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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2.02 세밑에 홀로 앉아
  2. 2007.04.10 우리시대의 위기와 인문학
글 - 칼럼/단상2011. 2. 2. 17:03

세밑에 홀로 앉아

 

창밖의 나목(裸木)들에 모처럼 햇살 비치는 오늘, 섣달 그믐날이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홀로 창가에서 이 날을 지켰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넘어가는 시간의 질(質)에 변화가 없음을 느낀다. ‘그저께보다 나은 어제,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란 입에 발린 구호(口號)일 뿐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이제 발갛게 물들어오는 인생의 황혼을 향해 한 고비 넘고 있다는 뜻일까. 몸의 동력이 마음 같지 않은 나날이다. 당나라 때 천재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세모(歲暮)>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已任時命去 이미 시운에 맡겨 따라가는 몸

亦從歲月除 그저 세월 가는대로 따라갈 뿐

中心一調服 속마음을 하나로 고르게 가져

外累盡空虛 세상사 얽힘 모두 비워버리네

名宦意已矣 명예로운 벼슬자리에 뜻 이미 버렸으니

林泉計何如 자연으로 돌아갈 계책은 어떠한가

擬近東林寺 동림사 가까운 곳 어디쯤

溪邊結一廬 개울가에 한 채 오두막이나 지어볼까나

 

이제 50중반. 세상사 마음먹는 대로 흐르지 않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사람도 물결 속의 작은 입자(粒子)일 뿐 흐르는 물의 방향을 돌리는 키나 노가 아님을 이제 겸허한 마음으로 수긍한다. 흐르는 물결은 더 큰 물결에 합쳐지고, 합쳐진 물은 더 큰 물에 합쳐져 강을 이루거나 호수를 이룰 뿐, 입자가 마음먹는 대로 모습을 바꿀 수 없음을 아프게 깨닫는다. 애면글면 도모한다 하여 세상의 명리(名利)가 손 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며, 간절히 바란다 하여 애욕(愛慾) 또한 성취할 수 없음을 터득하곤, 이제 옛 어른들이 말씀한 ‘작비금시(昨非今是)’의 탄식을 금치 못한다.

중병에 신음하다 북망산으로 실려 가는 이웃들을 보며, 탐욕의 끄나풀을 한사코 놓지 않으려다 정년(停年)으로 쫓겨 가며 앙앙불락(怏怏不樂)하는 주변의 존재들을 보며, 이제 하산(下山)의 신들메를 고쳐 맬 때임을 깨닫는다. 그렇다. 만각(晩覺), 아니 지각(遲覺)이다. 왜 나는 늘 남들보다 한 발 늦게 깨닫는 것일까. ‘깨달은 그 순간이 가장 이르다’는 억설(臆說)을 늘어놓는 사람도 있지만, 그저 위안을 주려는 것일 뿐 사실은 아니지 않은가. 어차피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 세상일진대, 세상의 가치관이란 대부분 개개인들을 비교하여 도출해내는 ‘상대적인 개념’ 아니겠는가. 말도 안 되는 주변의 왕따에 죽음으로 항변하는 후배를 보며, 대학이나 교수집단이라는 지식사회도 시궁창 그 자체임을 진저리치도록 절감한다. 그러니 남은 시간에 무얼 더 도모하고 바라겠는가. 백거이의 말처럼 물 좋고 산 좋은 곳을 골라 오척단구(五尺短軀) 누일만한 누옥(陋屋) 하나 얽어놓으면, 그것으로 만족한 것 아니겠는가.

***

조선조 후기의 천재 시인 신위(申緯)는 “佳人莫問郞年幾(아가씨, 이 사람의 나이 묻지 마오)/五十年前二十三(오십년전엔 스물셋이었다오)”라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신위만한 그릇으로도 ‘칠십이 되어서야 마음먹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그러지지 않은’ 공자 나이에 이르러서야 겨우 나이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신위의 그릇을 훔쳐 볼 수조차 없는 국량이면서도 그보다 이십여 년 앞서 나이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나는 망발지한(妄發之漢)쯤 된다고 할 수 있으리라.

어쨌든 매미 껍질 벗듯 차분한 마음으로 욕망의 허울을 벗어 던지고, 내일 아침 새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리라.

