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5. 6. 2. 22:15

 

 




헤게모니를 장악한 미국 유학파와 학벌 공화국

-김종영의 <<지배받는 지배자>>를 읽고-

 

 

 

십칠 년 전쯤이었을까. 1년을 머물기 위해 처음으로 미국에 갔었다. 그 대학엔 한국인 유학생들이 아주 많았다. 어느 날, 박사과정에 재학하던 한 친구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툴툴거렸다. 한국 K대학 출신인 그는 갓 입학한 후배를 유학생 모임에 데리고 가 소개를 한 모양이었다. 그 자리에 끼어 있던 S대 출신의 한 유학생이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어중이떠중이가 다 유학을 오는구나...”

 

아마 들릴락 말락 혼잣소리로 중얼거렸기에, 그는 대놓고 항변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명색이 K대학 출신에게 어중이떠중이란 표현을 쓴 데 대하여 자못 분개하고 있었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 있던 나로서는 ‘S대 출신이 K대 출신을 차별하는 곳이 한국임을 생생하게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당연히 S대 출신이라는 그가 궁금했고, 그가 수강한다는 강의를 몇 번 청강하면서 자연스레 그를 관찰하게 되었다. 미국인 학생들이 다수였고, 중국인 서너 명과 그를 포함한 한국인 학생들이 두어 명 섞여 있었다. 강의와 토론으로 이루어지는 수업의 열기가 대단했다. 미국인 학생들은 교수가 제지해야할 정도였고, 중국 학생들도 나름 열정적이었다. 심리학 관련 강의였던 만큼 나로서도 관심 가질만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는 시종일관 조용했다. 그의 영어 발언을 듣고자 몇 번 나갔으나, 그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지친 나머지 나는 그에 대한 관찰을 그만 두었다.

 

교수인 내 기준으로 말하면, 그는 그 클래스 룸의 열등생이었다. 그 뒤로부터 학벌 차별의 문제를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다. 남들 보기에 초라한지방대학 출신이지만, 서울에서의 대학원 유학으로 세탁된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이른바 보따리 장사단계를 건너 뛴 채 일찌감치 20대 후반에 대학 전임이 된 덕분이었을까. 나는 그 때까지 그들로부터 명시적으로 차별을 받는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직장에서 국내의 이른바 명문대학출신들[특히 미국 유학파]을 관찰해보았으나, 그들 역시 그냥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일 뿐이었다. 모를 일이다. 혹 어느 구석에 뛰어난 점이 숨어 있는지! 설혹 있다 해도 그건 한 끗 차이일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늘 수그러들지 않는 이슈는 바로 학벌의 문제다. 절대 출신학부를 차별의 근거로 들지 않는 미국과 달리, 우리는 1차적 차별[다른 말로 절대적 차별]의 잣대를 출신학부에 두고 있다. 스카이(SKY)[그 중에서도 서울대학]로 대변되는 출신학부의 기득권이야말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미국 유학파에게 덤으로 주어지는 최고최대의 프리미엄일 것이다.

 

***

 

최근 바쁜 틈을 타서 모처럼 좋은 책을 읽었다. 김종영 교수의 <<지배받는 지배자: 미국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이란 책. 서구 이론들의 틀을 원용하긴 했으나 삶의 현장에서 관련자들을 만나 관찰한 사실들을 설득력 있는 어조로생생하게 분석전달했다는 점이 무엇보다 좋았다. 나를 포함, 고리타분한 책상물림들의 저작과 많이 다르다는 점에서 신선했다.

 

조선시대 중인계층에 비견되는중간적 소수자(middleman minority)로서의 미국 유학파가 갖는 다양한 얼굴들을 과감하게 보여 준 점이야말로 김 교수가 갖고 있는 엄정한 학자적 결기(決氣)의 발로일 것이다. ‘한국의 우등생들이 미국의 대학들로 유학을 간 뒤 열등생으로 전락했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헤게모니를 쥐게 된다는 것, ‘미국에서 열등생으로 전락하는 요인도, 한국에 돌아와서 헤게모니를 쥐게 되는 요인도 뛰어넘을 수 없는 영어의 힘에 있다는 것 등이 이 책에서 강조되는 핵심적 요지들 가운데 하나다.

