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4. 1. 8. 17:26

 

 

 

 


영화 <아파치 요새>의 포스터

 

 


영화 <론 레인저>의 포스터

 

 

 
<아파치 요새>에서 좌측이 헨리 폰다(Henry Fonda), 우측이 죤 웨인(John Wayne)

 

 


<아파치 요새>의 한 장면

 

 

 
영화<론 레인저>의 한 장면. 왼쪽이 쟈니 뎁(Johnny Depp), 오른쪽이 아미 해머(Armie Hammer)

 

 


<론 레인저>의 한 장면

 

 

 

 

 

서부지역 인디언들과 대평원[The Great Plains]

 

 

 

 

하이틴 시절부터 이 나이까지 영화를 그리 많이 접하지는 못했지만, 그나마 그 가운데 기억나는 것들은 헐리웃에서 만들어진 서부영화들이다. 이름을 다 기억할 수 없는, 비슷비슷한 내용들이었으나, 관통하는 서사구조는 단 하나 선악의 대결이었고 주제는 미국 판 권선징악이었다. 선을 대표하는 백인들은 늘 당당하고 정의로우며 멋있었던 반면, 악을 대표하던 인디언들은 늘 무지(無知)무명(無明)무뢰(無賴)의 저급한 무리들이었다. 미국 인디언들에 대한 세계인의 편견과 무지는 이처럼 대부분 서부영화들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넓고 아름다운 땅에서 평화롭게 살던 그들을, 어느 날 웬놈들이 밖에서 뛰어 들어와 채찍을 휘두르며 한 구석으로 몰아넣고, 그들의 땅을 차지해 버린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천추만대 원한에 사무칠 일인데, 전 세계의 코흘리개들도 다 보는 영화에 가해자인 백인들은 정의의 사도로, 피해자인 자신들은 몹쓸 불한당(不汗黨)으로 그려냈으니, 그 통탄스러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내 기억으로는 20055월에서야 미국의 상원은 인디언 6천만 학살에 대한 사과를 추진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의 죄가 어찌 사람 죽인 일뿐일까. 당시로서는 몹쓸 땅에 그들을 짐승처럼 몰아넣은 점까지 계산하면, 그 죄가 하늘에 닿고도 남을 백인들이었다. 나찌 독일이 죽인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왜인들이 전쟁터로 광산으로 징발하거나 허물을 뒤집어 씌워 죽인 우리 민족의 숫자도 엄청나지만, 당시 총인구 5천만~1억을 헤아리던 인디언들 가운데 살해된 비율이 80~90%라니, 아무리 컴퓨터가 발달했다 한들 미국 백인들의 끔찍한 죄악을 어떻게 계산해낼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그런 사건으로부터 무려 2백년이나 지나서야 이제 사과나 해볼까?’하고 궁시렁 거리며 나섰고, 그로부터 5년의 세월이 더 흐른 2010년에 이르러서야 공식적으로 사과하기에 이르렀으니, 만시지탄(晩時之歎)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워싱턴 D.C. 의회 묘지에서, 체로키촉토무스코기포니시스턴와페톤오야테 등 5개 부족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캔자스 출신의 공화당 상원 샘 브라운백 의원이 사과결의문을 낭독함으로써 의회 차원의 공식적인 사과를 했다. 그 전 해 11월에도 오바마 대통령은 564개 부족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인디언들에 대한 그동안의 횡포와 잘못된 정책에 대하여 사과하고 그들로 하여금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과거에도 정부로부터 무수한 약속을 받았으나 그 약속이 한 번도 지켜진 적이 없음을 잘 알고 있는 인디언들로서는 이번에도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미국 정부가 인디언들에게 진작 공식적으로 사과를 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게 아니고, 사과를 늦게 한 데 대하여 문제 삼으려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억울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인디언들을 눈곱만큼이라도 배려했다면, 각종 매체에 등장하는 그들의 이미지라도 진실에 가깝게 만들거나 긍정적으로 묘사했어야 하건만, 서부영화 같은 매체들에서 보듯이 그들의 모습은 스테레오 타입이라 할 정도로 왜곡되어 온 게 사실이다. 그 점이 제삼자인 내가 보기에도 지나치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미국에는 현재 나바호(Navajo), 체로키, (Sioux) 등 규모가 큰 종족들을 포함, 564개 종족에 3백만 이상의 인디언들이 살고 있다. 그 가운데 비교적 소수부족으로서 서부영화들에 단골로 등장한 종족이 아파치(Apache)와 코만치(Comanche).

