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09. 2. 5. 15:27
 

스페인 기행 4-1 : 종교 간의 불화가 빚어 만든 메스키타(Mezquita)의 조화와 부조화-꼬르도바(Cordoba)행의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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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르도바 거리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오렌지 나무들>

25일 오후. 알함브라궁의 아름다움을 찬탄해 마지않은 우리는 역사 진행의 우여곡절이 빚어낸 빛과 그림자를 가슴에 담고 그라나다를 떠났다. 대략 두 시간을 이동하여 도착한 곳이 유서 깊은 문화와 역사 도시 꼬르도바. 그라나다는 지중해와 인접한 도시였으나, 꼬르도바는 대서양으로부터도 지중해로부터도 비슷하게 떨어져 있었다. 알트슈타트(Alt Stadt)의 성문 앞에는 네로 황제의 은사이자 스토아 학파에 속한 철학자 세네카(L. A. Seneca)의 동상이 지키고 있었다. 그는 바로 이곳 출신이었다. 꼬르도바가 범상치 않은 정신적 도시임을 보여주는 증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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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네카의 동상>

 도시를 관통하여 과달키비르(Guadalquivir)강이 흐르는 이곳은 안달루시아의 관문이었다. 도시 전체가 무어족, 유대족, 기독교파 등 세 문화권으로 나뉘어 공존하거나 각축을 벌이다가 1236년 페르디난드 3세의 기독교군에 의해 정복됨으로써 이슬람 왕조는 붕괴되었다. 그 과정에서 회교문화에 기독교 문화가 덧씌워지는 양상으로 이 도시의 문화적 색채는 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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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9. 2. 2. 02:46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당시 술탄과 귀족들의 호화롭던 사생활을 훔쳐볼 수 있는 공간, 헤네랄리페였다. 14세기 초에 정비된 술탄의 여름 별궁이었다. 이 공간에서 가장 이채로운 곳은 아세키아(Acequia) 수로. 전체 길이 50m의 중앙 정원에 을 흐르게 하고 좌우에 많은 수의 분수를 설치한 곳이었다. 수로를 에워싸고 많은 꽃나무들과 정원수들이 무성하게 자라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천국 아니냐고 했다는 당시 술탄과 귀족들의 말을 곱씹어 보며 정원을 산책하는 내 마음이 복잡했다. 이슬람과 가톨릭이 번갈아가며 지배하던 곳. 세월은 흘러도 그들이 누렸던 향락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고, 역사의 저변을 끊임없이 맴도는 곳. 오늘 나는 쏟아지는 햇살 아래 안달루시아의 핵심인 알함브라에서 반복되는 인간사의 영욕을 체험한다.

이제 우리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또 다른 역사를 찾으러 꼬르도바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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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9. 2. 2. 02:32
 

자연의 방법으로 냉․난방이 이루어지던 왕의 목욕실을 지나자 워싱톤 어빙의 집필실이 나왔고, 벽면에는 어빙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어빙이 이곳에 왔을 땐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한다. 이슬람에 의해 건설된 그라나다가 기독교의 지배로 들어가면서 미처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빙의 글 <<알함브라 이야기>>가 알함브라 복원의 당위성을 일깨워주었고, 그로부터 반복되는 복원 작업을 통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다 한다. 말하자면 어빙은 시간의 구비 속에 함몰될 뻔한 알함브라를 구한 셈이다. 이 방을 보면서 귀국하는 대로 <<알함브라 이야기>>(정지인 옮김, 생각의 나무, 2007)를 다시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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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왕궁의 내부 장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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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를로스 5세 궁전에 보관, 전시중인 사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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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층이 다른 양식으로 건축된 카를로스 5세 궁전>

왕궁의 남쪽 부분에서 미완성의 건물인 카를로스 5세 궁전을 만났다. 르네상스 양식의 정사각형 2층 건물로서 1층은 도리아식, 2층은 이오니아식의 건축양식을 보여주었다. 현재는 국제 음악회나 무용제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건물이었다.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같은 가수들이 야외음악회의 장소로 사용한다니 멋진 일이었다. 1층에는 이슬람 미술관, 2층에는 알함브라 공예품을 전시하는 주립 미술관으로 쓰인다고 하는데, 우리가 방문한 날은 공교롭게도 휴관일이었다. 관광객들은 울림효과가 큰 1층 공간의 한 가운데로 나아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노랫소리를 흉내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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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9. 2. 2. 02:22

 나자리 왕궁은 이슬람 문화의 정수였다. 메수아르의 방(Sala del Mexuar)을 출발하여 헤네랄리페에서 우리의 관람은 끝이 났다. 메수아르의 방은 술탄이 집무도 하고 예배도 보던 방으로 사면의 벽이나 천정이 아라비아 문양의 타일로 덮여 있었다. 이슬람 문화에서 시작되어 중국의 도자기 문화와 만나 더욱 고급화 된 것이 타일이다. 이 방에서 아라야네스 중정(Patio de los Arrayanes)으로 나가니 양 옆으로 향내 그윽한 아라야네스가 심어진 직사각형(남북 35m, 동서 7m)의 연못이 나오는데, 작은 원형의 분수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곳의 조경에는 단 한 명의 노예도 동원되지 않았을 만큼 민폐를 끼치지 않은 역사(役事)였다는 점이 이채로웠다. 타지마할 등 동서의 건축술이 만나 이루어진 것이 이 왕궁이었던 만큼 노예들의 노역(勞役)이 그다지 달갑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이곳 연못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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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함브라의 아름다운 타일 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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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아라야네스 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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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타일 문양>
 
7개의 아름다운 아치 앞에는 정사각형의 공간인 대사의 방이 있었다. 술탄이 외국사절들을 알현하던 장소로서 그림 타일의 벽면, 상감 공예의 천장, 바닥 등 아라베스크 문양으로 덮인 곳이었다. 그곳에서 나가니 사자의 중정(Patio de los Leones)이 나타난다. 이곳은 술탄을 제외한 남성들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던 하렘 구역이었다. 정교한 석회세공과 유대인의 12부족을 상징하는 열두 마리의 사자가 받치고 있는 원형분수가 눈길을 잡았다. 사자의 궁전을 나서자 파르탈 정원(Jardines del Partal)이 앞길을 막아선다. 연못 주위로 꽃과 나무들이 서 있고, 연못에는 귀부인의 탑이 서 있으며, 두 자매의 방과 그 주변의 아름다운 장식들은 우리의 눈을 사로잡았다. 술탄이 가장 사랑했던 카톨릭의 두 자매를 위한 방으로, 그들의 위한 사랑의 글귀가 새겨져 있었으며, 모카라베스 양식으로 건축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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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렘 구역의 아름다운 열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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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렘 구역의 아름다운 열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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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싱턴 어빙 집필실의 표지판>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