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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2.07 FM도 몰랐던 박근혜, 깜빡 속은 국민들
  2. 2011.01.25 놔道
글 - 칼럼/단상2016. 12. 7. 12:20

FM도 몰랐던 박근혜, 깜빡 속은 국민들

 

 

 

올해 돌아가신 어머니는 당신의 판단과 주장에 놀라울 정도의 확신을 갖고 계신 분이었다. 힘들었던 시절, 조랑조랑 5남매를 베이비부머 세대의 일원으로 낳아 기르신 이 땅 어머니들의 일반적인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있던 해 초겨울쯤이었다. 찾아 뵈온 자리에서 내 손을 꼭 잡고 하신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자네, 박근혜를 찍어야 하네! 생각해보게. 박정희 대통령 덕에 우리가 이만큼이나 살게 되었고, 아베 어메 다 잃고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대통령에까지 나오게 되잖았는가. 그러니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꼭 박근혜를 찍게!”

 

, 이처럼 절절하고 영향력 있는 선거운동원이 있을 수 있을까. 그저 지나가는 촌로의 말씀으로 들어 넘기기에는 너무나 간결하면서도 확고한 호소였다. 그 앞에서는 알았어요. 어머니 말씀대로 하지요!”라고 시원한 대답으로 어머니를 안심시켜 드렸지만, 그 말씀은 대선 판에서 흔들리던 내 마음을 꽉 잡아두는 효과를 발휘한 것이 사실이다. 당시 문재인에 대해서도 뭐라 말씀하셨는데, 내용이 너무나 부정적이었으므로 굳이 이곳에까지 옮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2012년 대선에서 맞붙은 박근혜와 문재인. 그 선택의 기로에서 헤맨 것이 나뿐 만은 아니었으리라. 베이비부머 세대인 나로서는 같은 시대를 살아오며 공주의 이미지로 남아있는 박근혜와,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문재인 사이에서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내 마음 속에 공주로 남아 있던 박근혜를 선뜻 찍기가 망설여졌고, 안보 관련 측면에서 문재인은 더더욱 아니었다. ‘최선보다는 차악(次惡)을 선택하는 것'이 선거라지만, 사실 그들 모두 최악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내 고민은 컸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박정희 전 대통령과 시대를 함께 한 내 어머니 세대의 노인들과 그 노인들의 자식들인 베이비부머 세대의 확고한 지지 덕에 박근혜는 문재인을 이길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나 스스로 이제 남성 대통령의 시대를 잠시 접고, ‘깨끗하고 푸근한모성의 리더십이 힘을 발휘할 때라고 믿음으로써 내 선택을 정당화하기로 했다. 어째서 남성 대통령들은 임기 말만 되면 측근이나 식구들과 함께 권력과 물신(物神)의 포로가 되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얼렁뚱땅 술 한 잔에 넘어가기 쉬운 남성과 달리 꼼꼼하고 다사로운 모성으로 무장한 여성은 무언가 다를 것이라고, 무엇보다 혼자 사는 박근혜는 분명히 다를 거라고, 근거 없는 확신에 사로잡혔던 것이 사실이다.

 

그 뿐인가. 베이비부머 세대의 특징은 근면과 안보의식인데, 박정희의 딸 박근혜는 사상이 불투명한 사람()과 달리 안보를 맡기기에도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개표가 끝난 다음, 이 땅의 베이비부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등극한 2012년 대선은 동정(同情)과 감정이입(感情移入)’의 광풍(狂風)이 빚어낸 결과였다.

 

그 환상이 참담하게 깨진 지금. 누굴 원망할 수 있을까. 감히 그에게 민족통일이나 선진국 진입 같은 국가와 민족의 도약을 가능하게 할 경국(經國)의 웅략(雄略)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그저 대과(大過) 없이, 측근들과 친인척에 의해 자행되던 임기 말의 비리만이라도 없었으면 하는 것이 박근혜 지지자들의 대체적인 생각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나로서는 그가 깨끗하게 임기를 마치고 상큼하게 물러나서 고귀한 대통령직(noble presidency)의 모범적 선례를 만들어 놓기만을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취임 초기부터 인사문제 등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일들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국 터져 나온 게 비선 최순실의 국정농단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 역시 분통 터질 만큼 폭 속아넘어간 일이 있는데, 바로 '통일 이야기'다. 통일에 대한 그의 허황한 구호야말로 대대로 회자될 역대급 코미디가 아닐 수 없으리라. 독자 여러분은 얼마 전부터 그가 난데없이 부르짖던 통일대박이란 말을 기억하실 것이다.

 

 “, 분명 무언가가 있다! 대통령이 그토록 대중국외교에 공을 들이더니, 드디어 무언가 확실한 끈을 잡았구나. 그저 깨끗했던 대통령직의 선례나 만들어 놓으면 그걸로 대만족이라 생각했는데, 민족통일의 위업까지 이루겠다니!”

