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5.03.28 17:48

 


백규서옥을 방문한 아리안 군

 

 


백규서옥을 방문한 유리 군

 

 

언어구사의 천재들을 가까이에서 보며

 

 

 

몇 년 전 고려인들을 찾기 위해 벨라루스의 민스크에 간 적이 있다. 공항에서 호텔에 이르기까지 드넓은 들판과 자작나무 가로수 길이 인상적이었다. 벨라루스는 1922년 소련에 편입되어 1991년까지 '벨라루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존속하다가, 1991년 독립 선언 이후 러시아·우크라이나와 함께 독립 국가 연합(CIS: 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의 창설을 주도한 나라다. 당연히 공용어는 벨라루스어와 러시아어였다. 동쪽으로는 러시아, 서쪽으로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남쪽으로는 우크라이나, 북쪽으로는 라트비아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니, 이를테면 다수의 민족국가들 속에 파묻힌 육지 속의 섬과 같은 나라였다.

민스크 도착 다음 날 벨라루스 국립대학 한국어과의 요청으로 학생들에게 강연을 하게 되었다. 내가 주목한 것은 학생들을 통해 알 수 있을지도 모르는 그곳 사람들의 혈통과 말이었다. 강의실에서 젊은 학생들을 만났다. 한국어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서는 영어를 썼는데, 소통의 정도는 기가 막힐 정도였다. 얼굴 모습들은 슬라브 계통의 백인들이었으나, 피부 한 꺼풀만 벗기면 다양한 모습들이 드러났다. 다음 날부터 학과에서 소개해준 두 명의 학생들이 민스크 곳곳을 안내해 주었다. 한 사람은 아리안(Aryan), 또 한 사람은 유리 킴(Yuri Kim)이었다.

 

#1 아리안의 할머니는 이란인으로서 현재 테헤란에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에 관해서는 미처 묻지 못했는데, 그의 얼굴 모습으로 보아 할아버지가 아리안족인 듯 했다. 그러니 그의 아버지는 이란과 인도계의 혼혈일 것이고, 그 혼혈 아버지와 우크라이나 출신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것이 아리안이었다. 내 관심은 그가 지닌 외국어 능력이었다. 그는 이란어, 러시아어, 벨라루스어, 우크라이나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한국어에 이미 능통해 있었고, 막 일본어에 손을 대고 있었음은 물론 중국어에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 한자도 제법 알고 있는 눈치였다. 어머니로부터 젖을 받아먹듯 우크라이나어와 벨라루스어를 마더 텅(mother tongue)으로 받았고, 할머니 혹은 아버지로부터 이란어를 받았으며, 중학교~대학에 이르는 학교 교육에서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어, 한국어를 익힌 것이었다. 대개 마더텅으로 두, 세 개의 언어를 습득한 경우, 마음만 먹으면 또 다른 언어를 배우는 일이야 식은 죽 먹기라는 것을 그들로부터 알 수 있었다. 그 후 그는 한국에 와서 모 대학의 어학코스를 최우등으로 마치고 돌아가 벨라루스 국립대학에서 대학원을 이수하면서 어학 교수로 활약하고 있다.

 

#2 내가 벨라루스에 머무는 동안 내게 친절을 베푼 또 하나의 벨라루스 청년이 유리였다. 워낙 한국어에 출중하여 당시 학부생의 신분임에도 한국어 강사로 활약하며 돈을 벌고 있었다.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던 할아버지가 고려인이긴 했으나, 할아버지 자신이 고려 말을 버린 지 오랜 상태였을 뿐 아니라 그들은 서로 왕래도 없었다. 당연히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대학에서 한국인으로부터 한국어를 배우자마자 마스터했다고 한다. 그의 언어 내력이 궁금하여 가계를 캐물었다. 할아버지는 고려인이고 할머니는 타타르인으로서 카자흐스탄 사람들이었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버지는 벨라루스로 이주하여 벨라루스인 여자와 결혼하여 유리를 낳은 것이었다. 화학 전공자였던 외할아버지와 프랑스어 음운론 교수였던 외할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의 어머니는 편집 기자였고, 아버지는 가구 및 건축 디자이너였다. 그러니 그가 태어나자마자부터 접했을 언어적 다양성의 실상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머니로부터 벨라루스어와 러시아어를, 아버지로부터 카자흐스탄어와 러시아어 및 벨라루스어를, 그리고 간혹 아버지로부터 단 몇 단어라 할지라도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고려어의 냄새 정도는 맡았던 것 같다. 따라서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3개 국어를 마더텅으로 물려받은 것이고, 그 후 자라는 과정에서 다민족 친구들과의 만남이나 학교교육을 통해 여러 외국어들을 덤으로 배우게 된 것이었다. 벨라루스어, 러시아어, 불어, 영어, 독일어,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있는 그는 지금 한국에서 공부하는 중이다.

