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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1.19 나이타령-정치인들에게-
  2. 2014.02.01 미국통신 58: 미국 학자 만나기(1) (3)
글 - 칼럼/단상2017. 1. 19. 16:24

 

  나이타령

-정치인들에게-

 

 

 

 


세종대왕

 

 

 

세종 18(1436) 326일의 일이다. 당시 판중추원사를 지내던 허조(許稠)가 벼슬에서 물러나고자 했다.

 

중추원은 왕명의 출납(出納)이나 병기(兵器)군정(軍政)숙위(宿衛) 등 임금 주변에서 군무나 경비를 담당하던 핵심 부서였고, 판중추원사는 정2품의 고위직이었다. 조선조 18개 품계 가운데 정1, 1품 다음의 세 번째로 높은, 오늘날로 치면 장차관이나 도지사급에 해당하는 직급이었으니, 권세 또한 막강했을 것이다.(그는 좌보궐로 조선조의 벼슬을 시작하여 좌의정 영춘추관사에 이르기까지 문무의 요직들을 두루 역임했다.)

 

고려 우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른 그는 조선조에 들어와 국방은 물론 조선조 예악정치(禮樂政治)의 발판을 마련한 인물이었다. 태종 때는 명나라 사행 길에 서장관으로도 참여하여 국제적인 안목까지 갖추게 되었으니, 핵심 요직에서 조선왕조의 토대를 굳건히 하고 중세적 질서를 확립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이었다. 조선조 건국과 함께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기여해 오다가, 연부역강(年富力强)마흔아홉에 세종의 치세를 맞이한 그의 기세는 대단했을 것이다.

 

그러던 그가 세종 조에 들어와 20년 가까이 활약한 뒤 67세에 이르자 왕에게 치사(致仕)를 요청한 것이다. 그 시대로 보면 고령이었고, 세종은 39세의 팔팔한 청춘이었다. 그가 요청한 사직의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1. 종척(宗戚)도 아니고, 훈벌(勳閥)도 아니며, 공의(公議) 또한 호의적이지 않다.

2. 평소의 질병으로 근력은 쇠약하고 피곤하여 걷기가 힘들 뿐 아니라, 정신이 없어져서 앞뒤를 기억하지 못한다.

 

육체적정신적 노화현상을 밝힌 2는 지극히 평범하여 누구나 수긍할 만 하다. 그러나 임금의 친척도 아니고 공신의 후예도 아니라는 점과 함께 공의가 호의적이지 않다1의 이유는 요즘에 비추어 보아도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임금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그가 밝힌 사의를 반려한다.

 

1. 나이는 높으나, 눈과 귀는 밝고 자세하며 근력은 아직 편안하고 튼튼하다.

2. 만년(晩年)을 온전하게 하여 공명(功名)을 보전하고자 하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3. 그러나 좋은 계책을 내고 큰일을 결정할 때 임금인 내가 누구를 의지할 것인가?

4. 몸을 보전하고자 하는 것과 나라의 임무를 맡는 것 중 무엇이 더 중한가?

5. 그래서 사직을 윤허할 수 없다.

 

그로부터 3년 후인 70에 사망한 것을 보면, 실제로 그는 그 때쯤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를 겪고 있었으리라. 그런데 허조가 사직의 결정적 이유로 제시한 1은 무엇이었을까. 원문(“猶竊殊寵, 私自未安, 公議何如?”)‘(임금의)특별한 사랑을 독차지함이 스스로 편안치 않은데, 사람들의 뒷말은 어떻겠습니까?’로 풀어도 좋으리라. 말하자면 나이를 먹어서까지 임금의 총애를 독점하는 그에 대한 뒷담화들이 많았던 모양이고, 사실 그로서는 육체적인 질병보다 그것들이 더 괴로웠을 것이다. 그리하여 67세에 사직소를 올린 것이다. 그러나 세종은 학문이나 경륜의 면에서 누구보다 뛰어난 그를 물러나게 할 수 없었다. 39세의 왕이 보기에 67세의 원훈대신(元勳大臣)은 나라의 믿을만한 기둥이었으리라. 패기 하나 믿고 경륜의 노년을 업신여기는 젊은 친구들이 미덥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왕은 극구 떠나가려는 허조를 붙들어 앉힌 것이나 아닐까.

