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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2.04.21 가거지(可居地)를 찾아
글 - 칼럼/단상2014. 11. 12. 16:42

내 등짝을 내려친 출판사 사장의 죽비

 

 

 

 

오늘 두 사람의 출판사 관계자가 내 연구실에 찾아왔다. 언제나 출판사 사람들이 방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내 가슴은 출렁 내려앉곤 한다. 당장 필요도 없는 책을 사야 하거나 그들의 푸념을 들어야 하고, 내 가슴에 그득 들어 있는 탄식을 쏟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은 오늘도 마찬가지였지만, 또 다른 의미의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최근에 나는 나 자신이 알 수 없는 우울증에 빠져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작년 전반기에 두 권의 책을 냈고, 미국 체류를 끝내고 돌아온 올해 들어 두 권의 책을 냈으며, 비록 공저와 공편일망정 연말까지 두 권의 책이 더 나올 예정이니, 그런대로 쏠쏠한(?) 수확이라 할 만한데, 왜 이리 마음이 무거운 걸까? 내가 책을 내면서도 우울해지는 것은 ‘아무도 책을 읽지 않는 이 시절의 우울한 현실’ 속에서 ‘또 하나의 민폐를 끼치고 말았다’는 자괴감 때문이다. 미국에서 돌아온 이후 작년에 책을 낸 그 출판사에 전화 한 통화 걸어볼 엄두를 못낸 것도 보나마나 내 책들이 ‘재고’의 딱지를 붙인 채 창고 한 켠에 그득 쌓여 있으리란 확신 때문이었다.

 

 

 

 

책 내는 일이 수월하지 않던 지난 시절. 책을 내고자 하던 젊은 나이의 누구나 그랬으리라. 자신이 갖고 있는 원고로 책을 만드는 출판사는 ‘대박’을 치게 될 거라는 착각과 환상이 바로 그것이다. 이른바 그 옛날 ‘낙양(洛陽)의 지가(紙價)를 올린 일’이 자신으로 인해 이 시대에 재현되리라는 행복한 착각 속에 며칠을 보내게 된다는 것. 중국 진나라의 좌사(左思)가 10년을 고심참담하며 완성한 명문 <삼도부(三都賦)>를 낙양 사람들이 다투어 베끼자 종이 값이 오르게 된 그 사건이 자신에겐들 일어나지 말란 법이 있겠느냐는 ‘병아리 셈’으로 숱한 밤을 곱게 지새우는 책상물림들이 좀 많았으랴.

 

그러나 시절은 무섭게 변했다. 코흘리개부터 백두옹(白頭翁)에 이르기까지 ‘자라목 증후군’이 세대를 초월한 병증으로 자리 잡을 만큼 스마트폰 중독시대에 이르자 책은 한갓 귀찮은 쓰레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세상의 시름을 말끔히 풀어주는 온갖 소문과 기문(奇文/奇聞)들이 사각형의 오묘한 기계 속에 그득한데, 신국판ㆍ국배판의 무겁디 무거운 종이책들을 지고 다니는 오기를 부릴 만큼 미련하지 않다고 스스로 착각들을 하고 있는 것이 요즘의 우리들이다. 오늘 아침에도 쓰레기를 버리러 쓰레기장에 나갔다가 쓰레기로 버려진 수십 권의 멀쩡한 책들을 만났다! 80년대 중반, 본격적으로 진입한 국민소득 1만불의 산업화 단계에서 이른바 3S(SEX. SPORTS, SCREEN)의 우민화 정책이 빛을 발하여 책은 우리의 삶에서 자꾸만 멀어져 갔고, ‘정보화-고도정보화’ 시대의 격랑을 지나면서 ‘도(독)서 소외’는 우리 사회 문화적 퇴행의 한 현상으로 고착된 것이다.

 

출판사 사장은 울상이었다. 제작비를 맞추기 위해 300부만 찍는데, 그 반도 안 나간다는 것이다. 심지어 교재도 안 나간다고 했다. 학생들 몇이서 교재 한 권만 돈 주고 산 다음 PDF 파일로 만들어 공유하고 그 때 그 때 필요한 부분만 각자 출력하여 강의시간에 갖고 온다는데, 그런 세대에게 교재를 사라고 권할만한 강심장은 더 이상 없다. 출판사 사장은 내 체면을 보고 책을 내준 것 같은데, 아니 그보다는 대학에 있으니 적어도 기본 부수는 팔리지 않을까 하여 책을 내 준 것 같은데, 내 책에 대한 시장의 반응을 물어볼 엄두도 못 내는 나로서는 우울해질 수밖에 더 있는가. 그래서 적어도 내게 ‘책을 내는 일’은 ‘민폐’였다. 그래서 앞으로 원고가 완성된다 해도 책은 내지 않겠노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그 생각을 연구실로 찾아온 사장에게 말했다. 그저 완성된 원고의 부분 파일을 홈피에 올리고 필요한 사람은 출력해 가도록 하겠다는 것이 내 아이디어였다. 그러자 그 사장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럼 우리 일을 접으라고요? 그나마 안 팔리는 책일망정 만들며 근근이 연명하고 있는 상황인데, 아예 책을 안 쓰시겠다니, 우리 보고 문을 닫으라는 말씀인가요?”