 

대부분의 독자 여러분은 <아파치 요새(Fort Apache)>라는 영화를 보신 적이 있을 것이다. 1948년 죤 포드(John Ford) 감독이 만들었고, 죤 웨인(John Wayne) 및 헨리 폰다(Henry Fonda) 등 명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인데, 인디언에 대하여 비교적 따스한 관점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서부영화들과 구별된다고 한다. 감독은 주인공인 요크 중령[죤 웨인]을 통해 아메리카 인디언 특히 아파치 족에 대한 인간적 관점을 드러내는 데 중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종래 사납고 공격적이며 대화가 통하지 않는아파치를 동정적포용적 관점에서 바라 본 사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래 전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인디언을 바라보는 시선이 비교적 긍정적인데,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 영화를 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또 하나. 미국으로 떠나오기 직전인 작년 7월 하순 경, 한국에서는 론 레인저(The Lone Ranger)’란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쟈니 뎁(Johnny Depp)이 열연한 주인공 톤토(Tonto)는 바로 코만치 인디언이었고, 영화의 배경은 캘리포니아유타콜로라도 애리조나뉴멕시코 등이었는데, 이 가운데 콜로라도와 뉴멕시코는 그레이트 플레인즈에 포함되는 공간이었다. 악령을 몰아내는 능력을 지닌 톤토는 죽기 직전의 외로운 레인저존 레이드(John Reid)를 살려냄으로써 결국 그들은 환상의 콤비를 이루게 된다. 거칠 것 없는 드넓은 황야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현란한 액션들은 코만치 인디언인 톤토와 백인 레인저 존 사이에 교감되는 우정의 깊이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백인들과 인디언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코만치 추장 빅베어(Big Bear)의 말[‘우리 시대는 사라졌네. 백인들은 그걸 발전이라 부르는 모양이네만.’]이 추가되면서 그간 스테레오 타입으로 고착된 백인과 인디언의 이미지 혹은 양자관계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는 반성이나 의식 또한 새롭게 제기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으리라.

 

***

 

인디언을 찾아다니기 몇 달 만에 대평원의 주인공 아파치와 코만치, 그리고 카이오와를 만나게 되었다. 이들이 바로 대평원의 주인들이었다. 오클라호마 동북쪽에 '대초원[Tall Grass Prairie]'이 있다면, 서남쪽에는 '대평원[The Great Plains]'이 있다. 그렇다면 대평원은 어떤 공간인가. 알버타(Alberta), 새스캐치원(Saskatchewan), 매니토바(Manitoba) 등 캐나다 남부를 포함, 몬태나(Montana)노쓰 다코타(North Dakota)사우쓰 다코타(South Dakota)와이오밍(Wyoming)네브라스카(Nebraska)콜로라도(Colorado)캔자스(Kansas)뉴멕시코(New Mexico)오클라호마(Oklahoma)텍사스(Texas) , 로키산맥(Rocky Mountains)과 미시시피강(Mississippi) 사이의 미국 땅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남북 간 길이는 3,200 km, 동서의 폭은 800 km, 면적은 1,300,000 이니, 남한 면적[99,538 ]13배에 달하는 거대한 공간이다. 오클라호마의 경우 대평원은 주 전체 면적의 60%나 차지할 만큼 거대하다. 그 안에 카이오와, 아파치, 코만치 등의 집단 거주지가 있었다. <다음에 계속>

 

 


워싱턴 D.C.의 미 의회 묘지 

 


캐나다에서 미국 남부까지 걸치는 대평원(The Great Plains)

 

 


대평원의 한 부분

 

 


대평원 한 가운데를 달리는 하이웨이

 

 


대평원의 바이슨 무리

 

 


대평원의 한 부분

 

 


카이오와, 아파치, 코만치의 집단 거주지를 찾아.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3. 11. 20. 14:53

 

 

우린 언제쯤이나 존경할만한 대통령을 가질 수 있을까?

