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20.03.22 대통령을 보며
  2. 2016.11.30 블로그의 빗장을 다시 열며
  3. 2007.04.12 헛다리 짚어온 대학개혁
글 - 칼럼/단상2020. 3. 22. 01:13

 

                                                                                                                                                    조규익

 

박근혜가 탄핵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무능함이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반대 진영에 의해 ‘대통령 탄핵’의 사유가 날조되었고, 그들이 불법으로 동원한 이른바 ‘촛불 시위대’의 협박에 비겁한 대법관들이 꼬리를 내린 결과가 탄핵으로 귀결되었다고, 지금까지 그의 진영에서는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설사 부분적으로 그런 점을 인정한다 해도, 당시 박근혜의 상황 대처 모습에 대하여 나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실망했던 것이 사실이다.

 

나는 처음부터 변함없는 보수 쪽 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박근혜가 대통령 자격을 흡족하게 갖추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고, 그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아버지 박정희의 후광이 없었다면 그는 결코 ‘홀로서기’를 할 수 없었다고 보기 때문이었고, 그런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원천적으로 그에겐 내가 생각하는 ‘대통령으로서의 자질과 카리스마’가 없었다. 순발력 있는 상황판단과 결단력, 설득과 포용의 인간적 매력, 시대의 변화를 읽을 줄 아는 최소한의 예지력, 권력에의 선한 의지 등을 바탕으로 시운(時運)의 도움을 만나야 비로소 대통령으로서의 카리스마를 갖추게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럼에도 당시 나는 투표장에서 그를 찍었다. 사실 당시 박근혜와 문재인 후보 모두 내 기준에 부합하는 ‘대통령감’들은 아니었다. 처음엔 투표장에 가지 않으려 했다. 좀 우스운 고백을 하자면, ‘박정희 숭배자’에 가깝던 노모의 소원을 들어드리는 것이 불효자의 마지막 소원이라는 소박한 생각에 결국 박근혜에게 한 표를 던지고 말았다. 몸속에 중병을 안고 계시면서도 ‘박근혜 당선’의 소식에 파안대소를 하시던 어머니의 표정을 뵈며 ‘내가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박근혜가 몰락의 길을 걷고 있을 때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문재인은 그 자리를 ‘꿰어 찼다’

 

***

 

나는 원래부터 문재인에게 아무런 기대도 갖고 있지 않았다. ‘기대를 갖고 있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확신에 가까운 반감을 갖고 있었다. 그에 대한 원천적인 환멸을 설명하기 위해서라도 노무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원래 나는 취임 직후부터 우왕좌왕하며 문제를 야기하던 노무현을 싫어했다.

 

나도 ‘흙 수저’ 출신으로 이 땅의 ‘운명적 비주류’이기 때문에, 당시 혜성 같이 등장한 노무현에게 작지 않은 기대를 걸었던 게 사실이다. 부디 그가 조심조심 ‘기득권 주류세력’을 다독여 가며 연착륙 해주기를 바란 것이 내 진심이었다. 대한민국 정치판의 험난함이야 꼭 정치를 해본 사람만 아는 사실은 아니기 때문이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는 그가 큰 충돌 없이 ‘주류세력 교체’를 성공적으로 이룩해야 하는 역사적 사명을 타고 났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했다. 당시 좌파 개혁세력의 역량이 실제로 모자랐는지 알 수는 없으나, 나는 기득권 주류세력에 대한 노무현의 콤플렉스와 조급증이 오히려 일을 그르친 것이 아닌가 판단하고 있다.[이 점에 대한 나의 생각은 다른 자리에서 거론하기로 한다.]

 

대통령 노무현의 실패에 큰 역할을 했으리라 보는 것이 문재인이다. 노무현은 2003년 2월 대통령에 취임했고, 문재인도 똑 같은 시점에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이 되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04년 3월부터 연말까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을, 1년 뒤인 2005년 1월부터 2006년 5월까지 다시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냈다. 그리고 2007년 3월부터 2008년 2월까지 1년 동안 비서실장으로 노무현의 곁을 지켰다. 문재인이 노무현 실패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2008. 2.~2013. 2.]에 이어 들어선 박근혜 정권[2013. 2.~2017. 3.]이 탄핵되면서 문재인 정권[2017. 5.~]이 들어섰고, 현재 임기 만 3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박근혜 정권 출범 1년 남짓 만인 2014년 4월 16일에 세월호 사고가 터졌고, 그로 인해 박근혜는 임기 내내 사고의 마무리를 두고 야당과 좌파세력에게 끌려 다니게 되었다.

