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07. 12. 9. 11:50
*알립니다. 저는 올해(2007) 초에 '조규익 임미숙의 유럽 자동차 여행기 <<아, 유럽!>>(푸른사상)을 출간한 바 있습니다. 여기에 그 원고에 해당하는 기행문을 차례로 싣고자 합니다. 말하자면 여행기간의 역순(逆順)으로 싣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제1신 : 삶은 우리에게 축복인가 고통인가-
                            폼페이의 비극을 보며


우린 2006년도 첫날을 아드리아 해에서 맞이했다. 바리 항에 내리자마자 곧바로 이탈리아 남부를 횡단하여 폼페이에 입성했다. 동에서 서로 달리는 길. 중간쯤부터 거센 바람이 구름을 몰고 다니더니 오락가락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폴리를 지나 살레르노에 이르자 빗발은 굵어졌고, 폼페이에 들어오자 흙탕물이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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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바리 항에서 폼페이로 가는 도중 만난 아름다운 자연


도시는 썰렁했다. 1월 1일 휴일에 비까지 내리니 도심은 공동(空洞) 상태. 길 물어볼 사람조차 없었다. 빗발 속에 간신히 호텔 하나를 잡은 뒤 도시를 대충 살폈다. 티레니아 해로 연결되는 살레르노 만을 접한 폼페이. 중심에 옛 도시의 폐허가 있고, 그 바깥으로 새로운 도시가 형성되어 있었다.
몇 안 되는 관광객들이 매표소 주변에서 서성대는 모습을 보았으나, 폼페이 폐허와의 만남을 다음날로 미루었다. 그 만남을 좀더 의미 깊도록 만들고픈 우리의 희망 때문이었다. 폼페이의 음울한 분위기를 살리려는 듯 줄기차게 비는 내리고, 나그네의 수심을 도와 밤은 더욱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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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시가지 일부


본의는 아니었으나 우연찮게 근래 우리는 폐허만을 찾아다녔다. 터키의 에페소, 그리이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와 에인션트 코린트, 그리고 이탈리아의 폼페이까지. 터키, 그리이스, 이탈리아는 바다로 접한 나라들. 역사의 진행과정에서 서로 물고 물리는 길항(拮抗) 관계였던 이 나라들이었다.
아시아와 유럽의 중간지대인 터키, 완전 서유럽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유럽도 아닌 그리이스와 이탈리아다. 에게해, 아드리아해, 지중해 등 서로 물길처럼 연결되는 바다를 공통의 무대로 하는 나라들이다.
일찍부터 꽃 피운 인류문명을 세계로 전파시키며 주름잡던 주역들. 그들은 자신들의 영역 안에서 항만들을 기반으로 도시문명을 이룩했으나, 전쟁을 비롯한 인재(人災)와 지진이나 화산폭발 등의 천재(天災)로 멸망을 면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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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폐허의 한 부분


영속하고자 한 그들의 욕망이 허무로 귀결된 현실을 보며, 명백한 신의 섭리를 깨닫기도 했다. 섭리의 현실화이든 단순한 허무이든, 폐허로 남은 ‘옛날의 영화’는 범부(凡夫)들의 마음에 참담함만 안겨 주었다. 역사의 이성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어떤 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폐허의 돌조각에서 느끼는 온기가 예사롭지 않은 나날이다.
물론 시간은 매 순간 절대 동일할 수 없고, 최소한 ‘동질적’일 수도 없다. 그러나 언제든 새로운 코린트, 새로운 에페소, 새로운 폼페이가 생겨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크게 보아 반복되는 것이 인간의 역사라고 믿는 우리로선 그 두려움을 떨칠 수 없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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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폐허 유물 저장고에 있는 시신의 부조


폼페이의 폐허 속에 쭈그리고 앉은 채 미이라처럼 형상화 된 어느 남자의 입에서, 누운 채 죽어버린 일가족의 입에서 우리는 분명 그런 내용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폐허를 대하면서 우리는 ‘살아있음’에 환희해야 하는가, 아니면 역사의 반복 가능성에 몸서리를 쳐야 하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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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7. 11. 6.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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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학(碩學)이 돈 몇 푼으로 만들어지나

                                                               조규익(숭실대 교수)

우리나라 지식사회의 중심인 대학과 교수집단을 무참하게 짓밟아버린 신정아 사건. 한 계절이 다 가도록 그 본질이 명쾌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그 사건이야말로 지식인들의 무사안일과 허위의식, 그로 인한 지식사회의 부패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이런 와중에 교수 정년보장심사에서 신청자들을 대거 탈락시킨 KAIST의 사례가 이른바 ‘교수 철 밥통 깨기’의 전조(前兆)로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당연하다. ‘한 번 임용되면 정년이 보장되는 기존의 관습을 깨야 한다’는 이구동성(異口同聲)의 사회적 구호가 당위로 인식되는 분위기 속에서 상식을 갖춘 교수들이라면 무슨 항변인들 보탤 수 있겠는가.