 

 

 

 

 

다급한 그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내가 배부른 생각을 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일지언정 그래도 먼 훗날 언젠가를 위해 이들은 책을 만들고 있었다. 그저 책짐을 짊어지고 다니며 팔지 않아도 먹고 사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는 이유로 태평한 생각을 하고 있는 나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래, 스피노자는 왜 ‘내일 세상이 망한다 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을까. 앞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상황에서도 내일엔 뭔가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갖는 것이 이 땅의 우리 세대가 견지해야 할 삶의 태도 아니겠는가. 비록 내 책이 후세인들의 간장 병 마개나 펄펄 끓는 라면 냄비의 밑받침으로나 쓰인다 해도 지금 그걸 당겨서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시대의 나는 이 시대의 논리에 충실하며 살아갈 따름이다. 모름지기 학자라면 힘이 남아 있는 한 고심참담 저술을 해야 함을 내게 깨우쳐 주고 그 출판사 사장은 황황히 떠났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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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출판노동자

    잘못하셧습니다. 출판사 사장이란 것들 순애보 ㅇㅇㅇ같은 자들이어서....그런 자들의 처지를 봐줄 필요 없습니다

    2017.03.17 16:57 [ ADDR : EDIT/ DEL : REPLY ]

글 - 칼럼/단상2012. 4. 21. 17:52

가거지(可居地)를 찾아

 

 

 

 

                                                                                                                                                       


                                                                                                                                                          백규

어릴 적 자신의 ‘주검 옷’을 미처 마련하지 못한 노인들이 초조해 하는 모습을 뵐 때마다, 그 분들의 마음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못난 자식들이라 해도 당신 마지막 가는 길에 옷 한 벌 못해 입힐 것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안달하시는 걸까?’ 생각하며 그 분들의 속내를 가늠하지 못했다. 당신들 스스로의 손으로 최고의 주검 옷을 만들고 싶으신 마음, 그 옷을 입고 ‘고운 자태로’ 저 세상의 첫 문턱을 밟고 싶으신 그 마음을 철없는 나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악다구니처럼 뜯어갈 줄만 알았지 부모의 마음을 한 치도 헤아리지 못하는 자식 놈들, 제 가족이나 자신의 치장에는 돈 아까운 줄 모르면서 부모를 위해서는 푼돈을 아까워하는 자식 놈들, 바쁜 세상 탓만 하며 모든 걸 대강대강 장사치들의 손에 맡겨버리곤 ‘할 일 다 했다’고 손 터는 자식 놈들을 보며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들어가는 여행길만큼은 스스로의 손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이 땅의 어머니 아버지들은 매 순간 갖고 계시는 거다. 이 땅의 어떤 자식이 그 지극한 속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우리나라 노인들이 땅에 발붙이고 말년을 살아가며 땅 속으로 들어갈 날을 준비하는 것은 오랜 세월 이어 내려 온 삶의 지혜이자 법칙이다. 번잡한 도회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떵떵거리다가 어느 순간 닥쳐 온 죽음 앞에 허둥대는 현대인들로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철학이기도 하다. 노후나 죽음에 대한 대비의 전통이 끊어진 것은 산업화에 이은 고도정보화의 물결 탓이다. 요즘 그 격랑이 점점 잦아들어 평온을 되찾고 있기 때문인가. 일부이긴 하지만 이제 현대인들이 조부모나 부모세대까지 이어져 내려오던 지혜의 전통을 찾아 나서게 된 것도 그로부터 생겨난 성찰의 덕분이리라. 자식들을 독립시키고 직장에서 퇴임한 다음 잡답(雜沓)의 도시를 탈출하여 조용한 전원에서 스스로의 내면을 관조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다. 깨달음의 묵직한 보따리를 텅 빈 농촌에 풀어놓고, 잠시 후면 몰려 올 자식들의 귀향을 기다리며 살다가 슬그머니 흙 속으로 스며드는 것. 한 줌 흙이 되어 소나무를 잣나무를 밤나무를 키우는 거름이 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행복한 삶일 것이냐.

나이 사십 후반이라면, 틈틈이 전국의 산과 들판을 돌아다녀볼 일이다. 돌아다녀보면 안다. 우리를 키운 8할이 계곡의 바람과 고운 물, 보드라운 흙이고,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 역시 거기라는 것을. 그러기 위해서라도 욕망을 버리고 ‘살만한 곳’을 찾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고의 인문지리서 <<택리지(擇里志)>>를 쓴 이중환(李重煥 ; 1670~1756)이야말로 우리 역사상 드문 선각자다. 살 만한 곳의 조건으로 그는 네 가지를 제시했다. 지리(地理)⋅생리(生利)⋅인심(人心)⋅산수(山水)가 그것들인데, 그 가운데 하나만 빠져도 낙토(樂土)라 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지리란 ‘장풍득수(藏風得水)’ 즉 풍수를 포함한 그 땅의 현실적⋅형이상학적 이치, 생리란 그 땅이 인간에게 허락할만한 경제적 가치, 산수란 산과 물이 조화를 이루어 인간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경치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갖추고 있다한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頑惡)하다면 소용없는 일. 괜한 텃세로 들어와 정착하려는 사람들의 의지를 꺾어놓거나 사사건건 트집으로 괴롭힌다면, 차라리 사막 한 가운데서 선한 사람들과 함께 사는 편이 나을 것이다. 다녀보면 안다. 우리네 강토 안에서 이 네 조건 갖춘 땅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

  정년퇴임한 곳 언저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얼쩡대는 인사가 있다면, 어리석은 후배들을 닦달하고 작당하여 소리(小利)를 탐하려는 자가 있다면, 고개 들어 마지막 광채를 불사르며 바다로 스며드는 태양을 응시해볼 일이다. 깨끗하지 못한 우리를 자신의 넓은 품에 받아들여 정화시키고, 마지막을 아름답게 해 줄 대자연이 우리네 삶터 바로 곁에 있지 않은가. 허탕 치는 나날이지만, 오늘 또 다시 ‘가거지(可居地)’의 탐색에 나서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2012. 4. 21.>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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