 

***

 

나는 세월호 사고의 진상조사를 요구하며 한 피해 학생의 아버지가 광화문에서 벌이던 단식농성 사건을 잊지 못한다.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의 대표 문재인이 ‘단식을 중단하도록 그를 설득하겠노라’며 천막을 찾았다. 그런데 천막에 들어간 문재인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피해학생의 부친과 함께 앉아 단식을 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아무리 설득해도 학생의 부친이 말을 듣지 않아서 자신도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함께 단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그의 그런 모습에 사람들은 어떤 평가를 내렸는지 알 수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언론에서도 크게 보도들을 했지만, 그에 대한 언론의 분석들이 어떠했는지 기억할 수도 없다.

 

 

그러나 당시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자신있게 문재인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 애당초 학생의 부친을 설득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쉽게 설득당할 거라면, 애당초 광화문에 천막을 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럼 공당(公黨)의 대표로서 어떻게 처신했어야 할까. 제1야당의 대표란 여당의 상대가 되어 행정부를 견제하고 국정을 조율해 나가야 할 자리 아닌가. ‘내가 국회의원들과 협의하고 정부와 싸워서라도 해결책을 모색할 테니, 나를 믿고 빨리 단식을 끝내라’고 당부한 다음, 국회로 돌아가 동분서주하며 해결책을 찾았어야 마땅한 일 아닌가. 말끔한 얼굴로 농성천막에 들어간 뒤 수염이 더부룩해지도록 여러 날 단식하고 앉아 있는 그에게서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를 읽어낼 수는 없었다.

 

사람에 대한 동정도 중요하지만, 그건 장삼이사(張三李四) 모두가 지녀야 할 선한 마음일 뿐이다. 그 학생의 아버지를 동정하여 함께 벌여야 할 동조단식은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지, 국정을 맡아야 할 지도자의 처신은 아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간도 못하는 사람에게 대통령이란 크나큰 직임(職任)이 주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철학이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가 혹시 ‘선한 사람’일 수는 있지만, 한 나라의 운명을 지고 나갈 지도자는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노무현 실패의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첫 평가에 이은 두 번째 평가였다.

 

***

 

자타가 평가하는 대로 그는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짐작한 바와 같이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그가 질러대는 헛발질은 처음부터 가관이었다. 내 기억에 남는 것들은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제, 주 52시간제, 탈 원전’ 등 섣부르고 민감한 경제정책들 뿐이다. 겉멋만 잔뜩 들어있는 이 어휘들은 극소수 비주류 경제학자들의 ‘논문 쪼가리’나 좌파들이 제작한 '감성 만땅'의 영화를 보고 즉흥적으로 잡게 된 문재인 경제정책의 키워드들로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방향타가 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북한과 섣불리 체결한 ‘군사합의서’는 안보의 근간을 허물었고, 그 합의서 체결 이후 북한의 각종 장・단거리 미사일 발사는 일상적인 일이 되고 말았다. 형편없는 국제인식에 무능하기 짝이 없는 외교장관이 가세함으로써 ‘대미・대일・대중・대아세안’ 등 우리나라 전통외교의 주축이 모두 내려앉았다. 즉 한 정부 혹은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책임 사안인 국방・경제・외교 등을 짧은 시간에 송두리째 ‘말아먹은 것’이다.

 

사실 이런 것들은 유능한 후속 대통령만 뽑힌다면 시간이야 많이 걸릴지라도 얼마간 복구할 수 있는 문제들일 수 있다. 그러나 문재인이 자행한 ‘씻을 수 없는’ 최대의 죄과가 있으니, 바로 ‘국민 분열’을 앞장서서 선동한 점이다. 문재인은 취임하자마자 이른바 ‘적폐청산’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전 정권의 인사들을 탄압하고 그 시기의 정책들을 폐기하기 시작했다. 그 대상 또한 입법・사법・행정 등 모든 분야의 인사들을 망라했다. 이미 사법적 판단을 받은 사건들도 다시 들춰내어 탈탈 털기 시작했다. 문재인의 눈으로 보기에 전 정권의 인사들은 모두 나쁘고 부패했으며, 정책들은 폐기되어야 했다.