근래 들어 우리 사회에서 ‘석학’의 언급이 부쩍 늘어나는 것도 이런 현실에 대한 반작용일 수 있다. 말하자면 쭉정이들 틈에서 ‘제대로 된 알맹이들’ 몇몇이라도 키워 지식사회의 건전화를 선도해보자는 발상일 것이다. 학계의 저변을 튼실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상식적 처방을 잠시 외면한 채 이른바 소수의 ‘스타교수, 스타학자’들을 찾아내어 ‘석학’이란 명함을 부여해보자는 발상은 한정된 재원을 투자하여 ‘일시적이나마’ 한국 지식사회의 저급성을 모면해보자는 고육책일 것이다.

그렇다면 석학이란 무엇인가. 과문의 소치이겠으나, 동양권에서는 예로부터 십여 년 이상 저술에 몰두해 온 ‘대학자’를 석유(碩儒)라 했고, 석유는 석학과 동의어로 쓰인 말이다. 근대 이후 학문이 다양하게 분화되면서 어느 분야에서나 석학들은 나타나게 되었다. 분명한 것은 석학이란 말 속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된 해당 분야의 전문적 식견과 사회적 책무의 인식이나 실천이라는 복합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탁월한 학문적 깊이와 함께 지도적 인격이 구비되어야 비로소 ‘석학’의 영예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석학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라가 발전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며, 그런 이유에서라도 스스로가 석학이라고 나설 수 없는 것은 더더욱 당연한 일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학문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 한국학술진흥재단에서는 ‘국가석학’이란 명목으로 ‘우수학자’를 ‘모집’하고 있다. 자격을 갖춘 학회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는 단서를 달고 있긴 하나, 그 추천을 받기 위해서는 학자들 스스로가 자신이 석학임을 입증해야 한다. 몇몇 전공분야의 경우 수백명이 신청했다는 후문이고 보면 우리나라에는 ‘스스로 석학들’이 매우 많은 셈이다. 특정 연구계획으로 2~3년 간 매년 기천만원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연구를 마무리한다고 석학이 된다면 조만간 이 나라는 석학으로 가득 차게 될 것 아닌가.

조나라의 평원군(平原君)에게 스스로를 천거하여 일을 성사시킨 전국시대 ‘모수(毛遂)’의 예도 있긴 하지만, 긴 세월이 필요한 학문은 ‘단박의 술수’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차라리 권위 있는 학회들에 위탁하여 기존의 명망 있는 학자들이나 장래 ‘석학의 가능성을 지닌’ 학자들을 발굴·추천하는 일을 맡겨서 국가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는 일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다. 해마다 한 두 번씩 수백 명의 학자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석학이라 내세우며 어리석음을 범하게 하는 일이야말로 백년대계를 책임져야 할 국가가 범하는 최대의 잘못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공무원들이 탁상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석학이란 단박에 돈 몇 푼으로 만들어지는 ‘물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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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7. 10. 12. 17:46

교수개혁이 대학의 개혁이다

개교 110주년. 개교 이래 한 세기를 넘기고 10년이란 세월이 더 흐른 시점이다. 어느 공동체이든 한 세기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대략 ‘조(祖)-부(父)-손(孫)’ 3대의 계보가 완성되는 기간이며, 처음에 표방한 이념을 완성할 수 있는 기간이기도 하다. 거기에 ‘강산도 바뀔 만한’ 10년이 더 흘렀다.

제대로라면 새 세기의 도약을 위한 새로운 방향 지표에 구성원들의 총의가 결집되어 벌써 출발선으로부터 훨씬 멀리 떠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과연 숭실의 구성원들은 그런 지향점을 공유하고 있는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KAIST와 서울대 등 앞서 가는 몇몇 대학들은 교수들에 대한 평가를 엄정하게 함으로써 대학의 분위기를 일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학문과 지식사회를 선도하는 이들 몇몇 대학들은 대학의 수월성을 교수집단에 대한 엄격한 관리에서 추구하려고 한 것 같다. 만시지탄의 느낌은 없지 않으나, 맞는 방향이다.

