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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21 추석 유감
  2. 2007.04.16 내 고향 태안에서 만난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글 - 칼럼/단상2010. 9. 21. 12:12

추석유감

 

비가 내린다.

여름내 내리더니 추석 전날에도 내리고 있다.

쨍하는 가을볕에 뽀송뽀송 말린 마음으로 맞이하는 추석이라야 제격인데...

축축하게 젖어 썩은 내 풍기는 마음이 마를 겨를도 없이 다시 물에 퉁퉁 붇는다.

고요한 캠퍼스. 모처럼 즐기는 고적(孤寂)이라기엔 청승맞은 모습이라고들 수군 댈 것이다.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소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들이 쏟아지는 빗줄기들을 몹시도 성가셔 한다. 추석 전 날, 고향 찾은 우리네 이웃들의 설레는 마음과 달리 만상(萬象)은 차분하고 무겁다.

 

추석만큼 풍성하고 평화로운 명절이 있을까. 올 사람 없어도 기다려지고, 마땅히 갈 곳 없어도 두 발 동동거려지던 것이 추석을 맞던 내 유⋅소년기 추석의 서정이었다. 시골 집 앞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얼굴엔 수심 대신 웃음이 번지고, 기름기 자르르 흐르는 햅쌀밥을 함께 하고 마주 앉을 가족들 생각에 등짐 진 어깨에 힘이 솟곤 하던 시절이었다. 서울로 인천으로 돈 벌러 나갔던 동네 처녀애들이 쪽 빼 입은 채 동구 밖으로 모습을 나타내면, 괜스레 가슴이 울렁거리기도 했다.

 

고향을 떠나며, 젊음도 울렁거리던 명절의 추억도 깡그리 잃고 말았다. 아니, 젊음이 흘러가니 고향을 떠나야 했고, 고향을 떠나니 명절도 사라졌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다만 빈 쌀독 밑바닥에 굴러다니는 몇 낱의 쌀알마냥 가끔씩 들여다보며 탄식하는 추억만 남아 있을 뿐이다. 버려두고 떠나온 고향집 뒤란의 감들은 올해도 익고 있겠지만, 그 감나무를 타고 앉은 무심한 까치들은 ‘오늘도 이 집 자식들이 찾아오려나?’하며 우짖어대겠지만. 그 까치소리마저 이젠 매년 이맘때쯤 한 번씩 나를 불러일으켜주는 ‘마음속의 따르릉 시계’로나 남아 있을 뿐이다.

 

다산 정약용은 송파마을에서 추석날 풍속을 보고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추석에 시골 마을의 풍속을 기록하다(秋夕鄕村紀俗)>

 

맑은 날씨의 시골 마을 떠들썩 즐겁구나(晴日鄕村樂意譁)

가을 동산의 풍미는 자랑할 만도 하네그려(秋園風味向堪誇)

들 집 지붕 위엔 넝쿨 말라 박통이 드러났고(枯藤野屋瓜身露)

산언덕엔 병든 잎 사이로 밤송이 짝 벌어졌군(病葉山坡栗腹呀)

 

 

지붕 위의 박을 굴려 내려 톱질 할 일도, 후두둑 밤을 털 일도 없는 중년의 추석.

그렇게 명절맞이 하러 모두들 떠나 쓸쓸해진 도심의 한 구석에서

쓰디쓴 커피 마시듯 삶의 또 한 도막을 ‘아작 내고 있는’ 한심한 영혼이다.

 

2010. 9. 21. 백규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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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7. 4. 16. 15:03


고향에서 만난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조규익

내 고향 태안엔 샛별처럼 반짝이는 제자 난주시인이 살고 있다. 경남 산청 출신. 당차면서도 맑은 영혼의 여인이다. 경남대학의 전임으로 막 부임한 나는 스물여덟. 갓 스무 살 난 그녀는 학교의 문학 서클에서 시인에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일상에 매몰되어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던 나는 떠난다는 말도 없이 두 해만에 서울로 오게 되었다. 그 후 우연히 그녀가 내 고향으로 시집 와 산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로부터 나는 부끄럽게도 잊고 있던, 아니 잃어버린 지 오래였던 고향을 다시 찾게 되었다. 척박한 내 고향에 문화의 불씨를 지피고 있는 그녀를 보며 스스로 부끄러워졌기 때문이다. 독서회, 시 낭송회, 논술·토론회 등, 문화의 모종삽을 들고 분주한 그녀. 그녀의 모습이 생소하면서도 신선했다.

