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가면을 벗고 육두문자 비스름한 푸념 한 마디만 풀어놓아볼까?
‘어려움을 당해봐야 사람의 그릇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장삼이사(張三李四), 필부필부(匹夫匹婦)들 치고 갑작스레 닥친 난관 앞에서 허둥대지 않을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한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家長), 한 단체를 이끄는 수장(首長),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은 그럴 수 없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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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얼굴들을 갖고 산다. 그 수가 하도 많아 어느 것이 내 얼굴인지 모를 지경이다. 그래서 그 얼굴들은 대부분의 경우(아니 모든 경우) 진면(眞面) 아닌 가면(假面)들이다. 가면 즉 ‘페르소나(persona)'는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사용하는 평범한 말이 되었지만, 원래는 심리학에서 사용되어온 학술적 용어다. 이 말은 에트루리아의 어릿광대들이 쓰던 가면을 뜻하는 라틴어로서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역할을 반영하거나 타인 혹은 주변세계와 상호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하는 ‘자신의 모습’이라고 칼 융은 말했다.
세상 사람들처럼 나도 많은 가면을 갖고 있다. 자상한(혹은 엄하고 곧은) 아버지나 남편의 얼굴로 집에서 쉬다가, 출근을 위해 차에 시동을 걸면 그럴 듯한 가면으로 잽싸게 바꾸어 쓴다. 강의실 문 앞에 서면 자못 근엄한(?) 교수의 가면을 쓰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술자리에서는 악동의 가면을 쓴다. 그러니 내가 누군지 나도 모른다.
가면을 진면으로 착각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실수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대통령을 뽑아놓고 후회들을 한다. 그의 가면을 보고 뽑았는데, 나중에 언뜻언뜻 보이는 진면들 때문에 후회하게 된다. 그래서 국민들은 대통령이 선택한 각료들만큼은 진면을 보려고 애들을 쓴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은 가면 뒤에 숨은 진면을 노출시키게 되고, 그 때문에 상당수는 낙마(落馬)의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가면만 보고 사람을 뽑아 나라의 살림을 맡겨놓으니, 그 살림은 “잘 되어야 본전”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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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면 이야기나 하고 있을 만큼 한가하지가 못하다. 막 가자는 북한의 망나니들이 또 불장난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저들은 불장난을 쳤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자존심과 함께 소중한 생명, 재산을 잃었다. 불과 몇 달 전에 천안함 사건을 당하고도 대비를 못했는가, 이번에도 우리는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만천하에 보여주었다. 사실 ‘천안함 피격’만큼 우리 사회의 바보스러운 일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도 없다. ‘노루 친 몽둥이 삼 년 우려 먹는다’든가? 입만 열면 ‘대양해군’, 입만 열면 ‘연평해전’을 떠들어대며 폼을 잡던 해군의 ‘똥별들’은 다 어느 쥐구멍에 숨어들었는가. 방위산업을 육성하여 선진국들과 경쟁을 하는 수준에 올랐다고 거들먹거리던 위정자들은 다 어디로 숨었는가. 비까번쩍하는 이지스함을 띄우면 뭘 하는가? ‘꿩 잡는 게 매’라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고철 덩어리 비스름한 잠수정 하나에 맥을 못 춘다면 천문학적 돈을 퍼부어 그런 함선을 만들 필요가 어디 있느냐는 말이다. ‘실사구시’를 하지 못하고 폼이나 잡고 있다면, 동네 건달패나 다를 바가 무엇일까. 그나마 그 정도로 창피를 당했으면 즉시 깨닫고 정신을 차려야 옳았을 텐데, 똑 같은 깡패들한테 또 당하고 말았다.
TV에 비치는 이른바 이 나라의 지도자란 자들의 낯짝을 보셨는지? 자못 근심스럽고 근엄한 가면을 쓰고 우왕좌왕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들의 표정을. 천암함 처리과정을 보면서 동네북으로 전락한 우리의 꼬락서니를 그 깡패들은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마음 놓고 한 대 더 때려도 되겠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마음 놓고 스트레이트 펀치를 우리의 턱에 명중시킨 것이다. 백주대낮에 내 땅에 대포를 쏘아대는 모습을 두 눈 멀뚱 멀뚱 뜨고 바라보면서 ‘확전시키지 말라!’는 명령이나 내리는 비겁한 필부의 가면을 드디어 보고야 말았다. 그 깡패들은 그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 깡패들은 모든 국민들이 ‘하늘같이 믿고 따르는’ 대통령의 얼굴에 ‘겁장이의 가면’을 덮어씌우고 싶었던 것이다. 컴퓨터로 조준되는 미사일이 아무리 많으면 무엇하리? 반격할 용기가 없는데. ‘다음번에 또 때리면 가만 안 둬?’라고 중얼거리며 ‘밤탱이가 된 눈’이나 껌벅거리는 겁한(怯漢)에게 어느 깡패가 겁을 먹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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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조리 갈아 치워야 한다. 군대 근처에도 못 가본 필부들이 나라를 운영한답시고 자못 근엄한 가면을 쓴 채 거들먹거리는 꼴은 더 이상 보아줄 수 없다. 깡패들과 한 통속이 되어 사사건건 그들의 심기를 건드릴까봐 애태우는 이 땅의 이른바 좌파들도 더 이상 보아줄 수 없다. 국제사회에서 자존심도 실리도 모두 챙기지 못하는 필부의 궁량으로 육천만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겠다는 공염불은 이제 그만 둘 때가 되었다. 차라리 대통령의, 국회의원의, 장관의, 장군의 가면들을 벗어라. 차라리 ‘나도 여러분처럼 한 개 필부요!’라고 커밍아웃이라도 시원하게 해보아라.
이제 게도 구럭도 다 잃어버린 채, 밀물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내 나라를 어찌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