 

 

 

 

미국에서 알래스카 주 다음으로 크고 캘리포니아 주 다음으로 인구가 많으며, 내 느낌으론 미국 내에서 최고로 부유한 텍사스 주[State of Texas]의 달라스(Dallas)시에 와 있다. 1836년 멕시코로부터 텍사스 공화국으로 독립했다가 18451229, 미국의 28번째 주로 흡수된 텍사스 주. 이른바 '바이블벨트'로 불리는 이곳과 오클라호마 등 중남부의 여러 주는 전통적으로 높은 공화당 지지율을 보여주는 등 보수적 성향이 강하다. 미국 입성 이래 서서히 쌓여온 피로에도 불구하고 달라스 행을 무리하게 시도한 것은 아무리 바쁘고 귀찮아도 오클라호마 주와 인접한 텍사스를 생략하고 떠날 순 없다는, 일종의 의무감이나 초조감 때문이라 할까?

 

16일 오후에 도착하여 하루를 묵고 난 17일 오전. 도착 당일부터 오클라호마와는 현저하게 다른 교통체계와 북적대는 인파에 지친 우리는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오클라호마의 스틸워터로 당장 돌아가고픈 마음이 절실했지만, 그 욕망을 잠시 억누른 채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만나기로 했다.

 

한 사람은 매사추세츠 주 출신의 35대 존 F.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 1917529~ 19631122] 대통령, 다른 한 사람은 텍사스 출신의 43대 조지 W. 부시[George Walker Bush, 194676~ ] 대통령이다. 케네디는 가톨릭 집안 출신의 민주당적 대통령, 부시는 개신교 집안 출신의 공화당적 대통령이었다.

 


시민이 그려 박물관 계단에 붙여놓은 케네디 대통령의 초상화 

 

하버드대 정치학과 출신인 케네디는 44세에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46세에 암살되었고, 예일대 역사학과 출신인 부시는 200155세에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첫 임기를 마치고 2005년에 재선된 뒤 200963세까지 임기를 마친 행복한 인물이다. 정치경력으로는 케네디가 매사추세츠 주 상원의원을 지냈고, 부시가 텍사스 주지사를 두 번째 역임하고 있었으니, 이만 하면 똑같이 대권을 거머쥔 두 대통령이지만 상당히 다른 인생역정을 걸어왔음을 알 수 있다.

 


취임연설을 하는 부시 대통령 

 

두 대통령의 가문이나 경력, 정치적 성향, 정책의 성패, 개인적 성격 등 자세한 사항들은 이미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져 있으므로, 이 글에서 번거롭게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묘하게도 우리는 케네디 대통령 암살 50주년에 이곳을 찾게 되었다. 그 점을 깨달은 우리는 달라스라는 같은 공간에 자취를 남긴 두 대통령을 찾아보고자 했다. 존경하는 대통령을 한 사람도 갖지 못했다고 자탄하는 우리 입장에서 이 좋은 기회에 대통령을 자랑스러워하고 존경하는 미국인들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먼저 방문한 곳이 이른바 ‘6층 박물관[The Sixth Floor Museum at Dealey Plaza]’. 케네디 대통령 암살범 리 하비 오스왈드가 창틀에 앉아 총을 쐈다는 교과서 보관창고 6층에 마련된 박물관인데, 사실은 일종의 사건 전말 영상 기록관인 셈이었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범이 이용한 교과서 보관건물로, 현재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음


현재 박물관으로 쓰이는 교과서 보관건물[오렌지색 건물] 6층 창문틀에서 오스왈드는
카퍼레이드를 벌이며 이 사진 속의 아스팔트 위를 지나던 케네디 대통령을 저격했다. 