         ***

유럽 여행기 <<아, 유럽!-그 세월 속의 빛과 그림자를 찾아>>를 펴내자마자 그녀로부터 연락이 왔다. 독서 모임 회원들을 위해 ‘저자와의 만남’ 시간을 갖겠다는 것. 그래서 태안도서관을 찾았다. 아, 그런데 그곳엔 올망졸망한 ‘초딩’들과 그 지역의 어른들이 뒤섞여 강의실을 채우고 있었다. 그러니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으랴? 그저 책에 목마르던 내 어린 시절의 이야기, 지금도 여전히 허기에 시달리며 무언가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내 삶의 이야기나 들려줄 수밖에 없었다.
여행과 독서! 그러고 보면 참으로 절묘한 일치였다. 무언가를 알기 위해, 찾기 위해 우리는 책을 읽는다.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찾거나 알기 위해 우리는 여행을 한다. 말하자면 우리가 찾아다니는 세상이나 우리가 읽는 책이나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유럽을 비롯 그간 내가 밟았던 곳들은 모두 내 공부를 위한 텍스트였던 셈이다. 태안의 사임당 독서회를 위해 난주시인이 내게 부탁한 것은 여행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야기 내내 ‘책 읽기’와 ‘여행하기’라는 두 영역을 왕래하게 되었다.
         ***

청중석에 앉아있는 어른들은 참으로 훌륭했다. 이런 시대에 책을 가까이 하는 어머니 아버지들이 있을 수 있다니! 모여 앉으면 부동산 이야기, 남 헐뜯기로 세월을 보낼 법 한데도 그 분들은 열심히 책을 읽고 정기적으로 만나 토론을 한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 책을 읽으라!’ 경을 읽을 필요가 어디 있을까. 아이들은 그런 부모를 보며 스스로 책을 읽고 사색에 빠질 것이다. 단 한 시간이라도 어머니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이들도 옷깃을 여미고 책상 앞에 달라붙는 것을. 어른들 자신들은 ‘먹자 마시자’로 일관하며 입으로만 경을 읽는다. 비극이다. 그런 점에서 내 고향 태안의 미래는 밝았다. 그곳은 내 고향 태안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 함께 모인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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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주꾸미 샤브샤브로 태안의 풍미를 듬뿍 맛본 식당 앞에서





         ***

차를 타고 떠나든, 책 속으로 떠나든 여행은 즐겁고 가슴 설레는 일이다.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문화를 만나게 되고, 나와 다른 그것들을 통해서 나의 자아를 깨닫는다는 점에서 여행만큼 위대한 선생님도 없다. 역사상 위대한 사상가, 문학가, 예술가, 정치가 등은 모두 여행에 나선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여행을 통해 자아를 깨닫고 거듭 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서 ‘자식을 성공시키려면 일찍부터 여행을 시키라’고 강조했다. 다만, 여행을 떠나기 전 준비를 철저히 하고, 뚜렷한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것만은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

태안. 아름다운 봄꽃들이 만개한 그곳엔 은총처럼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몽대 포구의 바닷바람도 이리저리 봄 내음을 흩어내고 있었다. 김영곤 시인의 시낭송과 조은숙 회장의 가곡 한 자락은 방파제를 넘어 햇살 반짝이는 물결 위로 파문처럼 번져갔다. 난주 시인의 해맑은 웃음이 그 사이를 수놓은 봄날 오후의 한 순간. 살아있는 내 고향의 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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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대포구의 따스한 봄바람을 맞으며

                                                                       2007. 4. 14.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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