 

모르고 그랬는지 알면서도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급기야 문재인 일파도 그러한 아니 그보다 훨씬 부정한 일들을 자행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것을 사람들은 ‘내로남불’ 혹은 ‘문로남불’이란 속어로 풍자하고 있지만, 이미 ‘게이트’ 수준으로 확대된 많은 사건들이 이런 점을 웅변으로 입증한다. 자신들의 말을 고분고분 따를 것이라 기대했던 검찰총장이 원칙대로 밀고 나가려 하자, 취임 초엔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그를 ‘검찰개혁’이란 미명으로 정권과 지지자들을 총동원하여 밀어내고자 안간힘을 쓰는 ‘코미디’가 대명천지에 1년 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이 점은 너무 식상한 일이 되었으므로, 이 자리에서 더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그렇다면, 애당초 문재인은 대통령으로서 어떻게 처신했어야 하는가. 어떻게 처신했어야 성공적인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가. 아니, ‘모자란 자질의’ 그가 성공한 대통령은 되지 못한다 해도, 최소한 탄핵의 구덩이에 빠지거나 지탄을 받지 않고 ‘임기만이라도 채우려면’ 어떻게 했어야 하는가. 그는 취임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어야 하고, 또한 실천했어야 한다.

 

 

“우리 헌정사에는 부끄러운 오점들이 많습니다. 나라를 위해 잘 해보려다 그런 오점을 남긴 경우들도 있고, 개인의 욕망 때문에 오점을 남긴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대통령으로서 전 정권들의 잘 한 점들을 적극 수용하고, 잘 못한 점들을 적극 고치겠습니다. 저와 이 정부는 이 전 시대의 잘못한 점들을 다시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 일들을 지금 법규의 잣대로 다시 재어 그 책임자들을 벌함으로써 대립과 갈등의 역사를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부로 지난 시대의 과오를 모두 용서하고, 국민 단결의 출발선에 서도록 합시다. 온 국민의 촛불은 ‘화합의 신호탄’입니다. 따라서 국가의 일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나는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선거 과정에서 저를 지지한 분들이나 지지하지 않은 분들 모두 이 나라의 소중한 국민들입니다. 진보와 보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뉘어 갈등을 벌여 온 지난 시기의 어리석음은 우리가 버려야 할 가장 큰 적폐입니다. 그런 갈등을 오늘의 취임식을 계기로 모두 해소하고, 한 마음이 되어 국가 발전에 매진합시다.”

 

 

대통령의 어법은 화합과 용서를 바탕으로 해야 하고, 검찰총장의 어법은 ‘정의 구현’을 바탕으로 해야 하며, 국방부 장관의 어법은 ‘국가 안보를 통한 국민의 안심’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대통령이 증오를 갖고 어느 한 편을 징치(懲治)하려는 마음을 갖는다면, 그 밑에 도열한 공직자들 모두는 증오와 징치를 행동수칙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나라는 완벽하게 두 패로 갈리게 되었고, 문재인은 대통령 아닌 ‘문패’의 두목으로 전락하여 두목 없는 나머지 국민들을 두들겨 패는 ‘깡패’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경제나 외교의 실패보다 훨씬 치유하기 어려운 것이 ‘국민들의 분열’이다. 정권의 연장을 위해 국민의 ‘융합’보다 ‘분열’이 훨씬 쓸모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 바에야, 어찌 지금같은 대한민국의 문제적 현실이 대통령의 손과 머리에서 빚어질 수 있단 말인가. 문재인은 지금 국민 반쪽의 확고한 지지만 받으면 무슨 짓을 해도 탄핵 당하지 않을 수 있고, 정권을 무한 연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 현재로선 다른 무슨 문제들보다 바로 이 점이 문재인의 죄를 무겁게 하는 근거가 될 것이다.

