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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11 '노벨상' 강박증
글 - 칼럼/단상2010. 10. 11. 08:35

‘노벨상’ 강박증

 

2010년 10월 7일 오후 8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시각이었다. 며칠 전부터 언론 매체들이 고은(高銀) 시인의 수상 가능성을 확신하는 듯 떠들썩하게 기대치를 높여 왔던 만큼, 사람들은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흡사 고 시인의 노벨상 수상이 민족적 ‘비원(悲願)’이라도 된다는 듯, 사람들은 그 시각이 가까워지자 입을 모아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그러나 아쉽게도 올해 역시 그 예측은 빗나갔고, 기원은 허사로 돌아갔다. 다시 기다려야 할 1년을 지루하게 느끼며 사람들은 노벨상에 대한 관심을 접어 둔 채 조용해졌다.

 

이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일본이 화학 분야에서 공동 수상자를 배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누구의 표현대로 ‘민족적 모욕’에 견줄만한 일이 벌어졌으므로, 우리는 쓰라린 가슴을 접어 눌러야 했다. 21세기에 접어든 이후만 해도 일본은 10명의 노벨 수상자를 배출했는데, 그들 모두 기초과학 분야의 연구자들이다. 우리가 물리학이나 화학, 생리학, 의학, 경제학 등은 꿈도 꾸지 못한 채 겨우 문학 분야 하나에만 목을 매다시피 하고 있는데, 그들은 이미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년)와 오에겐자브로(1994) 등 두 명이 문학상을 받은 바 있고, 기초과학과 평화상까지 합하면 총 1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그간 해온 방식대로 올해도 몇몇 언론매체들은 일본과 한국의 교육을 비교하는 데서 원인을 찾아 제시하는 것으로 전 국민적 실망감을 누그러뜨리고자 하는 듯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으로 끝이라는 점이다. 언론의 분석은 이유가 궁금한 대중들의 갈증을 우선 풀어줄 ‘한 컵의 물’일 뿐이다. 좀 더 근본적인 요구는 국가차원의 정책과 실천일 텐데, 국가나 국민 모두 아마추어리즘의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는 것이 우리의 한계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고, 노벨상 보기를 집중적으로 대표선수 몇 명 길러 금메달을 따내는 올림픽 대하듯 한다. 사실 ‘올림픽의 금메달’이 스포츠의 최종적인 목적은 아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생활 속에서 즐기게 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이도록 하는 것이 스포츠의 본질이다. 지난 시절 사회주의권 국가들이나 저개발 국가들에서 특정 분야의 뛰어난 선수들만을 돈 들여 키우는, 이른바 ‘엘리트 체육’이 성행했는데, 그것은 체육인구의 저변확대를 통한 선수육성이라는 본질과 거리가 멀다. 당분간 금메달은 따오겠지만, 그것으로 그 나라의 총체적인 수준을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의 분석과 처방을 거치지 않고, 특정 분야 특정 선수 한 두 사람에게 노벨상을 받아올 것을 기대하는 우리의 ‘대책 없는 노벨상 기대심리’는 오히려 ‘엘리트 체육’보다도 못한 셈이다. 설사 내년에 고 시인이 노벨 문학상을 탄다 해도, 후속 수상자의 배출은 다시 ‘요행’이나 ‘기적’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고 시인 급(級)의 ‘잠재적 노벨상 수상 후보자들’ 수십 혹은 수백 명이 우글거리도록 만들자면 길게 보고 투자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문학교육을 제대로 시키고, 다양한 외국의 인재들을 불러다 제대로 된 우리 문학의 번역자로 키워야 한다. 기초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들을 배출하려면 지금과 같은 교육과 학문의 토양을 완벽하게 바꾸는 투자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자면 많은 시일과 돈이 필요할 것이니, 상당 기간 우리는 노벨상의 존재를 잊어야 한다. 투자와 노력도 안 하면서 노벨상에 모든 것을 거는 듯한 행위는 국가적 차원의 ‘파렴치’일 뿐이다.

 

노벨상은 목표가 아니라 우리 노력의 부산물이어야 한다. ‘문학과 학문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다 보니 노벨상 수상자도 나오더라’는 말이 정답이다. 문학이든 기초과학이든 노벨상이 전부는 아니다. 1964년 프랑스의 문호 장폴 사르트르는 노벨문학상을 거부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든, ‘노벨문학상이 아니라도 자신의 문학이 최고’라는 자부심을 그는 견지했을 것이고, 또 사실이 그렇다. 수준 높은 문학과 학문을 가꾸어 나가고, 그에 대한 스스로의 자부심을 높여 나갈 때 비로소 우리는 ‘노벨상 강박증’을 극복할 수 있다.

 

조규익(숭실대 국문과 교수/인문대 학장)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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