 

일생을 노력해야 겨우 영어 하나를 외국어로 구사하게 되는 우리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그들이었다. 참으로 부러운 그들이었다. 간혹 외국에 나가면서 몇 개의 외국어를 구사하는 외국인들을 흔히 만난다. 그러면서 외국어에 관한한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뒤처진 사람들이 또 있을까?’라는 한탄을 매번 하게 된다. 그러면서 말은 혼임을 깨닫는다. 혼은 물려받는 것일 뿐 흉내를 내거나 노력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3 최근 나에게 이쁜손녀가 하나 생겼다. 이제 돌을 갓 지난 녀석을 보며 나는 언어 학습의 과정과 실상을 흥미롭게 관찰하고 있다. 녀석이 말을 배워가는 과정과 방법이 참으로 신기하다. 제 어미가 젖병을 물리는 동안 녀석의 눈길 멈추는 곳이 예사롭지 않다. 바로 엄마의 얼굴인데, 그 가운데도 입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었다. 녀석은 무얼 보고 듣는 것일까. ‘자 이제 다 먹었네? 그럼 일어나 트림을 해야지!’라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엄마 입술의 움직임을 유심히 보는 듯 했다. 말하자면 녀석은 엄마 입술의 움직임만으로도 그 말을 알아듣겠다는 듯 반응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오묘했다. 그러다가 엄마의 말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한 단어, 두 단어, 세 단어...녀석이 흉내 내는 엄마 말의 분량은 주간 단위로 늘어나는 것이었다.[나는 사실 짧으면 한 주, 길면 두 주 정도에 한 번씩 녀석을 만나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 뿐, 사실은 매일 달라지고 있을 것이다!] 이제 세 음절짜리 단어들을 흉내 내어 구사하기 시작했고, 문장 단위의 말을 내뱉으려 할 땐 , 하고 소리치며 손짓을 하기에 이르렀다. 말 뿐 아니라, 행동거지도 제 부모와 우리를 흉내 내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따라쟁이라는 애칭으로 놀리기도 하는데, 바로 그 점에 언어 학습의 요체가 들어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인류가 세상에 출현한 이래 말이란 그렇게 전승되어 온 것이다. 젖을 먹을 때 엄마로부터 자연스럽게 물려받는 것이 말이다. 그래서 마더 텅인 것이다. 그런데 만약 엄마가 다중언어 구사자(multilingual speaker)’라면, 말에 따라 순위는 생기겠지만, 그 언어들이 그대로 아기에게 전수되지 않겠는가. 바이링궐(bilingual), 트라이링궐(trilingual) 등 흔한 다중언어 구사 엄마들이야 기분 내키는 대로 자유자재로 여러 언어들을 갖고 아기와 소통할 것이 아닌가. 그러니 그런 엄마의 아이들은 태어나면서 이미 다중언어 구사자가 될 소지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

 

우리의 실상을 보자. ‘단일 언어를 쓰는 단일민족이란 말을 자랑처럼 달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같은 말을 쓰면 같은 생각을 하게 되고, 소통 또한 더 잘 되겠지.’라는 우리의 생각이 착각이었음을 세계화의 시대에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지금 세계에서 유일하게 같은 말을 쓰는동족끼리 총부리를 마주대고 으르렁거리는 곳이 바로 한반도다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부모 자식 간에, 형제자매 간에, 좌파와 우파 간에 툭하면 같은 말을 무기로 죽고 죽이는 싸움판을 벌이는 곳이 바로 이 나라다. 같은 말을 쓰고 같은 모습을 한 사람들 사이에 죽고 죽이는 싸움판을 벌이는 데, 대체 단일어를 쓰는 단일민족이 무슨 자랑거리란 말인가.

