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6. 4. 15. 16:53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아일랜드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이며 비평가인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의 묘비에 새겨진 문구라는데, 저는 오늘 어느 도당(徒黨)의 어리석음을 질타하고자 이 말을 살짝 바꿔 보았습니다. 머뭇거리다가 기회를 놓치고 만 자신의 후회를 강하게 드러낸 것이 버나드 쇼의 이 말이라면, 그 말을 패러디한 제 뜻은 (좀 비속하긴 하지만) ‘()지랄 떨다가 똥통에 빠지게 되었다!는 뜻을 갖습니다.

 

지금까지 길지 않은 삶을 살아오면서, ‘()지랄 떠는 인간들을 수도 없이 보아왔는데요. 지난 1년 가까이 이른바 친박 도당이 보여준 행태처럼 저급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 친박 도당의 꼭대기에 누가 앉아 있는지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삼척동자라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 지금의 현실이 목불인견(目不忍見)이어서 참을 수 없이 슬퍼집니다.

 

저는 베이비 부머 세대입니다여유롭지 못한 환경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풍요를 느껴본 적이 없었습니다. 얼마 전 돌아가신 어머니께서는 늘 박정희 전 대통령을 '하늘처럼' 숭배하셨지요. 그 분 덕에 이만큼이라도 먹고 살게 되었으니, 그 따님인 박근혜 대통령을 무조건찍어야 한다고 우리들에게 힘주어 말씀하곤 하셨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독재자였다는 사실을 말씀드려야 통하실 어른이 아니었기 때문일까요? “, 알았습니다. 어머니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그렇게 하지요!”라고 응수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박 전 대통령의 반대편에 서 있던 사람들 가운데 누가 나섰어도 오늘날 이보다 나아졌겠는가?’라고 가끔 자문해 보곤 했습니다만.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효도하는 셈치고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해보기로 한 것이지요. 그날부터 박빠가 된 것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남자들처럼 술자리에서 해롱거리며 측근들이나 친인척들 뒷배나 보아주면서 적당히 눙치는짓들은 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굳게 믿은 것이지요.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정치에는 그것 말고도 참 많은 것들이 있더군요. 무수한 이해 당사자들이 얽히고설켜 빚어내는 난리 통 속에 대통령의 길을 무리 없이 걷는다는 것이 제정신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머리 위엔 북한이라는 미쳐버린 집단이 존재하고, 우리 내부에도 이들과 공식비공식으로 연결된 수많은 세력들이 엄존한다는 현실까지 감안한다면, 미국의 한 개 주나 중국의 한 개 성만도 못한 크기의 '대한민국호'를 운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뚜렷이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적어도 박근혜 대통령이라면, 취임 즉시 널리 인재를 구하여나라의 중책을 맡기고, 정계의 이해당사자들을 수시로 만나면서 국사를 조율해 나가리라 당연히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첫 단추인 장차관 인사부터 고개가 갸웃거려졌어요. 누구 말대로 상당수의 인사들이 듣보잡들이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까막눈인 제가 보아도 장관은커녕 동장 직분조차 감당 못할 인사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기 때문이지요. 실정법을 어긴 전과 기록들도 더러 보였고, 도덕적인 하자를 지닌 인사들도 적지 않았지요. ‘웬만하면 통과시켜 주지 그러냐?’고 야당의원들을 설득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일이 한 번 두 번 반복되다 보니 대통령의 통치능력에 대한 의구심(疑懼心)이 제 마음 속에 생겨나기 시작한 거지요. 인사의 난맥이 하도 빈번하게 일어나다 보니, 나중에는 정치가로서의 자질을 의심할 정도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대통령은 인사는 비밀이 중요하다! / 자리가 사람을 만들지 사람이 자리를 만드느냐? / 이왕이면 나와 가까운 사람들을 써 줘야지!’라는 그 나름의 믿음을 갖고 있는 듯 했습니다만. 정말로 세상이 그럴까요? 인사 과정에서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게 하려면, 부득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선택하는 게 최선이고, 좀 멀리 있는 사람을 선택한다 해도 검증의 잣대를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는 제한이 따르게 마련이긴 하지요. 그렇다면 넓은 세상에 널려 있는 강호의 인재들은 아예 대통령의 인재풀(pool) 안으로 들어올 수가 없겠지요. 사람을 대충 써도 그 자리가 결국 사람을 자리에 걸맞게 변화시킬 거라는 믿음은 더욱 황당합니다. 인사권자가 아마도 그렇게 한 데에는 내가 모든 걸 관장할 것이니(즉 '萬機親覽'할 것이니), 내 말에 고분고분 따르기만 하면 돼!’라는 잘못된 철학이 작용했을 겁니다. 그러나 엄청나게 분화된 현대 국가의 일들 모두를 어떻게 대통령 혼자서 친람할 수 있을까요? 나와 가까운 사람들만 쓰겠다는 것은 10명 이하 규모의 자영업에서도 금기로 여기는 일입니다. ‘세상은 넓고 인재는 많다는 상식만 갖고 있어도 자신의 주변에서만 인재를 찾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태평시대를 일군 옛날의 제왕들은 강호를 덮을만한 '인재찾기의 그물'을 갖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좋은 인재를 찾아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하기도 하고, 믿을만한 측근을 촉수(觸手)로 삼아 천하의 영재들을 발굴하기도 한 역사적 사실들을 알고 계시지요?

