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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1.22 제자의 시집을 받아들고
  2. 2007.04.16 내 고향 태안에서 만난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글 - 칼럼/단상2012. 11. 22. 20:08

 

 

 

 

제자의 시집을 받아들고

 

 

                                                                                                                                                           백규

영국의 정치가 핼리팩스(Halifax) 백작은 “가르치는 일에 따르는 허영심은 가끔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이 바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고 했다.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만나 스스로 묘한 열기에 휩싸일 경우, 나 자신이 ‘매우 모자란 인간’임을 잊을 때가 많다. 강의실로부터 조용한 연구실로 돌아와 열기가 식으면, 그때서야 내 생각과 말을 직시하게 되고, 가끔 등짝에 식은땀이 흐르곤 한다. 그래서 인간에게 매우 긴요하고 귀한 일이되 스스로를 자만과 착각에 빠뜨리기도 하니,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양날의 칼과 같은 일이다.

 

***

 

오후 잠깐 들른 우편함에 아담한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최석균 시인의 <<수담(手談)>>이란 시집. 최석균이라? 순간 학부 4학년의 앳된 얼굴이 번개처럼 지나갔다. 꿈같이 흘러버린 25년의 세월, 경남대학 시절의 그를 떠올릴 수 있었다. 중저음의 그는 차분한 성격을 갖고 있었다. 온몸에서 풍기는 성실함이 경상도 억양과 어울려 묘한 매력을 발산하던 친구였다. 그렇던 그가 그 사이에 중견 시인으로 자라나 두 번 째의 멋진 시집을 내고, 내게 ‘감당할 수 없는 헌사(獻辭)’까지 달아 보내 준 것이었다. 30년 가까운 세월의 강을 격(隔)한 지금, 그 시절 그와 만나던 마산시 월영동의 강의실을 떠올리려 애를 써본다. 나는 과연 그와 그들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내가 뱉어낸 말들 가운데 단 한 마디라도 기억해주는 친구가 있을까. 혹시 내가 젊은 시절의 혈기와 격정으로 세상을 저주하는 말을 내뱉었고, 그 말들 때문에 세상에 대하여 부정적인 인상이나 심어준 것은 아닐까.

 

***

 

사실 나는 지금도 강의실에 들어가면 당황스럽다. 준비해온 말들은 입 안에서 맴돌다 사라지고, 학생들의 표정과 내 시선이 마주치는 지점에서 비로소 말문은 새롭게 열리곤 한다. 그러니 제대로 정돈되지 못한 말들이 튀어 나가는 건 당연한 일. 가끔은 나 자신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멋진 멘트가 튀어나가기도 하지만, 대개 뱉고 나서 후회되는 말들이 적지 않다. ‘자신이 바보라는 사실을 순간순간 깨달으면서도 바보임을 잊은 채 살아가는 인간이 선생’이라는 것도 그 때문에 나온 경구(警句)인 듯 하다.

 

***

 

20년의 세월을 지내고도 나를 기억해준 제자가 이 순간 나를 감동시키기도 하고, 나를 부끄럽게 만들기도 한다. 지난날의 부끄러운 추억은 대부분 치기(稚氣)어린 열정의 소산임을 자인한다. 그런 온축(蘊蓄) 없이 성마르기만 했던 열정으로부터 내 제자들은 과연 무엇들을 배웠을까. 일찍이 도연명(陶淵明)은 말했다. “지금까지 마음은 육신의 부림을 받았으니 어찌 홀로 슬퍼하리오. 지난 일의 부질없음을 깨달았고, 앞일을 따를 수 있음을 알았다네. 실로 길을 잃어버림이 아직 멀지 않으니, 지금이 옳고 지난날이 그른 줄을 깨닫는다네[旣自以心爲形役 奚惆愴而獨悲 悟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 實迷途其未遠 覺今是而昨非]”라고. 선생으로서의 내 과거는 부끄러움으로 점철된 시간대이나 이제 그 그릇됨을 깨달았으니, 지금부터라도 올바로 살아갈 만한 기틀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는가.

 

***

 

최 시인의 시집 제목은 수담(手談)이다. 그것이 ‘손의 말’이든 ‘손으로 하는 말’이든, 입은 닫은 채 샘솟는 마음을 손끝으로 풀어놓는 반상(盤床)의 서사(敍事)임에 틀림없다. 세상사 복잡함도 가로 세로 각 19줄• 361개 교차점으로 이루어진 바둑판에 모두 그려낼 수 있는 것을, 우리는 무엇을 찾아 아등바등하는가. 그는 아마도 바둑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모조리 터득한 듯, 그의 안목이 자못 형형하다. 반상을 통해 우주와 세상의 이치를 들여다보는 최 시인의 혜안을 감상들 하시라고, 독자 제위께 한 작품만 보여드리고자 한다.