 

눈만 뜨면, 베트남에서 필리핀에서 시집 온 새댁들을 무시하고 구박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그들이 한국어를 잘 몰라서 말이 안 통하니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우리들이다. 우리말을 모르는 것을 차이 아닌 차별의 근거로 내세우려는 것이 바로 우리들이다. 더 고약한 것은 우리말을 모르는 백인들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우면서도 우리말을 모르는 유색인들은 매몰차게 무시하려 드는 일이다바로 우리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못난 식민주의 근성 때문이다.

 

그들이 한국어를 잘 모르면 우리가 먼저 베트남어를 공부하고 필리핀어를 배우면 안 되나? 우리 자식들에게 시집와서 손자 손녀들을 낳아주는 베트남 필리핀 며느리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들인가그러니 외국인 며느리들은 구박의 대상이기는 커녕 오히려 우리가 떠받들어야 할 보배들이다. 우리의 아이들을 낳아 이중언어 구사자로 키워줄 훌륭한 어머니요 선생님들 아닌가. 아이를 낳아 젖 먹여 키우는 과정에서 우리말과 베트남 말을 '마더 텅'으로 동시에 전해준다면, 나중에 그들은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는 우수한 국제인으로 자라게 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과 나라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우린 그들을 소중하게 대접해야 한다. 그들이 당장 우리말을 못하고 못 알아듣는다면, 우리가 먼저 그들의 말을 배워서라도 그들의 마음을 잡아두고 우리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 일자리를 찾아 우리나라에 온 동남아 노동자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도 그들이 우리보다 좀 더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 우리말에 서툴다는 이유 때문일 텐데, 그들 역시 우리에겐 소중한 보배들이다. 우리가 마다하는 궂은 일들을 달게 맡아하는 그들. 생각하기에 따라 그들은 우리의 훌륭한 선생님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참 못 말릴 정도로 무지하고 거친 사람들이 나를 포함한 오늘날의 한국인들이다. 인종의 전시장인 미국을 비롯한 외국에 나가서는 입도 뻥긋 못하면서, 좁디좁은 내 땅에만 들어오면 안방 호랑이 노릇을 잘도 하는 우리의 잘못된 습성이 바로 언어능력 콤플렉스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내 생각인데, 이런 판단에 반론을 제기하실 분 있으면 말씀들 좀 해 보소서!

 

 


벨라루스 국립대학에서 유리 김, 샤두르스키 학장과 함께

 

 

 


벨라루스 고려인협회에서 만난 고려인들

 

 

 


밥을 받아먹는 YB

 

 


엄마를 흉내내는 YB

 

 

YB and her Mom walking on the road by the Han River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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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3.11.16 08:00

 

 

역사학과 학생들을 위한 특강을 마치고-한국의 이미지를 새것으로!

 

 

 

 

이곳에 도착하면서 아시아사를 가르치는 Du 교수가 한국사에 관한 내용들을 수시로 물어왔다. 이것저것 설명해주면서 한국사 부분은 내가 가르칠까?’라고 농을 건넸더니, 그 말을 진짜로 알아듣고 이곳 생활이 겨우 안정되어갈 즈음 신라사 부분을 강의해줄 수 있느냐고 제의해왔다. 그러나 신라를 비롯한 고대사 부분에 대한 지식이 지극히 엷은 탓에 강의안을 마련하려면 아주 많은 시간과 정력을 투자해야 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자신 있다고 생각해온 여말선초, 특히 신흥사대부의 출현이나 국초의 분위기와 결부시켜 건국 서사시 <용비어천가>를 강의하겠노라 역으로 제의하였다.

