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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2.28 염치(廉恥) (3)
  2. 2007.04.10 대토지 소유자들의 나라
글 - 칼럼/단상2016. 12. 28. 13:36

 

 

역사상 우리의 중세를 지배한 사상은 유학이었고, 그 이데올로기는 통치의 이론적 근간이 되어 왔다. ‘염치란 현대의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들 가운데 하나인데, 그 역시 유교 이데올로기에서 나온 것임은 물론이다. 지금 대부분의 국어사전이나 한자사전들에는 남에게 신세(身世)를 지거나 폐를 끼칠 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상태(狀態)” 혹은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등으로 설명 되어 있으나, 한자를 그대로 풀면 부끄러움을 살핌부끄러움을 행동이나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마음이 바로 염치다. 그래서 염치는 예의(禮義)’라는 말과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다.

 

남들의 사회적 행동을 평가하거나 헤아릴 때 염치의 유무(有無)를 거론하는 것을 보면, 분명 인간관계에서 작동하는 가치기준이 바로 염치임에 틀림없다. 누구도 혼자 있는 상황에서 염치를 거론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처럼 염치를 중시하고, 염치 때문에 쭈뼛거리게 되는 집단정서를 갖고 있는 민족도 많지 않을 것이다. ‘찬물 마시고 이빨 쑤시면서도 배고픔의 기색을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자존심 강한 민족이었다. 그래서 염치는 집단적 수퍼에고(super ego)의 가장 확실한 발현태(發顯態)라 할 수 있다.

 

박인로(朴仁老)가 지은 <누항사(陋巷詞>의 한 부분.

 

가뭄이 몹시 심하여 농사철 다 늦은 때에

서쪽 두둑 높은 논에 잠깐 갠 지나가는 비에

길 위에 흐르는 물을 반쯤 대어 놓고는

소 한 번 빌려 주마 하고 엉성하게 하는 말을 듣고

친절하다고 여긴 집에

달 없는 저녁에 허위허위 달려가서

굳게 닫은 문 밖에 우두커니 혼자 서서

'에헴' 하는 인기척을 꽤 오래도록 한 후에

, 거기 누구신가?”<*농민의 물음>

염치없는 저올시다.”<*박인로의 대답>

초경(初更)도 거의 다 되었는데

무슨 일로 와 계신고?”<*농민의 물음>

해마다 이러하기 구차한 줄 알지마는

소 없는 궁가(窮家)에 근심 많아 왔삽노라.”<*박인로의 대답>

 

 

양반 박인로가 소 한 마리 있다고 거들먹거리는 부자 농민에게 쭈뼛거리며 찾아가 수모를 당하는 광경이다. 의 핵심은 염치. 염치가 중요하지만,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염치를 잠시 접어둔 정황이 드러난다. 생각해보라. 어엿한 양반으로서 임진왜란에 수군의 하급 장교로까지 참전해가면서 나라를 위해 헌신했고, 지도적 신분계층으로서의 자부심과 명예를 그토록 중시했으며, 같은 작품에서 일노장수(一奴長鬚: 노비의 길게 기른 수염)는 노주분(奴主分: 노비와 주인의 명분)을 잊었다고 변화된 세태를 탄식하기도 한 그였다. 그런 그가 자신과 가족들의 배고픔 때문에 염치 불고(不顧)하고 상민에게 찾아가 구차한 말을 건네게 된 것이다. 그러나 보기 좋게 거절당한 그는 집에 돌아와 밤새 잠 못 이루며 번민하던 끝에 결국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이념적 허울 속으로 들어가 잠시 잃어버렸던 염치를 찾아내고 마는 것이다. 그게 바로 이 땅의 지도층이 추상같이 지키려던 염치였다. 구복(口腹)의 억압을 뛰어넘어 지키고자 했던 자존심의 문고리가 바로 염치였다.

 

중세시대 이래 우리는 늘 염치를 강조해왔다. 비록 쌀독이 비어도 염치를 잃어선 안 된다고 역설해온 것이 우리 민족이었다. 그 염치는 체면이고 자존심이다. 굶어죽을지언정 돼지우리 속의 밥알을 줍지는 않겠다는 오연한 패기가 바로 염치다. 허균(許筠)이 말한 도문대작(屠門大嚼)’ 즉 돈이 없어 푸줏간을 그냥 지나치면서도 크게 입 벌려 씹는 시늉을 하는 행위는 고기를 먹고픈 욕망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구차한 말을 건네지 않고 내면의 욕망을 억누르는 염치의 극적인 표출이었다.

 

그동안 세월은 참 많이도 변했다. 어느 사이 염치란 무능이나 무력함을 합리화하는 값싼 수단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사회의 다수가 되었다. 99원 갖고 있으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1원을 빼앗아 더 부유하게 되는 사람을 치열한 승자로 선망하는 사회, 달랑 몇 푼 되는 재산이나마 덜어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사람을 비아냥 거리는 시대, 배고프지 않을 정도의 재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좀 더 가진 사람을 배 아파하며 욕심 부리는 시대가 되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명예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재물까지 탐하는 게 일상이 된 것이다. 반대로 재물을 가진 사람들은 그 재물을 이용하여 명예까지 확보하려 애쓴다.

