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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5.07 ‘딱지를 까고 잘도 먹는구나!’
  2. 2011.12.29 제부도 행
글 - 칼럼/단상2016. 5. 7. 04:53

 

 


황발이

 

 


화난 게

 

 


칠게

 

 


칠게

 

 

 

 

딱지를 까고 잘도 먹는구나!’

 

 

 

충남 서해안의 한 한촌(寒村)이 내 고향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기름진 갯벌이 질펀하게 펼쳐진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그곳은 작고 큰 게들의 천국이었다. 그럴 듯한 꽃게는 아니지만, ‘사시랭이능정이쇠발이황발이달랑게돌짱이등 작지만 먹음직한 게들이었다. 전라도와 경기도 해안 지역 사람들을 만나면 통하는 게 있다. ‘갯벌에서 나오는 해산물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경기도, 충청남도, 전라남북도 서해안 지역을 특별히 동일한 게 섭식(攝食) 문화권이라고 부른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한다는 속담이 있다. 마파람은 습한 기운을 머금은 남풍이니, 곧 비가 내릴 것이라는 예고이기도 하다. 게들은 몸의 염도를 유지해야 살 수 있다. 비에 소금기가 씻겨 내려가면 안 될 일. 그러니 갯벌 표면으로 올라와 부지런히 먹을 것을 찾던 게들도 비가 온다는 남풍의 경고에 바짝 긴장하고,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해야 할 것 아닌가. 자신들의 집이래야 갯벌에 뚫어놓은 작은 구멍이 고작인데, 그곳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곧추 세웠던 잠망경을 접어야 하리라. 그래서 마파람이 불면 게들은 치켜세웠던 자신들의 눈을 접고는 냉큼 집으로 몸들을 숨기는 것이다. 흔히 배고픈 사람이 허겁지겁 밥을 퍼먹는 모습이나 관리들이 나랏돈 집어삼키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무언가를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집어삼키는 모습을 이렇게 그려낸 것이니, 우리 옛 어른들의 눈썰미가 이처럼 매서웠다.

 

도시 사람들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한다는 속담을 그럭저럭 들어서 알고는 있다. 그러나 시골 출신이든 도시 사람들이든 딱지를 까고 잘도 먹는다는 말은 대부분 모른다. 속담사전들을 들춰봐도 없다. 그러나 내 고향에서는 흔히 통용되어 왔고, 특히 돌아가신 내 어머니는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한다는 속담 대신 이 말을 자주 쓰셨다. 어머니를 비롯한 고향의 어른들은 게 잡이 선수들이셨다. 그럴 듯한 물고기를 잡을만한 곳도 아니었으니, 그나마 그런 게들을 잡아다 없는 반찬을 보충하셨을 것이다.

 

짜디짠 김치와 엄지손가락만한 게 여라믄 마리가 반찬의 전부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릴 적엔 딱지와 발을 뗄 것도 없이 통째로 으드득씹어 먹으며, 속으로 참 맛도 더럽게 없다는 불평을 하곤 했는데, 요즈음은 그 맛이 몹시도 그리워지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얼마 전 동네 시장에 나갔다가 억지를 부려옛날의 그 게들과 비스름한 것들을 한 보시기 사온 적이 있다. 간장에 절였다가 끼니 때 식탁에 꺼내놓고 옛날처럼 으드득씹어 먹으니, 아내의 눈치가 심상치 않았다. 며칠 잘 먹다가 아내의 눈치가 심각하게 바뀌는 걸 보곤 냉큼 게에 대한 추억과 미련을 접고 말았다.

 