 

책에는 이것들을 뒷받침하는 불편한 진실들이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막대한 지원,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우수 연구중심대학들, 탈 중심적 구조등을 갖춘 수월(秀越)한 미국 대학들과 모든 면에서 초라한 우리나라 대학사회사이에는 뛰어 건널 수 없는 심연(深淵)이 가로놓여 있다는 진단은 누구나 수긍할만하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미국 대학들의 우월성은 도덕적문화적 헤게모니로부터 나오는데, 그 헤게모니는 학문 활동의 깊이와 진지함, 열정 등과 직결되는 것이다.

 

김 교수가 막스 베버의 미들맨 마이너리티의 친족주의와 연줄에 의한 천민자본주의를 인용하여 우리나라의 대학을 천민 학문 공동체로 규정한 것은 대학사회가 지닌 합리성의 결여라는 현실적 근거를 바탕으로 했기에 더욱 설득력이 있다. 미국 유학파는 이렇게 낙후된 천민적 학문 공동체에 미국적 합리성을 전파하면서, 동시에 글로벌 문화자본의 상징폭력을 우리나라 지식인들에게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유학과 함께 경험하는 연구중심 대학들의 실상이나 학문 대가들과의 만남은 유학생들을 크게 고무시키지만, 그 공간에서 사회적 피라미드의 상층으로 올라갈 수 없는 근본적 한계 때문에 다시 낙후된 고국으로 돌아와야 하고, 결국은 천민공동체의 헤게모니의 장악이라는 비윤리성을 발휘하면서 매우 부정적인 존재로 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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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할 수 없는 말을 하는 선비감언지사(敢言之士)’라 불러왔다. 왕조시대의 임금이나 임금 주변에 대하여 드물지만 바른 소리를 아끼지 않는선비들이 있었다. 정말로 무서울 것 없는, 요즘 같은 대명천지에 권력의 중심부를 향하여 바른 소리를 할 수 있는 감언지사가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이해하기 어렵다. 감언지사 없는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학문권력 아니 학벌권력의 서슬이 지금처럼 세력을 부릴 때가 우리 역사상 그 언제였던가. 그 학벌권력이 낙인을 찍으면 꼼짝 없이 낙향할 수밖에 없는 게 오늘날 지식사회의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김종영 교수는 ‘21세기 한국의 감언지사라 할 수 있으리라.

 

겉으로 보기에 미국 유학파는 매우 유능하고 미래지향적이며 합리적인 학문의 리더들이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공동체에 수시로 글로벌의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이기(利己)의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남들이 보기에 그들은 감추는 게 많은군상이다. 그들은 과연 무엇을 감추려 하는 것일까. 사실 그 점이 못내 궁금했는데, 김종영 교수의 이 책이 그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사실 이 책에는 차마 입으로 옮기기 부끄러운 미국 유학파들의 실상과, 헤게모니 쟁탈전의 전사로 변한 학벌들의 민낯이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책 가운데 비교적 함축적이며 온건하게 표현된 두어 단락들을 결론 삼아 옮겨 놓는다.

 

 

한국연구자들이 시류에 민감한 이유는 또 다시 이들의 트랜스 내셔널(transnational) 위치와 깊이 연관된다. 트랜스 내셔널 미들맨 지식인들의 주요 전략은 미국의 연구 센터에서 생산되는 지식을 빨리 국내에 도입하여 선점하는 것이다. 자기만의 독창적인 분야가 없기 때문에 외국의 첨단 연구에 주목해야만 한다. 분야를 막론하고 미국 유학파 교수들은 미국에서 한 것을 가지고 와야 주목을 받을 수 있고, 연구비를 지원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시류를 타면 이런 장점이 있지만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서 답을 구하는 방식을 취해야 하는 심도 있는 연구를 수행하기는 어렵다. 석학은 유행을 타는 사람이 아니라 유행을 만드는 사람이다()학계에 진입한 신진 연구자들은 이전 세대보다 개방적이지만 이미 구조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학벌 중심의 네트워크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신진 연구자는 학계에서 파워가 없고 연구를 위해 네트워크를 만들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학벌 중심의 연구 관계는 다른 학벌을 가진 사람들을 소외시킨다. 이 교수는 모 대학 중심의 학회의 회식자리에서 서로 형, 동생 하는 모습에 아연실색했다고 말한다.

