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6. 8. 20. 21:01

박사학위를 받은 두 제자를 보며

 

 

 

 

 

 

 

 

박사학위만 받으면 그럴 듯한 자리를 차지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박사학위는 사람까지 달라보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박사학위는 아무나 받을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었을까. 세상사람들은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을 외경(畏敬)의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박사학위 수여식은 긴 가방끈의 종착역이었으며, 상아탑 안에서의 연찬(硏鑽)을 종결하는 표지가 바로 박사학위였다. 세상 사람들이 박사학위를 존경하니,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은 함부로 행동하지 못했다. 박사학위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지긋이 눌러주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지방 소도시의 어느 대학에서 있었던 일 하나. 당시 그 도시엔 작은 대학 둘이 있었다. 둘 중 큰 대학의 학장이 그 도시의 유일한 박사였다. 대학의 졸업식이나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이면, 그는 집에서 가운과 박사모를 착용한 채 휘적휘적 걸어서 학교 혹은 행사장까지 나가곤 했다고 한다. 그 스스로 자신의 박사학위가 얼마나 자랑스러웠겠으며, 그곳 사람들은 그가 얼마나 존경스러웠을까.

 

구제(舊制) 박사 시대가 오래 지속되면서, 박사학위는 그야말로 학문의 완성자에게 주어지는 완장 같은 역할을 했다. 정말로 아무나 받을 수 없는 게 당시의 박사학위였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명분과 이념을 중시하는 시대정신이 무너져 가면서 그 자리를 실용과 실리가 메우기 시작했고, 박사학위의 의미 또한 묘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가끔은 약간 우스운 인사들이 박사학위를 받는 일이 생기기도 했고, 박사학위가 돈으로 거래된다는 소문들이 심심치 않게 돌기도 했다. 구제 박사의 구제(舊制)’구제(救濟)’로 희화화되기 시작한 것도, 가짜박사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시절부터였다.

 

서양에서 받아들인 제도이겠지만, 우리 사회에도 신제박사가 등장했다.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자격시험과 논문만 통과되면 누구나 박사를 받을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든 건 일종의 혁명이었다. 박사모의 아우라가 바람처럼 사라지고, 근엄한 박사가운의 신비로움은 거추장스러움으로 전락했다.

바야흐로 박사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한참 전에 '도나 개나 모두 박사 되는세상에 살게 되었다고 도 넘은 탄식을 내뱉던 구제박사 한 분을 만난 적도 있다. 권위와 우상이 파괴된 보통인들의 사회이자 대중 사회가 그에게는 바로 도나 개나 모두 박사인 세상으로 비쳐진 모양이었다. 물론 제대로 된 박사가 드문 세상, 표절박사들이 고위직에 앉아 거들먹거리는 세상, 우리가 지금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것도 사실은 사실이다.

 

***

 

오늘, 내 제자 둘이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가운데 열정 하나로 힘겹게 박사학위를 받은 그들을 힘 빠지게 하려고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다. 옛날의 박사학위는 값이 나갔는데, 지금의 박사학위는 그렇지 못함을 말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옛날은 옛날대로, 지금은 지금대로 박사모를 쓰는 일은 쉽지 않다. 사실 신제박사 초창기에는 박사학위를 받고나서 크게 앓아눕는 인사들이 많았고, 박사학위를 받자마자 유명을 달리하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나왔으며, 심지어 학위수여식장에 가기 직전 삶을 마감한 분들도 더러 있었다. 박사학위가 통과된 뒤 혹은 박사학위를 받은 뒤 한동안 앓아눕는 사례를 지금도 자주 목격한다. 예나 지금이나 박사학위 공부가 쉽지 않다는 방증이리라.