사실 대학은 개혁되어야 하고, 대학개혁의 핵심은 교수개혁이다. 교육의 핵심은 교수에 달려 있고, 교수는 엄격한 평가에 의해 관리되어야 한다.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기백명의 학생들, 적게는 10명 이내에서 많게는 십 수 명의 교수가 모여 이루어진 것이 대학의 학과들이다. 매년 많은 수의 학생들이 사회로 배출되고, 그들은 각계로 흩어져 대학에서 자신들이 배운 대로 행동할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사회의 핵심적 위치에 서게 되고 그가 이끄는 공동체 역시 그들의 생각대로 굴러가게 된다.

교수들이 잘못 된 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경우 학생과 학교, 사회와 국가의 피해가 말할 수 없이 크리라는 점은 묻지 않아도 뻔히 알 수 있다. 그간 온정주의나 연공서열 중시의 분위기에서 ‘편안하게 지내온’ 일부 교수들이 만에 하나 동료나 후배교수들을 ‘패거리’로 묶어 지배하려고까지 한다면, 학문은 실종되고 술수나 음모가 판치는 ‘조폭사회’로 변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것도 바로 교수사회다.

학문적 담론의 질과 양, 강의를 비롯한 학생들에 대한 서비스의 질과 양으로 교수 자질의 적격 여부가 결정되어야 하고, 그것이 교수들에 대한 우대와 퇴출의 절대적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교수들에 대한 평가가 엄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몇 년 동안 제대로 된 논문 한 편 없어도 교수직을 유지할 수 있었고, 한 번 교수가 되면 ‘어영부영’ 정년보장이나 받는 교수들이 적지 않은 집단이라면, 대학의 간판을 내려야 할 것이다. (국문과 조규익 교수)

*이 글은 숭대시보 No.955, 2007년 10월 8일자 사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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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7. 10. 1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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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10일 숭실대학교 조만식 기념관 앞 잔디밭에서 기념식수를 마치고


숭실 재직 20년만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으며


2007년 10월 10일. 숭실대학교 110주년 기념식장에서 ‘근속 20년’의 포상을 받았다. 하루 종일 식장안팎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격려와 박수를 받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 겸연쩍음을 금할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내 나이 이제 50이니 어느 곳으로든 뻗어나갈 수 없음을 위로라도 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그간 내가 진짜로 남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이곳에서 해왔다는 말일까.

숭실에서의 삶을 시작한 1987년은 무척 혼란스런 시기였다. 폭력적인 5공 정권이 종말을 고할 즈음이었고, 88 서울 올림픽의 열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하던 때였다. 사람들은 정의와 불의의 경계선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으며, 약아빠진 자들과 미련한 자들의 세속적 득실(得失)이 하늘 땅 만큼 벌어지고 있던 때이기도 했다. 독재정권을 종식시킨다는 대의명분으로 강의보다 무단휴강일수가 훨씬 많았고, 교수들의 나약한 목청이 강의실 앞에서 고성능 마이크로 선동하는 목소리들을 어쩌지 못하던 좌절의 계절이었다.

늘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것이 학문의 세계이자 대학의 본질이라면, 한 대학에서 20년을 근속했다는 것이 크게 자랑스러울 것은 없다. 어쩌면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지 못하고 한 곳에 ‘처박혀’(?) 온 사실이 학자나 교수로서는 일종의 수치일 수도 있으리라. 수치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건 안일과 타성의 덫에 가위눌려 있으면서도 늘 무언가를 찾아 몸부림치고 있다는 착각 때문일 것이다.

그간 20년, 30년 근속하신 선배들을 뵈며 한편으로 연민의 정을 느껴왔다. 철없던 시절의 내 치기어린 안목이 빚어낸 실수였다. 아니, 그 분들의 주름 진 얼굴에서 아무런 가치도 읽어내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나의 오만함 때문이었음을 지금 비로소 깨닫는다. 나도 이제 그 때 그 분들의 연세에 도달했다. 그 분들이 서서 축하의 인사를 받던 그 자리에 올라 겸연쩍은 표정으로 다시 옛날 내 또래의 후배들로부터 축하의 인사를 받으면서 비로소 나를 응시하게 된다. 나는 과연 누구였으며, 앞으로 누구의 얼굴로 살아갈 것인가.