 

***

 

대통령 탄핵이란 국가의 큰 불행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이 땅에서 그런 불행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미 ‘그런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라는 불안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게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어쩌면 ‘검찰개혁’이란 미명 아래 자행되어온 많은 부조리들이야말로 대통령 주변이나 그의 지지자들도 이미 그런 위험이 박두했음을 감지하고 있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어떻게 이 국가적인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대통령 스스로 대오각성(大悟覺醒)하여 잘못을 고백하고, 개선광정(改善匡正)의 길로 나서는 수밖에 없다. 부디 지금이라도 문재인은 은폐와 사술(邪術)의 뒷골목에서 허둥대지 말고, 햇볕 내려 쪼이는 대로(大路)로 과감하게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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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6. 11. 30. 20:42

블로그의 빗장을 다시 열며

 

 

 

연구실의 오후. 나른함을 느끼는 찰나, 옛 제자로부터 까톡!’이 왔다. ‘이제 블로그에 글을 안 올리시느냐는 항의성 채근이었다. ,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도 있었구나!

 

한동안 의욕상실증에 걸려 있었다. 대통령의 어이없는 비정(秕政)이 만인의 공분(公憤)을 불러왔고, 촛불의 행렬이 거리를 메우는 나날이다. 촛불을 들고 나가든, 촛불 대신 글을 적든, 무언가를 하는 게 옳았으리라. 그러나 저 휩쓸리는 인파 속에서 내 몸을 곧추세울 자신이 없고, 가슴 속 밑바닥으로부터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토해내려 책상에 앉아본들, 큰창자 저 밑에 똬리 튼 토사물을 끌어올릴 자신이 없는 게 요즈음이다.

 

미개구착(未開口錯)! 입을 열어 무언가를 말해봐야 부질없음만 절감할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이니, 얼마나 지났을까. 제법 큰 신문들을 통해 어쭙잖은 글 나부랭이들을 써내곤 하던 시절이었다. 사실 나 같은 흙수저에겐 그의 등장 자체가 희망이었다. 그가 기득권층을 다독이며 이 땅 흙수저들의 입지를 다져 나가길 맘속으로 기원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지나치게 말을 잘했고, 말하기를 좋아했다. 가끔은 할 말을 가슴에 묻어두고 있거나 조용히 다른 쪽의 진영을 미소로만 대했어도, 그런 일은 피해갈 수 있었으리라. 아쉬웠다. 그러나 더 후회스러운 것은 나였다. 좀 더 진득하게 애정을 갖고 지둘려야했었다. 깊은 뜻을 헤아리기도 전에 할 말 못할 말을 쏟아내며, 그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대는 데 일조를 보태고 만 나였다.

 

허탈함이 컸다. 말의 부질없음에서 오는 회한일 것이다. 적어도 밖을 향해서는 한동안 묵언(默言)으로 일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이었다. 성격은 다르지만, 최근 한두 달 사이의 일도 내겐 그와 같은 의미의 사건일 뿐이다. ‘말을 매우 잘함말을 되게 못함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두 사람. 그러나 두 경우 모두 구설(口舌)은 화환지문(禍患之門)’이라는 옛말을 입증하는 사례들일 뿐이다. 노 대통령은 말을 너무 잘해서, 박 대통령은 말을 너무 못해서 모두 화를 자초했다고 한다면, 현상을 너무 단순화시킨 것일까. 내 느낌에 노 대통령은 어느 경우에도 막힘이 없었다. 독서량도 많았다지만, 구변이 청산유수였다. 만약 그 구변의 70%만 발휘했다면, 어땠을까. 반면에 박 대통령은 참 눌변(訥辯)이다. 오죽하면 별로 호감이 안가는 언론인 출신의 전직 국회의원으로부터 베이비토크(baby talk)’란 비아냥조의 놀림마저 받았겠는가. 세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펑퍼짐한 강남아줌마를 비선(秘線)의 스피치라이터로 쓰고 있던 일만 보아도 말을 못하는 데서 오는 콤플렉스가 얼마나 컸었는지 알 수 있으리라.