 

 ***

 

강의실에 들어가니, 한국 유학생 1명과 중국 유학생 2~3명을 제외하면 약간이라도 한국을 아는 학생들은 거의 없는 듯 했다. 사실 이 점은 이곳의 기성세대도 마찬가지였다. 직접 한국전에 참가했거나 참전한 부친으로부터 얻어들은 정보가 전부인 퇴역군인들을 이곳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그들 대부분이 갖고 있는 한국 이미지 역시 ‘625 당시의 그것으로부터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은 수준의 것이었다. 그들은 우리를 ‘625 때 코 찔찔 흘리면서 쫓아다니며 껌을 구걸하던그 상태로 생각하고 있는데, 우리만 좁은 한국 안에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준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비록 한국이 면적으로는 오클라호마 주의 반밖에 안 되지만, GDP로 따져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고 수출액으로 세계 9위의 경제대국이며, 5천년의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지닌 단일민족임을 힘 주어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수긍하건 말건 이 사실만은 분명히 주지시킨 다음 특강을 진행해야 내 속이 풀릴 것만 같았다.

 


강의 중


강의 중


질의응답이 끝나고 남아 있는 학생들과

 

***

 

그게 효과가 있었던지, 강의가 끝나고 질문을 하라고 하자 너도나도 손을 들고 한국사의 궁금한 점을 물어왔다. 그들이 특히 관심을 갖는 내용은 왕명으로 한글을 만들었다는 점, 한글의 존재와 쓰임새, 당시의 사회구조, 왕조의 지배체계, <용비어천가>를 올려 부른 궁중예술(court performing art) 등 다양했다.

 

그들과 질의응답을 하며, 다른 나라 특히 미국 같은 영향력 있는 나라에서 우리의 역사를 교육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자동차 한 대, 스마트 폰 한 대 더 파는 것보다 대학들에 한국학을 개설하고 학생들에게 교육하는 것이 우리로서는 훨씬 중요하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이다. 한국사의 작은 부분을 문학과 결부시켜 설명하는 데 그치긴 했으나, 앞으로 한국학의 세계화를 위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뚜렷한 해답을 얻은 셈이었다.

 

강의가 끝나자 청강하러 왔던 박사과정 학생 둘이 다가와 자신들이 만든 외교사 토론클럽이 있는데, 나와서 한국 현대사에 대한 지도를 해줄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이 요청을 받고, 한국사에 대한 학생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데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스스로 하면서 그들의 요청을 쾌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이 연구 활동 과정에서 얻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다. 

 

아시아사, 특히 한국사가 미국학생들이 별로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 분야임을 알게 되면서 미국을 비롯한 서양 국가의 국민들이 우리를 잘 알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해 얼마간 충격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속된 표현으로 그저 '코딱지만한' 나라가 하나 있어, 동족끼리 맞붙어 크게 싸웠으며, 지금도 으르렁거린다는 점 외에 크게 아는 내용도 알고 싶어하는 내용도 없는 대상이 우리임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은 길게 보아 우리자신에게 좋은 약이 되긴 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분명 씁쓸한 일이었다. 

 

사실 중국 혹은 중국문화와 역사에 대하여 느끼는 서양인들의 두려움이나 존경심, 일본이나 일본문화에 대하여 갖고 있는 서양인들의 호감을 6개월에 걸친 유럽여행에서 확인했고, 지금 미국에 와서 재확인하는 중이다. 일모도원(日暮途遠)의 초조함에 우리의 조급함이 가세하게 되니, 참으로 마음이 편치 않은 나날이다. 그러나, 어쩌랴.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요, 옹달샘이 있어야 강도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 황소처럼 그냥 앞만 보고 나아갈 일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그들이 갖고 있는 '1950년대의 이미지'가 '펄펄 나는 21세기의 이미지'로 바뀌는 날도 있을 것 아닌가?     

