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화살’의 불편한 진실
백규
영화 '부러진 화살'을 만나기 위해 오랜만에 극장을 찾았다. 그간 언론매체나 인터넷을 통해 익히 들어온 사건이라서 내용은 소상하게 알고 있었고, 스토리의 전개나 분위기 또한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기득권 수호를 중심으로 하는 법조계의 비리가 영화 속 사건의 핵심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나는 이 사건의 발단 부분에 관심이 컸다. 감독이 좀 더 심사숙고했다면, 대학이나 교수들의 집단 심리를 스토리 전개의 또 다른 한 축으로 삼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자신이 봉직하던 S대학 입학시험으로 출제된 수학문항이 원천적인 오류를 안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고, 그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김명호 교수. 그 지점에서 그가 강조한 것은 ‘학자와 교육자의 양심’이었을 것이다. 단순히 ‘문제 하나’였지만, 그것이 수많은 학생들의 당락을 결정짓는다는 점에서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사건이었다. 동시에 해당 전공의 교수로서는 학문적 자존심에 관한 문제이기도 했다. 그 순간 관련 당사자들은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옳았을까. 김 교수의 주장을 받아들여 끝까지 진실을 규명하고 바로잡는 것이 옳았을까, 아니면 실제 일어난 사건처럼 ‘공동체의 대외 이미지 실추’를 막는다는 미명 하에 얼렁뚱땅 넘어 가면서 김 교수를 핍박하는 게 옳았을까.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가 바로 ‘진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진실의 공개나 규명이 공동체의 이익과 과연 상치되는 것인가?’ 등의 두 문제로 압축된다. 결정적 키는 바로 ‘정의’에 관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인식이다. 양심 혹은 양식에 달린 문제, 즉 정의와 집단이익 혹은 양심과 비양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리의 자화상을 역력히 보여주는 문제라는 것이다. 입시문제의 출제 오류를 인정하고 공개할 경우 S대학은 물론 학과의 명예에 손상을 입게 될 것이니 일단 덮고 가는 게 좋겠다는 것이 학교 당국과 교수들의 공감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학교 당국의 그런 판단과 회유에 넘어 간 교수들이 김 교수를 압박하고 나섰을 가능성이 더 크다. 학교당국의 회유에 넘어갔든 스스로의 판단이었든, 결과는 우리 사회의 도덕적 기준을 심대하게 손상시킨 일종의 ‘만행(蠻行)’이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동료를 비난하며 학교당국의 종용에 따르는 순간 교수들의 내면에서 작동되던 양식이나 정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 순간 마이클 샌덜(Michael J. Sandel)이 정의(正義)와 도덕적 행위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제기한 물음들 가운데 하나[‘조난을 당해 오랫동안 굶주린 선원들이 제일 약한 소년을 잡아먹었다면, 그 행위는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있을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과연 ‘굶주린 선원들’이었으며, 김 교수는 과연 ‘약한 소년’이었는가? 물론 교수들은 학교당국에 의해 채용된 ‘피고용인들’이다. 영화에서 여러 번 반복된 바 있지만, ‘교수의 재임용은 학원의 고유권한’이라는 사립학교법에 의한다면, 교수들이야말로 무력하고 나약한 존재들이다. 다시 말하면 ‘밥이 필요하고, 권력의 우산이 필요한’ ‘굶주린 선원들’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켕기기야 했겠지만, 그들 가운데 ‘가장 약한 소년’을 잡아먹고도 ‘공동체의 이익’이라는 허울이 양심과 정의의 화살을 막아줄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아무리 도덕의 문제가 이분법적으로 가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정의(正義)에 대한 정의(定義) 또한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해도, 이 사건에 관련된 교수들이 도덕이나 정의에 관한 우리 사회의 공준(公準)을 저버린 점에 대하여 변명의 여지가 없음은 영화를 보며 무의식중에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관객들의 공감에서 입증된다. 교수들을 그런 방향으로 몰고 간 대학 당국의 행위 또한 말할 것도 없이 독재시대에나 통했을 시대착오적 만행일 뿐이다. 일이 불거진 시점에 과감하게 문제를 공개하고 사과했다면, 역으로 그들의 판단이나 행위는 정의와 도덕의 빛나는 기치(旗幟)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젠 늦었고, 아마도 한동안 S대학당국과 그 학과 교수들은 성난 대중으로부터 난타당하는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드높은 꽹과리 소리와 함께 권력에 당하기만 해온 민중의 ‘한풀이’가 이제 시작되려는 지금부터 앞으로 상당기간 그들은 ‘죽었다가 살아날’ 정도로 흠씬 두들겨 맞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만약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 것인가? 나 역시 ‘굶주린 선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지 말란 법이 있을까? 오늘을 사는 대한민국의 교수들 가운데 누가 이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그게 바로 이 영화가 살짝 보여준 ‘불편한 진실’이다.<2012. 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