 

나는 감격했다. 귀찮게 투표소까지 찾아가 붓 뚜껑을 농()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웬걸? 그 말은 그냥 말 뿐이었음이 최근 밝혀지고 말았다! 그 말의 지적 소유권이 최순실에게 있네, 무슨 위원회에 있네논란을 벌이는 것을 보면서 나는 한동안 끝 모를 자기모멸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

 

날마다 언론매체들에는 대통령의 비정(秕政)들로 넘쳐나고 있다.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추행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코흘리개 어린애들까지 대통령을 웃음꺼리로 삼는다 하니, 다시 무슨 말을 더 보태랴. 그런 그에게 '세월호 7시간동안 무엇을 했느냐고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런 순간에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몰랐으리라는 누군가의 지적이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적시하고 있지 않은가. 배에 갇힌 300여명의 어린 학생들이 눈앞에서 수장되고 있는 순간에 대통령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타고난 순발력이 있을 턱이 없고, 얼른 들춰볼 규정집도 없었을 것이며, 평소 무게를 잡으며 멀리하던 참모들에게 새삼 물을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저 하염없이 머리만 매만지며 시간을 보낼 뿐이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대통령으로서의 기본적인 FM(field manual)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무토막을 왕으로 모시고 행복하다고 여긴 연못 속의 개구리들처럼 그런 청맹과니를 대통령으로 모신 채 우리는 한동안 희희낙락 잘 살아온 것이다.

 

***

 

청와대 공주로 살아서, 대통령직의 FM을 꿰고 있으리라 믿은 국민들만 불쌍하게 되었다. 원래 알고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를 찍지 않은 국민들은 그것 봐라!’며 고소해 하고 있으리라. 고소해 하며 그에 대한 욕을 퍼붓는다고 나라가 좋아질 리는 없다. 그를 욕하면서도 나라는 나라대로 건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모든 것을 빨리 이루어온 장점을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FM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아예 무시하기 일쑤다. 일을 당하고 나서야 FM을 펼쳐 보지만, 그 때 뿐이다. 박근혜도 그랬을 것이다. FM을 모르면, 주변의 참모들에게 일일이 자문했어야 한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면 모든 게 이뤄지던 그의 아버지 박정희 시대와 완벽하게 다른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그 때도 대통령의 FM이 없었는데, 그 때 배운 관행을 지금에 와서 반복하려니 탈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조그만 자동차 하나를 사도 웬만한 사전 크기의 매뉴얼 북이 따라온다. 제대로 된 운전자라면 그 책을 한 번 쯤 통독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제 대통령, 국회의원, 장관들의 업무수칙이나 매뉴얼 북을 모두 달려들어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한때의 인기몰이로 대통령에 당선된 자라도 대통령에 취임하기까지 그 FM을 학습해야 하고, 학습 여부를 테스트하기 위한 청문회(함량미달의 국회의원들을 제외한 사계의 권위자들이 주관)를 열어야 한다. 청문회에 통과하기까지는 임시 대통령의 호칭만을 부여하도록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는 보내도, 대한민국은 영원해야 한다. 지금 자기 세상 만났다고 날뛰는 몇몇 인간들은 빼고, 제대로 된 사람을 대통령으로 발탁하여 나라의 운명을 맡겨야 할 절체절명의 시점에 도달했다. 우리에겐 더 이상 갈팡질팡할 시간이 없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1. 1. 25. 19:32


늘 그랬던 것처럼 이번 세밑에도 고향의 서예가 동포선생으로부터 신춘휘호가 도착했다.

두 글자로 되어 있는데, 첫 글자는 아무리 뜯어보아도 알 수가 없다. 한글이라면 ‘놔’로 읽을 수 있겠는데, 설마 신춘휘호 두 글자 가운데 첫 글자를 한글로 썼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한자(漢字)의 간체자(簡體字)로 볼 수도 없었다. ‘처(處)’나 ‘부(赴)’의 약자 혹은 간체자 비슷도 한데, 정확한 건 아니었다. 궁금함을 견디지 못한 나는 급기야 전화기를 들었다. “첫 글자를 뭐라고 읽어야 합니까?” 대답인즉슨 “한글로 ‘놔’요!” 하는 것 아닌가. “‘놔道’라니요?” 대답인즉슨 “놔두라는 말이지. 귀찮게 하지 말고 내 멋대로 살게 놔두라는 말이오, 하하!”

아하, 그렇구나. 동포선생은 ‘놔둬!’를 경상도식으로 ‘놔도!’로 표현했고, 뒷글자 ‘도’를 ‘도(道)’로 써서 ‘내 멋대로 살겠음’의 의지를 도의 차원으로 승격시키고자 한 것이 아닌가.

참으로 절묘하고, 때에 맞추어 잘도 고안해낸 용어 아닌가!