 

19631122일 링컨 컨티넨탈을 타고 달라스 시내에서 카퍼레이드를 벌이던 케네디 대통령은 딜리 플라자(Dealey Plaza) 인근의  교과서 보관창고 6층에서 오스왈드가 쏜 3발의 총탄 가운데 두 번째 총탄을 머리에 맞고 숨졌다. 이 사건의 전말이나 상세한 재판 과정, 저격범 오스왈드를 둘러싼 의혹 등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이 사건에 크나큰 의문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인데, 그래서 그런지 사건의 발발에서 종말까지의 전 과정을 40여 장면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 것이 박물관의 핵심 컨셉이었다. 박물관을 한 바퀴 돌고나자 암살사건의 전모와 함께 왜 미국인들이 케네디 대통령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지를 석연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외견상 허름하지만, 이 박물관은 매우 치밀하고 효율적으로 기획되어 있었다.        

                                                                      


                                  케네디 대통령 박물관 위치 및 사이트                                                            

                   
                                                              케네디 대통령 박물관 입구
                                                                                     


달라스를 방문한 케네디 대통령을 열렬히 환영하는 시민들

 
                    어떤 시민이 그린 케네디 대통령

 
어느 초등학생이 표현한 케네디 대통령에 대한 애정

  

그 다음 방문한 곳이 조지 W. 부시 대통령 도서관과 박물관[George W. Bush Presidential Library and Museum]. 남부 감리교 대학교[Southern Methodist University]) 캠퍼스 안의 부시 대통령 센터 안에 세워져 있었다. 아버지 부시와 어머니 바버라 여사 및 부인 로라 여사 등을 비롯한 화목한 가족들, 학창시절과 군복무 시절의 각종 자료, 대통령 시절에 이룩한 대내외 업적들, 백악관 생활자료 등등. 엄청난 규모의 자료들이 생생한 사진들과 함께 기념관을 그득 메우고 있었다. 대충 둘러보아도 대통령 스스로의 자부심이 묻어날 뿐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 더 나아가 세계인을 위해 미국 대통령이 걸어 온 영예의 흔적들이 역력했다. 정말로 이국인인 내가 보기에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감동의 현장이었다.

 

그러나 내가 주목하고자 한 것은 대통령의 암살에 대한 전말이나 의혹, 기념관에 전시된 업적들의 화려함이 아니었다미국인들은 과연 대통령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가가 궁금했던 것이다. 걱정했던 대로 관람객이 많이 몰려 우리가 케네디 박물관에 입장하는 데만 2시간이 넘게 걸렸고, 넓게 만들어진 부시대통령 박물관에서도 사람들의 어깨가 걸려 편안한 관람에 지장을 느낄 정도였다. 그 뿐 아니라 대부분 미국인들인 관람객들은 하나같이 진지하고 긍지에 찬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이 점들 만으로도 대통령에 대한 관심과 존경의 증거로는 충분했다.

 

케네디 박물관에서 만난 그들은 대부분 슬프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이어폰에서 울려나오는 설명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나는 40대의 젊은 대통령이 단 2년 동안 이룩한 업적에 놀랐고, 그가 바로 이곳에서 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점이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물론 숱한 여인들과의 염문설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고, 쿠바 미사일 위기나 흑인 민권법 등에 관한 대처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른 진실이 밝혀지고 있긴 하지만, 그런 것들이 아직은 비운의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존경심을 크게 손상시키지는 않고 있는 듯 했다. 대통령이 피격된 지점의 길바닥에는 지금도 x 표시가 선명하게 그어져 있었다. 내 눈에는 그것이 십자가[cross]로 보였는데, 어쩌면 미국은 폭력으로 점철된 그들의 죄를 용서받고,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하면서 케네디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나 아닐까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해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그런 복잡한 생각 없이 이곳에  x 표시를  해 놓았으리라. 차라리 그어놓지나 말든지 이왕 표시하려거든 말뚝을 박아 새끼줄이라도 쳐놓든지. 공사장 인부들이 아스팔트에 굴착지점 표시하듯이 백묵으로 찍찍 엇갈려 그어놓은 모습이란! 그러나 그것이 미국인들의 장점이기도 했다.

