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5.08.15 광복절 아침에
  2. 2015.06.10 21세기에 ‘염병’을 치르며
글 - 칼럼/단상2015. 8. 15. 16:43

광복절 아침에

 

 

아베란 친구, 그럴 줄 알았다. 스스로의 언행으로 속 좁은 일본인들을 대표해온 그 아닌가. 이 시점에서 대인배의 면모를 보여주었다면, 오히려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오랜 세월 일인들을 보면서 내린 결론이 있다. ‘마른 밴댕이’. 그 평가가 한 순간이라도 바뀔 수 있었다면, 판단력의 옹졸했음과 미숙함에 대한 자기 모멸감을 솔직히 나는 견딜 수 없었으리라. 요즘 들어 북쪽의 김정은이가 야료를 부릴수록 부쩍 그에게 접근하려는 듯한 아베의 행적. 말투처럼 참으로 덕이 느껴지지 않는 그의 행동거지다. 아베를 비롯한 주변의 소인배들을 보며, ‘소이부답심자한(笑而不答心自閑)’의 여유를 가지려 해도 그럴 수 없는 건 왜일까.

 

엊그제 전직 해군참모총장 부자(父子)가 실형을 선고 받았고, 툭하면 방송에 나와 수레 목으로 열변을 토하던 별 둘짜리 제독도 심판을 받았다. 각종 비리로 줄줄이 엮여 들어간 고위 장교들이 이제 속속 무대에 나와 실형을 받을 것인데, 꼬락서니가 목불인견(目不忍見)일 것이다. 북괴가 설치한 지뢰에 우리의 꽃다운 20대들이 발목이 잘리고 다리가 날아갔는데, 이번에도 군 수뇌부는 마냥 굼뜨고 태평하다. 그 와중에 부하들과 폭탄주를 마신 합참의장도 있었고, 사고 부대의 어떤 중령은 부하 여장교를 어떻게 해볼까 수작을 부리기도 했다. 술 한 모금 며칠 참으면 위장이 졸아붙는가. 해서는 안 될 짓이지만, 하필 성추행의 대상이 부하 여장교란 말인가. 두 명의 전직 해군참모총장이 목돈을 우려낸 그 배. 꽃다운 우리의 젊은이들이 타고 다니며 북괴와 싸움을 벌여야 할 군함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참모총장 등 해군장교들이 뇌물을 받고 그 군함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다시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세월호에 허둥대는 와중에 메르스를 만나 우왕좌왕, 그 메르스 끝나자마자 지뢰사건으로 혼비백산. 지뢰사건에 허둥대는 중에 유병언의 재산은 다시 그 구원파가 가져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지뢰에 발목과 다리가 날아간 젊은 군인의 병실에 대통령이 숨 가쁘게 달려가 안아주는 일이 뭐 그리도 어렵고 대단한 일이란 말인가. 세월호 대책이랍시고 해양경찰을 없애놓으니, 피서철 해수욕장에 안전요원을 배치할 수도 없고, 서해 어장엔 중국 어선들만 새까맣게 몰려들고 있다. 국가안전처는 뭐하는 곳일까. 고급 공무원들만 잔뜩 만들어 놓고, 사건이 터져도 하는 일이 없다. 공무원이란 자들은 그저 규정집이나 들고 설치며 간섭이나 할 뿐. 차라리 규정집이라도 제대로 보면서 ‘FM에 맞추어일처리라도 하면 나을 텐데. 그들에게서 감동을 느끼는 국민이 거의 없는 현실이 비극이다.

 

대통령부터 참모들까지, 장관부터 일선 공무원들까지, 참모총장부터 하급 장교들까지 제대로 된 모습을 찾기 어렵다. 수시로 나태와 독직(瀆職)의 유혹에 매몰되는 지배계층의 행태를 필자와 같은 장삼이사들이 밤낮없이 걱정하고, 불쌍한 병사들이 몸 바쳐 하루하루 땜질해가는 곳이 바로 우리나라다. 집 안에서 제대로 일들은 하지 않으면서, 틈만 나면 이웃나라 아베를 들먹인다. 누구 말대로 아베가 쪼다이긴 하지만, 쪼다를 발가벗겨놓은들 우리의 몰골이 나아지는 건 아니다. 오죽하면 그런 쪼다가 국제사회에서 대놓고 우리를 희롱하고 다니겠는가. ‘새 알 멜빵 걸어 짊어지고 다닐만큼 약아빠진 아베에게 듬직하고 당당한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외에 달리 약이 없는 것을 

 

