엔 구겨진 지전 몇 장과 동전 몇 낱이 전부였는데,

무슨 호기로 그런 책들을 탐내곤 했는지...

뒤통수에 꽂히는 주인장의 눈총을 느끼면서도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며 마냥 시간이나 끌기 일쑤였지요.

미련을 남겨 둔 채 서점 문을 나서는 마음은 왜 그리도 허전했을까요?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박대헌 사장님을 제 연구실에서 뵈었지요.

박 사장께서 ‘150만원 정가의 책을 저술출판하여

한국 지식사회를 경동(驚動)시킨 시점.

그 책을 앞에 두고

궁핍했던 시절 고서점들에서 입은 상처를 차마 거론할 순 없었지요.

 

그 후로 세월은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렀고,

고서점들 또한 많은 시련과 변신을 시도했겠지요.

결국 그 험한 물결을 되돌리지 못한 채

호산방은 장렬히 문을 닫은 것 아니겠는지요?

지금 제 나이 또래의 우국지사(憂國之士)’라면

누군들 이 세월의 변화를 반길 수 있을까요?

얄팍한 매명(賣名)의 상술(商術)들을 보시나요?

인문학의 두겁을 뒤집어 쓴 채 세상을 호리는 사람들을 말이지요.

세상을 뒤덮은 인터넷의 그늘 아래

자리 깔고 펼치는 개그를 학문이라 착각하고 있는 세태를 말이지요.

 

일본,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

아직도 멋진 고서점들이 즐비한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동네 도서관을 출입하고,

시장을 다녀오는 아주머니들의 장바구니 속에 도서관의 책이 한 두 권씩 들어 있는 모습.

그들의 멋진 건물이나 번쩍이는 거리의 모습보다 훨씬 부러운 광경이지요.

 

책을 찢어 벽지로 쓰고, 절구에 빻아 지공예의 재료로 쓰던 시절이 엊그젠데,

이삿짐센터의 제1 기피 대상이 책 박스라는 사실을 아시지요?

그래서 노마드의 임시 공동체인 우리네 아파트 쓰레기장,

그 공간의 단골손님이 멋진 장정의 책들이라는 사실도 잘 아시지요?

 

역사의 공간으로 사라진 호산방.

그 호산방을 다시 태어나게 할 순 없을까요?

발효되는 고서의 향기 그득한 옛날의 서점으로,

힘들 때면 찾아가 고서들과 대화하며

위안을 받을 수 있는 휴식의 공간으로 말이지요.

 

우린 자손들에게 무얼 남겨야 할까요?

날카롭게 벼린 이데올로기?

번쩍이는 빌딩?

엄청난 파괴력의 ()무기?

국내외의 페이퍼 컴퍼니들에 숨겨둔 천문학적 재산?

 

동네마다

멋진 고서점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건사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을까요?

문화나 전통, 역사란 말이 매우 추상적으로 들리신다면

선진국의 멋진 고서점에 한 번 들러 보세요!

나이 먹은 책들의 숲에서 아이들과 함께

그 책들의 나지막한 음성을 들어보세요.

그 음성에 녹아있는 것이 바로 문화, 전통, 역사이지요.

그리고 그것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것이 미래에 대한 통찰이지요.

 

 

 


박대헌 사장의 저서 <<Korea: 서양인이 본 조선 조선관계 서양서지>>(호산방, 1996)

 

 

 


<<Korea: 서양인이 본 조선 조선관계 서양서지>>의 내용

 

 

 


박대헌 사장의 헌사(<<Korea: 서양인이 본 조선 조선관계 서양서지>>)

 

 

 


일본 천리시내의 한 고서점

 

 

 


일본 천리시내의 고서점에서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7. 4. 10.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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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도야마 대학의 후지모토 유키오(藤本幸夫) 교수가 일본 내 한국 고서 5만여 권의 목록을 집대성하여 펴냈다. 우리는 충격과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우리를 강점하기 시작한 시기부터 우리의 문화재와 서적 등 정신적 자산들을 수없이 빼내갔다. 완전한 지배를 목적으로 그들은 우리의 모든 것을 철저히 조사했고, 당장 필요 없는 것들일지라도 자료가 될 만한 것들은 닥치는 대로 긁어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서적들을 약탈당했는지 정확한 통계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부나 학계가 그간 약탈당한 고문서의 현황 파악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거의 ‘무감각’ 수준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전국의 고문서 동호인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지금도 이른바 ‘나까마(중간상)’들에 의해 수집된 고문서들 상당량이 일본으로 반출되고 있는 현실을 우리 정부나 학계가 얼마나 인지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사실 얼마 전까지도 우리는 귀중한 고문서를 벽지로 쓰고 물건의 포장지로 써왔다. 불과 수십 년 전까지 우리는 그런 무지몽매의 세월을 살아왔다. 엿가락 몇 개와 바꾼 고문서들은 그간 물건 포장지로, 종이공예의 재료로 팔려 나갔고, 일본과 연결되는 수집상의 손으로 끊임없이 넘어간 것이다. 일본은 약탈해간 우리의 고문서들을 각종 컬렉션의 이름 아래 공공도서관이나 대학 도서관에 묶어 두고 우리에겐 열람조차 제한하고 있다. 그들이 소장한 우리의 고문서 한 건을 복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절차와 세심한 안전장치들을 경험해보면 그들의 주도면밀함에 혀를 차게 된다. ‘우리의 것’이면서도 일본의 재산이 되어 그들의 귀중본 서고에 보관된 고문서들을 보며 통분해 하는 우리의 학자들. 우리의 문화적 천박함이 초래한 업보쯤으로 여기며 그 억울함을 씹어 넘길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수모를 겪으면서도 우리 정부에서는 국가 차원의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들을 일괄적으로 반환해오는 것이 최선일 것이나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자료들의 소장처를 조사한다거나 복사라도 해다가 한 곳에 비치하여 학자들의 수요에 응해야 할 것 아닌가. 학자들 개개인이 연구년을 이용하거나 특정 연구 과제를 수행하며 미국이나 일본 등지를 방문하여 필요한 자료들을 조사, 복사해오는 것이 지금의 실정이다. 그런 작업이 산발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복사해오는 자료들이 중복되는 폐단 또한 적지 않다. 국력의 낭비가 방치되는, 대표적인 사례다. 해외에 소장된 우리 고문서 정보의 관리가 시급히 일원화 되어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장서각이나 규장각 등 우리가 갖고 있는 고문서들을 정리하는 일도 급하다. 그러나 국가 차원에서 해외에 널려있는 우리의 서적들이나 고문서들의 현황을 파악하는 작업은 더 시급하다. 일제가 민족정신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시작한 우리 고문서의 약탈 행위는 1세기가 넘은 지금까지 음지에서 계속되고 있다. 우리의 혼을 담은 고문서의 상당 부분이 저들의 손아귀에 들어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몇 푼의 돈에 눈이 멀어 그런 일을 돕는 세력이 아직도 우리 안에 남아 있는 현실은 비극이다.

‘이 책이 일본의 정신문화를 연구하는 데도 기여하기를 바란다’는 후지모토교수의 말 속에 ‘한국을 지배하려면 한국의 정신문화를 연구해야 한다’는 식민시대의 논리가 살아 있음을 우리만 깨닫지 못하고 있는가. <조선일보 2006. 5. 15. >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