 


케네디 대통령이 피격당한 지점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 재키 여사


케네디 대통령 추모비


추모비 안쪽의 상석

 부시 대통령 박물관에서는 역사 진행의 합리성에 맞추어 가고자 한 그의 노력들을 읽어냈고, 대통령의 소탈하고 인간적인 면모들로부터는 잔잔한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부시 대통령 박물관에서 만난 미국인들은 대부분 자긍심과 존경심으로부터 번져 나오는 흐뭇한 미소들을 띠고 있었고, 나 역시 그랬다. 물론 이라크 전쟁을 두고 부시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정책의 실수 혹은 판단착오는 그것대로 계산하면서도 대통령으로서의 전체적인 공적이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하여 존경을 표하는 일은 민주국민의 성숙한 자세일 수 있을 것이다. 

 


1994년 9월 12일 달라스의 Texas State Fair에서 아버지 부시와 함께.
부자 간의 다정한 모습과 미소가 국보급이지요?


세계적인 테러와 투쟁해온 부시 대통령


초등학교 교실에서 1일교사로 참여한 부시 대통령


어린이들의 건강 캠페인에 참여한 로라여사 모녀


2005년 11월 한국을 방문한 로라 여사가 어린이들과 함께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서 자연보호 활동을 펼치는 부시 대통령


연례 100km 산악자전거 대회에서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전에서 오른쪽 발을 잃은
다니엘[Daniel Gade]소령을 부축하고 있다.


 자궁경부암과 유방암 치료를 위한 부시 연구소 사업의 일환으로
2012년 잠비아 Kabwe의 Ngungu Health Center 리노베이션 작업에 나선 부시 전 대통령.
왜 우리 대통령들에겐 이런 모습이 없는 걸까요?


2000년 12월 대통령 당선자 부시의 인사말 "나는 한 당파에 봉사하기 위해 대통령으로
뽑힌 게 아니고, 한 국가에 봉사하기 위해 뽑힌 것이다. 미합중국의 대통령은 모든 미국인들의, 
모든 인종들의, 그리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대통령이다. 당신이 내게 표를 주었든
그렇지 않았든, 나는 당신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 봉사할 것이며, 당신의 인정을 받기 위해
일할 것이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요?


조지 W. 부시 대통령 도서관과 박물관 앞면

 

그렇다면 그들을 보며 나는 왜 슬픔을 느껴야 했는가. 같은 자신들의 대통령이면서 서로 다른 길을 간 두 사람에게 똑같은 존경을 보내는 미국인들을 보며 나는 왜 슬픔을 느껴야 했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내겐 그들처럼 존경할만한 우리 대통령이 없기 때문이다. 일국의 대통령직을 맡아 수천만 생령(生靈)들의 기대와 소망(素望)을 한 몸에 받은 입장이라면, 더구나 자연수명으로도 이제 살만큼 산 입장이라면, 무슨 세속적 욕망을 다시 추구하고 싶단 말인가. 아주 낮은 자세로 봉사활동에라도 나서서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받은 벅찬 사랑을 아주 겸허한 자세로 한 톨 한 톨 갚아나가는 것이 올바른 자세이었으련만, 하나같이 가당찮은 물욕과 권력욕에 찌들어 재직 중엔 신성한 대통령직을 더럽히고 물러나서도 오욕(汚辱)의 구렁텅이에서 지금껏 헤매고 있단 말인가. 국민들에겐 실망을 안겨주고 역사에는 더러운 자취를 남기는 그들을 어떻게 존경스런 대통령으로 대접할 수 있단 말인가.

 

케네디 박물관의 매점에서 나는 한 권의 책을 샀다. 앤 보섬(Ann Bausum)<<Our Country’s Presidents>>란 책이었고, 이 책에는 조지 워싱턴부터 지금의 오바마 대통령까지 자랑스러운 얼굴들이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었다. 과연 우리는 언제쯤이나 되어야 우리나라의 대통령들이란 자긍심 넘치는 책을 쓸 수 있게 될 것인가.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