 

***

 

이와 관련, 요즘 벌어지는 선출직 65세 정년론(停年論)’은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개운치 않다. 그 문제를 제기한 표창원 의원은 현재 51세이니, 14~5년 후인 그의 65세에도 그런 주장을 할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으나, ‘친문으로 분류되고 있는 그가 반기문 전 유엔총장을 견제하고 문재인 전 의원을 돕기 위해 이런 논의를 제기했다고 보는 항간의 풍문도 있다. 그러나 정작 그가 도우려는 문재인 전 의원이 올해로 64세임을 감안하면, 그런 항간의 의혹이 정확한 것 같지는 않다.

 

사실 그가 언급한 65세가 은퇴하기에 적절한 나이임에는 나도 전적으로 공감한다. 표 의원의 전직이 대학교수임을 감안하면, 아마도 대학교원들의 정년을 쉽게 떠올렸을 것이다. 나 역시 65세가 되면 미련 없이 강호로 들어가 조월경운(釣月耕雲)’하며 남은 삶을 엮어가려 한다.

 

그런데, 지금이 어느 때인가. 이른바 ‘100세 시대. 가끔 동네 사우나에서 70대 어른을 한 분 만난다. 구릿빛 몸매와 울퉁불퉁한 근육을 자랑하며 나보고 근육운동을 권하시는 분이다. 근육질의 70대와 선병질(腺病質)20대가 공존하며 경쟁하는 것이 오늘날의 특징이다. ‘가스통으로 불리는 부정적 노인들도 있지만, 지혜와 경륜을 갖춘 어른들도 적지 않다. 단순히 육체 나이를 들이대며 은퇴를 강요하는 것은 구시대의 사고방식이다. 바람직한 희망과 목표를 갖고 노력하는 경우에만젊음은 사람들에게 믿음을 준다. 아무런 공부나 대책도 없이 성질 부룩거리고, 막말이나 해대는 것을 젊음의 특권이라 여긴다면, 그건 나라와 민족에게 재앙이다. 그런 젊음에게 어떻게 나라를 맡길 수 있단 말인가.

 

최근 저잣거리에 나와서 표를 구걸하는 인물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라. 괜찮아 보이는 인물들은 잘 알려지지 않아 당선의 가능성이 없고, 제법 지지율이 높은 인물들은 대부분 경륜이나 식견이 매우 모자라 믿음을 주지 않으며, 심지어 인간성이 개차반으로 보이는경우까지 있어 걱정이다. 거기에다 나이의 잣대를 들이대어 그나마 잘라 버린다면, 도대체 경륜 있는 지도자를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공자

 

 

공자는 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 四十五十而無聞焉이라 했다. "후생이 두렵나니 어떻게 미래의 그들이 오늘날의 우리만 못할 줄로 알겠는가? 사오십 세가 되어도 명성이 없다면 이 역시 두려워할 게 못 된다."고 번역되는 이 말에는 크게 두 가지의 뜻이 들어 있다. ‘나이 먹었다고 젊은이들을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 그 하나요, ‘40, 50이 되어 제대로 된 명성을 얻지 못하면 그 젊음도 별 볼 일 없다는 것이 그 둘일 것이다.

 