참고로 강의내용을 들면 다음과 같다.

 

 

*summary/special lecture for students of History Department

 

 

History as Literature, Literature as History

--Understanding Yongbi’eocheon-ga[Songs of the Dragons Flying to Heaven], the epic poem praising the foundation of Joseon Dynasty--

 

 

                         Dr. Cho, Kyu-Ick

(Professor of Soongsil University, Seoul, Korea/Visiting Fulbright Scholar, History Department of Oklahoma State University)

 

                       

 

Foundation of Joseon Dynasty and Necessity of Creating

Yongbi’eocheon-ga[Songs of the Dragons Flying to Heaven]

 

 

Is there a point of contact between history and literature? If there is, what is it? And where is it? The key purpose of my speech is to disclose this point through Yongbi’eocheon-ga* [Songs of the Dragons Flying to Heaven]as an epic that sang the history of the early period of founding Joseon Dynasty. The point of contact is just using imagination whenever we interpret literary materials and historical facts. I’d like to explain this issue through the heroic achievements in Yongbi’eocheon-ga as historical facts or literary materials.

 

Joseon was the dynasty occupied in the last part of Korean history before the modern age. The first King, Taejo Lee, Seong-Gye founded the dynasty after destroying the Koryeo Dynasty in 1392 A.D. Joseon is the dynasty that 27 Kings had ruled for 518 years until the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in 1910.

 

The 4th King, Sejong the Great, created Han’geul, the independent letters to spell the Korean language. To test the usability of Han’geul, King Sejong the Great ordered his intellectual subjects to make Yongbi’eocheon-ga, which praised the achievements of the foundation of Joseon Dynasty by 6 ancestors from the 5th grandfather, Mokjo to his father King Taejong.

 

Lee, Seong-Gye, Taejo was a general of the late Koryeo Dynasty period. However, the late Koryeo Dynasty was facing a crisis of collapse because of the tyranny of a  small number of the aristocracy. Lee, Seong-Gye was a general with a strong military force, and the group in power that used his military force was the newly arisen aristocracy armed with Neo-Confucianism, also known as the Zhu Xi[Chu Hsi] school.

 

Eventually, Lee, Seong-Gye destroyed the Koryeo Dynasty and founded the Joseon Dynasty, using his own military force and the newly arisen aristocracy’s support. The Joseon Dynasty introduced Confucianism as its state religion, contrary to the Koryeo Dynasty that adored Buddhism, and enforced the bureaucracy led by the retainers group as a main axis at that time.

 

However, even if Lee, Seong-Gye grasped the Koryeo Dynasty’s military power, he was only a subject of his King. No matter how cruel the King was, the notion that a subject cannot get rid of his king was one of the kernels of Confucian ideology. In other words, the people at that time generally had a firm faith that all offspring had to practice filial piety toward their parents, wives had to respect their husbands, and subjects had to be loyal to their king.

 

In this respect, Lee, Seong-Gye’s taking the throne was a clear treason. Especially in respect to Confucianism, overthrowing their king was an indefensible treason. If the people think of their King as a leader of treason, who renders devoted service to him? How can a dynasty without people’s loyalty to their king be continued for a long time?

 

So, there were many resistance groups in the early stage of the dynasty, and the ruling foundation was not strong and steady. King Sejong the Great knew the problems well. He had pity on the people without their own letters, which are a means of expression about their thoughts and feelings. So, he made Hunmin Jeong’eum(it means ‘correct letters to instruct people’), developed the various science and technology, and strengthened the national defense.

 

King Sejong the Great thought his grandfather, King Taejo’s founding of the Joseon Dynasty after destroying the Koryeo Dynasty as a historical and political matter with quite a weak justification. He believed that he had to set a reasonable ground and logical basis for the historical facts surrounding the foundation of the Joseon Dynasty.