 

이 교수: 나만 이방인인 것 같고, 그렇지만 꾹 참았죠. 더럽더라고요. 회식 자리에서 느끼는 건 솔직히 말해서 남의 동창회에 괜히 껴서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있었지만 꾹 참고 앉아 있었던 거죠.

 

이 교수는 결국 이 연구 모임과 거리를 두었다. 이는 그 연구 집단에게는 손해가 된다. 왜냐하면 이 교수의 전문성을 충분히 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네트워크가 개방적일 때 연구의 전문성과 생산성이 높아진다. 연구는 지식의 교류인데, 이 교류가 폐쇄적일수록 독창적인 지식 생산은 어려워진다. [김영종 교수의 책, 190~192]

 

 

문제는 미국 유학파 한국 지식인의 학문적 열정이 트랜스 내셔널(transnational) 구조를 갖는다는 것이다. 미국의 연구중심 대학에서 고양된 열정은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급격히 쇠락한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조인구 교수의 에피소드는 이를 잘 말해준다. 1986년 프린스턴 대학교를 졸업한 조 교수는 경제학 부문에서 가장 많은 노벨상을 배출한 시카고 대학 교수를 거쳐 서울대 교수로 부임했다. 하지만 한국에 온 지 1년 뒤인 1998년에 서울대를 그만 두고 돌연 미국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일은 한국 경제학계에서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2006년에 한국을 방문한 조 교수는 왜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갔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조 교수는 노벨상을 받은 제임스 헤크먼, 게리 베커, 로버트 포겔 교수 등 시카고 대학의 교수들을 언급하며, 이들은 나이가 70, 80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벽까지 공부한다는 간접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조 교수는 미국 대학 교수들의 학문적 열정에 항상 자극을 받는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수학자들과 연구해온 박 교수는 피부로 느낀, 한국 교수와 미국 교수의 차이점을 이렇게 말한다.

 

박 교수: 미국에서 교수하는 사람들은 교수 직책이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연구하는 게 좋아서근데 한국은 교수라는 게 저거잖아요. 조금 기득권층, 대접 받는 게 좋아서, 그 맛에 교수를 하는 거거든요. 공부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교수를 하는 게 아니고.

 

박 교수는 한국 대학에서 공부를 열심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하는 사람은 드물다고 말한다. 또 연구에 대한 가치를 높이 평가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논문을 열심히 쓴다고 알아주는 사람도 많지 않다고 말한다. 사회학을 전공하는 남 교수도 비슷한 견해를 내놓는다. 열심히 공부하는 교수의 비율이 한국보다 미국이 훨씬 높고, 더 탁월한 연구를 하려는 욕심 역시 한국 교수들은 적다고 말한다. 한국 교수들은 다른 사람보다 나아지려는 경쟁의식도 없고 연구를 통해 블라섬하고(꽃을 피우고) 싶다는 욕망도 없다는 것이다.

학문적 열정은 지속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유지된다. 학문적 전념은 고도의 감정적 에너지를 요구하는데, 한국 학계에서 이것을 지속시키기는 너무나 어렵다. 학문에 대해 점점 냉담해지는 것은 트랜스 내셔널 미들맨 지식인들의 공통적으로 갖는 집단적 감정 상태다. 한국 지식인이 미들맨인 것은 이들의 열정이 최고가 아님을 뜻한다. 학문의 길만이 최고로 가치 있는 일이라는 기이한 최면과 환상 없이는 진정한 학자가 될 수 없다. 이러한 학문에 대한 종교적 맹목성은 감정적으로 충만한 학문 공동체 속에서만 배양된다. 곧 한국 대학에서 미국 대학의 헤게모니는 이 둘 사이의 지식 격차, 윤리적 격차 뿐만 아니라 열정(또는 감정)의 격차속에서 발생한다. 로고스는 에토스와 파토스 없이 홀로 설 수 없다.[김종영 교수의 책, 196~197]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4. 3. 17. 20:07

 

 


OSU in Stillwater 캠퍼스 조감도

 

 

 


OSU의 분 피켄스 스테이디엄(Boone Pickens Stadium)

 

 

 

 


OSU의 전신인 Oklahoma A&M 건물.
현재는 OSU의 Honors College로 쓰이고 있음[아래 사진 참조].