전공 강의실. 얼굴에 제법 어른 티가 오르기 시작한 학생들에게 ‘1987년’을 물었다. 모두 한 목소리로 ‘한살 때’였단다. 그래, 내가 이곳에 부임하던 1987년이 그대들은 세상에 갓 태어나 첫돌을 맞이하던 때였구나! 끔찍한 세월이 흘러 그 때의 한 살 박이들과 마주 한 지금. 왜 나는 내 내면의 나이테를 헤아릴 자신이 없는 걸까. 잘 못 돌린 카메라의 하얗게 바랜 필름처럼 그간의 궤적이 깡그리 사라졌단 말인가.

그래서 오늘 다시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다. 오늘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가치 있는 삶의 궤적’이 또렷한 나이테로 내 마음에 각인되길 간절히 바라며, 내 사랑하는 학생들과 소망의 흙을 삽질한다.

2007. 10. 10.

조만식기념관 옆 잔디밭에서

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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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7. 7. 14. 11:57
*신정아 사기사건을 보며 참담함을 금할 수 없군요. 제가 옛날에 쓴 칼럼이 있어서 다시 이곳에 올려 봅니다. 우리가 학벌의 환상을 좇는 한 우리 사회에 '가짜박사' 사건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끊이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함께 반성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합니다.



*이 글은 조선일보 2006. 3. 27. 시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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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가짜박사' 부추기는 사회


허술한 검증에 간판 중시 ‘지식범죄의 온상’ 돼버려


▲ 조규익 숭실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최근 며칠째 가짜박사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사건은 곪을 대로 곪은 우리 지식사회의 아름답지 못한 이면을 만천하에 노출시킨, 일종의 ‘테러’다. 피터 드러커의 설명처럼 지식 노동자가 권력을 갖는 사회가 지식사회라면 이 땅의 총체적 부패는 지식인들로부터 연유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추악한 테러의 무대가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을 넘어 러시아와 필리핀까지 번졌으니 다시 어느 나라가 이 행각의 새로운 현장으로 연루될지 자못 불안하기만 하다. 한국판 지식 범죄의 국제화라고나 할까. 얼마 전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했던 우리 학자들의 표절사건, 온 국민을 망연자실하게 만든 ‘황우석 사건’ 등과 함께 이번의 가짜박사 사건으로 우리의 지식사회는 결정적인 카운터펀치를 맞은 셈이다. 우리나라의 국제 경쟁력이 하락 국면으로 접어든 것도 국가 발전을 선도해야 할 지식사회의 휘청거림과 무관치 않다.
지금 우리는 가짜박사 학위를 남발한 외국의 대학들을 나무랄 처지가 아니다. 그런 대학들에서 사온 가짜 학위로 학술진흥재단에 학위등록을 하고, 어엿한 대학의 교수직에까지 올랐으니 문제의 근원을 우리에게서 찾는 것이 옳다. 가짜박사를 교수로 채용할 정도로 진짜와 가짜도 걸러내지 못한 수준이 우리 대학들의 한심한 실태다. 이런 현상은 지식사회의 마비된 양식, 국가의 학문정책 부재, 대학개혁의 실패 등이 어우러진 결과다. 지금 우리나라 대학들은 개혁의 열풍에 휩싸여 있다. 그러나 하드웨어의 치장에만 주력할 뿐 정작 개혁해야 할 본질적 대상은 초점으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개혁의 목적은 대학정신의 정립에 두어야 하고, 그에 걸맞은 제도의 신설이나 보완이 그 구체적인 방향이어야 한다.

세계에서 우리나라는 박사학위 보유자 비율로 선두권에 서 있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검증 시스템이 없거나 부실한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우리나라 대학들이 필연적으로 저질박사들의 온상 혹은 가짜박사들의 은신처가 되기에 딱 알맞은 곳임을 보여주는 점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손쉽게 입수할 수 있는 지식정보가 널려 있고 표절행위 또한 여전한데, 오히려 논문의 심사단계는 전보다 간소화되고 있다. 적으면 한두 번, 많아야 서너 번의 심사가 박사논문 검증의 전부다. 박사 학위의 양산체제에 온정주의까지 가세하여, 저질논문을 걸러내기란 더욱 어렵다.

지금 기업들은 대학의 박사학위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학을 비롯한 대부분의 기관들은 반드시 박사학위를 요구한다. 아무리 실력이 출중하고 연구업적이 뛰어나도 박사학위가 없으면 아예 서류조차 낼 수 없다. 그러나 정작 채용 과정에서는 가짜박사를 걸러내지 못한다.