 

최연 박사는 중국 산동성 옌타이에 있는 노동대학교(魯東大學校) 교수다. 2012년 과정을 시작한 두 학기 만에 아이를 출산했고, 첫 돌도 안 된 아기를 떼어놓고 돌아와 박사공부를 이어온 입지전적여성학자다. 3년 만에 박사학위를 따낸 저력의 근원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뛰어난 천품이나 자질이 1차적 요인이었겠지만, 아가와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 기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분투노력한 지극한 모정이야말로 결정적 요인이었으리라. 한국에서 살아온 우리도 재미없고 어렵게 여기는 계녀가류 규방가사이쁜 아가 옷 누비듯한 땀 한 땀 떠 내려 간 작업이 바로 그의 논문이다. 시간·공간의식이나 에코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꽉 막힌 규방에서의 한심함을 정연한 담론으로 승화시킨 그 옛날 여성들의 삶을 잘도 요리하여 먹음직스런 모습으로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최 박사는 조만간 출간될 그의 책 머리말에서 계녀가류 규방가사에 대한 깨달음을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계녀가류 규방가사를 공부하면서 놀라운 깨달음이 왔다. 사실 여성 억압적 담론의 계녀가류 규방가사로부터 시대정신과 어긋나는 따분함을 느끼고 떠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한 꼭지 두 꼭지 작품들을 읽어나가면서, 마냥 따분한 이야기들의 반복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대로 하나의 구조 안에 공존하는 표층성과 이면성을 해석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특별히 여성들에게만 엄혹한 잣대가 적용되던 암흑시대에 여성들이 살아남기 위한 돌파구는 무엇이었을까. 이면적 의미를 역으로 마련해 놓은 그 시대 여성들의 지혜가 바로 생존을 위한 돌파구였고, 의도하지 않고도 오늘날의 여성시대를 마련하게 된 그 시대 여성들의 역사적 혜안이었다. 작품들에서 공간이나 시간의식, 생태여성주의 등을 읽어낸 것도 바로 그런 깨달음의 결과였다. 남성들의 기세가 등등하지만, 결국 그들도 언젠가는 남성과 동등한 여성 고유의 역할을 인정하게 되리라는 믿음 아래 인고(忍苦)의 세월을 견디며 살아나온 건 아닐까.”

 

그의 깨달음이 명료하여 나는 일단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 시대 여성들에 대한 동정이나 공감 없이 이런 논리가 가능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에 더욱 그랬다. 그 정도의 결심과 노력을 지속한다면, 조만간 학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겼던 것이다.

 

2002년 강의실에서 만난 학부 초년생 이상욱(무늬상점 대표)의 반전(反轉)과 발전(發展)은 내 자긍심의 바탕이다. 학부 초기 술에 찌들어 지내던 그였다. 그러나 단 한 번의 꾸짖음과 결심으로 학구(學究)에 몰두하면서 보여준 변신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내 강의와 논저들을 통해 노래문학으로 보아야 하는 고전시가의 본질을 잘도 캐치하여 오늘날의 케이팝(k-pop)으로 연결시킨 그는 얼마나 명민한가!

그는 싱어송라이터(singer-song writer)로서 음반도 여러 장 냈고, 음악시장의 한 부분을 담당하게 되었으니, 그의 미래는 참으로 밝다. 사실 케이팝이 세계 음악 시장의 핫한이슈로 떠올라 있긴 하지만, 현상에만 열광할 뿐 그 미학적 근원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지한 것이 우리의 한계였다. 조만간 출간될 그의 책 머리말 가운데 한 부분을 보자.

 

“'우리의 가맥(歌脈)은 단 한순간도 끊어진 적이 없다.'