 

권력을 지닌 자는 권력을 이용하여 돈을 앗아내려 하니, 공동체의 기강을 어지럽히는 일로 이보다 더 악독한 게 어디 있으랴! 그런 비정(秕政)들이 낱낱이 폭로되고 있음에도 구차한 자기변명으로 일관하며 오욕(汚辱)의 삶을 부지하고자 하니, 이런 통치자의 몰염치한 사례가 과거 역사의 어느 부분에 기록되어 있단 말인가. 탄핵이네 특검이네 복잡한 악다구니 속에서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한동안 잃어버리고 있던 염치만 되찾는다면, 벌써 해결되었을 사건이 아닌가. 염치 앞에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던 조상들의 오연한 기개만 떠올려도 지금 이 나라가 이렇게 혼란스럽지는 않을 것 아닌가. 눈꼽만큼의 의혹에도 내려와야 할 자리이거늘, 이미 벌여놓은 천하공지(天下共知)의 사건들 앞에 자기변호의 둔사(遁辭)나 농하고 있는 몰염치는 과연 무어란 말인가.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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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6.12.28 14:01 [ ADDR : EDIT/ DEL : REPLY ]
  2. 비밀댓글입니다

    2016.12.31 13:46 [ ADDR : EDIT/ DEL : REPLY ]
  3. 리나야,

    그리 자책할 필요 없어.
    넌 지금 너무 잘하고 있지 않니?
    네가 내 마음을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지만,
    조만간 깨닫게 되겠지.
    새해 건강하고, 복 많이 받기 바란다.

    새해 벽두

    백규

    2017.01.03 01:4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글 - 칼럼/단상2007. 4. 10. 15:43
우리 인구의 상위 1%가 전국 사유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상위 100명이 여의도 면적의 절반 수준인 평균 115만평씩을 갖고 있다 한다. 행정자치부의 이 발표는 간과할 수 없는 역사적·사회적 함의(含意)를 지닌다.

이성계(李成桂)와 신흥사대부들에게 체제전복의 명분을 부여하여 고려의 명줄을 결정적으로 끊은 것은 토지제도의 문란이었다. 어림짐작으로 100명도 안 되는 여말(麗末)의 권문세족들이 점탈(占奪)·겸병(兼倂) 등 온갖 탈법적 만행으로 대토지를 소유하여 국가의 재정을 파탄내고,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림으로써 혁명세력에게 좋은 발판을 마련해준 것은 불과 6-7세기 전의 일이다.

‘이쪽 산봉우리에서 저쪽 산봉우리/이 골짝에서 저 골짝’ 으로 표현되던 그들의 땅. 그 규모와 ‘여의도의 절반 크기’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모순과 역리(逆理)의 역사는 이 시점에도 여지없이 반복되고 있음을 확인할 뿐이다.

상당수의 권문세족들이 불량배들을 시켜 농민을 폭행하거나 협박하여 토지를 빼앗았다는 기록들은 지금도 또렷이 남아 있다. 그것은 지배층의 대토지 소유와 체제의 붕괴가 서로 맞물리는 문제였음을 보여주는 근거다. 물론 오늘날의 대토지 소유자들이 여말의 권문세족과는 사회적 위치가 다르며, 토지를 소유한 경위나 배경 또한 다르다고 항변할지 모른다. 고려의 권문세족들은 대대로 권력과 부를 세습하는 가운데 형성된 문벌들이다.

지금의 대토지 소유자들 가운데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일부는 투기(投機)와 탈법(脫法)으로 당대에 부를 이룬 경우도 적지 않다. 고위직에 발탁되었다가 여론의 질타에 밀려 낙마한 일부 인사들의 사례는 그런 가능성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들이 즐겨 사용한 ‘위장전입’, 금융이나 세제상의 각종 탈법·위법 등은 토지를 점탈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한 여말의 권문세족들 못지않게 사회정의 상 용납되기 어렵다. 법망을 피한다거나 규정을 왜곡시키려면 작으나 크나 권력과 결탁하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가의 권위와 공권력을 능멸한 것이다.

지금 우리의 경제는 나날이 나빠지고 있으며, 국민들 간의 빈부 격차 또한 점점 벌어지고 있다. 정당한 방법으로 재물과 권력을 소유하는 것을 질타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우리는 다만 탈법을 통한 부의 편중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현실을 우려할 뿐이다. 정당한 룰(rule)을 지키며 얻은 부와 권력은 존경의 대상이다. 그러나 치부의 과정이 대부분 떳떳치 못한 게 우리의 현실이다. 토지 소유자에 대한 조사가 20 여 년 전에 이루어졌으면서도 지금까지 발표되지 못한 점을 새삼 주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나라를 소유한 자는 백성의 재물이 적음보다 고르지 못함을 근심하고, 가난함보다 편안하지 못함을 근심한다’고 했다. 즉 고르면 가난함이 없고 화목하면 적게 가진 불만이 없으며 백성들이 편안하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가난함에서 오는 고통보다 균등하지 못한 데서 생기는 고통이나 불안의 사회적 파장이 훨씬 크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고려 왕조가 무너진 원인은 편법과 탈법에 의한 대토지 소유가 백성들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만든 데서 찾아져야 한다. 이 땅은 대토지를 소유한 100명만의 나라는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2005. 7. 19.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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