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롭지 못한 교육부
백규
학교폭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남의 일만도 아니다. 나 자신이 가해자일 수도, 피해자일 수도 있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그간 정권들 마다 ‘사회정화’나 ‘폭력배 근절’을 내세우며 소란을 피워왔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가 폭력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학교폭력’이란 근원을 애써 외면해왔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동안 학교는 사회폭력의 온상 역할을 충실히 해온 것이다.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고, 학생이 자라 선생이 되며, 바늘도둑이 자라 소도둑 되는 법이다. 어른이 되고 나서 비로소 폭력을 배우고 조직폭력배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간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한 학교야말로 모든 폭력의 종묘장(種苗場)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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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보도에 의하면, 최근 교육부는 학교폭력의 실태를 파악했다고 한다. 폭력조직인 ‘일진’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 학교가 전국적으로 643개교이고, 그 중 한 학교는 학생 전원이 자신들의 학교에서 일진이 활약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한다. 작은 시골학교들만 빼놓고 전국 대부분의 학교들에 폭력배가 있으며, 그 숫자도 20만~40만에 이른다고 했다. 그런데 교육부는 힘들여 조사한 결과를 왜 발표하지 않는 걸까. 알려진 바에 의하면, 부작용이 우려되어 그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작용이란 무엇일까. ‘학교폭력이 심한 학교를 공개할 경우 그 학교에 사회적 비난이 집중되고, 가해·피해 학생들이 알려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는데, 아마 교육부가 말한 부작용이란 이 점을 말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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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한 여름 시원한 느티나무 아래서 갓 쓰고 타령하는 교육부의 모습’이 진정 가관이다. 얼핏 대단한 교육적 소신이나 철학인 듯 하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사경을 헤매는 암환자가 있다 하자. 환자를 살리려면 수술을 해야 한다. 암 덩어리를 도려내자면 아픔과 괴로움이 필수적으로 따른다. 그러나 환자나 의사는 그걸 감수해야 한다. 당장의 아픔이 무섭고 싫어서 수술을 하지 않는다면, ‘지금 이대로 그냥 죽겠다’는 말 아닌가. 물론 교육부에서는 항변할 것이다. 드러내지 않고 자신들의 신중한 방법으로 개선해 보겠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껏 폭력배들이 학교교육을 망쳐 온 긴긴 세월, 실태파악조차 못한 교육부의 ‘직무유기’를 감안할 때 그 말을 믿을 수도 없으려니와, 교육을 두고 그간 반복해온 헛발질이 이번 일이라고 달라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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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된 말로 학교 폭력을 일소하는 데 ‘용빼는 재주’ 없다. 잠시는 아프고 괴로워도 공론의 장에 터놓고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국민들은 폭력배가 많은 학교에 당분간 자녀들을 보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폭력학교로 낙인찍힌 학교들은 당분간 텅 비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기회에 속속들이 폭력의 뿌리를 뽑고 다시 태어난다면 오히려 학교는 더 좋아질 것이고, 국민들도 암 수술 후 완치된 환자를 대하듯 그런 학교에 더 큰 애정을 부어줄 것이다. 혹시 폭력배들이 많다고 조사된 학교의 학교장들이 교육부에 공개하지 말라는 압력을 넣을 수도 있으리라. 그렇더라도 교육부와 장관은 소신을 갖고 이번 기회에 학교폭력을 소탕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나마 그동안 추락을 거듭해온 교육부의 위상 회복을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교육부의 차후 행보를 예의주시하고자 한다.<2012. 3.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