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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8.07 고전문학과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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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사계 제42호(2021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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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조규익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야기 속의 삶과 바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작은 땅. 우리 민족은 한시도 바다와 떨어져 살 수 없었다. 아무리 내륙으로 숨어도 바다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특히 먼 바다로 나간다는 것은 세상을 벗어나 알 수 없는 이계異界로 나아감을 의미했다. 바다는 물고기와 해초, 소금을 구하는 현실의 공간이자 알 수 없는 환상공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는 인물들은 늘 바다 밖으로 나가는 꿈을 꾸었다. 비좁은 땅의 공간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다 밖을 몽상하는 일이었다.

 

신라 진평왕 9년 7월 바다 밖으로 떠나간 대세大世와 구칠仇柒은 그 시기에 이미 바다 밖의 세계를 꿈꾼 인물들이었다. 대세는 친구 구칠에게 “이 좁은 신라의 산골 속에 파묻혀 일생을 마친다는 것은 못물 속의 고기가 바다 큰 줄을 모르고 조롱 속의 새가 산림 넓은 줄을 모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나는 장차 떼를 타고 바다에 두둥실 떠 오나라·월나라로 가서 스승을 찾아 따르려 하네. 명산에서 도를 구하여 만약 속태를 바꾸고 신선을 배운다면 바람도 잡아타고 훨훨 허공 위로 날 것이니 이야말로 천하에 신기한 놀음이요 장관 아니겠나?”[《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 제4 진평왕조]라고 설득하여 둘은 드디어 바다로 떠났고, 결국 역사의 기록으로도 남게 되었다.

 

성격이 약간 다른 기록들 둘만 더 들어보자. 첫째는 강원도 고성 땅의 유동지가 동네 사람들과 동해로 미역 따러 나갔다가 풍랑에 떠밀려 고성으로부터 31만 리 밖 단구丹邱라는 절 도絶島에 표착한 사건이다. 그 섬에서 그들은 마찬가지로 고성 땅으로부터 표류해와 정착한 노인의 보호를 받고 50여일을 지냈다. 그 섬에서의 하루는 인간세계의 일 년에 해당하므로 표착 시점부터 50년이나 지났으니, 섬에서 그냥 머물러 지내는 게 좋을 거라고 노인은 말했다. 그 말을 거부하고 돌아와 보니 부모와 처자는 모두 죽고 손자마저 이미 늙어 있었다. 화식火食을 재개하면서 함께 돌아온 두 사람은 죽고 유랑은 단구에서 훔쳐 온 경액 덕분에 200살을 살았다는 것이다.[〈식단구유랑표해識丹邱劉郞漂海〉, 《청구야담》(권19), 학고방, 2017].

 

또 하나는 청주 상인이 제주도에서 만난, 다리 없는 노인으로부터 들은 경험담으로 젊은 날의 노인은 바다에서 표류하던 중 한 섬에 도착했다. 극심한 배고픔과 갈증에 한 집으로 들어갔다가 엄청난 체구에 검은 얼굴, 움푹 파인 둥그런 눈, 나귀 같은 음성의 식인거인食人巨人에게 일행 중 총각 한 명이 잡아먹힌 뒤 천신만고 끝에 탈출했고, 배가 파선되면서 혼자만 살아남았으나 몹쓸 고기에 두 다리를 잃었다는 이야기였다.[〈대인도상객도잔명大人島商客逃殘命〉, 임명덕 《한국한문소설전집》(권 8),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

 

〈대세와 구칠의 이야기〉는 큰 꿈을 갖고 있던 두 사람이 바다를 뛰어넘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데 성공했음을 암시했으니, 그 때의 바다는 도전을 통해 극복할만한 가치가 있는 장애물로서의 공간이었고, 〈식단구유랑표해〉의 바다는 선계를 설정하여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시킨 환상적 공간이었으며, 〈대인도상객도잔명〉의 바다는 제주도 남쪽 먼 곳 어떤 섬에서 식인종을 만나 고난을 당한 이야기로서 험난한 고통의 현실적 공간일 수 있다.

 

이것들이 상당부분 흥미로운 허구를 뼈대로 삼아 만들어졌다 할지라도, 삶의 한복판에서 경험한 바다가 없었다면 결코 생겨날 수 없었을 이야기들이다. 인간 현실의 복잡한 삶을 표본으로 삼아 만들어지는 것이 서사문학인데, 바다 이야기들 대부분은 삶과 바다가 하나로 결합된 서사가 그 주축을 이룬다. 그런 점에서 우리 문학에 나타나는 바다는 경험과 환상, 사실과 허구가 절묘하게 결합된 이중적 의미의 공간이고, 바다의 이런 성격은 동시대나 후대 서사문학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반복되어왔다.