구태의연한 검증 시스템과 지식사회의 낮은 윤리의식, 실력보다 학위를 중시하는 인력 수요자들의 무감각이 지속되는 한 가짜박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가짜박사들은 죽은 지식사회에 기생하기 마련이다. 지식사회의 핵심인 교수들에게 보다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과 성실한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근 발표된 서울대의 교수윤리헌장은 늦었지만 적절하다. 지식사회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진리다.


(조규익 숭실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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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7. 7. 8. 14:08
대선 주자들, 담론(談論)의 격을 높여라
-조선일보 원문보기 클릭-



대선 주자들, 담론의 격을 높여라
- 조규익

대선의 계절이 다가오면서 ‘한솥밥’을 먹어온 사람들이 서로 적이 되어 말에 칼날을 세우고 있다. 〈당서〉 ‘이임보전(李林甫傳)’에 ‘구유밀복유검(口有蜜腹有劍)’이란 말이 나온다. 말은 꿀과 같이 달고 친절하나 뱃속에는 날 세운 칼이 들어 있다는 뜻이다. 원래 무서운 인물을 묘사한 표현이지만, 지금 상황에선 이 표현도 양반이다. 모두가 최소한의 수사(修辭)나 미소도 없이 그대로 ‘도끼처럼’ 상대를 내려찍기에 바쁘다. 비록 적이라도 장점을 칭찬해주는 금도(襟度)가 실종된 지는 이미 오래다. 국민들의 수준이야 자신들의 안중에도 없으니 오물 같은 증오의 언사들만 농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선 후보들에게 시대를 이끄는 ‘담론(談論)’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자기의 신념이나 객관적 가치의 관점에서 시대적 의의를 인정할 만한 언어가 담론이다. 지금 난무하는 담론 아닌 언설들은 기껏 대운하나 위장 전입, 탈세 등이 거의 전부다. 물론 그것들이 중요치 않다는 건 아니고, 그런 잘못을 파헤치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통령이 되려는 자가 국민들의 의식주를 걱정하고, 그 문제 해결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것을 말릴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게 전부일 수는 없다.

광복 이후 반세기가 흘렀지만 대통령 후보들의 생각은 ‘먹고사는 문제’로부터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간 국가 지도자 덕에 우리가 산업화 사회, 정보화 사회, 고도 정보화 사회로 술술 넘어온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업이나 국민들의 지혜로움이 그런 변혁의 기조를 만들어왔고, 정치권이나 지도자들은 따라오기에 바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달라져야 한다. 이 변화의 기조가 제대로 된 것인지, 우리 사회가 달리고 있는 궤도가 온전한지 점검할 때가 되었다.

우리 경제규모가 세계 11위에 랭크되어 있다지만, 아직도 우리는 선진국 문앞에 서성대고 있다. 국민 모두가 투철한 문화의식을 갖지 못한 때문이다. 사실 문화의식은 전통과 보편주의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를 뛰어넘어 국민적 자존심으로부터 발로되는 것이 문화의식이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문화나 의식을 어떻게 살려나갈 것이며, 그것을 바탕으로 세계인들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대선 후보들이 읽어야 할 시대정신의 초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거기서부터 하부 아젠다를 어떻게 설정하고 실행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국가 경영의 이념뿐 아니라 시대정신에 대해서도 무지하다 보니 기껏 한다는 것이 남들의 흠이나 잡아내어 헐뜯는 일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불안하고 짜증스럽다. 검증이란 미명 아래 자행되고 있는 네거티브 전략이 우리 사회의 신뢰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있는 현실. 검증의 당위성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나 검증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자는 그야말로 ‘하늘을 우러러 한 줌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남을 검증하려면 철저한 자기검증이 우선되어야 한다.

정치인들이 자기검증만 제대로 한다면 굳이 남을 검증할 필요 없고, 그에 따라 ‘네거티브 전략’이란 저급한 용어가 등장할 필요도 없다. 네거티브 전략에는 담론이 필요 없거나, 있어도 저급한 수준으로 족하다. 국가 경영을 위한 미래지향적 기치를 만들어 내놓아야 할 후보들이 남의 말꼬리나 잡고 티격태격할 여유가 없다. 이제 대선 후보들은 담론의 격을 높여야 할 때다.
Posted by kicho