 

경인년 묵은 해를 보내며

고요한 숭실동산에서 백규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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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7. 4. 10. 11:19
우리시대의 위기와 인문학

                                                                            조규익

전통 왕조시대의 종말과 함께 식민 상황에 접어들었고, 식민 상황의 종말과 함께 분단 상황으로 접어들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현대사는 크게 왜곡된 모습을 보여준다. 비정상적인 역사의 흐름은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사회적 혼란의 요인들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어느 나라이든 역사적·사회적 변화에는 가치관이나 인식의 변화가 수반된다. 그러나 그  변화는 단계적으로 이루어져야 전통의 계승이 순조롭고, 지속적인 발전 또한 이루어질 수 있다. 대대로 같은 공간에서 삶을 이어온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지나치게 혁신적이거나 이질적인 규범을 받아들이는 일이 쉽지는 않다.
그런 점에 비추어 본다면 조선왕조에서 근대국민국가로 이행되었어야 할 시점에 식민 상황을 맞이했고, 식민 상황에 이어 분단 상황을 맞이함으로써 정상적인 가치관은 형성될 겨를이 없었다. 특히 6·25 전쟁 후 반세기 동안 농경에서 산업화의 단계로, 산업화에서 정보화의 단계로, 정보화에서 고도 정보화의 단계로 숨차게 달려온 우리 사회다. 한 사회의 가치관이 바람직하려면, 그것이 개인적 욕구를 자제하고 공동체의 이상 실현을 위해 구성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을 수 있어야 한다.
세대의 차이, 빈부의 차이, 사회적 지위의 차이, 남녀 간의 차이 등을 넘어 사회의 질서를 잡아주는 안전판 역할을 하는 것이 공동체의 이념이고, 바람직한 가치관 또한 그로부터 생겨난다. 전통 가치관을 고수하려는 기성세대와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는 신세대 간의 갈등, 부와 권력을 독점하면서도 사회적 책무를 다하지 않는 특권층과 박탈감에 고통 받는 서민층 간의 갈등, 가정과 사회의 억압구조를 중심으로 하는 남녀 간의 갈등 등, 현재 우리는 다양한 갈등 속에 살고 있고, 그것을 해소시킬 만한 이념이나 가치관 또한 갖고 있지 못하다. 우리 사회의 혼란과 위기는 여기서 빚어진다.
양과 질에서 남보다 우세한 정보만이 경제적·사회적 성공의 유일한 열쇠라고 믿는 시대정신은 고도 정보화 사회의 부정적 소산이다.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 무한 경쟁이 벌어지고, 그런 경쟁이 가속화 될수록 인간의 정신은 황폐해지기 마련이다. 좋은 책을 읽고 저자의 생각을 곰곰이 생각하며 자신의 생각을 넓히고 깊게 하는 것이 인문학의 본질이라면, 이미 형성된 인터넷 만능의 현실은 인문학의 존립에 가히 재앙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성숙이나 완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던 대학교육은 이제 재화 창출만을 지향하는 직업교육으로 탈바꿈되고 말았다. 당장 돈벌이에 소용되지 않는 지식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이다.
직업교육에 가까운 각종 응용학문들이 대학의 핵심을 차지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전통적으로 중시되어오던 기초학문이나 인문학은 설 자리를 잃었다. 기성세대, 젊은 세대 모두 나름대로의 이유를 들어 인문학을 기피한다. 인문학이 ‘당장 재화를 안겨주지 않는다’는 근시안적 시각 때문에 우리 사회의 모든 계층에서 인문학은 홀대받고 무시된다. 인간의 정신이나 문화 등을 주 대상으로 연구·분석하기 때문에, 인문학은 정신과학이자 인간과학이다.
인간의 본질과 사상을 전반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인문학의 쇠퇴야말로 ‘인간의 소외’를 초래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인간의 소외는 공동체를 물질 지상(至上)의 비인간적 공간으로 전락시킨다. 이구동성으로 인간의 소외나 인간성의 말살을 부르짖으면서도, 정작 인문학을 죽이는 일에 앞 장 서는 것이 요즘 사람들의 행태다. 시대의 병리현상을 절감하긴 하지만 그에 대한 고민을 게을리 하기 때문이다. 그토록 대학에서 직업교육을 철저히 받았음에도 사오십 대만 되면 현장에서 축출되는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가장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는 사오십 대를 상품가치가 없다고 축출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비인간화의 대표적 사례다. 인문학을 홀대하는 사회 분위기가 빚어낸 부정적 행태라고 할 수 있다.
인문학은 인간을 폭 넓은 가능태로 만드는 학문이다. 처음부터 직업교육만을 받을 경우, 그 효용가치가 다하는 날 인간도 폐기될 수 있다. 그러나 가능태의 인간은 창조적인 인간으로서, 자기 쇄신과 수련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자신의 몸값을 높여나갈 수 있다. 대학이 폭 넓은 인간을 길러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인문학의 고유 영역은 인정되어야 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어느 분야의 학문이든 인문학을 바탕으로 할 때 비로소 제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시대적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바야흐로 죽어가는 인문학을 되살려야 한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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