딱지를 까고 잘도 먹는구나!’가 게로부터 온 말일까. 우리 고향 어른들은 게를 잡으며 게의 해부학적생리학적 구조를 잘도 파악하신 것 같다. 나도 어릴 적 게를 가만히 관찰해본 적이 있다. 게들은 두 개의 큰 집게를 갖고 있다. 우리가 손으로 물건을 집거나, 싸움할 때 상대방에게 주먹질을 하듯이 그들은 집게로 물건을 잡거나 적을 물기도 한다. 나머지 발들은 이동할 때 사용한다. 잘 아시다시피 게들이 드넓은 갯벌에 올라와 식사를 하거나 해바라기를 하는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다. 해바라기 할 때는 움직이지 않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늘 부지런히 꼼지락거린다. 어릴 적에 그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갯벌에서 무언가를 집게로 집어 올려’ (육안으로는 잘 구분되지 않는작은 입으로 나르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들만의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갯벌에 살고 있는 플랑크톤이나 물고기의 사체 등으로부터 분리된 유기물들을 집어먹고 있었으리라. 당시 어린 나이였지만그걸 보면서 나는 참으로 답답함을 느꼈다. 저렇게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무언가를 집게로 잡아 어느 세월에 그 큰 배를 채운단 말인가. 차라리 (게의) 딱지를 까고 갯벌에 널린 먹이를 집어넣으면 순식간에 배를 채울 수 있을 것 아닌가. 당시 나는 게들을 보며 늘 이런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래, 저 굶주린 게들은 현미경으로 보아야 겨우 보일만한 유기물들을 하루 종일, 아니 일생동안 집게로 들어 올려 입으로 운반하며 생명을 유지해온 것이었다! 그런데, 어른들은 바로 내 마음을 미리 알아채신 것처럼 딱지를 까고 잘도 먹는구나!’라는 속담을 만들어 쓰고 계셨던 것이다.  

 

***

 

매스미디어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공직자들이나 기업가들의 부정과 부패 소식을 토해낸다. 눈 먼 돈이 널려 있는데, 어찌 가만히 보고만 있겠는가. 나랏돈이 내 돈이요, 회사 금고 안의 돈도 내 것인데, 안 먹으면 멍청이란 말일까. 갯벌에 널린 눈 먼 유기물들은 온통 게들의 먹이다. 그러나 게들은 욕심 내지 않고 그 둔탁한 집게로 한 알 한 알 조심스레 들어 올려 먹을 뿐이다. ‘딱지를 까고먹으면 순식간에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라고 모르진 않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들은 딱지를 까고먹지는 않는다. ‘딱지를 까고 먹는 행위가 죽음임을 알기 때문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으레 눈 먼 돈을 보면 딱지를 까고덤벼든다. 그러다가 걸려서 사회적 생명이 끊어지는 경우가 한 둘이 아니다. 그렇게 보면 인간은 게만도 못한존재임이 분명하다. 다함없는 헛된 욕망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이제 공직자들이나 기업가들은 (딱지 깐) 게 사진을 집무실에 걸어놓고 다음과 같이 외치면서 아침저녁으로 경배(敬拜)할 일이다.

 

저는 오늘도 딱지를 까고 먹지 않겠습니다!”(출근 시의 구호)

저는 오늘도 (다행히) 딱지를 까고 먹지 않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게님!”(퇴근 시의 구호)

 

 


꽃게

 

 


게들의 천국(신안군 증도)

 

 


게들의 천국(신안군 증도)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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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1. 12. 29. 17:50


제부도 행

 

백규

 

겨울의 제부도는 쓸쓸했다. 텅 빈 바닷가에 불어오는 바람, 그 바람결이 몹시 차가웠다. 차갑다 한들 살을 에기야 하겠냐만, 바람결에 봄기운의 약속은 단 한 오라기도 들어 있지 않았다. 그래도 좋았다. 하늘에선 깔깔한 햇살이 내려 쪼이고, 팔리길 고대하는 도자기들을 겹겹이 쌓아놓은 길가의 가게도 운치를 더했다.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송교리 해안에 도착한 것이 오후 3시 반쯤. 30분쯤 기다리니 제부도를 건너는 길이 열렸다. 물에 잠겼던 시멘트 길이 열린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모세의 기적’이라 불렀다. 조금 전까지 물에 잠겼던 증표일까. 번질번질한 길옆엔 검푸르게 질려버린 바닷물이 금방이라도 길바닥으로 넘어올 듯 철럼거렸다.

 

