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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1. 1. 1. 14:33


술 

                                                                                                                                                           조규익

어딜 가나 술이 있고, 술 때문에 문제도 생긴다. 성 추행범 등 파렴치범들을 붙잡아도 대개는 술 핑계를 대곤 한다. 난동을 부리고 나서도, 사람을 폭행하고도 술 핑계만 대면 된다고들 생각하는 현실이다. 그러니 애꿎은 술만 억울하게 생겼다.

***

가뭄에 콩 나듯, 술자리에 참석할 기회가 있다. 술이 들어가면 사람들 사이의 벽이 허물어져서 좋고, 오랜만에 ‘큰소리, 흰소리’를 겁 없이 내뱉을 수 있어서 좋다. 심한 주사(酒邪)만 아니라면, 술 몇 잔에 ‘곱게 취할’ 정도의 주량이라면, 술이란 인생의 윤활유가 아닐까. 세상의 아내들은 남편들이 술자리에서 실수할까봐 속을 태운다. 술 마시고 들어온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는 이유도 바로 그 점에 있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여자를 쳐다만 봐도 ‘성추행범’으로 몰리는 게 요즈음의 세태가 아닌가. 그러니 세상의 조신한 아내들이 늦은 시각에 남편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조바심을 내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세상의 아내들이여! 몇몇 ‘주태백’을 뺀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저 취한 척할 뿐이란 사실을 알아주오. 그들은 값싼 술 몇 잔의 힘을 빌어 대낮에 뱉어내지 못한 ‘흰 소리, 큰소리’를 치며, ‘낙양성 십리허에~’로 시작되는 <성주풀이>나 목청껏 부르며 마음속의 찌꺼기들을 배설하고 있는 거라오. 그들의 흰 소리를 무슨 실정법으로 다스릴 수가 있겠소? 아니, 다스릴 필요가 있겠소? 세상에 남자로 태어나 술 마시고 흰 소리 한 마디 내뱉지 못한다면, ××두 쪽을 싹뚝 잘라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

중국의 주호(酒豪) 유령(劉伶)은 천하의 명문 「주덕송(酒德頌)」을 남겼는데, 그 중의 한 부분을 운문으로 바꾸어 놓으면 다음과 같다.

 

여기 대인 선생이 있다네.

태초 이래의 시간을 하루로 보고,

만세의 긴 세월을 잠시라 생각한다네.

해와 달을 빛을 비추는 창문쯤으로 생각하고,

넓디넓은 천지를 집안의 뜨락이나

동네의 네거리쯤으로 생각한다네.

마음대로 활보하고, 좁은 곳을 싫어하니

그에게 집이 있을 수 없다네.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자리 삼아

마음 가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다네.

멈추면 작은 잔, 큰 잔 가리지 않고 술잔을 기울이네.

어디를 가도 술통과 술독을 끌어당겨 술 마시기를 힘쓰니,

그 나머지 일이야 어찌 알겠는가?

귀한 인사들과 귀족의 자제분들, 높은 벼슬아치와 처사들

서로 흥분하여 칼날을 세우듯 대인 선생을 나무라나

선생은 술단지와 술통의 술을 마시고

술에 젖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두 다리를 뻗고 누울 뿐,

누룩을 베개 삼고 술 찌게미를 자리삼아 누울 뿐이라네.

온갖 생각과 근심이 사라지고, 즐거움만이 도도하다네.

홀로 우뚝 취하고 황홀한 기분으로 술에서 깨어난다네.

고요히 귀를 기울여도 하늘을 찢는 우레 소리 들리지 않고,

아무리 눈을 떠도 태산의 형체 보이지도 않는다네.

살갗을 파고드는 한서(寒暑)의 고통도 없고

무엇을 즐기고픈 욕망도 사라진다네.

만물이 뒤섞여 있는 속세를 굽어보며

모든 것을 양자강에 떠 있는 부평(浮萍)처럼 생각하고

선생을 성토하는 무리들을 나나니벌이나 푸른 배추벌레쯤으로나 여긴다네.

