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동양일보 상임이사)
http://www.d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37913
“앞으로 우리 뇌가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면서요?”
“가짜와 진짜를 구분할 필요가 없어지지요. 어차피 함께 살게 되니까요. 이미 시작되었잖아요.”
유튜브 녹화 차 회사를 방문한 박외진 AI 로봇전문가와 잠시 차 한 잔을 나누는 시간, 메타버스(metaverse) 얘기가 나왔다. 현실적 감각으로는 아직 이해가 어려운 가상의 세계와 AI에 대한 대화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야기라서 흥미로웠다. 문득 최근 관심을 갖게 된 AI의 불균형에 대해 질문을 했다. 모교인 카이스트 전산학과에 1억 원의 장학금을 쾌척하면서 지원 대상을 여학생으로 한정했다는 뉴욕대 조경현 교수가 떠올라서였다.
“조경현 교수 알아요?”
“아, 조경현 교수요. 카이스트 후뱁니다. 조 교수가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여성들을 상대로 장학금을 지원한 것 정말 잘한 일이에요. 요즘 전세계 AI 연구자들의 최대 화두가 ‘다양성’과 ‘성별균형’이거든요. 그동안 AI에 들어간 데이터에는 ‘흑인’이 없어요. ‘소수집단’이나 ‘여성’도 없어요. ‘소외된 지역’도 없지요. 잘사는 나라, 백인, 남성의 데이터로 만들어지고 있지요. 그렇게 만들어진 AI는 불균형일 수 밖에 없어요. AI의 활동이 불평등을 초래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요. 늦었지만 최근 들어서 ‘데이터 편향(bias of data)’ 문제를 바로잡자는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고 그것이 AI업계의 과제입니다.”
편향된 데이터로 알고리즘을 만든 AI는 인류의 대표성을 지닐 수 없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은 인공지능업계의 연구자 대부분이 남성들로, 그들 눈에는 이런 문제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이 없다는 이유로 여성이나 소수 집단이 데이터에서 배제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AI연구에서 ‘젠더 균형’이 중요한 이유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대놓고 드러내 여성전문가를 지원하고 있는 이가 조경현 교수이다. 조 교수는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핀란드와 캐나다를 거쳐 미국 뉴욕대의 종신교수로 세계 인공 지능 학계의 주목을 받으며 AI를 연구하는 천재 공학도. ‘인공 지능 번역’의 역사를 새로 썼다고 평가받는 자랑스런 30대 젊은 남성 공학자다.
그가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것은 뉴욕대 교수로 임용된 지 4년 만에 종신 교수가 됐고, 구글, 아마존 등 굴지의 글로벌 IT 기업이 그의 연구를 후원하는 등 뛰어난 연구업적과, 강연료나 상금을 받는 족족 탈탈 털어 전액을 기부, 그것도 여성공학도를 위한 장학금으로 쾌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성별불평등’을 줄이기 위해서다.
지난해 ‘삼성 AI 연구자상’으로 받은 상금은 전액을 포닥(포스트닥터)을 한 캐나다 몬트리올대에 기부했고, 네이버, SK텔레콤 등 국내 기업체 강의료도 받은 즉시 학생들에게 내놓았다. 올해 받은 호암상의 상금은 석·박사를 공부한 핀란드 알토대에 3만유로(약 4000만원)를 보냈고, KAIST에 1억원을 기부했다. 몬트리올대 알토대 카이스트는 모두 조 교수가 공부를 한 모교들이다. 그는 모교에 장학금을 보내면서 대상을 ‘컴퓨터과학을 전공하는 여학생’으로 한정했다.
카이스트 장학금도 마찬가지로 여학생 전공자를 대상으로 지정했다. 카이스트 장학금에는 자기 이름 대신 어머니 이름을 내걸어 ‘임미숙 장학금’이라 명칭을 붙였다. 어머니 이름을 내건 이유는 부모님이 대학동기로 똑같이 공부했지만, 어머니는 조 교수 형제를 기르느라 경력단절여성이 되어서, 그런 어머니의 희생에 감사드리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혹시 여자 후배들이 자신의 어머니처럼 출산과 육아 때문에 고민하게 된다면, 장학금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한 번 더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조 교수는 또 한국 고전 학술상 제정에도 1억원을 기부했다. 고전문학자인 아버지와 제자들이 지원도 없이 묵묵히 한 우물 파는 것을 보면서 인문학자들을 돕고 싶었단다.
균형 잡힌 생각과 물질에 매이지 않는 천재가 우리의 미래를 맡는 AI연구자라는 것이 마음이 놓인다. 그리고 우리사회 불평등, 그 가운데서도 젠더 평등을 위해 바른 사고를 갖고 있다는 것에 박수를 보낸다.♣
[동양일보 2021. 7.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