 

박 대통령의 비극은 바로 인재 풀과 정치적 역량의 빈곤에서 빚어졌다고 보는데, 동의들 하시나요? 지금 여당을 보세요. 여당 내의 이른바 내부자 그룹이라 할 수 있는 친박 집단을 보세요. 그들의 무기는 뭘까요? 대통령께서는 진심을 말하지만, 그 진심의 잣대는 무언가요? 보스가 잘못 된 길을 가고 있음에도 제대로 된 충언(忠言)이나 고언(苦言)을 올리지 못하는 예스맨들진실한 사람들로 생각하는 건가요? 제가 생각할 때 대통령이 생각하는 진실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부류로 판단됩니다. 보스가 가야 할 올바른 길이 무언지 애당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 하나이고, 알면서도 눈앞의 영달을 도모하기 위해(즉 자리에서 떨려나지 않기 위해) 모른 척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 둘이지요. 그런데, 지금 친박 도배들의 행태를 보면, 두 경우 모두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도무지 인재가 보이지 않아요. 그나마 인재인 듯 보이는 인간들도 바른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어요. 그러니, 대통령 주변의 인사들은 아무 쓸모없는 허깨비들뿐입니다. 그러니, 대통령이 잘 될 수 있겠어요?

 

국어 선생으로 일생을 살아온 사람이 바로 저예요. 이번 비극의 단초가 된 유승민 의원 건에 대하여 한 말씀 해볼까요? 물론 대통령과 유 의원의 관계를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입장에서 섣부른 생각인지는 모르겠습니다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 했던가요? 그가 대통령과 관련하여 공식적으로 천명한 의견들 가운데 제가 가장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말이 그겁니다. 그 말이 나가자 대통령은 배신자 운운하며 삼척동자도 그 대상이 누군지 알 수 있게 노발대발했지요. 그 말이 어째서 배신의 내포를 갖는지에 대해서 지금까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납득되지 않습니다. 대통령께서 애당초 세금을 늘이지 않고 복지를 확충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취임 이후 재원 문제로 복지 분야의 조정이 국정의 가장 큰 이슈가 아니었나요 약속한 복지를 위해 긴요한 다른 분야들을 축소할 수밖에 없었던 경우도 있지 않았나요? 그렇다면 국정의 책임을 공유한 여당의 원내대표가 그런 점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해결책을 모색하자고 말한 것이 그리도 잘못 된 일인가요? 혹시 대통령에게 미리 허락받지 않고 야당의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뜻이었을까요? 백보를 양보하여 설사 그렇다 해도, 그것이 배신이란 극악한 어휘로 재단할 일인가요? 대통령인 자신과 미리 상의하지 않은 점이 못내 서운했다면유 의원을 몰래 불러 조용히 식사라도 함께 하면서 그의 생각을 들어 보았어야 하는 일 아닌가요? 소주잔이라도 기울이면서 국정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협조를 당부했다면, 오늘날 사태가 이렇게 커졌을까요? 대부분의 국민들이 대통령 스스로 유 의원을 배신자로 낙인찍었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설사 배신했거나 배신하려는 사람이 있다 해도, 개인이든 집단이든 최선을 다하여 그들을 내 편에 머물러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으로도, 전략상으로도 맞는 일 아닌가요?