 

얼마나 멋진 배포이냐? 술 마시며 패거리 짓고 죄 없는 이웃을 안주 삼아 씹어대는 요즘 세상의 좀팽이들과는 비교도 하지 말라!

우리에게도 주호(酒豪)는 있었다.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의 음주행각은 철학 차원의 정신적 바탕을 갖추고 있었으며, 김동명(金東鳴)의 <술노래>는 만세토록 이어갈 만한 절창이다.

 

샛말간 유리컵에

흥건히 고인 호박 빛 액체,

나는 무적함대의 사령장관인양 자못 호기로이

나의 적은 해양을 응시한다.

 

동구란 해안선에

넘치는 흰 거품,

아하, 인류 百億 해의

역사가 서렸구나.

 

안개인양 자욱이 피어오르는 향기 속에

시간은 갈매기 같이 날으고,

나의 좌석은

갑판보다도 더욱 흔들거린다.

 

어허, 이것 봐라, 하늘이 도는구나

물매아미 같이 뱅글뱅글 하늘이 도단 말이,

저 놀랍고도 새로운 천문학적 진실 위에

세대의 윤리는 성좌 같이 찬연하다.

 

여보게, 나는 이제

이 호박및 액체가 주는 마술을 빌어

나의 새끼손톱으로

요놈의 지구덩이를 튀겨버리려네.

 

유령이 말한 ‘대인선생’보다 훨씬 호탕하고 그럴싸한 주호(酒豪)를 김동명은 그려냈다. ‘호박 빛 액체’라면 대충 막걸리와 유사한 술이었을 텐데, 대체 몇 말을 마셔야 하늘이 돌고 지구덩이가 손톱만큼 작아진단 말인가.

***

가끔씩 막걸리 그득한 대접을 뚫어져라 응시해보기는 하지만, 새가슴처럼 작은 나의 배포로는 큰소리도 흰 소리도 못 치고, 기껏 기어들어가는 목청으로 ‘낙양성 십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에~’를 웅얼거리며 인생의 허무함이나 달래볼 따름이니, 세상의 아내들이여! 혹시 남편들이 술자리에서 실수나 하지 않을까, 부디 전전긍긍하지 마옵소서!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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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8. 6. 9. 21:16
 


 내 생애 쉰 두 번째의 단옷날이다.

분주하게 살다보면 깜빡하는 수도 있으나, 대개 하루해가 저물기 전에 단옷날임을 알게 되고, 내 젊음이 허무하게 지나가고 있음도 깨닫게 된다. 이 날만 오면 반드시 한 토막씩 행사소식이나 기사를 내 보내는 언론 매체들 덕분이다.

 어릴 적 이맘때쯤은 이른 보리 베기와 모내기가 대충 마무리되는 시점이다. 산에 들에 살진 고사리며 수리취 등이 지천으로 자라긴 하나 집집마다 쌀독들은 밑바닥을 드러내던 때이기도 했다. 이른바 보릿고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사람들 얼굴에 허옇게 버짐 피어오르는 춘궁기가 바로 이 때였다. 제사 때 메를 지어 올릴 요량으로 숨겨 두었던 몇 홉들이 쌀도 죽음 문턱의 허기에는 남아날 재간이 없었다. 밥 굶지 않을 정도의 집들에서는 거칠거칠한 수수로 수수팥떡을 만들어 아이들로 하여금 생일을 기억하게 하거나, 나처럼 단옷날에 태어난 친구들은 간간이 수리취떡을 얻어먹는 수도 있었다. 가뭄이 들어 모내기를 못하는 해에는 그나마도 생략하는 게 관례였다. 지금 4, 50대 이전 세대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다.