철부지 학부생 시절, 스승인 조규익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이다. 별 생각 없이 흘려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옛 노래와 지금 노래가 이렇게나 다른데 무슨 말인가? 둘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는 말인가?’ 나의 연구는 아마 그때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겉모습만을 가지고 성급한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될 일이다. 조금만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대상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왕조나 국가가 바뀌었다하여, 전쟁이 일어났다하여, 심지어 국권을 빼앗겼다하여 한 민족의 노래 문화가 한순간 단절되거나 송두리째 바뀔 수는 없는 일이다. 한국 노래는 아주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변화하며 이어졌다. K-pop에서 전통의 요소와 외래의 요소를 동시에 발견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책은 K-pop을 통해 엿볼 수 있는 한국 노래의 지속과 변이의 양상, 미학 등에 대한 연구서이다. 아울러, 음악 산업의 현장에서 내가 직접 경험한 것들을 정리한 실무 보고서이기도 하다.”

 

그렇다. 내 말을 흘려듣지 않고 결국 박사논문으로까지 승화시킨 사례로는 그가 유일하다. 옛 노래문학으로부터 흘러오는 전통을 인식하며, 스스로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일을 업으로까지 삼고 있으니, 그가 내 학문적 자부심의 바탕이 되어 준 것은 분명하다. 융합과 통섭이 시대정신으로 정착한 지금, 반려자의 전공이자 주업인 디자인과 그의 노래가 시너지를 발휘하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그의 시대가 꽃피어나길 기다리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

 

누구는 주마가편(走馬加鞭)하라했고, ‘미운 자식에겐 떡 하나 주고, 이쁜 자식에겐 매 한 대 안기라는 옛말도 있다. 그러나 옛 말들이 반드시 맞는 것은 아니다. 달리는 말에 채찍을 더하면 그냥 쓰러질 수도 있다. ‘매 한 대보다 떡 하나가 젊은이들에게 오히려 도움 되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다. 시대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옛 어른들의 말씀을 묵수(墨守)하는 것은 지혜가 아니다. 술이부작(述而不作)보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을 삶의 지표로 삼아야 한다는 내 철학을 바탕으로 오늘 학위를 받은 두 제자들의 단점 대신 장점을 들어 보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니 당사자들이나, 이 글을 읽으시는 강호제현은 부디 양찰(諒察)하시기 바란다. 

 

 

 

백규 연구실에서

 

                                선배들, 지도교수와 함께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3. 12. 15. 11:15

 

 

 

왜 우리는 이렇게 하지 못하는가?

 

 

 

어렵던 시절, 궁색한 현실에 비해 가당찮게 큰 욕구를 가졌었기 때문일까. 졸업식에 관한 내 추억은 온통 잿빛 일색이다. 1978년도 내 대학 졸업식은 참으로 우중충했고, 1981년도 석사학위 수여식과 1986년도 박사학위 수여식은 번잡하고 무성의하여 도무지 아무 감흥도 느낄 수 없었던, 그야말로 서운한행사들이었다그 후 대학인들의 타성이 고착되면서 졸업식에 관한한 행사를 위한 행사를 반복해왔고, 오늘날에 이르러 대학 졸업식은 지리멸렬그 자체로 전락해 버렸다.

 

독자 여러분 가운데 최근의 대학 졸업식에 가본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졸업생들은 식이 시작되어도 식장에 들어가지 않는다. 흡사 사진 찍는 일이 졸업식의 전부인양 카메라를 껴안은 채 식장 바깥에서만 어슬렁거린다. 모처럼 자식의 학교를 찾은 학부모들도 식장 안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들어가 봐야 재미 없고 지루하기만 할 것이며, 무엇보다 당사자인 자식이 들어가지 않는 곳에 기를 쓰고 들어가 앉아 있을 부모는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바깥은 인파로 북적대는데, 그 넓은 식장 안의 좌석들에는 석박사학위 받는 몇 사람과 수상자 몇 명만 듬성듬성 앉아있을 뿐이다.

 

왜 그럴까. 간단히 말하면, 졸업식을 주관하는 대학 측의 철학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졸업식은 학교당국과 교수들이 그 행사의 핵심인 졸업생을 위해 가족을 초청하여 갖는 학교 최대의 행사인데, 졸업생들이 철저히 소외 되고 있는 것이 한국 대학 졸업식의 현주소다. 