 

논어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葉公問政 子曰 近者說 遠者來섭공이 정치를 묻자, 공자 말씀하시길, 가까이 있는 자도 기뻐하고, 먼데 있는 사람들도 찾아온다.”는 말입니다. ‘정치란 가까운 사람들도 즐거워하고, 먼 데 있는 사람들도 (덕을 흠모하여) 모여 들게 해야한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저는 좀 달리 해석하고 싶군요. “가까운 사람들이 기뻐하면, 먼 데 있는 사람들도 모여 든다고 말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로서는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한때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사람들이 얼마 후에 보면 모두 다른 곳으로 떠났거나 적이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도대체 삼척동자도 잘하는 어장 관리를 어떻게 하길래 사람들이 속속 떠나는 것이며, 떠난 후엔 예외 없이 적으로 바뀌는 것일까요? 만일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면 그들이 다른 곳으로 떠날 일도 없을 것이고, 설사 다른 곳으로 떠났다 해도 최소한 적이 되지는 않을 것이며, 그러다 보면 반대로 다른 동네 사람들도 몰려들 것 아닌가요? 도대체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멘트가 무엇이기에 전 국민을 상대로 배신자 운운하시며 멀쩡한 원내대표를 쫓아내게 만드셨고, 그것도 모자라 아예 공천에서까지 배제하는 무리를 자행하게 함으로써 이런 비극적 파국을 초래한 것일까요?

 

이번 총선의 과정에서, 진짜로 내팽개쳐야 할 인간들은 이른바 진실한 사람들진박 패거리이고, 소중히 어루만지며 키워야 할 인물들은 유 의원 같이 철학이 분명할 뿐 아니라 바른 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들임이 가려졌다고 봅니다. 지금 유권자들은 더 이상 어리석은 백성들이 아닙니다. 적어도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멘트를 배신의 잣대로 휘두르는 대통령이나 측근들을 꾸짖을 만큼 상식적 통찰력을 지닌 사람들이 다수임을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새누리당에게 그다지 인색하지 않을 만큼의 표라도 준 것이지요. 새누리당의 이른 바 진실한 사람들은 이번 결과를 참패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던데, 천만에요! '선전(善戰)'으로 보아야지요. 사실은 국민의당이 얻었다는 30여석 이하를 얻는 데 그쳤을 수도 있습니다. 국민들이 아직은 따스한 온정을 갖고 있기에, 그 정도라도 안겨 주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이른바 진실한 사람들은 누구 말대로 이제 (좀 비속한 말이긴 하지만) ‘()지랄들을 그만 떨고조용히 물러가 자숙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들의 유치한 행동들을 바라보며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 혀를 차는 국민들이 열에 일곱 여덟은 된다는 사실을 부디 명심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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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4. 1. 1. 13:19

 

 

 

 

 

 

 

새해인사

 

 

 

계사년이 저물고, 대망의 갑오년이 밝았습니다.

미국의 이 지역은 한국에 비해 14시간이 늦은 관계로 이제야 새해인사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우선 사건도 많고 말도 많았던 지난해를 무탈하게 넘기시고 새해를 맞이하신 백규서옥 손님 여러분께 진심으로 큰 복을 빌어드리고 싶습니다.

 

요즘 들어 우리나라는 여러 면으로 복잡해지고, 그에 따라 개인들도 살아가기가 수월치 않은 게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제가 체류하고 있는 오클라호마 주의 반 밖에 안 되는 면적에 5천만의 인구가 살고 있으니, 많은 갈등과 다툼이 생겨날 것은 당연하겠습니다만. ‘원칙과 법치’, ‘양보와 신뢰만이 그나마 우리의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묘책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한 해 제게도 좋은 일, 궂은 일 등 곡절이 적지 않았습니다. 재직하는 학교에서 그 학교의 첫 아너 펠로우 교수(Honor Fellowship Professor)’로 선정된 일과 풀브라이트(Fulbright) 지원 학자로 선정되어 미국에서 연구와 재충전의 기회를 제공받은 일은 제 일생을 통해 가장 과분한 영예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덕에 도전과 힐링(healing)’이란 목표를 갖고 미국으로 건너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정 기간의 반 이상을 보낸 지금 그 목표가 얼마나 달성되었는지 반성하며 스스로 자책하고 있습니다. 그 반면에 약간 서운한 일도 물론 있었습니다. 인간 사이에서 오고가는 거짓이나 술수만큼 사악한 행위도 없을 것입니다. 뻔히 알면서도 겪은 경우는 올해가 처음입니다만. 그 모든 것들이 제 모자람에서 기인한 것이라 치부하고, 오히려 자신을 닦달하며 사랑으로 감싸 안으려 노력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그들도 결국 참회의 눈물을 보이며 돌아올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국가든 직장이든 개인이든, 새해엔 많은 시련과 도전에 직면하리라 생각합니다. 주변의 여건들이 결코 만만해 보이지 않는 요즈음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중심을 잡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국가도, 직장도, 개인도, 중심이 없으면 허물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학자로서의 중심을 다잡으려는 것이 올 한 해 견지하고자 하는 목표이자 과제입니다. 여러분께 많은 지도와 편달, 부탁드립니다.