 

***

 

사실 요즘처럼 개인의 자유의지가 완벽하게 보장되는 듯 하면서도 철저하게 통제되는 시대는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젊은이들은 제멋대로 옷을 입고 다니는 것 같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연예인들이나 패션모델들의 스타일을 모방하는데, 그런 패션이야말로 개인으로서의 젊은이를 가만 놔두지 않는 족쇄인 셈이다. 옷은 물론 머리 모양도, 신발도, 아니 심지어는 사고방식까지도 시대를 풍미하는 패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게 요즘의 세태다. 그 뿐인가. 어딜 가도 감시와 통제를 당한다. 핸드폰 없이는 한시도 살 수 없는 요즘 사람들. 자동적으로 위치가 추적되니 마음 놓고 일탈의 즐거움을 누릴 수도 없다. 해외여행 중 어느 지역엘 들어가니, 갑자기 로밍해온 핸드폰에 문자가 찍힌다. “그 곳은 여행 위험지역이니 즉시 그곳을 벗어나시오!”라는 명령이 대한민국 외교부로부터 날아오는 게 아닌가. 대체 그들은 내가 이곳에 들어온 지를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국민을 보호하고자 하는 배려가 느껴지기 전에 ‘참, 귀찮게 따라다니며 감시하고 통제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내가 누군가에게 사로잡혀 있다는 구속감이 나로 하여금 힘 빠지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요즘 사람들의 입에서 ‘날 좀 제발 내버려둬!’라는 절규가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거나 아닐까.

 

***

 

고대 그리이스에 디오게네스(Diogenes)란 철학자가 살고 있었다. 퀴닉학파(犬儒學派)에 속하던 그는 금욕적 자족을 강조하고 향락을 거부하며 일체의 세속적인 습관이나 형식 등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긴 인물이다. 그에 관한 전설은 많지만, 알렉산더 대왕과의 일화는 ‘놔道’와 관련이 깊다.

그는 평소 통 속에서 살았다고 한다. 당시 그리이스 땅 전체를 정복하여 위세를 떨치던 알렉산더 대왕이 디오게네스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를 불렀다. 그러나 그는 왕에게 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알렉산더 대왕은 몸소 그를 찾아갔다. 그 때 그는 통 속에 앉아 볕을 쬐고 있었다. "나는 알렉산더 대왕이오. 뭐 원하는 일이 있으면 말해 보시오." 그는 대왕의 말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저쪽으로 비켜 서 주시겠습니까? 해가 가려 그늘이 지는군요."

하릴없이 발길을 돌린 알렉산더는 왕궁으로 돌아오며 다음과 같이 중얼거렸다. “만약 내가 알렉산더가 아니었더라면, 저 디오게네스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이다.

디오게네스는 왕은 물론 천하의 누구로부터도 통 속에 들어앉아 볕을 쬐고 있는 자기의 자유를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세속의 권력보다 더 중한 것이 자신의 자유라는 점을 그는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이게 바로 ‘놔道’ 정신의 본질이 아닌가.

 

***

 

1970년 5월 'Get Back'이란 이름으로 출시되었던 비틀즈(Beatles)의 마지막 음반 'Let It Be'의 Side2에 실린 노래들 가운데 하나인 <Let It Be>. 당시 이 노래 한 소절 못 부르면 간첩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세계 모든 나라의 젊은이들을 매료시켰다. 특히 내 학부시절이었던 70년대 중반에는 왠지 모르게 이 노래의 음울하면서도 저항적인 멜로디가 그러잖아도 억눌려 있던 우리의 감성을 콕콕 쑤셔대곤 했다. 사실 비틀즈의 로큰롤은 60년대에 전염병처럼 퍼지기 시작한 히피문화에 노래라는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히피의 성향을 한 마디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그것들 가운데 내가 주목하는 것은 ‘(소극적) 저항, 탈권위주의, 산업사회로부터의 일탈’ 등이다. 그렇다면 ‘let it be'의 뜻을 어떻게 해석할까. 보는 관점에 따라 여러 해석들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냥 내버려둬!‘→’내비둬‘ 쯤으로 푸는 게 어떨까?

 

전체 42행의 리릭(lyric) 가운데 21행이 ‘let it be'라면 그들이 전하고자 한 핵심은 그곳에 있을 것이다. 그러니 권위주의로부터 자신들의 영혼이 자유로워지길 바란 것이나 아닐까. 아니 소극적이지만 기존의 권위나 물신(物神)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한 ’인간의 선언‘ 쯤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When i find myself in times of trouble 내가 고통의 시간 속에 있을 때

Mother Mary comes to me               성모는 내게 다가와

Speaking words of wisdom              지혜의 말씀을 전해주시네

Let it be                                        ‘내비 둬’ 라고

 

비틀즈의 입장에서 연약한 인간을 보듬어 주는 성모는 권위의 존재 아닌 ‘탈권위’의 기호로 인식했음직하다. 누구의 간섭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고 싶은 영혼의 외침. 그래서 'let it be' 즉 ‘내비 둬’는 동양으로 올 경우 ‘놔道’로도 통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래서 나도 올 한 해 ‘놔道’를 실천해보려 한다. 비록 몇 발 못 가 공동체로부터 추방될 위험이 농후하긴 하지만...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