 

 

 

 


OSU의 Honors College로 쓰이고 있는 Oklahoma A&M  건물.

 

 

 

 


OSU의 상징 마크

 

 

 

 


Oklahoma A&M의 문장(紋章)

 

 

 

 


OSU의 문장

 

 

 

 


OSU의 마스코트인 '피스톨 페테(Pistol Pete)

 

 

 

 


피스톨 페테의 모델인 프랭크 이튼(Frank Eaton)

 

 

 

 


1928~1950년까지 Oklahoma A&M의 총장을 지낸 베네트(Henry G.Bennett) 박사 동상.
베네트 총장은 이 대학 발전의 초석을 놓았음.

 

 

 

 


OSU의 중심에 서 있는 중앙도서관 '에드몬 로우 라이브러리(Edmon Low Library)'의 설경

 

 

 

 


OSU의 '선진 기술 연구 센터[Advanced Technology Research Center/ATRC]

 

 

 

 


OSU 캠퍼스의 한 건물

 

 

 

 


스튜던트 유니언(Student Union)에서 내려다 본 OSU의 가든

 

 

 

 


OSU의 중심에 서 있는 중앙도서관 '에드몬 로우 라이브러리(Edmon Low Library)'의 여름 경치

 

 

 

 


백규 연구실이 들어 있던 사우스 머레이홀(South Murray Hall)의 복도

 

 

 

 


OSU의 중심을 관통하는 몬로 거리[Monroe Street]

 

 

 

 


학부와 대학원생들에게 특강 중인 백규

 

 

 

 


 OSU의 예술과학대학[College of Arts and Science]
대닐로위츠( Bret Danilowicz)학장과 상면(학장실에서)

 

 

 

 


백규 연구실을 방문한, OSU의 탁월한 한인 교육학 교수 조윤정 박사

 

 

 

 


OSU 인근 다운타운의 레스토랑에서 역사학과의 에멀리[Graham, Emily] 교수와  함께

 

 

 

 


OSU 역사학과의 반짝이는 두 학생 마켄지(Mackenzie)와 루크(Luke Mccamon) 

 

 

 

 

 

 

평원 속 지성의 오아시스,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

 

 

 

 

미국 내에서의 연구기관을 오클라호마 주립대학으로 정했다고 하자, 한국 풀브라이트의 심재옥 단장은 참 잘한 결정이라고 나를 추어주었다. 미국 내에서 그 학교만큼 친절하고 협조적인 기관도 드물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오클라호마 주와 오클라호마 주립대학에 대해서 눈곱만큼의 사전 정보나 지식도 없었던 나로서는 적이 안심이 되었다.

 

도착 후 뙤약볕 내려 쪼이는 캠퍼스를 걸어보니, 소떼 노니는 초원인 듯 한없이 넓었다. 방문한 사무실의 직원들도, 교정에서 만나는 학생들도 모두 친절해서 마음이 놓였다. 따가운 햇살만 아니라면 시차로 인해 무거워진 눈꺼풀을 닫은 채 마냥 걷고 싶은 공간이었다. 듬성듬성 세워놓은 갖가지 양식의 건축물들도 고풍스럽고 따스해 보였다. 사우스 머레이홀(South Murray Hall)과 스튜던트 유니온(Student Union) 사이에 있는 쎄타 폰드(Theta Pond). 그 안에서 살아가며 이방인이 나타나도 무서워하지 않고 꽉꽉거리며 다가오는 기러기와 오리들도 정겨웠다. 그렇게 깨끗하고 아름다운 환경, 친절한 인간, 고풍스런 건축물들이 잘 어울려 친근미를 자아내는 OSU에서 꿈같은 한동안을 지내게 된 것이었다.