 

근래 어느 대학의 졸업식에 참석해 보았다. 그 넓은 단상에는 내빈들과 동문회 인사 등 외부 초청 인사들이 그득하고, 그 한 가운데 지역구 국회의원이 총장과 나란히 앉아 있었다. 총장의 연설이라는 게 왜 그리 장황하고 요령부득인지 참으로 한심했다. 하기야 우리나라 주요 일간신문들은 스피치 라이터가 써주는 큰 대학 총장들의 축사 전문을 경쟁적으로 싣던 때도 있었으니, 코미디도 그런 코미디가 있을 수 없었다. 각 대학 스피치 라이터들의 글 솜씨나 한 번 맛보라는 이야기였을까. 내빈축사는 왜 그리 많으며, 내용 또한 중언부언(重言復言) 지루하단 말인가. 그 많은 졸업장과 상장들은 왜 하필 졸업식장에서 일일이 수여해야 하는가. ‘이하 동문(以下 同文)’을 일일이 외쳐대면서도 서너 시간을 끌어가니, 그나마 상장이라도 받지 못하는 대부분의 졸업생들이 앉아 있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런 고문을 당하고 나면 자신의 졸업이 어찌 영광스러울 것이며, 어찌 모교에 대한 사랑인들 생길 것인가.

 

***

 

그간 가까이 지내던 브라이언 군이 이 대학에서 2년을 단축하여 조기 졸업한다는 소식을 듣고, 오늘 그 졸업식에 참석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의 전기에 속하는 본 졸업식은 이미 5월에 있었고, 이번은 후기에 속하는 이른바 '코스모스 졸업'이었다. 규모가 작아 대충대충 진행되리라는 우려가 있었을 뿐 아니라, 대학 졸업식에 대한 기대를 접은 지도 오래 된 터여서 별 감흥은 없었지만, 정리로 보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졸업생들의 가족과 친지들은 물 밀 듯이 밀려들었으나, 모두 정시에 입장을 끝내고 경사 진 3면의 관객석에 안전하게 좌정했다. 식장인 실내 농구장의 바닥에는 졸업생들이 앉을 의자들이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고, 정면의 단상에도 그리 많지 않은 좌석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예정된 시각에 총장이 단상으로 나오더니 놀랍게도 그 스스로 식을 주재하기 시작했다. 총장의 말에 따라 이 대학 파이프 밴드가 행진곡을 연주한 뒤, 브라스 밴드의 연주에 맞추어 졸업생들이 두 줄로 들어와 마련된 의자에 착석하기 시작했다. 졸업생들의 착석이 끝나자 스코틀랜드 전통복장을 한 파이프 밴드의 연주와 선도로 단상에 앉을 인물들이 질서정연하게 입장했다. 그 다음 장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미국 국가[The Star Spangled Banner]우렁찬 목소리로 제창했다. 이어 오클라호마 주의 노래인 'Oklahoma'를 부른 다음 본격적인 졸업식이 진행되었다.

 


OSU 농구 경기장에 꾸민 졸업식장

 


졸업식장 전경(좌, 우, 뒷면 등 3면에 가족과 친지들이 앉아 있다)

 


가족과 친지들이 일어선 가운데 졸업생들이 줄지어 입장하고 있다.

 

총장은 우선 특별한 몇몇 손님들을 소개했고, 그 가운데 세 사람[주 교육위원회 의장, 교수협의회 의장, 오클라호마 주 하원의장]이 각각 1~2분 정도의 아주 간단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졸업축하 인사를 했으며, 이어 학위증 수여가 있었다졸업생들은 호명되는 대로 단상에 올라 총장, 학장, 학과장 등과 악수하고 사진 찍기 위한 포즈를 취한 다음 자기 자리로 내려가는데, 좌석 부근엔 해당 학과 교수들이 함께 모여 기다리다가 자리로 돌아오는 졸업생들에게 축하인사를 건넸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졸업생들이 호명되어 단상으로 올라갈 때마다 관객석의 가족이나 친지들은 괴성에 가까울 정도의 함성을 질러대는 장면들이었다. 졸업식의 즐거움을 그들은 그렇게 표현했고, 당사자들 또한 단상으로 나가면서 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졸업생 모두를 단상으로 불러 올려 격려함으로써 그들에게 자부심을 불어넣어 주려는 배려가 느껴지는 것이었다.