 

 

노래문학 속의 삶과 바다

 

원래 말로 만들어져 존속되던 이야기나 노래들을 문서로 기록한 것들이 우리 고전문학이다. 이야기나 노래에 쓰인 말들 대부분 일상의 구어口語였으므로, 고전문학이 특정 지식층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모든 계층이 이야기와 노래에 쓰인 개념어와 사물 지시어 등을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노래문학이나 이야기문학에 바다가 소재 혹은 공간으로 등장하는 것들은 적지 않다. 향가·악장·가곡창사[시조]·가사 중 몇 작품들을 통해 바다의 의미를 찾기로 한다.

 

현실적 고통에 시달리던 중생들을 깨우치고 구세하려는 목적으로 지은 노래가 균여대사의 〈보현시원가普賢十願歌〉였다. 한시 아닌 일상의 구어로 부르고 향찰鄕札로 표기하여 중생들이 쉽게 부르며 얻은 깨달음을 오래 전해질 수 있도록 기록한 것이 향가다. 이 노래의 몇 군데에 바다[海]가 등장하는데, 바다에 대한 당시 민중들의 기대지평이 명료하게 반영되어 있다. 〈보현시원가〉 중 〈칭찬여래가稱讚如來歌〉의 ‘無盡辯才叱海(끝없는 말재주의 바다)’·‘際于萬隱德(갓 없는 덕의 바다)’, 〈광수공양가廣修供養歌〉의 ‘燈油隱大海逸留去耶(등유는 큰 바다 이루거라)’, 〈보개회향가普皆廻向歌〉의 ‘佛體叱海(부처ㅅ바다)’ 〈총결무진가總結無盡歌〉의 ‘際毛冬留願海(갓 모를 소원의 바다)’ 등에 나타나는 바다는 불교의 종지宗旨를 드러내기 위한 유의喩意이다. 관념적 용어이긴 하나 경험을 전제로 하지 않은 경우 노래로 불리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보현시원가》의 바다는 관념과 경험 양자를 절충하여 당대의 보편적 인식을 드러낸 사례이다. 당대에도 실재의 바다는 유한한 인간에게 무한의 세계였고, 외경스럽고 위력적인 대상이었으며, 깊고 충만하고 무한·광활하며 살아 움직이는 이미지의 근원이자 실체였다. 이런 관념적 바다와 달리 경험적 공간인 바다가 미래의 이상향으로 등장하는 속악가사俗樂歌詞 〈청산별곡靑山別曲〉의 사례도 있다. 이 노래 제6연의 “살어리 살어리랏다/바ᄅᆞ래 살어리랏다/ᄂᆞᄆᆞ자기 구조개랑 먹고/바ᄅᆞ래 살어리랏다”에서 ‘나마자기와 구조개를 먹는’ 바다는 ‘머루랑 다래를 먹는’ 청산[제1연]과 함께 한계상황에 부닥친 화자가 돌아와 살고 싶은 두 갈래의 이상향 들이었다. 세속에서 버림받은 시적 자아에게 바다는 청산과 함께 허여許與된 유일한 대안이자 선택지였던 것이다.

 

조선조로 넘어오며 의미심장한 첫 바다는 《용비어천가》 제2장[“ᄉᆡ미기픈므른 ᄀᆞᄆᆞ래아니그츨ᄊᆡ내히이러ᄇᆞᄅᆞ래가ᄂᆞ니”]에 등장한다. 건국신화·영웅신화의 모티프를 뼈대로 이루어진 교술적 서사시 《용비어천가》는 궁중 의례문학儀禮文學으로서의 악장이면서 노래문학의 모범적 선례이기도 했다.

