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대표와 정의화 의장의 경우
-‘말의 힘’ 아니면 ‘말의 덫’-
인간의 행동 가운데 정치적이지 않은 게 없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 단 두 사람의 관계에서도 ‘정치적인 계산’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가족들 간에도 ‘정치적 긴장’이 존재함을 누가 부인할 수 있는가. 그러니 가정과 직장, 각종 모임 등을 넘나들며 살아가는 오늘날의 사회인들이 정치적일 수밖에 없음은 당연하다.
실패로 돌아갔지만, 내가 ‘탈정치의 삶’을 실천해보려 한 것도 그 이유다. 처음엔 현실 정치인들과 그들의 말을 무대 위에서 펼치는 배우들의 ‘대사(臺詞)와 연기(演技)’로 받아들이곤 했었다. 매체를 통할 수밖에 없으니 비평가들의 비평안을 거친 연극을 보아온 셈인데, 가끔은 엉성하고 약삭빠른 기자들이나 시사평론가들의 눈이 한심할 때도 적지 않다. 그들이 던져주는 설명들의 행간에서 정치인들의 마음을 읽고자 나름대로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최근 눈여겨 본 두 인물이 김무성 대표와 정의화 의장이다. 두 사람을 보며 ‘덫’과 같은 ‘말의 힘’을 발견한다. 애당초 김 대표는 ‘전략공천은 없다’고 단언했고, 정 의장은 ‘원칙에 없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 대표의 이른바 ‘오픈 프라이머리’가 지금은 ‘상향식 공천’으로 바뀌었고 ‘인재 영입은 없다’는 부대설명이 붙긴 했지만, ‘상향식 공천에 의한 선거 혁명’의 소신은 분명한 것 같다. 국회법에 없는 ‘직권상정’은 할 수 없다는 정 의장의 말도 어쩌면 그의 소신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원이 되겠다고 찾아온 젊은 인재들을 소개하면서 구차하게 ‘이들이 제 발로 찾아왔다’는 김 대표의 구차한 추가멘트나, 시종일관 대통령과 여당의원들의 요구를 강하게 받아치면서 국민들을 의아하게 만드는 정 의장을 보면서 처음에 내뱉은 말에 꽁꽁 묶여 있는 그들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정의장의 그런 모습이 '정치인의 신념' 아닌 '필부의 옹고집'으로 보이는 건 혹시 나의 편견일까. 그들이 내세운 이런 말들이 과연 자신들의 철학이나 신념에서 나온 것일까.
매체들이 보도하는 것처럼, 김 대표는 ‘전략공천’에 관한 자신의 트라우마와 대통령의 공천 개입 가능성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대권의 꿈을 갖고 있는 그로서는 의회권력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자신을 경계하는 대통령의 ‘보이지 않는 한 수’가 두려울 것이다. 그래서 첫판부터 ‘전략공천은 없다’는 ‘단언(斷言)’으로 못을 박았으리라. 또 다른 입장에서 대통령과 거리를 두고 있는 정 의장은 매체들의 표현대로 ‘사사건건 어깃장’을 놓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원칙대로 한다’는 말만큼은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다. 첫말을 그대로 지켜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증 비슷한 것이다. 정 의장 자신의 고집을 통해 이익을 얻는 야당이나 일부 국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대권으로 가는 수레’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분석하는 일부 매체들도 있는데,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인간은 그의 자연적인 상태에서는 초시간적인 실체를 갖고 있지 않다. 그의 육체도 심리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흐름이며, 따라서 초시간적인 실체로서의 동일성은 없다. 따라서 인간이 그의 자연적인 상태에 있다면, '오늘의 나'는 벌써 '내일의 나'가 아니다. 이러한 자연적인 상태에서는 오늘과 내일 사이에 동일성이 없기 때문에 미래를 위한 약속은 있을 수 없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약속을 하고 지키고 그 약속을 믿곤 한다. 이것은 인간이 그의 자연적인 상태에서는 없는 초시간적인 실체를, 약속을 지키고 그의 입에서 떨어진 말에 책임을 지는 윤리적인 노력을 통해서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약속의 말을 지키는 것은 인간이 그의 자연적인 상태의 필연적인 흐름을 초월한 불변의 실체를 이룩하고 그의 윤리적인 인격의 동일성을 지키는 것이 된다.”
이규호 선생의 저서 <<말의 힘>>에 설명된 ‘말의 힘’이다. ‘남자가 말을 한 번 내뱉었으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켜야한다’는 것은 그가 내 뱉은 말의 순수성, 정당성 혹은 윤리성이 담보되는 경우다. 어떤 불순한 목적이 전제되었을 경우 그 말은 불순할 수밖에 없으며, 불순한 말을 지키기 위해 고집을 부리는 것은 공동체의 재앙이다. 말이 진정한 힘을 지니려면 일종의 ‘초월적 윤리성’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것. 그게 바로 이규호 선생의 설명이다.
김 대표나 정 의장의 말이나 고집이 과연 순수하고 정당하며 선한 윤리의식으로부터 나왔다고 할 수 있는가. 그 두 사람에게 과연 불변의 실체를 담보하며 윤리적 인격의 동일성을 지키는 보루일 수 있는가. 지금 두 사람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관찰이 왜 이렇게 부정적이고 회의적인가. 차라리 애당초 내뱉은 말이 잘못 되었음을 깨닫는 즉시 잘못 되었음을 시인하는 게 정답이다. 명분 없이, 혹은 어떤 의도를 이루기 위해 자신의 첫말을 지키려 한다면, 필연코 둔사(遁思)와 꼼수를 쓸 수밖에 없다. 둔사와 꼼수를 반복하다간 필연코 퇴로 없는 덫을 만나, 꼼짝없이 걸려들게 되어 있다.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두 분은 이쯤 깨달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