 


입장한 졸업생들과 객석의 가족 및 친지들이 일어서서
단상에 앉을 인사들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단상에 앉을 인사들이 입장하고 있다.

 


졸업생들에게 학위증을 수여하고 있다. 졸업생 좌석의 교차로에서
교수들이 축하인사를 건네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졸업장 수여가 끝나자 졸업생들도 단상의 인사들도 관객석의 가족이나 친지들도 함께 모교의 노래[OSU Alma Mater]’를 부르는데, 내 주변 사람들의 노랫소리가 얼마나 큰지 깜짝 놀랄 정도였다. '모교의 노래'가 끝나고 단상의 인사들이 줄 지어 퇴장한 뒤 졸업생들도 들어올 때의 역순으로 퇴장함으로써 졸업식은 끝이 났다.

 

***

 

그 흔한 꽃다발도 없었다. 식장 밖에서 어슬렁거리는 졸업생도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은 시간이 되자 악대의 선도를 받아 질서정연하게 들어왔고, 정확하게 준비된 의자를 모두 채워 앉았다어쩌면 이렇게 개인주의의 천국인 미국에서 마치 훈련이라도 받은 것처럼 질서정연하게 행사를 진행할 수 있단 말인가. 식 초반에 그들은 자신들의 국가와 주가(州歌) 함께 소리 높여 부르며 단합정신[team spirit]을 확인하는 듯 했다어느 순서 하나 필요 이상으로 늘어지는 게 없었다. 모두가 졸업생들로 하여금 자신에 대한 영예와 모교에 대한 자부심을 갖도록 치밀하게 조직된 극본을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것 같았다.

 


모든 참석자들이 기립하여 국가와 주가 등을 제창하고 있다.

 


가족 및 친지들의 모습

 

사실 대학 졸업식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던 나였다. 그러나 식이 시작되면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일순 나를 긴장시켰다. 식순이 하나하나 진행되면서 서서히 감동이 일기 시작했다. 장황하거나 지루하지 않아 초점을 살리면서도 모두를 배려하는 세리머니는 예술 자체였다. 스피치에 참여한 모든 인사들도 하나같이 사전에 입을 맞춘 듯짤막한 멘트 속에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교훈을 담으려 노력한 것 같았다.  

 

이 대학과 아무런 관련 없는 나도 식이 끝나면서 내심으로 작지 않은 변화를 느꼈다. 그건 또 다른 버전의 감동이었다. 개인주의를 넘어선 단합정신. 여기서 미국의 무서운 힘이 나온다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미국에도 대학의 서열이 엄존한다. 그러나 그들은 무턱 댄 자기 비하자기 우월에 빠지지 않는다. 그 서열이란 모든 요소들을 반영한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자기 대학의 장점을 찾아 열심히 노력하는 데서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 이들의 최대 장점이다. 추운 날 담요를 싸들고 경기장에 나가 모교 응원에 참여하는 이 대학의 졸업생들. 그들이 바로 초강대국 미국을 유지해가는 사람들이다. 허구 한 날 좁쌀들끼리 비교하며 경쟁심만 부추기고, 모든 사람들을 자기 비하에 빠지게 하는 우리나라 대학들의 행태는 이쯤에서 청산해야 한다. 헛된 자존심을 버리고, 배울 건 배워야 한다.