 

 

화점(花點)

 

점에서 꽃이 핀다

하얀 꽃 검은 꽃 그 틈새에

여백의 꽃들이 눈을 뜬다

우화羽化한 날갯짓 잉잉거리며

누운 꽃들의 꿈을 퍼 나른다

묵인과 오판 속에서

바꿔치기와 꽃놀이패 속에서

꺾고 꺾이는 꽃의 향기들

생사를 오가는 꽃의 길들이

아찔아찔 뒤엉켜 자란다

딱히 살아도 산 게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게 아닌 땅에서

깍지 끼듯 얽힌 이율배반의 손과 손이

저승과 이승 경계점을 넘나든다

툭 던져진 손톱만한 꽃눈이

꽃눈 속에 숨은 모래만한 씨앗이

달만큼 자라서 별처럼 사라지는 거기까지

한판, 우주의 생몰이다

재차 새판을 짜기 위해

가지런히 누워 봄을 기다리는

한 점, 한 점 낙화의 잔영이다.

*화점(花點) : 바둑판에 표시된 아홉 군데의 점.

 

  최석균 시집, 황금알 시인선 59/<<수담手談>>, 황금알, 2012.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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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7. 4. 16. 15:03


고향에서 만난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조규익

내 고향 태안엔 샛별처럼 반짝이는 제자 난주시인이 살고 있다. 경남 산청 출신. 당차면서도 맑은 영혼의 여인이다. 경남대학의 전임으로 막 부임한 나는 스물여덟. 갓 스무 살 난 그녀는 학교의 문학 서클에서 시인에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일상에 매몰되어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던 나는 떠난다는 말도 없이 두 해만에 서울로 오게 되었다. 그 후 우연히 그녀가 내 고향으로 시집 와 산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로부터 나는 부끄럽게도 잊고 있던, 아니 잃어버린 지 오래였던 고향을 다시 찾게 되었다. 척박한 내 고향에 문화의 불씨를 지피고 있는 그녀를 보며 스스로 부끄러워졌기 때문이다. 독서회, 시 낭송회, 논술·토론회 등, 문화의 모종삽을 들고 분주한 그녀. 그녀의 모습이 생소하면서도 신선했다.

         ***

유럽 여행기 <<아, 유럽!-그 세월 속의 빛과 그림자를 찾아>>를 펴내자마자 그녀로부터 연락이 왔다. 독서 모임 회원들을 위해 ‘저자와의 만남’ 시간을 갖겠다는 것. 그래서 태안도서관을 찾았다. 아, 그런데 그곳엔 올망졸망한 ‘초딩’들과 그 지역의 어른들이 뒤섞여 강의실을 채우고 있었다. 그러니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으랴? 그저 책에 목마르던 내 어린 시절의 이야기, 지금도 여전히 허기에 시달리며 무언가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내 삶의 이야기나 들려줄 수밖에 없었다.
여행과 독서! 그러고 보면 참으로 절묘한 일치였다. 무언가를 알기 위해, 찾기 위해 우리는 책을 읽는다.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찾거나 알기 위해 우리는 여행을 한다. 말하자면 우리가 찾아다니는 세상이나 우리가 읽는 책이나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유럽을 비롯 그간 내가 밟았던 곳들은 모두 내 공부를 위한 텍스트였던 셈이다. 태안의 사임당 독서회를 위해 난주시인이 내게 부탁한 것은 여행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야기 내내 ‘책 읽기’와 ‘여행하기’라는 두 영역을 왕래하게 되었다.
         ***

청중석에 앉아있는 어른들은 참으로 훌륭했다. 이런 시대에 책을 가까이 하는 어머니 아버지들이 있을 수 있다니! 모여 앉으면 부동산 이야기, 남 헐뜯기로 세월을 보낼 법 한데도 그 분들은 열심히 책을 읽고 정기적으로 만나 토론을 한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 책을 읽으라!’ 경을 읽을 필요가 어디 있을까. 아이들은 그런 부모를 보며 스스로 책을 읽고 사색에 빠질 것이다. 단 한 시간이라도 어머니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이들도 옷깃을 여미고 책상 앞에 달라붙는 것을. 어른들 자신들은 ‘먹자 마시자’로 일관하며 입으로만 경을 읽는다. 비극이다. 그런 점에서 내 고향 태안의 미래는 밝았다. 그곳은 내 고향 태안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 함께 모인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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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주꾸미 샤브샤브로 태안의 풍미를 듬뿍 맛본 식당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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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떠나든, 책 속으로 떠나든 여행은 즐겁고 가슴 설레는 일이다.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문화를 만나게 되고, 나와 다른 그것들을 통해서 나의 자아를 깨닫는다는 점에서 여행만큼 위대한 선생님도 없다. 역사상 위대한 사상가, 문학가, 예술가, 정치가 등은 모두 여행에 나선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여행을 통해 자아를 깨닫고 거듭 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서 ‘자식을 성공시키려면 일찍부터 여행을 시키라’고 강조했다. 다만, 여행을 떠나기 전 준비를 철저히 하고, 뚜렷한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것만은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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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아름다운 봄꽃들이 만개한 그곳엔 은총처럼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몽대 포구의 바닷바람도 이리저리 봄 내음을 흩어내고 있었다. 김영곤 시인의 시낭송과 조은숙 회장의 가곡 한 자락은 방파제를 넘어 햇살 반짝이는 물결 위로 파문처럼 번져갔다. 난주 시인의 해맑은 웃음이 그 사이를 수놓은 봄날 오후의 한 순간. 살아있는 내 고향의 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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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대포구의 따스한 봄바람을 맞으며

                                                                       2007. 4. 14.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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