차를 몰아 2km를 건너는 5~6분 동안 ‘왜 제부도라 불렀을까’를 두고 오른쪽의 바닷물과 왼쪽의 갯벌은 무수한 말들을 교대로 들려주었다. 사람들은 ‘제(濟)’와 ‘부(扶)’를 들어 ‘제약부경(濟弱扶傾)’을 그 어원이라 했다. 즉 “송교리에서 제부도 사이의 갯고랑을 어린아이는 업고 노인들은 부축하고 건네 준 것을 '제약부경'이라 하였는데, 제자와 부자를 따서 제부도라 하였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춘추정전(春秋正傳)>>에 나오는 ‘제약부경지의(濟弱扶傾之義)’로부터 명칭을 따왔다니 참으로 섬에 대한 명명치고는 너무 유식해서 재미없다. 물이 빠지면 어린아이 노인 할 것 없이 몰려 나와 바지락도 캐고, 낙지도 잡고, 망둥이도 잡았겠지. 그러다가 물이 들어올 때쯤이면 함께 손을 잡고 부축하며 갯벌에서 빠져 나왔을 것이다. 원래 ‘제부섬’이라 불러왔는데, 언젠가부터[아마 일제 때였을 것] 그 섬 이름을 한자로 등재하기 위해 고심하다가 그런 광경과 결부시켜 한자로 적다보니 ‘제약부경’의 의미까지 갖다 둘러  댄 것이리라. 어쩌면 그 옛날 해안에 살던 사람들은 봄이 오면 그 섬으로부터 제비 떼가 몰려오는 것을 목격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사람들도 적고, 주변 갯벌에 먹이도 많아 제비들이 이 섬에 떼지어 살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섬을 ‘제비섬’이라 했을 것이고, 그것이 오랜 세월 ‘제부섬’으로 와전(訛傳)되었을 것이며, 결국에는 ‘제약부경’을 견강(牽强)하기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나 아닐까.

바다 멀리 풍력발전소의 바람개비들은 끊임없이 돌고, 바닷물은 이빨을 드러내고 다가들었다. 제부도에 들어가니 갯벌이 끝나는 곳까지 모래와 자갈이 깔려 있고, 그 위엔 환한 햇살 아래 어선 두어 척이 하품을 하고 있었다. ‘인영(人影)이 불견(不見)!’ 따스한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인파로 붐볐을 이곳이 이토록 텅 빈 것은 차가운 바람 때문은 아닐까. 숙박을 위해 들른 펜션도 추위에 질려 있었다. 방에 들어가 앉으니 가슴 위를 찬바람이 휭 하고 훑는다. 그래, 사람의 온기가 끊어진 몇 주일 간 그 빈자리를 이 찬 바람이 제멋대로 들락거렸구나. 차라리 바다에 맴도는 바람 맛이나 볼까. 해안으로 나오니 바다도 갯벌도 모래사장도 모두 추위에 질려 있었다. 그러나 바다 건너편을 바라보니 서해바다로 연결되는 목이 보이고, 그 언저리에 큰 배들이 조용히 떠 있었다. 아마 짐 가득 싣고 먼 길을 가는 중이었을 것이다. 가만히 팔을 벌려 보니 양 손 닿을 만한 곳에 큰 굴뚝들 두 셋이 흰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아마도 화력발전소들이겠지. 전국의 바다 풍광 좋은 목들엔 어디고 할 것 없이 발전소가 서 있었다. 화력발전소에서는 뜨거운 폐수가 바다로 흘러나올 것이고, 그 뜨거운 물은 상큼한 주변의 바닷물을 뜨뜻하게 만들 것인즉 바지락이며 망둥이며 낙지가 견뎌낼 재간이 없을 것인데. 과연 그들은 이 바닥을 떠나 어디로 이사들을 간단 말인가. 비록 탈황을 했다고 해도 하얀 연기를 보는 순간 내 천식은 또 다시 발작을 하기 시작했다. 수천 년 사람들이 파먹고 뒤 엎어도 끈질기게 다시 생명을 내어놓곤 하던 갯벌이었다. 아침녘에 갯벌을 훑어가며 바지락을 캐내다가 지쳐 집으로 돌아가 하룻밤 자고 다시 가서 호미를 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싶게 다시 오글오글 바지락들이 들어차 있곤 했다. 그게 갯벌이었다. 왕성한 복원력을 자랑하는 현란한 생명의 현장이었다. 그 바닥이 지금 가슴 벅차게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지 않은가.

제부도! 장어, 농어, 숭어, 망둥이 등이 뛰놀고, 굴과 바지락과 김을 키워내는 곳이다. 누천년 들락거리는 바닷물과 쓰다듬듯 불어대는 바람이 함께 이곳의 생명을 낳고 키웠으리라. 그 생명의 현장을 누군들 버리고 싶으랴? 너와 나의 끝없는 탐욕이 종국에는 이 갯벌도 삼켜 버릴 것임을 우리 모두는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내 스스로가 가련한 존재 아니랴? 그저 수굿이 제 할 일만 하고 있는 제부도의 바닷물과 바람과 갯벌을 바라보며 반성이나 하다 갈 일이다.<2011. 12. 22.>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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