 

깊은 샘물은 바다를 이루는 근원이고, 바다는 자손만대 왕조의 번영을 상징한다. 원래 샘과 바다는 물을 공유하는 공간들이며, 그것들 모두 생생력生生力의 근원적 실체들이다. 샘물처럼 유래가 오랜 조상으로부터 바다같이 무한한 자손만대에 이르기까지 왕조의 번영을 기원한 것이 이 노래다. 《용비어천가》 제53장[사해四海ᄅᆞᆯ 평정平定ᄒᆞ샤 길우희 양식糧食니저니]을 포함,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사해四海ㅅ믈이여 오나ᄂᆞᆯ 마리예 븟ᄉᆞᆸ고 태자太子를 셰ᄉᆞᅀᆞᄫᆞ니]·〈감군은感君恩〉[오백년五百年이 도라 사해四海ㅅ므리 ᄆᆞᆯ가] 등의 악장들에 두루 사해四海가 등장한다. 이 경우 ‘바다’라는 유의喩意와 ‘온천하’라는 취의趣意들로 이루어진 ‘사해’는 불덕佛德 혹은 왕이나 왕조의 치공이 미치는 범위를 최대한 넓혀 표현하려는 욕망의 소산이다. 그리고 이것들 모두 실제 바다가 지닌 무한無限[무변無邊]의 이미지로부터 나왔음은 물론이다.

 

이 같은 관념의 바다와 현실이 결부되어 나타난 사례가 윤선도尹善道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라고 할 수 있다. 〈춘사春詞 제1연〉[압개예 안개 것고 뒫뫼희 ᄒᆡ비췬다/밤믈은 거의디고 낟믈이 미러온다/강촌江村 온갖고지 먼 빗치 더옥 됴타]·〈추사秋詞 제3연〉[수국水國의 ᄀᆞᄋᆞᆯ히 드니 고기마다 살져읻다/만경징파萬頃澄波의 슬ᄏᆞ지 용여容與ᄒᆞ쟈/인간人間을 도라보니 머도록 더옥 됴타]·〈동사冬詞 제4연〉[간밤의 눈갠후後에 경물景物이 달랃고야/압희는 만경유리萬頃琉璃 뒤희ᄂᆞᆫ 천첩옥산千疊玉山/선계仙界ㄴ가 불계佛界ㄴ가 인간人間이 아니로다] 등에는 바다와 대비되는 현실의 모습이 눈에 잡힐 듯 나타나 있다. 어로인漁撈人 아닌 작자가 어부漁父의 페르소나를 빌려 쓴 채 실제 바다에서 자신을 버린 세상 현실을 비판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인용한 부분들 각각의 앞부분 두 구는 계절에 따라 바뀌는 바다를 객관적으로 그려낸 내용인 반면, 마지막 구절들[강촌江村 온갖고지 먼 빗치 더옥 됴타, 인간人間을 도라보니 머도록 더옥 됴타, 선계仙界ㄴ가 불계佛界ㄴ가 인간人間이 아니로다]은 인간세상과 대비되는 바다를 윤선도 자신의 감정에 적셔낸 것들이다. ‘먼 빛이 더옥 좋다’든가 ‘멀수록 더욱 좋다’는 것은 부정적인 세상현실로부터 멀어지고 싶다는, 세상에 대한 윤선도의 혐오를 암시한다. 바다로 갈수록 세상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니, 세상이 좋아 보이는 것은 현재 그가 세상으로부터 미학적 거리를 유지하며 바다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하사夏詞 제2연〉[년닙희 밥싸두고 반찬으란 쟝만마라/청약립靑篛笠은 써 잇노라 녹사의綠蓑衣 가져오냐/무심無心ᄒᆞᆫ 백구白鷗ᄂᆞᆫ 내 좃ᄂᆞᆫ가 제 좃ᄂᆞᆫ가]를 보면 작자가 비록 가어부假漁父에 불과하다 해도 전형적인 어부의 삶을 노래하고 있는 점이 두드러진다. 앞의 노래들처럼 부정적인 세상에 대한 이상공간으로서의 바다를 노래하지는 않았으며, 무엇보다 바다의 활력을 제유提喩하는 백구와 시인의 자아가 합일되는 경지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지 않은가. 분명 초창기에 비중이 높았던 관념의 바다로부터 현실적이며 미학적인 바다로 옮겨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사실이다.

