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09. 3. 6. 01:10

 발견의 기념비를 둘러 본 다음 지하도를 통해 건너 간 곳이 제로니무스 수도원. 동 마누엘 1세가 해양을 개척하여 대항해 시대를 연 선구자들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1502년 이곳에 세운 수도원이었다. 바스코다가마가 인도 항해를 마치고 벨렝 지구의 항구를 통해 들어온 직후였다. 수도원의 건축 양식은 고딕 후반기에 나타난 마누엘 스타일로서 대항해 시대의 풍부한 재화와 이역(異域) 문화의 수용 등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건물 표면, 특히 창문이나 난간 등에 자연 및 해양생활 모티프의 화려한 장식을 해 놓았는데, 동양적 양식이 두드러져 보였다. 남쪽 문으로 들어가니 성모 마리아 교회가 나왔다. 그곳에 동 마누엘 1세와 성 제로니모, 동 엔리께 등의 상들이 서 있고, 천장의 아름다운 장식이 볼 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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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렝 지구를 떠난 우리는 리베르다도 대로를 통하여 리스본의 중심부인 바이샤 지구로 이동했다. 에두아르두 7세 공원, 레스따우라도리스 광장, 로시우, 꼬메르씨우 광장 등을 돌아본 다음, 동부의 알파마 지구로 이동하여 성 조르지 성, 대성당 등을 둘러봄으로써 대항해 시대의 첨병 포르투갈 맛보기를 끝낼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를 타고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로 이동하여 가우디의 건축물들과 만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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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위로부터 제로니무스 수도원 1, 2, 성모마리아 교회의 본당과 제대, 성모마리아 교회 안의 성가족, 성모 마리아교회의 아름다운 천장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9. 3. 6. 01:02

 우리는 신트라를 떠나 리스본 서쪽의 벨렝 지구로 향했다. 궂은비가 내리고 떼주 강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왔다. 강가에는 벨렝 탑과 발견의 기념비가 웅장하면서도 도전적인 자태로 서 있었다. 대양을 향해 대항해 시대를 열어간 포르투갈 인들의 기상이 어려 있는 이 기념물들은 대로를 경계로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마주하고 있었다.

 강가에 있는 기념물들이 세계를 향한 도전정신의 표현이었다면, 수도원은 이들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자애로운 어머니의 이미지였다. 16세기 초에 항구를 보호할 목적으로 세워진 마누엘 양식의 건축물이 벨렝 탑이다. 포르투갈의 황금시대를 대변해주는 기념물로 콜럼버스도 이 항구를 통해 들어왔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엔 대항해 시대에 세워진 하나의 탑이었지만, 8각의 요새는 군사적 목적으로 요긴하게 쓰였다. 대양을 향해 항해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겐 희망과 안식을, 항해로부터 돌아오는 사람들에겐 안식과 평온의 기쁨을 준 것이 바로 이 탑이다. 2층의 강 쪽 테라스엔 벨렝의 성모상이 무사 항해를 기원하며 서 있고, 벽면은 예수회의 십자가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벨렝 탑으로부터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 발견의 기념비인데, 떼주 강이 바라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항해 왕자 동 엔리께의 500주기를 맞아 1960년에 세운 기념물로서 범선의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상부에는 여러 인물들이 조각되어 있었는데, 맨 앞쪽이 동 엔리께였고, 선교사․선원․작가․천문학자․화가 등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기념비 앞바닥에는 대리석에 모자이크 된 세계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과연 대항해 시대의 주역다운 발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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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위로부터 발견의 기념탑, 발견의 기념탑 앞 땅바닥의 그림1, 2, 벨렝탑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