첫 번째는 당연함에서 재론의 여지가 없으나, 두 번째는 요즈음의 현상과 매우 깊은 관련을 갖는다. 40이나 50이 되어, 아니 그 이전에라도 뜨는인사들은 부지기수다. 그런데, ‘무엇으로뜨느냐가 문제다. 막말로 젊은이들의 감성을 자극하여(그들을 속여서) 뜨는 것도 공자의 이른바 명성[]’이라 할 수 있는가. 교묘한 심리적 사술(邪術), 이른바 포퓰리즘으로 유권자들을 속여서 뜨는 것도 그 명성의 범주에 속하는가. 자기편에 선 사람들을 조종하여 상대편에 대한 증오의 감정을 갖도록 함으로써 뜨는 것도 그 명성의 범주에 속하는가. 공자가 말씀하는 문()이란 군자로서의 소문이고, 군자란 도와 덕에 바탕한 훌륭한 인간상이라면, 무엇으로 떠야 하는지는 불문가지(不問可知)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몇 살 넘은 자들은 물러서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이제 ‘50대가 깃발을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발언들은  대부분 육체나 물질의 허상에 잡혀 있는 자들의 텅빈 구호일 뿐이다. 세상을 경영할만한 덕과 방책을 갖추고 있기만 하다면, 지금 그들이 몰아내고자 하는 연령대의 인물들을 지도자로 뽑는 데 무슨 문제가 있으며, 20대나 30대인들 무슨 문제란 말인가. 설마 표 의원이 자신의 나이를 염두에 두고,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리라. 그러나 때가 때인지라, 그런 말 자체가 예사로이 들리지 않는 것은 오늘날 지식사회의 의식이 지나치게 표피적이고 사려 깊지 못한 데서 오는 불안감 때문이다.

 

이른바 정치인들이여, 쓸데없는 말로 가뜩이나 경조부박(輕佻浮薄)한 이 사회를 흔들지 마라! 한 마디 말이라도 아끼고 좋은 일들을 더 많이 실천함으로써, 방황하는 젊음들을 제대로 이끄는 삶의 푯대가 되어 달라! ‘나이 타령같은 요설(妖說) 말고, 제대로 된 담론(談論)으로 우리 사회의 품위를 한 단계 높여달라!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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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4. 2. 1. 01:15

 

 

 


연구실에서 포즈를 취한 림멜 교수

 

 

 

한국의 통일을 열망하는 러시아 역사 전문가, 림멜(Lesley A. Rimmel) 교수

   

 

미국에 있는 동안 꽤 많은 미국의 지식인들을 만났다. 주로 교수나 강사, 박물관의 큐레이터들,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 등인데, 그 가운데는 오가는 도중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도 있었고, 지금까지 비교적 자주 만나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대부분의 미국 지식인들이 타인들 특히 외국인들을 낯설어 하며 자신들만의 울타리에 갇혀 지내는 것 같은데, 알고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자신의 전공을 통해 얻은 통찰력으로 남을 이해하기도 하고, 남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를 통해 전공에서 만난 문제들을 풀기도 한다.

 

12월 중순의 어느 날 점심시간. 브레이크 룸에서 커피를 데우고 있는데, 평소 눈인사 정도를 나누던 여 교수 한 분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말을 걸어왔다. 며칠 전 PBS에서 방영된 비밀의 국가 북한[Secret State of North Korea]’란 다큐멘터리를 보았느냐고 물었다. 그 순간 나는 참으로 많이 부끄러워졌다. 방영된다는 소식을 뉴스로 듣긴 했으나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동족의 끔찍한 참상들이 미국인들의 눈앞에 발가벗겨진 채 드러난 모양이구나! 집에 돌아가자마자 포털사이트에서 그 방송을 확인했고, 며칠 후에는 다운로드해서 직접 보기도 했다.

 

내가 알고 있거나 짐작하고 있는 사실들의 반복에 불과했지만, 미국인들에겐 충격으로 다가왔을 내용이었다. 특히 군사조직에 가까울 정도의 병영국가 체제, 대한민국과 미국을 주된 표적으로 무력을 앞세운 협박, 몽땅 쇼 윈도우의 컨셉으로 꾸며진 평양, 비참하고 끔찍한 정치범 수용소들, 살아남을 힘마저 상실한 아이들과 일반국민들의 참상 등. 내게 북한의 현실을 일깨워 준 림멜 교수에게 달리 할 말은 없었으나,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그녀를 만나 South Korean들의 입장을 말하지 않으면 내 자존심이 허락지 않을 것 같았다. 오늘 드디어 림멜 교수의 연구실에서 장시간 만나 한반도의 현실을 설명하고, 그녀의 관심사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대화들 가운데 한 부분을 이곳에 올리기로 했다.