 

가사의 경우 다른 시가장르들과 달리 호흡이 길고 작품의 길이에 제한이 없었던 만큼 관념이나 압축보다는 사실적으로 묘사된 바다가 주류를 이룬다. 유배가사 중 이진유李眞儒의 〈속사미인곡續思美人曲〉[니진항구梨津港口의 쥬즙舟楫을 뎡돈整頓ᄒᆞ야/동풍東風이 건듯 불며 쌍범雙帆을 놉히 다니/창파묘망滄波渺茫ᄒᆞ며 물밧근 하ᄂᆞᆯ일다/고도孤島ᄅᆞᆯ 지졈指點ᄒᆞ니 흑ᄌᆞ黑子만 계유하다/시야쟝반時夜將半ᄒᆞ매 광풍狂風이 졉텬接天ᄒᆞ니/듕뉴실타中流失柁ᄒᆞ야 호흡呼吸의 위ᄐᆡᄒᆞᆯᄉᆡ/장년長年 쇽슈束手ᄒᆞ고 쥬듕舟中이 실ᄉᆡᆨ失色ᄒᆞ니/묘연渺然ᄒᆞᆫ 이 내 몸이 ᄉᆞᄉᆡᆼ死生이야 관계關係ᄒᆞ랴], 박인로의 〈선상탄船上嘆〉[ᄇᆞ람조친 황운黃雲은 원근遠近에 사혀잇고/아득ᄒᆞᆫ 창파滄波ᄂᆞ 긴하ᄂᆞᆯ과 ᄒᆞᆫ빗칠쇠/(…)/대양大洋이 망망茫茫ᄒᆞ야 천지天地예 둘려시니 진실로 ᄇᆡ아니면 풍파만리風波萬里밧긔 어ᄂᆡ 사이四夷 엿볼넌고], 김인겸의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이윽고 ᄒᆡ돗거ᄂᆞᆯ 장관을 ᄒᆞ여보ᄉᆡ/ᄉᆞ면을 ᄇᆞ라보니 어와 장ᄒᆞᆯ시고/구만니 우듀속의/큰물결 분이로ᄉᆡ/동남을 도라보니 바다히 ᄀᆞ이업ᄂᆡ/슬프다 우리길이 어ᄃᆡ로 가ᄂᆞᆫ쟉고] 등은 가사에 묘사된 바다의 모범적 사례들이다.

 

광풍 속에 키를 잃은 뱃사공들이 어찌 할 바 모를 정도의 위급하고 고생스런 상황을 그려낸 것이 〈속사미인곡〉이다. 이 작품에서 바다로부터의 가혹한 시련을 묘사한 점은 표류설화나 표해록들의 그것과 같다. 그러나 〈선상탄〉과 <일동장유가>에는 다른 모습의 바다가 등장한다. 임진왜란 때 좌절도사 성윤문 막하의 수군으로 참전한 박인로의 <선상탄>에는 천지를 둘러 나라를 보호해 주는, 울타리 같은 바다가 묘사되어 있다. 배만 없었다면 왜구들이 이 땅을 넘보지 못했을 거라는, 현실적이면서도 약간은 소극적인 바다 인식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이와 달리 서정적 공간으로서의 바다가 <일동장유가>에는 등장한다. ‘어와 장ᄒᆞᆯ시고’, ‘슬프다’ 등 감탄구들이 정서의 핵심 포인트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바다의 서사적 흥분이나 긴장보다는 자아와 대상의 합일을 미학적으로 드러내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나가며

 

예로부터 다양한 산문들과 운문들의 배경으로 사용하거나 개별 작품들의 주지主旨를 드러내기 위한 이미지로 바다를 끌어왔다. 대부분의 산문들에서 바다는 위기와 시련으로 점철된 삶의 본질을 보여주는 현실적 공간으로, 운문들에서는 이미지를 통해 작자의 미적 인식과 작품의 미학을 완성시켜주는 서정적 공간으로 각각 사용되어 왔다. 관념과 현실, 서사와 서정의 병행이나 착종錯綜을 통해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시켜 온 공간이 바로 바다였다. 심해深海 탐사 기술이 발달한 현재도 바다의 깊은 속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겉만 알고 속을 모르면, 그걸 안다고 할 수 없는 법, 바다 속을 모르니, 예나 지금이나 바다는 공포와 경외의 공간으로 남아 있는 게 사실이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며 당하는 시련은 인간의 공포와 경외심을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고전문학에 등장하는 바다의 맥을 잡는다거나 의미를 구조화시키는 것이 그다지 수월한 일은 아니다. 고전문학이 생산되고 소비되던 각 시대의 미의식과 정신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과 관념, 서사와 서정을 적절히 조합하여 바다를 아름답게 형상해낸 우리 고전문학은 매우 소중하다. 미친 듯 파도치는 대양을 일엽편주로 건넌다든가 사투 끝에 괴물 같은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행위를 ‘대자연에 대한 인간의지의 승리’로 그려내는 현대 해양문학의 전통적 발판이 바로 고전문학의 바다였기 때문이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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