 


브라이언(왼쪽에서 세번째)과 친구들

 


브라이언 등과 함께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7. 7. 14. 11:57
*신정아 사기사건을 보며 참담함을 금할 수 없군요. 제가 옛날에 쓴 칼럼이 있어서 다시 이곳에 올려 봅니다. 우리가 학벌의 환상을 좇는 한 우리 사회에 '가짜박사' 사건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끊이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함께 반성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합니다.



*이 글은 조선일보 2006. 3. 27. 시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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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가짜박사' 부추기는 사회


허술한 검증에 간판 중시 ‘지식범죄의 온상’ 돼버려


▲ 조규익 숭실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최근 며칠째 가짜박사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사건은 곪을 대로 곪은 우리 지식사회의 아름답지 못한 이면을 만천하에 노출시킨, 일종의 ‘테러’다. 피터 드러커의 설명처럼 지식 노동자가 권력을 갖는 사회가 지식사회라면 이 땅의 총체적 부패는 지식인들로부터 연유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추악한 테러의 무대가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을 넘어 러시아와 필리핀까지 번졌으니 다시 어느 나라가 이 행각의 새로운 현장으로 연루될지 자못 불안하기만 하다. 한국판 지식 범죄의 국제화라고나 할까. 얼마 전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했던 우리 학자들의 표절사건, 온 국민을 망연자실하게 만든 ‘황우석 사건’ 등과 함께 이번의 가짜박사 사건으로 우리의 지식사회는 결정적인 카운터펀치를 맞은 셈이다. 우리나라의 국제 경쟁력이 하락 국면으로 접어든 것도 국가 발전을 선도해야 할 지식사회의 휘청거림과 무관치 않다.
지금 우리는 가짜박사 학위를 남발한 외국의 대학들을 나무랄 처지가 아니다. 그런 대학들에서 사온 가짜 학위로 학술진흥재단에 학위등록을 하고, 어엿한 대학의 교수직에까지 올랐으니 문제의 근원을 우리에게서 찾는 것이 옳다. 가짜박사를 교수로 채용할 정도로 진짜와 가짜도 걸러내지 못한 수준이 우리 대학들의 한심한 실태다. 이런 현상은 지식사회의 마비된 양식, 국가의 학문정책 부재, 대학개혁의 실패 등이 어우러진 결과다. 지금 우리나라 대학들은 개혁의 열풍에 휩싸여 있다. 그러나 하드웨어의 치장에만 주력할 뿐 정작 개혁해야 할 본질적 대상은 초점으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개혁의 목적은 대학정신의 정립에 두어야 하고, 그에 걸맞은 제도의 신설이나 보완이 그 구체적인 방향이어야 한다.

세계에서 우리나라는 박사학위 보유자 비율로 선두권에 서 있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검증 시스템이 없거나 부실한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우리나라 대학들이 필연적으로 저질박사들의 온상 혹은 가짜박사들의 은신처가 되기에 딱 알맞은 곳임을 보여주는 점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손쉽게 입수할 수 있는 지식정보가 널려 있고 표절행위 또한 여전한데, 오히려 논문의 심사단계는 전보다 간소화되고 있다. 적으면 한두 번, 많아야 서너 번의 심사가 박사논문 검증의 전부다. 박사 학위의 양산체제에 온정주의까지 가세하여, 저질논문을 걸러내기란 더욱 어렵다.

지금 기업들은 대학의 박사학위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학을 비롯한 대부분의 기관들은 반드시 박사학위를 요구한다. 아무리 실력이 출중하고 연구업적이 뛰어나도 박사학위가 없으면 아예 서류조차 낼 수 없다. 그러나 정작 채용 과정에서는 가짜박사를 걸러내지 못한다.