 

To do so, he needed to cite his 6 ancestors’ achievements and make a long epic poem like Yongbi’eocheon-ga. Through Yongbi’eocheon-ga, with showing that their outstanding achievements were results not from their own personal capacity but from Heaven’s Command, the authors succeeded to present the ground beyond ethics or morals. That is to say, the historical fact that Lee, Seong-Gye as a subject drove out his King and became King himself was a result not by human desire or ability but by Heaven’s order.

 

This is just an imitation of the “thought of Heaven’s Will” from King Wu of the Zhou Dynasty. The authors wanted to remind people to be nothing but loyal to the dynasty, because of its foundation from Heaven’s order. King Sejong the Great intended to stabilize his dynasty by elevating Yongbi’eocheon-ga to the level of history by brainwashing and teaching people.


 

 

Yongbi’eocheon-ga as the last defense logic of the existing interested group 

 

Yongbi’eocheon-ga was a product of this intention. So, it can be a historical writing as well as a literary work.  The newly arisen aristocracy that participated in Lee, Seong-Gye’s revolution held important posts as the meritorious retainers, and the power could be inherited to their offspring unless they had special problems.

 

In the era of King Sejong the Great, they had already become an existing interest group. Yongbi’eocheon-ga was the real example of an attempt of the intellectuals in charge of ideology in the early Joseon Dynasty to dilute the perceived weakness of justice and the frailty of morality in King Taejo’s revolution.

 

Arguing the same points that Joseon is the dynasty founded with Heaven’s order, the heartwarming hospitality for the meritorious retainers has to be sustained, and the integrity of the dynasty has to be eternal are the core contents of Yongbi’eocheon-ga. In the point that the intellectuals at that time paraphrased their own wish variously, also Yongbi’eocheon-ga was no exception.

 

Rather it can be said to put content inclination or thematic consciousness of the existing Akjang** together fully. Heaven’s Command is a condition to prove a dynasty’s legitimacy, and the political power’s legitimacy is one of the matters cared about by the ruling group. The matter of ideology also has a functional relationship with whether a group in power has legitimacy or not. When ideology falls into disorder, categorical propositions like as dynasty’s perpetuity cannot help but be threatened.

 

In Yongbi’eocheon-ga the regime change from the Koryeo Dynasty to the Joseon dynasty but we can imagine that Lee, Seong-Gye used his military force to be persuasive. In addition, King Taejong[father of King Sejong the Great] was not the eldest son, King Sejong the Great also was not the eldest son who could not claim legitimacy. The illegitimacy of kingship which had repeated from King Taejo to King Sejong the Great was a critical matter possibly arousing the crisis consciousness of the ruling class.

 

If there were contradictions or irrationality like that, dynasty was difficult to continue. Dynasty’s perpetuity and prosperity are matters closely related to maintaining the vested rights of the ruling class. Akjang makers wanted to clarify that the foundation of the Joseon Dynasty was the result of what they should do morally. The Koryeo Dynasty was a symbol of immorality, while the Joseon Dynasty was a subject of what should be morally. In light of justice, to destroy the Koryeo Dynasty was a matter which made people realize principles and rules of rewarding the good and punishing the wicked, and it was a basis for realizing the ideal order of Confucianistic ideology.

 

However, for them, to monopolize the power was most important as the ruling class of the new dynasty. In this situation, the ideal king on top of the power structure governs well with a right attitude of mind was only a way to perpetuate the power they fought for from age to age. In all times and places, the power group with vested rights stood on the central status of conservatives. The newly arisen aristocracy that led to foundation of the Joseon Dynasty had been reforming power group in the first stage, however they eventually walked on the one way of conservatization after becoming the power group with vested rights as time went on.

 

They were able to emphasize justification of reformation when they were the subject of reformation. Their anxiety and consciousness of the reality was expressed in the works of Akjang including Yongbi’eocheon-ga as the end of the series of Akjang in Joseon Dynasty can be interpreted meaningfully, even in the history of politics and culture. If we attach the pre-existing conditions like features of the power structure and the authors in the political circles at that time, Yongbi’eocheon-ga is only a verbal representation of the Joseon Dynasty, wrapped up the leading group’s wishful thinking.


