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익
박근혜가 탄핵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무능함이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반대 진영에 의해 ‘대통령 탄핵’의 사유가 날조되었고, 그들이 불법으로 동원한 이른바 ‘촛불 시위대’의 협박에 비겁한 대법관들이 꼬리를 내린 결과가 탄핵으로 귀결되었다고, 지금까지 그의 진영에서는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설사 부분적으로 그런 점을 인정한다 해도, 당시 박근혜의 상황 대처 모습에 대하여 나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실망했던 것이 사실이다.
나는 처음부터 변함없는 보수 쪽 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박근혜가 대통령 자격을 흡족하게 갖추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고, 그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아버지 박정희의 후광이 없었다면 그는 결코 ‘홀로서기’를 할 수 없었다고 보기 때문이었고, 그런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원천적으로 그에겐 내가 생각하는 ‘대통령으로서의 자질과 카리스마’가 없었다. 순발력 있는 상황판단과 결단력, 설득과 포용의 인간적 매력, 시대의 변화를 읽을 줄 아는 최소한의 예지력, 권력에의 선한 의지 등을 바탕으로 시운(時運)의 도움을 만나야 비로소 대통령으로서의 카리스마를 갖추게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럼에도 당시 나는 투표장에서 그를 찍었다. 사실 당시 박근혜와 문재인 후보 모두 내 기준에 부합하는 ‘대통령감’들은 아니었다. 처음엔 투표장에 가지 않으려 했다. 좀 우스운 고백을 하자면, ‘박정희 숭배자’에 가깝던 노모의 소원을 들어드리는 것이 불효자의 마지막 소원이라는 소박한 생각에 결국 박근혜에게 한 표를 던지고 말았다. 몸속에 중병을 안고 계시면서도 ‘박근혜 당선’의 소식에 파안대소를 하시던 어머니의 표정을 뵈며 ‘내가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박근혜가 몰락의 길을 걷고 있을 때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문재인은 그 자리를 ‘꿰어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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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부터 문재인에게 아무런 기대도 갖고 있지 않았다. ‘기대를 갖고 있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확신에 가까운 반감을 갖고 있었다. 그에 대한 원천적인 환멸을 설명하기 위해서라도 노무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원래 나는 취임 직후부터 우왕좌왕하며 문제를 야기하던 노무현을 싫어했다.
나도 ‘흙 수저’ 출신으로 이 땅의 ‘운명적 비주류’이기 때문에, 당시 혜성 같이 등장한 노무현에게 작지 않은 기대를 걸었던 게 사실이다. 부디 그가 조심조심 ‘기득권 주류세력’을 다독여 가며 연착륙 해주기를 바란 것이 내 진심이었다. 대한민국 정치판의 험난함이야 꼭 정치를 해본 사람만 아는 사실은 아니기 때문이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는 그가 큰 충돌 없이 ‘주류세력 교체’를 성공적으로 이룩해야 하는 역사적 사명을 타고 났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했다. 당시 좌파 개혁세력의 역량이 실제로 모자랐는지 알 수는 없으나, 나는 기득권 주류세력에 대한 노무현의 콤플렉스와 조급증이 오히려 일을 그르친 것이 아닌가 판단하고 있다.[이 점에 대한 나의 생각은 다른 자리에서 거론하기로 한다.]
대통령 노무현의 실패에 큰 역할을 했으리라 보는 것이 문재인이다. 노무현은 2003년 2월 대통령에 취임했고, 문재인도 똑 같은 시점에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이 되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04년 3월부터 연말까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을, 1년 뒤인 2005년 1월부터 2006년 5월까지 다시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냈다. 그리고 2007년 3월부터 2008년 2월까지 1년 동안 비서실장으로 노무현의 곁을 지켰다. 문재인이 노무현 실패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2008. 2.~2013. 2.]에 이어 들어선 박근혜 정권[2013. 2.~2017. 3.]이 탄핵되면서 문재인 정권[2017. 5.~]이 들어섰고, 현재 임기 만 3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박근혜 정권 출범 1년 남짓 만인 2014년 4월 16일에 세월호 사고가 터졌고, 그로 인해 박근혜는 임기 내내 사고의 마무리를 두고 야당과 좌파세력에게 끌려 다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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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월호 사고의 진상조사를 요구하며 한 피해 학생의 아버지가 광화문에서 벌이던 단식농성 사건을 잊지 못한다.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의 대표 문재인이 ‘단식을 중단하도록 그를 설득하겠노라’며 천막을 찾았다. 그런데 천막에 들어간 문재인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피해학생의 부친과 함께 앉아 단식을 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아무리 설득해도 학생의 부친이 말을 듣지 않아서 자신도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함께 단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그의 그런 모습에 사람들은 어떤 평가를 내렸는지 알 수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언론에서도 크게 보도들을 했지만, 그에 대한 언론의 분석들이 어떠했는지 기억할 수도 없다.
그러나 당시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자신있게 문재인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 애당초 학생의 부친을 설득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쉽게 설득당할 거라면, 애당초 광화문에 천막을 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럼 공당(公黨)의 대표로서 어떻게 처신했어야 할까. 제1야당의 대표란 여당의 상대가 되어 행정부를 견제하고 국정을 조율해 나가야 할 자리 아닌가. ‘내가 국회의원들과 협의하고 정부와 싸워서라도 해결책을 모색할 테니, 나를 믿고 빨리 단식을 끝내라’고 당부한 다음, 국회로 돌아가 동분서주하며 해결책을 찾았어야 마땅한 일 아닌가. 말끔한 얼굴로 농성천막에 들어간 뒤 수염이 더부룩해지도록 여러 날 단식하고 앉아 있는 그에게서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를 읽어낼 수는 없었다.