 

OSU는 이른바 랜드 그랜트(land-grant), 선 그랜트(sun-grant)’ 대학이었다. ‘랜드 그랜트 대학이란 정부가 무상으로 제공한 토지에 세운 대학을 뜻하는 말이다. ‘랜드 그랜트 대학에 대한 지원은 1862년에 제정된 모릴법[Morrill Acts] 대학에 대한 연방 토지 허여법(許與法)’에 근거한다. 연방이 각 주에서 선출된 상하원 의원 1명당 3만 에이커의 나라 땅을 무상으로 주고, 그 토지 수익의 90%를 농학이나 공학 관련 강좌가 개설되어 있는 주립대학의 발전 기금이나 유지비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모릴법이다. 1890년과 1907년에는 기존의 모릴법에 의해 지원을 받는 모든 대학들에 의회가 직접 보조금을 교부하는 내용이 추가되기도 했다. ‘선 그랜트 대학이란 지속 가능하고 환경 친화적인 생태 기반의 대안 에너지를 연구 개발하는 대학을 뜻한다. ‘선 그랜트 계획의 지역 중심 역할을 수행하는 다섯 개의 미국 대학들이 모여 선 그랜트 연합이 결성되었고, 그 연합은 교통부, 에너지부, 농업부 등을 파트너로 삼아 연구교육 활동을 펼친다. 오클라호마 주립대학을 비롯, 코넬 대학교(Cornell Univ), 오레곤 주립대학교(Oregon St. Univ.), 사우스 다코타 대학교(South Dakotat Univ.), 녹스빌 테네시 대학교(Univ. of Tennessee at Knoxville) 등 다섯 대학들은 각각 선 그랜트에 기반을 두고 있는 기관들이다.

 

1890년에 세워졌고, 2012년 기준으로 23,459명의 학생들과 1,857명의 직원을 포함한 OSU는 스틸워터 캠퍼스만 해도 1,489 에이커[6.03]에 이를 만큼 넓다. 캠퍼스 안 어디에서나 피스톨을 찬 카우보이[피스톨 페테(Pistol Pete)]의 사진과 마스코트를 볼 수 있었으며, 풋볼을 비롯한 각종 경기 중에도 피스톨 페테의 분장을 한 사람이 그라운드에 나타나 분위기를 띄우곤 했다. 함께 풋볼을 관람한 제이슨으로부터 피스톨 페테의 연원을 들을 수 있었다피스톨 페테는 OSU, 뉴멕시코 주립대학, 와이오밍 대학교가 함께 사용하는 운동경기의 마스코트였다. 피스톨 페테는 프랭크 이튼(Frank Eaton)을 닮은 전통적인 카우보이의 의상과 모자를 착용하고 있는데, 그의 형상이 OSU 카우보이 팀의 마스코트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23부터였다. OSU가 원래 ‘Oklahoma A&M 대학[Oklahoma Territorial Agricultural and Mechanical College]’으로 출발할 때 당시 이 대학의 스포츠 팀은 ‘Agriculturists, Aggies, Farmers’ 등으로 불렸고, 사실 그다지 인기는 없었지만 공식명칭은 ‘Tigers’였다. 그러다가 1923년 경 Oklahoma A&M은 스틸워터의 양떼 행진[Sheep Parade]’을 인도하던 프랭크 이튼(Frank Eaton)을 새로운 마스코트의 모델로 삼아 기존의 호랑이 마스코트를 바꾸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1923년부터 프랭크 이튼은 Oklahoma A&M의 마스코트로 계속 쓰였으나, 1958년에 이르러서야 OSU는 이것을 공식적인 상징으로 인정했다 한다.

 

1860년 코네티컷 주에서 태어나 캔자스로 이주한 프랭크 이튼은 여덟 살에 아버지를 잃었다. 당시 자경단원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남북전쟁 당시 남부 연합군 소속의 잔당 6명에 의해 맥주 집에서 저격당한 것이었다. 그 후 아버지 친구의 충고에 따라 열심히 권총사격 연습을 하여 결국 원수를 갚았고, 그 후로부터 그의 영웅적 행적은 전설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피스톨 페테의 모습이 가장 강렬하게 등장하는 이벤트는 스포츠 경기들과, 홈커밍[OSU’s Homecoming Celebration]을 포함한 각종 축제들이었다. 9월부터 시작되는 1학기 초부터 기숙사별로 학생들이 단결하여 홈커밍을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프래터너티(fraternity)와 소라러티(sorority) 즉 남녀 사생(舍生)들이 기숙사별로 모여 아이디어를 내고 기숙사 안팎을 치장하는 등 화려한 축제를 통해 그들의 단결심을 고취하고, 그런 유대관계는 졸업 후에도 끈끈하게 지속되는 것 같았다. 이러한 홈커밍데이의 전통과 함께 OSU는 놀랄만한 스포츠 유산들을 보유하고 있었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 점에도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시즌 중 거의 매 주말은 게임 데이(game day)’였고, 하루 전부터 재학생동문주민들이 경기장에 총출동하다시피 함으로써 평소에 조용하던 시가지는 아연 활기를 띠곤 했다.