 

이제 촛불의 망망대해에 내던져진 대통령이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 그 결과 또한 스스로 감당해야 할 터. 애시당초 감당할 수 없는 자리에 올라, 자신을 망치고 국민을 힘들게 하며 나라를 휘청거리게 만들었으니, 모두를 기만한 그 죄가 매우 크고 무겁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구약성서󰡕 잠언2813)는 성서의 구절. 그가 향해야 할 회개의 광야가 어디인지 알려주지 않는가. 둔사(遁辭)와 은폐의 덫에 스스로를 가둠으로써, 더 이상 만인을 부끄럽고 참담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내가 닫아걸었던 블로그의 빗장을 열고, 세상과 소통을 재개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두 버리고자 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는, 자명한 진리를 다시 깨달았기 때문이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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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7. 4. 12. 17:54
헛다리 짚어온 대학개혁


우리는 개혁을 지나치게 좋아한다. 개혁이 무언지도 모르면서 개혁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마누라만 빼고 모두 바꾸어야 한다고 열을 올리는 사람도 있다. 가관인 것은 개혁의 대상이 주체를 자처하고 나서는 일이다. ‘남의 눈에 든 티는 보면서 제 눈에 든 대들보는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칼자루를 휘두르는 세상이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부쩍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항간에는 이 정권의 풋내기들이 할 줄 아는 것이 ‘개혁’ 이란 말밖에 없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개혁은 이미 ‘한물 간 유행가’로 전락했다. 대학에 몸담고 있으면서 지겹게 듣는 구호가 ‘대학개혁’이다. 흡사 개혁 강박증에 걸린 사람들처럼 자고 나면 개혁해야 한단다.
 모조리 새 것으로 바꾸자는 말일 텐데, 정작 버려야 할 자신들만은 예외로 두는 그 논리가 고약하다. 그러니 해가 갈수록 대학사회는 개혁과 멀어진다. 우리는 정말로 대학이 무엇을 개혁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저 ‘남이 장에 간다고 하니 거름 지고 나서는’ 격이다.
 결론부터 말하자. 지금 대학에서 개혁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구성원들이 제 자리만 찾으면 된다. 총장은 총장의 할 일을, 교수는 교수의 할 일을, 직원은 직원의 할 일을, 학생은 학생의 할 일을 제대로만 하면 된다. 요즘 들어 우리나라 대학들은 비전이나 구호 내걸기를 좋아한다. ‘구호 좋아하는 놈’ 치고 제 일 제대로 하는 놈, 역사에 있어본 적이 없다. 제 일 제대로 못하면서 남들 보고 잘 하자고 외치는 놈 치고 변변한 인간 없다는 게 고금의 진리다.
 대학을 대학답게 놔둔 역사가 없었다는 것, 대학을 대학답게 지켜낸 대학인들이 없었다는 것, 제 일 제대로 하는 대학인들이 없다는 것. 이것들이 우리의 문제다.
 중세 말엽 유럽에서 대학은 시작되었고, 대학의 이념이나 정신 또한 그 시기에 싹을 보였다. 그들의 정신은 자율과 자치를 바탕으로 한 보편성의 추구에 있었다. 완벽한 자유를 전제로 하는 자율이나 자치, 그것이 변함없는 대학정신이다.
 그러나 지금 오도된 신자유주의 탓에 대학은 어설픈 교양인만 양산하고 있다. 젊은이들을 전인(全人)으로 키우는 것이 대학의 사명이고, 무한한 가능태의 인간상이 전인이다. 최근 일부 기업들이 대학에 '맞춤형 교육'을 요구하고 있다. 그야말로 대학의 정체성에 대한 놀라운 도전이며 대학 말살의 흉계다. 전인을 만들기는 어렵고 시간도 많이 들지만, 기능인은 단 기간에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런 기능인들을 끌어다 한동안 써먹곤 쓰레기처럼 버리는 것이 한국의 기업들이다.
 상당수의 대학인들은 기업의 요구에 맞추어 주는 것이 대학개혁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입맛과 눈치를 살피느라 전전긍긍이다. 그러면서 열심히 헛구호, 헛 비전만 남발한다. 빈 수레가 요란한 격이랄까. 대학개혁이란 별 게 아니다. 그동안 교수노릇 잘 못 했으면,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가르치고 연구하면 된다. 직원 노릇 잘 못 했으면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학교 행정에 헌신하면 된다. 잘 하는 교수·직원들 포상하고 연구비나 ‘삥땅 쳐 먹는’ 교수라면 가차 없이 자르는 것도 총장의 할 일이다.
 수십 년 간 부르짖어온 대학개혁이 허사였다면, 바로 정신 못 차린 우리에게 그 원인이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비로소 개혁의 꿈★은 이루어진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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