 

 


                                                      연구실에서 필자와 대담 중인 림멜 교수

 

 

 

***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림멜 교수는 자신의 전공을 통해 얻은 통찰력으로 남을 이해하게 된대표적 미국 지식인이다. 명문 예일 대학 역사과를 우등으로 졸업한 그녀는 이듬 해 국제 교육 교류 위원회[Council on International Educational Exchange]’의 수혜자로 선발되어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레닌그라드 주립대학[Leningrad State University]에서 러시아어 프로그램을 이수했으며,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키로프(Kirov) 살해와 소비에트 사회: 1934-35년 레닌그라드에서의 선전과 여론[The Kirov Murder and Soviet Society: Propaganda and Popular Opinion in Leningrad, 1934-35]’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수재였다.

 

1995-96년에는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강사로 재직했고, 1998년 가을학기부터 이곳 OSU에 자리를 잡고 주로 러시아중앙아시아근대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과목들을 강의해 왔으며, 20여 종에 가까운 수상 및 그랜트(Grant) 수혜 경력을 갖고 있는 탁월한 교수임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 가운데는 풀브라이트(1991-92), 앨리스 폴 어워드(Alice Paul Award/1991), 국제 교류 연구 기금(International Research and Exchanges Board Grant/1991-92) 등을 비롯,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수혜를 받은 학자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녀의 주된 관심사는 스탈린 시대 소련 역사에서 통치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폭력이었고, 전쟁을 비롯한 집단 폭력이나 지하경제와 같은 국제적 기층민중의 현실 등에도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북한사회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의 현실에 관심을 갖는 걸까. 북한 얘기를 꺼내자 그녀는 김정은을 입에 올리며 스탈린보다 훨씬 잔인한 그의 성격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야기 도중 책장 위에 올려놓았던 스탈린의 배불뚝이 동상을 꺼내더니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체형(體形)이 스탈린과 똑같지 않으냐고 내게 물었다. 국민들을 배고프고 괴롭게 하면서 자신의 배를 불린 전형적인 독재자의 모습을 스탈린에게서 찾을 수 있고, 한반도의 김씨 3대는 바로 그 아류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스탈린 시대를 중심으로 러시아 역사를 긴 세월 연구해 온 그녀로서 국민 착취 및 학대의 전형적인 독재자로 스탈린을 꼽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체형과 인간성의 유사성까지 들면서 김씨 3대를 스탈린보다 더 잔인하고 독한 인물들로 규정하고 있는 점은 흥미로웠다. 그나마 스탈린은 자기 당대에 끝이 났지만, 김씨 왕조는 대물림을 하고 있으므로 훨씬 지독한 인물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스탈린이나 김씨 3대 등 배불뚝이 독재자들주민을 학대하고 착취하는 악마적 지도자의 시각적 상징으로 해석할 수도 있음을 그녀의 설명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스탈린의 독재가 결국 소련 해체의 단서로 작용한 것처럼 그보다 더 잔인한 모습으로 한반도 북쪽에 군림하고 있는 김씨 3대 특히 김정은의 폭력성이 조만간 체제의 전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 그녀의 관점이었다.

 

 


연구실에서 필자와 대담 중인 림멜 교수

 

 


연구실에서 필자에게 설명 중인 림멜 교수

 

***

 

주변에 입양된 한국의 고아들을 언급함으로써 나를 부끄럽게 했지만, 이내 한국인 친구들이나 한국과의 친분을 강조함으로써 나로 하여금 친밀감을 갖게 한 그녀. 그러나 잠시 후 그녀는 삼성현대기아엘지•대한항공 등 미국을 비롯한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한국의 기업들을 죽 나열하고 그들의 장점까지 거론했으며,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삼성 폰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 뿐인가. 한국의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을 독재자로,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을 민주주의 정착기의 대통령으로, 그 사이에 있는 노태우 대통령을 과도기로 각각 규정하는 등 한국 대통령들의 이름과 공적을 꿰고 있었으며, 반기문 총장, 김용 세계은행 총재 등 세계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명사들의 이름을 줄줄 외움으로써 한국인인 나를 적잖이 놀라게 했다.