 

게임데이는 실질적으로 스틸워터의 도시축제인 셈이었다. 7만 명을 수용하는 분 피켄스 스테이디엄(Boone Pickens Stadium)’은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였고, 응원의 함성으로 천지가 진동하는 듯 했으며, 캠퍼스 안의 잔디밭과 도로변의 공터는 외지에서 온 관객과 응원단의 텐트촌으로 바뀌곤 했다. 거대한 RV(Recreational Vehicle)들과 관객들의 승용차가 시내 공용 주차장들을 점령하고, 주차장으로부터 경기장까지는 무료 셔틀버스들이 수시로 왕래했다. 이처럼 풋볼, 농구, 여자 축구, 야구, 레슬링, 테니스, 크로스컨트리 등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들이 캠퍼스 안에서 활발한 모습으로 공존하고 있었다.

 

OSU 스포츠의 대단한 모습은 대외적인 경기력 뿐 아니라 일반 학생들을 위한 생활스포츠에서도 두드러진다. 51개의 국내 선수권 챔피언십을 보유하고 있는 사실은 무엇보다 돋보이는 점이었다많은 챔피언십 보유 순위에서 OSU는 미국 대학 경기 연맹[NCAA: 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의 최상위 그룹인 1그룹[Division 1]351개 대학들 중 4위에 속하고, 아이오와캔자스오클라호마텍사스웨스트 버지니아 주를 포괄하는 12 경기 협의회[Big 12 Conference]’ 소속의 10개 대학들 중에서는 1위에 속한다. 

 

그 뿐 아니라 캠퍼스 한 쪽에 서 있는 국립 레슬링 명예의 전당 박물관[National Wrestling Hall of Fame and Museum]’은 미국 전역에서 배출된 역대 레슬링 선수들의 모든 것들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링컨도 루즈벨트도 슈워츠코프도 레슬링 선수출신이라는 사실을 이곳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 명예의 전당은 단순히 힘깨나 쓰는 장사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다가 잊히는 한국과 달리 오래도록 명예가 드높여지고 보존되는 미국의 힘과 지혜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OSU 스포츠의 장점이 스타플레이어들의 엘리트 스포츠 종목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구성원들의 건강관리와 유지를 위해 세운 종합 스포츠관인 콜빈 센터와 세레티안 웰니스 센터, 크로스 컨트리 경기장, 잔디 축구장, 테니스장 등이 캠퍼스 안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스포츠 공간들은 대중 스포츠의 현장이었다. 구성원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이런 시설들은 대학이 엘리트 스포츠 아닌 대중 스포츠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증거들이었다.

 