대통령의 동생 부부가 철부지 망언으로 나라 망신을 시키는 것도, 덕 없는 이웃나라의 아베가 대놓고 업신여기는 것도 한심한 우리 모습 때문 아니겠는가. 우리가 언제쯤이나 지배구조의 교체에 성공할 수 있을지. 아니, 우리에게 제대로 된 지배구조의 개념이 있기나 한 것인지. 이런 나라에 얼마나 더 살아야 하는지 답답한 요즈음이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5. 6. 10. 06:47

21세기에 염병을 치르며

 

 

내가 얼굴도 못 뵌 외할머니는 1940년대 초 이 땅을 휩쓴 염병[染病, 장티푸스]의 와중에 동네사람들을 간병하다 돌아가셨다. 당시 염병이 돌자 마을 바깥에 천막을 쳐 놓고 고열과 설사로 신음하던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간호하시다가 그 병에 감염되신 외할머니. 모두가 존경하던 여장부이셨다. 그러나 정작 할머니는 누구의 간호도 받지 못한 채 40대 중반에 세상을 뜨셨다. 병원도, 약도, 정부의 도움도 없던 그 시절. 자고나면 사람들이 픽픽 쓰러지던 참상이 몰고 온 건 공포와 절망이었을 것이다. 앞치마를 두르고 가마솥에 물을 끓이시며 마을 밖으로 격리시킨 환자들을 돌보신 것도 어쩌면 그 절망과 공포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일념 때문이었으리라. 토하고 설사하는 환자에게 뜨거운 물이라도 마시게 하고, 배설물로 더러워진 그들의 몸을 닦아내며, 그들이 벗은 옷을 가마솥에 푹푹 삶아 말리시던 할머니. 지금껏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시며 그 광경을 말씀하곤 하신다.

 

***

 

2015년의 한 복판에서 우리는 또 다른 얼굴의 염병을 만났다. 물론 그 양상은 당시의 몹쓸 병인 염병과 다를 것이다. 병원도, 약도, 정부의 도움도 없던 그 시절. 식민지 시절 면사무소에 가려 해도 4, 5십리 산길을 족히 걸어야 했다. 그러나 문 열고 나서면 병원 간판들이 즐비하고, 허깨비 같긴 하지만 대통령과 장관들이 있는 이 시절에 감기 비스름한 메르스를 그 옛날 염병앓 듯 하고 있으니, 참으로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날마다 자고 일어나면 메르스 환자의 수를 헤아리기 바쁜 언론 매체들이다. 노란 점퍼에 큼지막한 마스크를 쓴 대통령과 정부 요원들, 하얀 방제복에 모자와 마스크를 참하게 착용한 의료요원들이 화면 가득 일렁대는 모습에서 그 옛날 외할머니의 모습을 찾기란 어렵다. 가마솥에 물을 끓이시며 환자들의 이마를 짚어 주시던 그 모습은 전설이 되어 내 곁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햇살에 안개 퍼지듯 우리의 공포심이 사라지면서 이 병도 곧 잡힐 것이다. 역사상 우리는 많은 역병(疫病)들에 시달려 왔다. 나라가 거덜 날 정도로 심한 경우도 많았다. 역병을 경험한 뒤 <<동의보감>>을 만드신 허준 선생 같은 분도 있긴 하지만, 사실 그런 역병들을 극복한 것은 의사나 의료기술이 아니었다. 민중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들의 이마를 짚어주던 무명의 착한 손들이었다. 내 외할머니는 어떤 기록에도 남을 수 없던 시골 아낙이었다. 그저 쓰러져 죽어가는 동네 사람들을 보며 그 공포와 절망감을 떨쳐내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여장부였을 뿐이다.

 

***

 

지금 내 외할머니의 훌륭함을 자랑하려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환자가 확인된 뒤 십 며칠 만에 남의 일처럼메르스를 언급했다는 대통령이나 일 처리를 제대로 못 해 허둥대는 정부관리들을 바라보며, 그 한심함에 치가 떨려 몇 자 적고 있을 뿐이다. 외할머니가 마을 밖에 쳐 놓은 차일 안으로 동네 환자들을 옮기고, 가마솥에 물을 끓여 그들을 간호하신 것은 인간에 대한 애정과 공동체에 대한 근심의 발로였으리라. 그 외할머니의 모습에 박근혜 대통령을 갖다 붙이려 해도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서로 멀어지기만 하는 것은 왜일까. 우리가 언제나 되어야 '굼뜨지 않고 멍청하지 않은지도자를 만날 수 있을지, 절망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나날이다.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