 

상당수의 한국인들은 산업화의 결정적 초석을 놓은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하고 있으며, 그 여파로 박근혜 대통령도 정계의 전면에 등장할 수 있었다고 내가 설명하자 그 말을 수긍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물어왔다. 세대에 따라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믿음직하다는 평가를 받아 비교적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고 말하자, 동북아시아의 큰 나라들이나 미국도 내지 못한 여성 대통령을 선출했다는 점과 함께 여성의 리더십이 나라를 흥하게 하는 선례를 한국이 만들 것이라는 고무적 관측까지 내놓는 것이었다. 북한이 매우 폭력적으로 나오는 것도 국제사회에서 보여주는 한국의 다양한 활약이나 선전(善戰)에 불쾌감을 느끼는 데 큰 원인이 있을 수 있다는 그 나름의 분석을 보여주기도 했다.

 

***

 

학자로서 자신이 전공한 학문을 바탕으로 현존하는 체제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만큼 신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걸출했던 역사철학자 E. H. 카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과거와 현재의 부단한 대화가 역사라고 했다. 그 대화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역사가의 온당한 해석 행위이고, 그런 해석을 통해 역사의 객관성은 확보될 수 있다고 보았다. 스탈린 시대에 생겨난 역사적 사건들의 해석을 통해 단순히 그 시대의 규명에나 그치고 만다면, 그것을 진정한 역사가의 안목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 학자를 만나자마자 북한을 지배하고 있는 김씨 3대 혹은 북한의 미래까지 내다보는 통찰을 림멜 교수는 내게 보여준 것이리라. 여지없이 엄정한 시각을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적 사실들의 해석에서 얻어내는 존재들이라는 점에서 제대로 된 역사학자들을 만나는 일이 내겐 큰 즐거움이고, 그 즐거움을 림멜 교수와의 만남에서 비로소 확인할 수 있었다.

 

 


컴퓨터 자료를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는 림멜 교수

 

 


림멜 교수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삼성 폰

 

 


2013. 12. 14. PBS에서 방영한 '비밀의 국가 북한' 타이틀 화면[방송화면 캡쳐]

 

 


영양실조에 걸린 북한의 어린이[방송화면 캡쳐]

 

 


군 진지를 순시하는 김정은에게 달려가며 충성을 과시하고 있는 인민군들[방송화면 캡쳐]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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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지민

    오래된 삼성 폰이 참 정겹게 느껴집니다.
    우리나라에 대해서 이렇게 관심이 많은 분도 계시군요

    2014.02.02 00:51 [ ADDR : EDIT/ DEL : REPLY ]
  2. 최영민

    림멜 교수님은 아마도 스탈린 시대의 소련역사를 연구하시는 분 같은데요. 키로프가 스탈린의 친구였고, 당시 키로프의 도움이 스탈린에게는 절대적이었지요. 림멜 교수님의 논문을 읽지는 않았으나,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스탈린이 키로프를 죽인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지요. 말하자면 그를 '미래의 잠재적인 정적'으로 보았던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고모부 장성택'을 잔인하게 죽인 김정은과 '절친 키로프'를 교묘하게 죽인 스탈린, 둘 중에서 누가 더 고약한 인물일까요?

    2014.02.02 06:35 [ ADDR : EDIT/ DEL : REPLY ]
  3. 백규

    최영민 님의 댓글이 아주 인상적이군요. 그렇지요. 사실 스탈린은 열등감이 심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루지아인으로서 '대러시아'를 제창했을 정도로 러시안에 대한 민족적 열등감도 컸지요. 그런데 키로프는 스탈린보다 훨씬 잘 생겼고, 달변가로서 스탈린을 위한 대중선동의 선봉에 늘 그가 섰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기를 절대적으로 도와주는 친구에게 강한 열등감을 느꼈던 것일까요? 아니면 최영민 님의 견해대로 '미래의 잠재적 정적'으로 생각하여 미리 제거한 것일까요? 제 생각엔 아마도 두 가지 가능성이 다 해당된다고 봅니다만. 다른 분들의 견해를 더 기다려 보겠습니다.

    2014.02.02 06:55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