 

모쪼록 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고, 가정에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2014년 새해 아침에

 

백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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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성원

    2013년에 '모욕과 배신' 그런 일도?
    새해에는 세롭게, 나쁜 일은 모두 잊고 뜻한 바 이루시길 빌어 보네!

    2014.01.01 15:16 [ ADDR : EDIT/ DEL : REPLY ]

글 - 칼럼/단상2011. 2. 27. 20:08


눈물교회에서 몇 분을 걸어 내려오자 올리브 고목들의 이파리가 삐져나온 담장이 보였는데, 그곳이 바로 어릴 적부터 귀에 박히도록 들어온 겟세마네(Gethsemane) 동산이란다. 올리브산 서쪽 기슭으로 프란체스코 수도사들이 4세기 경 기존의 교회 터에 세운 ‘만국교회’라는 이름의 라틴 교회가 서 있었다. 많은 순례객들이 밀물⋅썰물처럼 좁은 동산을 밀려 다녔고, 구멍이 숭숭 뚫린 올리브 고목들만 그 광경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밀려드는 인파의 피부색은 다양했으나, 인간의 입장에서 참을 수 없는 배신의 고통을 이곳에서 겪은 예수님의 마음을 새겨보려는 듯 비장감 일색이었다. 겟세마네의 원래 뜻은 ‘기름 짜는 기계’란다. 수천 년을 견뎌낸 것처럼 보이는 올리브 나무들이 건재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 옛날엔 이곳에 올리브 기름 짜던 기계가 설치되어 있었으리라.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올리브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을 것이고, 그 가운데 몇 그루가 이곳 교회의 앞뜰에 살아남아 지나온 시간들을 증명하고 있는 듯 했다. 만국교회 문 앞에서 건너다보니 기드론 계곡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겟세마네는 대략 길이 1.6㎞ 가량의 산마루로, 예루살렘 동부지역과 나란히 뻗어 있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날 밤 최후의 만찬을 끝낸 뒤 제자들과 함께 고뇌의 기도를 드렸고, 제자인 유다의 배신으로 로마 군인들에게 잡힌 곳이 바로 이곳 겟세마네다.

인파에 밀려들어간 교회 안에서는 라틴 교회 성직자들이 예배를 집전하고 있었고, 많은 순례객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예수님의 수난이 시작된 이곳에서 세계 곳곳으로부터 찾아온 순례객들과 함께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순간이었다. 인간이 경험하는 고통은 찰나이지만, 그 고통이 남긴 교훈은 영원함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 깨달음의 순간 올리브 고목들 사이에 누워있는 석판의 성경 구절[마태복음 26:39]은 그대로 내 마음에 메아리로 울려왔다.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마태복음 26:31>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32절>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3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34절>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35절>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36절>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37절>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38절>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39절>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40절>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41>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42절>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43절>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 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44절>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45절>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46절>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47절>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한지라<48절>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4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그들이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50절>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51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52절>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53절>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54절>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55절>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56절>"

 

예수님은 제자들의 행동을 통해 인간의 사악함과 나약함을 보여주려 하신 것일까. 눈물교회로부터 겟세마네에 이르는 동안 ‘깨어 있으라’시던 예수님의 당부를 지키지 못한 베드로의 ‘졸음터’를 보았다. 뜻하지 않게 배신을 하고, 또 배신을 당하면서 삶을 이어가는 우리네 세상살이를 이처럼 극적으로 보여주는 말씀과 장소가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달라’는 간구야말로 배신을 통해 죄인들의 손에 목숨을 내어주어야 하는 굴욕의 비참함을 면하고자 한 ‘예수님 최후의 인간적 고백’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런 수모를 피할 수 없음이 ‘섭리’에 의해 예정되어 있음을 예수님은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 극적인 장소가 바로 겟세마네였다. 겟세마네의 수모를 거쳐 도달하게 된 빌라도 법정의 또 다른 수모는 예수님의 성성(聖性)을 구현하기 위해 예정된 통과제의, 아니 희생제의였던 것이다. 만국교회의 순례객들과 올리브 고목들의 눈물겨운 조화는 예수님께서 2천년 전에 마련하신 겟세마네의 아름다운 메타포였다. 나는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이 걸으신 수난의 발자취, 그 출발선을 드디어 발견하고야 말았다.




  *사진 위로부터  1. 겟세마네 동산의 올리브 나무들,  2. 올리브 나무 사이에 있는 석판[마태복음 26장 39절], 3 4. 순례객들, 5. 예배를 집전하고 있는 사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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