18901225일 오클라호마 의회가 모릴법에 의거하여 개교한 오클라호마 지역 A&M 대학은 개교 이래, 많은 변화와 발전들을 거쳐 1957515일 오클라호마 주립대학[Oklahoma State University]으로 변신했고, 스틸워터를 그 본거지로 삼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스틸워터 이외에 ‘OSU-오크멀기 기술연구소[OSU-Institute of Technology in Okmulgee]’(1946), ‘OSU-오클라호마 시티[OSU-Oklahoma City]’(1961), ‘OSU-털사[OSU-Tulsa]’(1984), ‘OSU-건강연구소, 털사[OSU-the Center for Health Sciences-Tulsa]’(1988) 등의 분교들을 거느리게 됨으로써 명실상부한 이 지역의 대표 대학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스틸워터의 OSU 캠퍼스는 농업과학과 자연자원 대학[College Science and Natural Resource(CASNR)/농업경제학(Agricultural Economics), 농업경영학(Agribusiness) 16개 전공]’, ‘예술과학대학[College of Arts and Science(CAS)/영어(English), 역사(History) 24개 학과]’, ‘교육대학[College of Education(COE)/초등교육(Elementary Education), 직업기술교육(Career and Technical Education) 29개 프로그램]’, ‘공학건축기술대학[College of Engineering, Architecture, and Technology(CEAT)/소방안전기술(Fire Protection and Safety Technology), 산업공학과 경영학부(School of Industrial Engineering and Management) 13개 학부]’, ‘인문대학[College of Human Sciences(HS)/디자인학과(Department of Design), 호텔 식당경영학부(School of Hotel and Restaurant Administration) 4개 학과]’, ‘스피어스 경영학부[Spears School of Business/금융학과(Department of Finance), 마케팅학과(Department of Marketing) 7개 학과]’ 6개 대학 200여 전공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틸워터의 전체면적은 73.3였고, 그 중 다운타운의 면적은 이 채 안 되는 듯 했으며, 6.03에 달하는 OSU는 다운타운으로 감싸인 방사형의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미국 내 대학들 가운데 OSU의 서열이 어떠하든, 동부나 서부의 전통적인 명문대학들과 비교하여 그 수준이 어떠하든, 스틸워터를 비롯한 오클라호마 주민들은 정말로 OSU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점이 이채롭고 감동적이었다. 서울과 지방 대학들 간의 서열을 따지고, 같은 지역 안에서도 대학 간의 서열을 따지며, 같은 대학 내에서도 학과 간의 서열을 따지며 차별하는 우리나라의 현실과 비교하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들에게 OSU는 오클라호마를 대표하는, ‘우리 대학이라는 의식이 강했다.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 속에 평화로운 모습으로 늘어서 있는, 나지막하고 고풍스런 건물들이 OSU 캠퍼스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밤을 새워가며 공부하고, 가끔 체육관으로 몰려가 ‘Go Pokes!’를 목청껏 외치며 OSU Cowboys들을 응원하는 세계의 수재들이 그 공간에 열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OSU에 머물며 미국 대학들의 경쟁력과, 그로부터 나오는 미국의 힘을 실감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미국에 막 도착하여 뙤약볕 아래 캠퍼스를 돌아보는 백규와 멜라니

 

 

 

 


OSU 갤러거 아이바 경기장[Gallagher Iba Arena] 앞에 서 있는 'OSU Spirit Rider'

 

 

 

 


풋볼 경기 중 OSU가 한 점을 얻자 말을 탄 카우걸과 응원단이 경기장에 나온 모습
[Boone Pickens Stadium]

 

 

 

 


풋볼 경기를 관람하는 제이슨(Jason Culp)과 백규

 

 

 

 


풋볼 경기장에서 OSU를 응원하는 학생 응원단

 

 

 

 


풋볼 경기에서 OSU가 선취점을 올리자 기뻐 뛰쳐나온 응원단

 

 

 

 


크로스 컨트리 경기장에서 힘차게 출발하는 선수들

 

 

 

 


OSU에서 운영하는 캠퍼스 내의 호텔 Atherton

 

 

 

 


홈커밍 행사의 일환으로 학생들이 만들어 전시하는 홍보판

 

 

 

 


홈커밍 행사에 전시할 기숙사 장식물들을 합동으로 제작하고 있는 여학생들[sororities]

 

 

 

 


기숙사생들 스스로 한 학기 동안 기획하여 제작한 장식물을 기숙사 전면에 부착한 모습.
많은 일반인들이 이것을 구경하기 위해 캠퍼스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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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U 캠퍼스 내의 아파트[101 윌리엄스]

 

 

 

 


OSU 아파트를 관리하는 사무실 건물[Famil Resource Center/FRC]

 

 

 

 


대학 내의 치안을 담당하는 OSU 대학 경찰서 순찰차량들

 

 

 

 


겨울을 맞은 OSU 쎄타폰드(Theta Pond)

 

 

 

 


학생들이 언제나 찾아 체력을 단련하는 콜빈 레크리에이션 센타(Colvin Recreation Center)

 

 

 

 


학생들의 체력과 건강 증진을 위해 건립된 '세레티안 웰니스 센터' 입간판

 

 

 

 


갤러거 아이바 아레나에서 갖는 후기 졸업식의 한 부분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