구태의연한 검증 시스템과 지식사회의 낮은 윤리의식, 실력보다 학위를 중시하는 인력 수요자들의 무감각이 지속되는 한 가짜박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가짜박사들은 죽은 지식사회에 기생하기 마련이다. 지식사회의 핵심인 교수들에게 보다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과 성실한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근 발표된 서울대의 교수윤리헌장은 늦었지만 적절하다. 지식사회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진리다.


(조규익 숭실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7. 4. 10.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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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한 검증에 간판 중시 ‘지식범죄의 온상’ 돼버려

최근 며칠째 가짜박사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사건은 곪을 대로 곪은 우리 지식사회의 아름답지 못한 이면을 만천하에 노출시킨, 일종의 ‘테러’다. 피터 드러커의 설명처럼 지식 노동자가 권력을 갖는 사회가 지식사회라면 이 땅의 총체적 부패는 지식인들로부터 연유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추악한 테러의 무대가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을 넘어 러시아와 필리핀까지 번졌으니 다시 어느 나라가 이 행각의 새로운 현장으로 연루될지 자못 불안하기만 하다. 한국판 지식 범죄의 국제화라고나 할까. 얼마 전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했던 우리 학자들의 표절사건, 온 국민을 망연자실하게 만든 ‘황우석 사건’ 등과 함께 이번의 가짜박사 사건으로 우리의 지식사회는 결정적인 카운터펀치를 맞은 셈이다. 우리나라의 국제 경쟁력이 하락 국면으로 접어든 것도 국가 발전을 선도해야 할 지식사회의 휘청거림과 무관치 않다.
지금 우리는 가짜박사 학위를 남발한 외국의 대학들을 나무랄 처지가 아니다. 그런 대학들에서 사온 가짜 학위로 학술진흥재단에 학위등록을 하고, 어엿한 대학의 교수직에까지 올랐으니 문제의 근원을 우리에게서 찾는 것이 옳다. 가짜박사를 교수로 채용할 정도로 진짜와 가짜도 걸러내지 못한 수준이 우리 대학들의 한심한 실태다.
 
이런 현상은 지식사회의 마비된 양식, 국가의 학문정책 부재, 대학개혁의 실패 등이 어우러진 결과다. 지금 우리나라 대학들은 개혁의 열풍에 휩싸여 있다. 그러나 하드웨어의 치장에만 주력할 뿐 정작 개혁해야 할 본질적 대상은 초점으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개혁의 목적은 대학정신의 정립에 두어야 하고, 그에 걸맞은 제도의 신설이나 보완이 그 구체적인 방향이어야 한다.

세계에서 우리나라는 박사학위 보유자 비율로 선두권에 서 있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검증 시스템이 없거나 부실한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우리나라 대학들이 필연적으로 저질박사들의 온상 혹은 가짜박사들의 은신처가 되기에 딱 알맞은 곳임을 보여주는 점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손쉽게 입수할 수 있는 지식정보가 널려 있고 표절행위 또한 여전한데, 오히려 논문의 심사단계는 전보다 간소화되고 있다. 적으면 한두 번, 많아야 서너 번의 심사가 박사논문 검증의 전부다. 박사 학위의 양산체제에 온정주의까지 가세하여, 저질논문을 걸러내기란 더욱 어렵다.

지금 기업들은 대학의 박사학위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학을 비롯한 대부분의 기관들은 반드시 박사학위를 요구한다. 아무리 실력이 출중하고 연구업적이 뛰어나도 박사학위가 없으면 아예 서류조차 낼 수 없다. 그러나 정작 채용 과정에서는 가짜박사를 걸러내지 못한다.

구태의연한 검증 시스템과 지식사회의 낮은 윤리의식, 실력보다 학위를 중시하는 인력 수요자들의 무감각이 지속되는 한 가짜박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가짜박사들은 죽은 지식사회에 기생하기 마련이다. 지식사회의 핵심인 교수들에게 보다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과 성실한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근 발표된 서울대의 교수윤리헌장은 늦었지만 적절하다. 지식사회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진리다. <2006. 3. 27.>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