 50의 문턱을 넘고도 작은 언덕 둘을 넘었다. ‘무정함’이 아니라 ‘무서움’으로 탓할 만한 시간의 빠름이다. 이루는 것 없이 앞뒤로 몇 번 두리번거리다 보면, 뚝딱 한 해가 저 멀리 사라지곤 한다. 읽어야 할 책들은 안두(案頭)에 쌓이는데 눈은 침침해지고, 채워야 할 원고지의 칸들은 빈 바둑판처럼 정연한데 펜 잡은 손에 힘이 빠지고 있으며, 술잔으로 챙겨야 할 친구들은 늘어서 있는데 몸의 나약함은 술을 이기지 못한다. 이기지도 못할 술을 마셔놓곤 “어허 이것 봐라 하늘이 도는구나/뱅글뱅글 물매아미같이/하늘이 돈단 말이/저 놀랍고도 새로운 천문학적 진실 위에/세대의 윤리는 성좌같이 찬연하다”고 너스레를 떤 시인 김동명.   그 역시 술의 힘을 빌려 덧없는 세월의 시름을 달랜 것이나 아니겠는가.


***


 이번 생일엔 제자 아들의 돌잔치에 들렀다가 강화도 전등사를 찾았다. 묘한 대조였다. 터질 듯 말랑말랑한 아가의 볼은 무한한 미래를 잉태하고 있었다. 그러나 꺼칠한 내 볼은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약속할 수 있단 말인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버린 내 청춘을 조상(弔喪)하듯, 여름 장마 같은 궂은비에 흙탕물이 튀었다. 날아갈 듯 호젓한 전등사의 대웅전은 옛날 보던 그대로였다. 세월의 때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빛바랜 단청. 소박하고 솔직해서 좋았다. 그 대웅전은, 칠이 벗겨지기 시작하자마자 냅다 원색으로 덧칠해대는 우리네의 천박함과 달랐다. 이 절의 주지는 누굴까. 그는 어쩌면 그 속진(俗塵)의 굴레로부터 멀리 벗어난 존재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비 오는 날 오후여서였을까. 그 흔한 목탁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비에 젖어 몸을 떠는 까치들의 울부짖음만이 가끔 빗소리의 고즈넉함을 깨고 있었다.

 경내 안의 찻집을 찾았다. ‘참 좋은 인연’이라든가, 이름 한 번 그럴 듯 했다. 통나무를 어슷비슷 잘라내어 만든 다탁과 의자에는 선남선녀들이 마주앉아 속삭이고들 있었다. ‘솔바람차’를 시켰다. 그 이름은 누가 지었는지. 수면에 어렸다가 풀어지는 솔향기가 가슴을 적셨다.

 찻집의 인테리어를 뜯어보며 마음속으로 열심히 설계도를 그리는 아내. 새 집 지을 꿈에 부풀어 있으리라. 배산임수의 명당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토방 있는 다실(茶室)을 만들겠노라는 푸진 꿈을 솔향기 속에 갈무리하고 있었으리라. 모처럼 우리는 호사스런 백일몽을 즐길 수 있었다.


***


 50대의 생일은 어떠해야 할까. 선배들은 50대의 생일을 어떻게들 보냈을까. 이 물음들의 해답을 찾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은 우리네 삶의 무게가 갈수록 더해지기 때문이다. 내가 짐 지고 걸어온 길. 자식들에겐 더 큰 짐을 지워주고 싶은 욕망. 아니 그들에게 그런 욕망을 강요하는 우리네 삶. 내 몸에 얽힌 삶의 사슬이 무자비하고, 그들의 어깨 위에 걸린 삶의 무게가 안쓰럽다. ‘훌훌 털고 가볍게 살다 가자!’고 무소유의 삶을 주창한 어느 노 선사를 아는가. 지금 과연 그는 가벼움을 즐기고 있을까. 무거운 짐들을 잔뜩 지고 길 가득 걸어가는 중생들의 땀 흘리는 얼굴을 보며, 과연 그는 홀가분함을 즐기고 있을까.


 갈수록 두 어깨의 짐은 무게를 더하고, 길의 끝 부분 저 먼 곳이 자꾸만 궁금해지는, 내 삶의 기울어버린 한낮이다. (2008. 6. 6.)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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