 

 

History and Literature as the interpreted facts or truth

 

 

Yongbi’eocheon-ga is a literary work as well as a historic writing as a narration about basic facts. The narrative represented symbolically in myth or tales is a genre of history in the classical era. Recently in Korea, some historical dramas  have become popular on TV. Accordingly, sometimes many people misunderstand it as a historical fact or confuse it with history. Dramatists use literary imagination, and historians use historical imagination.

 

People say that the literary imagination making fiction is different from the historical imagination dealing only with facts. However, is it really like that? In What is History, the author E.H.Carr explained two ways to write history, as objective and subjective. Literally, objective writing is the way only to list the facts as historical materials, subjective writing is the way to add an interpretation by a historian’s opinion on the subject.

 

Strictly speaking, there is no condition to guarantee the objectivity of supposedly objective writings. Although most historians are confident of their historical writing’s objectivity as something anyone can accept, usually it can’t be admitted, and we can’t say that the history written like that is a good one. Because it is an essential ability of the historian to select and interpret some historical facts. Here, the contact point between literary imagination and the historic one, that is to say, between history and drama, comes into being.

 

As a matter of fact, the intellectuals that created Yongbi’eocheon-ga utilized historical imagination and a literary one at the same time. They were prominent people, a combination of scholars of literature and historians. Undoubtedly, they did not work just to write a simple history book. They selected and interpreted historical facts, and mixed them in the bowl as literature.

 

Accordingly, Yongbi’eocheon-ga is in the form of an epic made with the happy combination of historical and literary imagination. Any reader with normal knowledge or insight can feel the authors’ literary sensitivity and historical strictness at the same time, I suppose. Because it shows the emotional horizon of the knowledge-based society at that time and historical consciousness about the foundation of the Joseon Dynasty. If so, how is the composition? Let’s see the first 3 cantos and final canto***.  

(The original text is omitted.)

 

 

Foot Notes

 

 

*It was created in 1445[the 27th year on the throne of King Sejong the Great], and published in 1447[the 29th year on the throne of King Sejong the Great]. The first edition might be movable metal print book, however, all of the existing books are xylographic texts. Because it was created before promulgating Hunmin jeong’eum[it means ‘correct letters to instruct people’/Independent writing system for the Korean spoken language] by King Sejong the Great, it was the first document written in Hunmin jeong’eum. Jeong In-ji, Ahn Ji, Gwon Je created it, Seong Sam-moon, Park Paeng-nyeon, Lee Gae annotated it, Jeong In-ji wrote the foreword, and Choi Hang wrote the post script. The common structure of individual canto of Yongbi’eocheon-ga is composed of original text, translation in Chinese old letters, and the related historical facts.[About the meaning of ‘canto’, refer to the footnote 3) in pp.6-7.] 

 

**Akjang, one of the literary generic names, is used only in the learned world of Korea. It was used for the lyrics in the Joseon Dynasty’s court performing arts, namely, a composite art, a combination of playing music, singing, and dancing. Cf. Cho, Kyu-Ick, Literary Aesthetics of Joseon Dynasty’s Akjang, Seoul: Minsokwon, 2005.

 

***The canto is a principal form of division in a long poem, especially the epic. It is similar to ‘stanza’ in form, function, or meaning. The word comes from Italian, meaning ‘song’ or ‘singing’. Yongbieocheon-ga is composed of 125 cantos.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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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J

    자랑스럽습니다

    2013.11.20 11:57 [ ADDR : EDIT/ DEL : REPLY ]
  2. Thank you. How honored and humbled I heard a praise like your comment!!! I wish many Koreans could understand our own images in the advanced countries like the U.S.

    2013.11.21 11:4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양훈식

    결국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내적 자신감만으로는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부분이 적을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겠군요. 우리 스스로가 우보천리하더라도 꼭 선진국에게 우리 자신의 이미지를 제대로 인식시켜 줘야 하겠습니다. 교수님의 노고가 크십니다. 멋진 강의 함께 들었다면 더욱 좋았으리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2013.12.01 18:24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