사람에 대한 동정도 중요하지만, 그건 장삼이사(張三李四) 모두가 지녀야 할 선한 마음일 뿐이다. 그 학생의 아버지를 동정하여 함께 벌여야 할 동조단식은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지, 국정을 맡아야 할 지도자의 처신은 아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간도 못하는 사람에게 대통령이란 크나큰 직임(職任)이 주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철학이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가 혹시 ‘선한 사람’일 수는 있지만, 한 나라의 운명을 지고 나갈 지도자는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노무현 실패의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첫 평가에 이은 두 번째 평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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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타가 평가하는 대로 그는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짐작한 바와 같이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그가 질러대는 헛발질은 처음부터 가관이었다. 내 기억에 남는 것들은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제, 주 52시간제, 탈 원전’ 등 섣부르고 민감한 경제정책들 뿐이다. 겉멋만 잔뜩 들어있는 이 어휘들은 극소수 비주류 경제학자들의 ‘논문 쪼가리’나 좌파들이 제작한 '감성 만땅'의 영화를 보고 즉흥적으로 잡게 된 문재인 경제정책의 키워드들로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방향타가 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북한과 섣불리 체결한 ‘군사합의서’는 안보의 근간을 허물었고, 그 합의서 체결 이후 북한의 각종 장・단거리 미사일 발사는 일상적인 일이 되고 말았다. 형편없는 국제인식에 무능하기 짝이 없는 외교장관이 가세함으로써 ‘대미・대일・대중・대아세안’ 등 우리나라 전통외교의 주축이 모두 내려앉았다. 즉 한 정부 혹은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책임 사안인 국방・경제・외교 등을 짧은 시간에 송두리째 ‘말아먹은 것’이다.
사실 이런 것들은 유능한 후속 대통령만 뽑힌다면 시간이야 많이 걸릴지라도 얼마간 복구할 수 있는 문제들일 수 있다. 그러나 문재인이 자행한 ‘씻을 수 없는’ 최대의 죄과가 있으니, 바로 ‘국민 분열’을 앞장서서 선동한 점이다. 문재인은 취임하자마자 이른바 ‘적폐청산’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전 정권의 인사들을 탄압하고 그 시기의 정책들을 폐기하기 시작했다. 그 대상 또한 입법・사법・행정 등 모든 분야의 인사들을 망라했다. 이미 사법적 판단을 받은 사건들도 다시 들춰내어 탈탈 털기 시작했다. 문재인의 눈으로 보기에 전 정권의 인사들은 모두 나쁘고 부패했으며, 정책들은 폐기되어야 했다.
모르고 그랬는지 알면서도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급기야 문재인 일파도 그러한 아니 그보다 훨씬 부정한 일들을 자행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것을 사람들은 ‘내로남불’ 혹은 ‘문로남불’이란 속어로 풍자하고 있지만, 이미 ‘게이트’ 수준으로 확대된 많은 사건들이 이런 점을 웅변으로 입증한다. 자신들의 말을 고분고분 따를 것이라 기대했던 검찰총장이 원칙대로 밀고 나가려 하자, 취임 초엔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그를 ‘검찰개혁’이란 미명으로 정권과 지지자들을 총동원하여 밀어내고자 안간힘을 쓰는 ‘코미디’가 대명천지에 1년 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이 점은 너무 식상한 일이 되었으므로, 이 자리에서 더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그렇다면, 애당초 문재인은 대통령으로서 어떻게 처신했어야 하는가. 어떻게 처신했어야 성공적인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가. 아니, ‘모자란 자질의’ 그가 성공한 대통령은 되지 못한다 해도, 최소한 탄핵의 구덩이에 빠지거나 지탄을 받지 않고 ‘임기만이라도 채우려면’ 어떻게 했어야 하는가. 그는 취임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어야 하고, 또한 실천했어야 한다.
“우리 헌정사에는 부끄러운 오점들이 많습니다. 나라를 위해 잘 해보려다 그런 오점을 남긴 경우들도 있고, 개인의 욕망 때문에 오점을 남긴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대통령으로서 전 정권들의 잘 한 점들을 적극 수용하고, 잘 못한 점들을 적극 고치겠습니다. 저와 이 정부는 이 전 시대의 잘못한 점들을 다시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 일들을 지금 법규의 잣대로 다시 재어 그 책임자들을 벌함으로써 대립과 갈등의 역사를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부로 지난 시대의 과오를 모두 용서하고, 국민 단결의 출발선에 서도록 합시다. 온 국민의 촛불은 ‘화합의 신호탄’입니다. 따라서 국가의 일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나는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선거 과정에서 저를 지지한 분들이나 지지하지 않은 분들 모두 이 나라의 소중한 국민들입니다. 진보와 보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뉘어 갈등을 벌여 온 지난 시기의 어리석음은 우리가 버려야 할 가장 큰 적폐입니다. 그런 갈등을 오늘의 취임식을 계기로 모두 해소하고, 한 마음이 되어 국가 발전에 매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